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14
14. 싹
생각해 보면 며칠 새 지율이를 안아 올리는 게 가뿐해졌다. 그새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힘이 세진 거였다.
“나 참…….”
액정에 금이 가긴 했지만, 다행히 사용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음에 육지에 들르면 수리해야지.
휴대폰을 부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감지가 불가능할 정도로 미량이긴 하지만, 마력이 생겼을 때부터 이상하긴 했다.
마수의 특성을 가지게 된 점도 신기했고.
세계 최초로 발생한 상황일 듯하다. 나와 비슷한 존재는 지율이밖에 없을 테지.
온갖 호들갑을 떨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인데, 나는 차분했다. 전부 대수롭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되든 내가 살아갈 방식은 같을 테니까.
“빠아아!”
지율이가 갑자기 내게 달려왔다.
“응? 왜 그래?”
“저기! 저기이!”
“저기 왜?”
텃밭 옆이 울룩불룩거렸다.
“팜독이구나.”
“팜독?”
“응, 아빠가 어제 만나고 온 새 친구들.”
“친구!”
그때 팜독이 땅을 뚫고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팜독 리더였다. 햇빛이 눈부신지 묘하게 눈살을 찌푸린 녀석이 나와 지율이 그리고 무룩이를 번갈아 보다가 울음소리를 냈다.
“프아앙.”
“아하하핫!”
지율이는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웃었다.
“귀여워!”
팜독이 코를 벌름거리다 다시 울음소리를 냈다.
“프앙! 프왕! 프와앙!”
뭔가 문제가 있는 듯했다.
“빠아.”
지율이는 손으로 팜독을 가리킨 채 나와 눈을 마주쳤다.
“못 한대.”
“못 한다고? 뭐를?”
“막혔어.”
“막혔다고?”
그때 팜독이 울음소리를 냈고, 지율이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유심히 듣다가 말했다.
“앞이 막혔대.”
나는 마력이 있는 대상의 감정, 의지 등을 느낄 수 있게 됐다.
지율이는 마력을 지닌 대상이면 전부 무룩이처럼 말이 통하는 모양이었다.
“가보자.”
내가 걸음을 뗐고, 팜독은 따라오라는 듯이 울음소리를 내고는 앞섰다.
“프앙프앙.”
팜독은 앞장서면서도 나와 지율이가 잘 따라오는지 수차례 확인했다. 팜독이 뛸 때마다 가시가 짧은 밤송이 같은 엉덩이가 바삐 움직였다.
* * *
“아, 이래서…….”
팜독들은 협의한 대로 열심히 일을 했는데, 난관에 봉착한 상태였다. 농지 가운데 바위가 묻혀 있었다.
내게 보여주기 위해 직경 1미터 이상 바닥을 파헤쳐 놓은 상태. 카카오 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모습의 바위가 땅속에 꽉 차 있다.
“어쩌다 바위가 여기 묻혀 있냐.”
밭에서 고만고만한 작물을 키우는 데는 아무 방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땅굴을 파는 팜독들에게는 최대의 골칫거리.
“프앙?”
팜독은 바삐 손짓하듯 양 앞발을 움직였다.
“어쩌지?”
지율이는 팜독의 마음을 그대로 전했다.
“그러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굳은살이 단단하게 배긴 손바닥을 힐끗 봤다.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나.”
* * *
컨테이너에 갔다가 농지로 다시 왔을 때, 나는 곡괭이를 쥐고 있었다.
팜독들은 바닥을 파헤쳐 바위 옆면이 드러나게 했다.
직경 2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한 바위.
아무리 힘이 세졌어도 이렇게 큰 바위를 들어 올릴 수는 없다. 하지만 도구를 사용해 부술 수는 있다.
바위 앞에 선 나는 양손에 쥔 곡괭이를 어깨 뒤로 넘겼다.
“다들 뒤로 물러나 있어.”
농지에서 채석장에서 날 법한 소리가 울렸다.
“훗! 훗! 훗! 훗!”
곡괭이를 휘두를 때마다 호흡을 내뱉었다. 힘이 세지긴 했는지 곡괭이 소리가 울릴 때마다 바위가 새끼를 쳤다.
“빠아아!”
지율이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두 주먹을 배에 붙이고 있었다. 앙 다문 입에서는 의지가 느껴졌다. 검고 맑은 눈동자에 내가 비쳤다.
“파이팅!”
내가 소리치자 지율이도 따라서 목소리를 높였다.
“빠이띵!”
나는 다시 곡괭이를 휘둘렀다. 현장에서 하던 일과 같았는데, 기분은 달랐다. 똑같이 곡괭이질을 하는데 왜 행복한지.
“프프앙! 프와아앙!”
팜독 리더는 현장 관리자처럼 지휘를 하듯 앞발을 바삐 움직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팜독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파편들부터 농지 밖으로 치웠다.
“다들 빠이띵!”
지율이도 파편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행여나 파편이 지율이나 팜독에게 맞을까 봐 곡괭이를 마음껏 휘두를 수 없었다. 적당히 힘 조절을 하면서, 타이밍을 맞춰서 곡괭이질을 했다. 그래도 혼자 하는 것보다는 훨씬 빨랐다.
현장에서 나는 혼자 일하는 걸 고집했었다. 혼자가 익숙하다며. 뭐든지, 언제든지 그랬다.
막상 오롯하게 혼자일 수도 없었으면서.
세상에는 완전하게 혼자서 존재할 수 있는 게 없다. 전부 무언가가 필요하다.
“빠아!”
지율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양손에 돌멩이를 들어 보이고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웃어 보였다.
“빠이띵!”
“파이팅!”
특히나 사람은 다른 누군가가 가장 필요한 존재다.
* * *
어느새 바위는 내 키보다 작아져 있었다. 몇 시간 만에 할 수 있을 줄이야. 힘이 세지고 지율이와 팜독들이 도운 덕분이었다.
조금만 더하면 끝.
“지율아, 그만하고 놀고 있어!”
“아니야! 도와줄 꼬야!”
지율이는 핸드볼 크기의 파편을 살짝 들어 보이며 웃었다.
내 딸이지만 어떻게 저리 사랑스러운지.
이제 끝이 보였다.
나는 다시 곡괭이를 휘둘렀다.
캉! 카앙! 빠작!
곡괭이 소리가 이상했다. 마치 나무 궤짝을 부수는 듯한 소리.
“오…?”
바위가 박처럼 절반으로 쪼개졌다.
코코넛처럼 안쪽에 약간의 공간이 있었고, 진한 초록빛 물이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
“이게 뭐야?”
축구공 크기의 둥그런 무언가. 흡사 커다란 테니스공 같은 질감. 나는 곡괭이 머리로 툭툭 건드렸다.
살면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뭐야?”
어느새 뒤로 다가온 지율이가 고개를 빼고 물었다.
“아빠도 처음 보네.”
나는 조심스레 둥근 것에 손을 가져다 댔다. 겉보기만큼이나 만졌을 때도 테니스공과 흡사했다. 무게는 의외로 가벼운 편.
껍질처럼 쪼개진 바위의 안쪽은 감로멜론처럼 은은한 노란빛에 매끈하고 촉촉했다.
팜독들도 호기심을 가지며 다가왔는데, 이내 팜독 리더가 나를 향해 울음소리를 냈다.
“프아아아앙?”
팜독의 눈이 구슬처럼 빛났다.
“먹어도 돼?”
지율이가 물었다.
팜독들은 지율이 뒤에서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먹을 수 있는 거야?”
내가 묻자 팜독 리더가 고개를 빠르게 끄덕거렸다. 팜독들 모두 양 앞발을 배 앞으로 공손하게 모으고 있었다.
“나도 먹어도 돼?”
팜독 리더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같이 먹자!”
팜독들의 신난 울음소리가 울렸다. 녀석들이 먹고 싶어 하는 부분은 쪼개진 바위의 안쪽. 일종의 과육처럼 보였다.
팜독들은 볼이 빵빵해지도록 행복하게 먹었다. 나도 조심스레 안쪽을 손으로 살짝 떼어내 입으로 가져갔다.
“으웩!”
엄청나게 썼다. 한약과 에스프레소를 뒤섞어 먹으면 이런 맛일까.
“퉤! 퉤!”
황급히 뱉어내는데 지율이가 배를 잡고 까르르 웃었다.
그래, 네가 재미있으면 됐지 뭐.
바위 같은 것의 안쪽은 팜독들에게 진수성찬이었지만, 사람이 먹을 것은 못 됐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애초에 팜독들은 식물의 뿌리가 주식이고, 그다음이 가지와 줄기, 잎사귀다. 과일은 입에 대지도 않는다. 내게 단맛이 녀석들한테는 쓴맛인 셈.
나와 지율이는 자리에 앉아서 잠시 잔치를 벌이는 팜독들을 지켜봤다. 그러다 손 위로 시선을 옮겼다.
바위 안쪽에서 나온 테니스공 같은 것은 무엇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 * *
농지 옆의 한쪽 구석에는 돌무더기가 생겼다. 안쪽을 파먹혀 깨끗하게 껍질만 남은 무언가도 함께였다.
팜독들은 파헤쳐진 농지를 다시 고르게 정리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흙이 들썩거렸다. 땅굴도 재건 중이었다.
“그럼 마무리 잘 부탁해.”
내가 손을 들어 보였고, 팜독 리더가 모으고 있던 양 앞발을 저었다.
“돌아가자.”
나는 왼손에 곡괭이를, 오른손에는 정체불명의 테니스공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지율이는 지치지도 않는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앞서갔다.
“같이 가.”
“응!”
컨테이너로 돌아가자 무룩이가 앞에 나와 있었다. 녀석은 심통 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를 보자마자 핀잔을 줬다.
“왜 이렇게 늦게 다니냥?”
“따라오지 그랬어.”
“이렇게 늦을 줄 몰랐다냥.”
“그럼 오지. 우리 어디 있는지 알았잖아.”
“바빴다냥.”
“네가? 왜?”
무룩이는 무언가를 줍듯이 오른쪽 앞발을 들어 보였다. 녀석의 발바닥 위에는 새까만 조각이 하나 있었다. 지율이의 알껍데기였다.
“그건 왜 가지고 있어?”
“먹고 있었다냥.”
“그걸? 네가?”
지율이가 활짝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내가 줬어!”
“그랬어? 아이고, 잘했어.”
나는 지율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무룩이와 눈을 마주쳤다.
“먹을 수 있어? 딱딱할 텐데.”
“씹을 수가 없다냥.”
“근데 어떻게 먹어?”
“이렇게 먹는다냥.”
무룩이는 앞발로 잡고 있는 알껍데기를 낼름낼름 핥았다.
“나쁘지 않다냥.”
“……그래, 난 좀 씻어야겠다.”
일단 곡괭이를 창고에 두고, 물부터 받으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무룩아.”
나는 바위에서 나온 커다란 테니스공 같은 것을 들어 보였다.
“혹시 이거 알아?”
“그게 뭐냥?”
“나도 모르니까 물어봤지.”
“모른다냥.”
“이 섬은 네 구역이라며.”
“맞다냥.”
“근데 몰라?”
무룩이는 잠시 고민에 빠진 듯 평소보다 팔자 눈썹이 더 처졌다. 이내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야, 아니야. 네 구역이라고 모든 걸 다 알 필요는 없잖아. 갑자기 생기는 것도 있고.”
그러자 무룩이의 동공이 바삐 움직이는 걸 멈췄다.
“그렇다냥! 이상한 건 물어보지 말라냥!”
녀석은 괜히 목소리를 높이고는 알껍데기를 핥았다.
“꺄하하하핫!”
지율이는 그저 웃긴 모양이다.
“어?”
휴대폰에 알람이 떠 있었다. 미간을 찡그리며 번개가 내리친 듯한 깨진 액정 사이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 2건―
고성우였다. 바위를 깨느라 연락이 온 줄도 몰랐다. 고성우는 문자메시지도 하나 남겼다.
―나 지금 현장 들어가야 돼서 문자 남긴다. 일단 네 딸 출생신고하는 거 가능하긴 해. 근데 비용이 생각보다 꽤 많이 들어가긴 한다.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미혼부의 사례는 아직도 많다. 친부의 친자로 확인이 되어도, 친모가 확인되지 않으면 출생신고가 불가하다.
그나마 개정된 후 어머니의 이름, 주소, 주민등록번호 세 가지를 모를 경우에 미혼부의 자녀도 친자검사를 거쳐 법원의 확인 후 출생신고가 가능하다.
친부가 친모의 이름도 모르는 상황이 성립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고, 가능하더라도 어떻게 증명하겠는가.
여기까지가 친부여야 가능한 조건.
나는 친부도 아니고, 지율이는 사람이긴 하지만 인간으로 보기는 어렵다. 친부는 아니지만 친딸로 만들 수는 있다.
―뒤탈 없이 완벽하게 하려면 3억 정도 들어가.
돈이 좀 들어서 그렇지. 여기서 ‘뒤탈 없이 완벽하다’라는 것은 모든 행정기관을 완벽하게 통과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해외 입출국에도 문제가 없는 수준. 말 그대로 완벽하게 한 사람의 신분을 얻는 것이다.
“3억이라…….”
섬과 요트를 상속받으면서 모아둔 돈을 대부분 썼다. 비상금이라고 해봐야 1억 원 내외. 앞으로 생활에 필요한 돈이기도 하고.
쓴웃음이 흘렀다.
휴도에 와서 자급자족한 삶을 얻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삶은 돈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대가 없이 전부 얻을 수는 없었다.
“벌면 되지.”
당장 급한 것도 아니었고, 휴도는 온갖 진귀한 것들이 다 나왔다. 은문어만 꾸준히 잡혀도 3억 정도는 금방이었다.
그러고 보니 곧 경매네.
속으로 생각하는데 지율이가 옆으로 다가왔다.
“빠아.”
“응, 지율아.”
“배고빠.”
힘을 많이 썼더니 허기가 진 모양이었다.
“그치? 배고프지? 얼른 씻고 밥 먹자.”
“응!”
물은 거의 다 받아진 상태.
일단 지율이부터 씻기려 했다.
“빠아.”
“응?”
“이거.”
지율이가 알껍데기 한 조각을 내밀었다.
“고마워.”
입으로 알껍데기를 받아먹으면서 장난을 쳤다. 지율이의 손까지 입술로 살짝 깨무는 시늉을 했다.
“아하하하핫!”
지율이는 손을 뒤로 빼며 활짝 웃었다.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행복했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충족감.
휴도에 와서 진짜 행복이라는 씨가 싹을 틔운 듯했다.
지금도 완벽하다고 느껴지는데, 앞으로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확신.
“다 됐다.”
수건으로 지율이의 머리를 가볍게 말려줬다.
“금방 씻고 밥해줄게. 무룩이랑 놀고 있어.”
“응!”
지율이는 뽀송뽀송한 옷을 입고 수건을 머리 위에 걸친 채 무룩이에게 뛰어갔다. 난 씩 웃으며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씻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빠르게 샤워를 한 다음 옷을 입다가 바위에서 나온 테니스공 같은 것을 힐끗 쳐다봤다. 가지고 오면서 흙이 좀 묻은 상태. 별생각 없이 물을 끼얹어 닦아내는 순간이었다.
쩍.
불린 콩 껍질이 까지듯 한 뼘 정도 되는 길이로 갈라졌다.
“어? 뭐야?”
갈라진 틈으로는 연한 형광 녹색의 무언가가 살짝 튀어나왔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1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