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163
163. 서울 나들이
“에…….”
손에 티스푼을 들고 있던 지율이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로……?”
눈빛과 목소리에 의심이 가득했다.
“진짜야.”
“거짓말.”
“삼촌이 거짓말을 왜 해.”
여전히 지율이는 믿기지 않는 듯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빠아, 이거 깨는 거 맞아?”
크렘 브륄레에 대해 잘은 몰랐지만, 깨야 먹을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응, 맞아. 스푼으로 톡톡톡 두드려서 깬 다음에 먹는 거야.”
지율이는 꽤나 충격을 먹은 얼굴을 했다.
“그렇게 먹으면 되게 맛있어 지율아. 깨진 설탕 조각이랑 아래 깔려 있는 크림이랑 같이 떠서 먹는 거야.”
고성우의 말에 지율이는 티스푼을 살짝 들어 올렸다. 하지만 차마 크렘 브륄레를 깨부수지는 못했다. 떨리는 티스푼에서 지율이의 망설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예뻐서 못 깨겠어.”
지율이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나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래도 먹으려면 깨야 돼. 나중에 또 먹으면 되지.”
“간직하고 싶어.”
“하하하하. 그래도 먹어야지, 먹으려고 샀는데. 간직은 이렇게 하면 되지.”
나는 휴대폰으로 크렘 브륄레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자, 됐지?”
잠시 망설이던 지율이는 결심을 한 듯 아랫입술을 윗입술 아래로 넣고는 볼을 살짝 부풀렸다. 턱에는 희미하게 복숭아씨가 박힌 양 자국이 생겼다.
탁.
크렘 브륄레가 깨지지 않았다.
“더 세게 해야지.”
고성우의 말에 지율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크렘 브륄레를 두드렸다.
쩌적.
설탕 막이 깨지면서 달콤하고 부드러운 커스터드 크림이 드러났다.
“우와아, 색깔이 예쁘다.”
지율이가 감탄하자 고성우가 웃으며 말했다.
“맛도 좋아. 같이 떠서 먹어봐.”
지율이는 티스푼으로 크렘 브륄레를 조심스레 뜨더니 내게 먼저 내밀었다.
“빠아, 먹어봐.”
“하하하. 아빠는 괜찮아. 지율이 먹어.”
“알겠어. 그럼 내가 먼저 먹는다?”
“그래.”
그제야 지율이는 크렘 브륄레를 입에 넣었다. 말하지 않아도, 표정만 봐도 무슨 맛인지 알 것 같았다.
평소보다 훨씬 눈이 커진 지율이의 손이 바빠졌다.
“빠아.”
한마디.
“이거.”
크렘 브륄레 한 입.
“엄청 맛있어.”
다시 한마디.
“아빠도 한 입…… 어?”
지율이는 말을 하면서 금세 다 먹어치우고 말았다.
“아.”
그러고는 나의 눈치를 살피다가 말했다.
“미안해. 내가 다 해치우고 말았어.”
“안 그래도 돼.”
“우리 하나 더 먹을까?”
나는 피식 웃었다.
“나중에 또 먹어. 밥 먹으러 가야지.”
“알겠어.”
옆에서 지켜보던 고성우가 감탄했다.
“이야아, 지율이 참을성 좋네?”
“그럼, 당연하지.”
어깨가 으쓱해진 지율이는 팔짱을 끼며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기울였다.
“나가자.”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고성우는 황급히 남은 커피를 원샷했다. 돈이라면 아쉬울 게 없어졌는데도 먹을 거 못 남기는 버릇은 예전과 같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 * *
“아……!”
식당으로 걸음을 옮기던 중 지율이가 무언가 깜빡했다는 듯이 목소리를 냈다.
“왜 그래?”
나의 물음에 지율이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커피 먹어보고 싶었는데 깜빡했어.”
“하하하. 써서 싫어할걸?”
“써?”
“응. 씁쓸해.”
“쓴데 왜 먹어?”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어.”
지율이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난 쓰면 싫어.”
“그러니까. 아직 커피 맛을 모를 때야.”
“크면 알게 돼?”
“모를 수도 있어. 어른들 중에도 커피 싫어하는 사람들 많거든.”
“헤에…….”
그때 고성우가 앞을 가리켰다.
“여기야.”
주로 운전기사들이 많이 들르는 오래된 식당이었다.
“기사식당?”
내가 말하자 고성우가 물었다.
“왜, 싫어?”
“아니, 그럴 리가. 오랜만이라서. 근데 지율이가 먹을 만한 게 있으려나?”
지율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다 잘 먹어!”
“하하, 그렇기는 하지.”
편식은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아이들 입맛에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아 조금 걱정됐다.
그때 고성우가 입꼬리를 길게 올려 보였다.
“걱정하지 마.”
“응?”
“여기는 아이들 그리고 남자들은 좋아할 수밖에 없는 곳이니까.”
“음? 그게 무슨 소리야?”
“보면 알아.”
고성우는 자신감 넘치는 걸음을 옮기며 앞장섰다.
나와 지율이는 그런 고성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따라서 들어갔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알 수 있었다.
방송 출연을 알리는 사진들 그리고 대표메뉴.
“여기 왕돈까스 곱빼기랑 제육 일반맛이랑 매운맛도 하나씩요. 그리고 밥 전부 돌솥밥으로 해주세요.”
고성우는 앉자마자 묻지도 않고 주문했다.
제육볶음과 돈까스.
돼지고기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면 대한민국 남자들은 거의 다 좋아한다는 게 정설.
두 메뉴 모두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물어보지도 않고 막 시키네?”
내가 웃으며 말하자 고성우는 메뉴를 슬쩍 가리켰다.
“이거 세 개 말고는 메뉴도 없어. 종류별로 시킨 거야.”
“그러네.”
그때 밑반찬을 가져다주는 아주머니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예전에는 이것저것 했는데, 사람들이 와서 돈까스랑 제육만 찾으니까. 그래서 뭐 다른 거 할 필요가 없잖아. 그래서 지금은 제육이랑 돈까스만 해요. 밥은 다 돌솥이라고 하셨지?”
“네네.”
“조금만 기다려요옹.”
돈까스는 일반 밥이 나오고, 제육은 돌솥에 한 밥이 나왔다. 1천 원만 추가하면 돈까스도 돌솥밥으로 바꿔주는 식이었다.
“돌솥?”
지율이가 궁금해하자 고성우가 씩 웃어 보였다.
“곧 알게 될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돌솥밥 세 개가 나왔다. 제육볶음은 고추장 베이스로 매콤달콤한 것과 간장 베이스로 달달하면서도 짭짤한 게 있었다. 옛날 경양식 돈까스는 접시를 가득 채울 만큼 커다랬다.
“우와아아아아, 왜 이렇게 커? 이게 뭐야아?”
지율이는 돈까스를 눈으로 훑으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예전에 돈까스 먹어본 적 있잖아. 기억 안 나?”
내가 말하자 지율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달라.”
“응?”
“그때는 이렇게 안 컸어.”
“하하, 그렇긴 하지.”
지율이는 한 번 먹어봤다고 양손에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하지만 오른손잡이면서 왼손에 나이프를, 오른손에 포크를 잡았다. 당연히 돈까스를 제대로 고정하지 못했고, 나이프도 계속 미끄러졌다.
“하하, 오늘은 아빠가 도와줄게.”
“하지만 내가 하고 싶었는데.”
“같이 잡고 하면 되지. 자, 이렇게.”
나는 지율이가 왼손에 포크를, 오른손에 나이프를 쥐게 했다. 그리고 그 위로 내 손을 포갠 다음 돈까스를 썰기 시작했다. 서걱거리는 맛있는 소리가 났다.
“아차차, 밥 빨리 옮겨야지.”
고성우가 돌솥밥에 있는 밥을 다른 그릇에 옮겼다. 그리고 돌솥에는 물을 부은 다음 뚜껑을 닫아 숭늉을 만들었다.
“이건 뭐 하는 거야아? 왜 옮겨?”
지율이가 궁금해하자 고성우가 돌솥과 숭늉에 대해 설명을 늘어놨다. 얘기를 들은 지율이는 고개를 끄덕거리다 말했다.
“그럼 이따 이것도 먹는 거야?”
“그렇지.”
그렇게 식사를 시작했다. 밑반찬들도 어묵볶음이나 멸치볶음은 지율이도 먹기 좋았다. 제육은 상추가 함께 나와서 쌈을 쌌다. 지율이는 돈까스는 물론이고, 제육볶음도 쌈을 싸주면 덥석덥석 다 받아먹었다.
“맛있어?”
지율이는 입안에 가득한 음식을 꼭꼭 씹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된장국을 떠먹던 고성우가 씩 웃었다.
“잘 먹어서 예쁘다. 잘 먹어서 예뻐.”
지율이가 돈까스를 포크로 푹 찍으며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응. 난 안 먹어도 예뻐.”
나와 고성우는 그 자리에서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진짠데 왜 웃지?”
지율이는 돈까스를 입에 쏙 넣고는 눈을 깜빡거렸다. 어느새 약간은 뻔뻔해진 지율이는 너무 사랑스러웠다.
* * *
“푸하아, 맛있었다.”
지율이는 숭늉까지 남기지 않고 싹 다 먹어치웠다. 제법 잘 먹는다고 하는 성인 남자여도 배가 부를 양이었다.
“괜찮아? 배 많이 안 불러?”
나의 걱정에 지율이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응! 더 먹을 수 있어!”
건강해서 좋다.
“이제 어디 갈 거야?”
고성우의 물음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모르지?”
“몰라? 계획 없어?”
“야, 애초에 서울에 왜 왔는데. 너 병문안 왔던 거잖아.”
고성우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입을 틀어막았다.
“히이이이이익…….”
“뭔데, 갑자기 왜 그래?”
“그러고 보니…….”
녀석이 갑자기 마른세수를 하더니 검지를 세워 나를 가리켰다.
“병문안 오면서 빈손으로 왔던 거야?”
얘기를 듣고 있던 지율이가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왜? 병문안에 빈손이면 안 되는 거야?”
고성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지율아, 꼭 명심해야 된다? 병문안을 갈 때는 꼭 선물을 사서 가는 거야.”
“그렇구나아.”
나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고성우의 팔을 툭 쳤다.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어어? 이상한 소리라니, 병문안에 빈손으로 가 그럼? 그리고 지금 환자를 치는 거야?”
“야, 이…….”
“으하하하하, 알았어, 알았어. 눈빛 봐라, 무섭네. 그만할게.”
고성우는 뻗고 있던 손을 내리며 말했다.
“아무튼 진짜 계획은 없는 거지?”
“그렇지. 서울까지 왔는데 그냥 가기도 그렇고. 아, 참. 오늘 나랑 지율이 조 대표님이 데려다줬어. 나중에 연락 한 번 드려.”
“조 대표님이? 아이고, 멀리까지 고생하셨네. 그래야겠다.”
고성우가 나의 등에 손을 대며 말했다.
“아무튼, 특별히 일은 없다는 거지?”
“그랬으면 진작 돌아갔겠지.”
“그럼 여기 근처에 수족관 있는데, 수족관이나 가자.”
“수족관?”
얘기를 들은 지율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물고기?”
고성우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물고기도 있고, 상어도 있고, 고래도 있고 다 있어.”
“우와아아아아아아…….”
지율이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내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갈 거야. 그렇게 안 쳐다봐도 돼. 가자, 수족관.”
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지율이가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아빠 최고! 삼촌 최고! 다 최고오오오!”
* * *
차로 20분을 달렸으니 근처라기에는 조금 멀었다. 가까운 편이긴 했지만.
“이야, 수족관 얼마 만이냐. 어릴 때 이후로 처음인 거 같은데.”
고성우도 얘기를 꺼내놓고는 신이 났는지 씩 웃었다. 그리고 어느새인가 모자와 선글라스를 썼다.
“갑자기 웬…….”
내가 운을 띄우자 고성우가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말했다.
“이래 봬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우리도 우리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도 방해될 수 있고.”
“하긴, 그렇겠다.”
이제 한국에서 아이스맨을 모르면 간첩이다. 이미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헌터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곰곰이의 휴도산 허니포켓으로 만든 꿀 광고가 나간 뒤, 고성우도 일에 합류하면서부터였다.
지금이야 흰색 차원문 발생과 조금 들썩거리는 치안 덕분에 더 유명해졌지만.
평일이라 그런지 수족관은 비교적 한산했다.
나는 수족관에 오는 게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오늘도 지율이와 함께 처음으로 하는 일이 하나 더 생겨서 좋았다.
“우와! 우와! 빠아! 저것 봐!”
거대한 수조 안에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줄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푸른빛의 물속에서, 밝은 하늘색으로 빛나는 자그마한 물고기 수십 마리 그리고 그 뒤에 둥둥 떠다니듯 움직이는 물고기까지.
“빠아! 여기! 여기!”
지율이는 잔뜩 신이 나서 나를 불렀다. 복어가 있는 곳이었다.
“웃기게 생겼어!”
지율이가 손가락질을 하며 까르르 웃는데, 갑자기 복어가 몸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우와아아아.”
감탄하던 지율이는 복어의 얼굴을 따라 하며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지율아! 이것 봐!”
고성우는 지나가던 상어를 가리켰다. 그러고는 상어를 따라 하듯 양쪽 입매를 아래로 내리며 입을 살짝 벌려 보였다.
“아하하하핫! 똑같아!”
고성우는 하하 웃다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내가 따라 한 건데, 똑같다고 하니까 뭔가…….”
그렇게 여러 물고기들을 구경하며 걸음을 옮기던 중이었다.
“펭귄?”
지율이가 안내판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엇, 지율아! 이쪽으로 가면 펭귄 있대! 보러 가자!”
고성우도 오랜만에 여유를 가지는 게 좋은지 들뜬 모습이었다.
“와아아아아! 펭귄! 펭귄!”
사람들이 없어서 조금은 소란을 떨며 움직였다.
나는 앞서가는 지율이와 고성우의 뒤를 따라 걸음을 서둘렀다.
“같이 가!”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16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