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199
아카데미 담당 일진 199화
콰아아아아아-
지하드의 브레스는 세상 만물을 불사르겠다는 듯 거친 소리를 동반하며 쏘아졌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모두의 입에서 섬뜩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안 돼…….”
백일진이 저 브레스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여기 있는 전부는 목숨을 잃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카데미의 교수와 학생, 초령단의 단장이나 단원, 마탑의 대장이나 대원 모두가 할 것 없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하드의 브레스가 백일진에게 닿은 순간.
사람들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열기는 다가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열기가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은 슬쩍 다시 눈을 뜨고 지하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뭐지?”
“브레스가 사라졌어?”
“무슨 일이야?”
가장 앞에서 악을 지르던 남궁종수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배, 백일진이 막은 건가?”
모용석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그럼?”
“저길 봐라, 누군가 있다.”
두 눈에 내공을 담고 모용석이 가리킨 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허공에 누군가 떠 있었다.
“저, 저 사람 뭐야? 브레스를 막고 있잖아.”
백일진에게 달려가려던 단계홍이 걸음을 멈추고 허공에 나타난 노인을 바라보고 있자 카리스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단 교수님. 아는 사람입니까?”
“아닐세…….”
단계홍은 고개를 내저었다. 누군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정체는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신.’
물론 혹자들은 무신이 등선한 지 몇백 년이 지나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고 말하지만 단계홍 자신은 아직 이 세상에 무신이 있다고 믿었다.
어린 시절 뭣 모르고 카프티스 산맥에 들어갔을 때 무신을 본 적이 있었으니.
‘……똑같다.’
무신의 모습은 그때와 똑같았다. 흰색의 무명옷과 성성한 백발까지.
무신이 여기에 왜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으나, 브레스를 막아줬으니 악재는 아닐 것이다.
‘일진이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백일진에게 가려던 단계홍은 몸을 돌려 카리스에게 명령했다.
“이봐 카리스 교수.”
“네, 교수님.”
“학생들부터 빨리 챙기시게.”
“네? 백일진 학생에게 가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갈 필요가 없어졌네.”
단계홍의 단호한 표정을 본 카리스는 슬쩍 고개를 돌려 허공에 떠 있는 노인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학생들을 챙기려면 성벽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안에서 열어주지 않습니다.”
“열어주지 않는다면 부수게. 마탑의 마법사들의 도움이 있으면 금방 부술 수 있을 거라네.”
“그럼 저 흑도 놈들은…….”
카리스가 가리킨 곳에는 흑사문도들과 흑암대원들이 몰려 있었다.
“얼마 되지 않는 놈들이니 나와 초령단이 처리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지하드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노인을 보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백발 성성한 노인이 백일진의 옆으로 걸어가며 지하드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일세.”
멍하니 노인을 응시한 지하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무……신?”
노인, 백명학은 ‘무신’이라는 말을 듣고 싱긋 미소를 지었다.
“무신이라…….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군.”
백명학의 입이 열리자 지하드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어떻게 아직도 살아 있는 거요.”
백명학은 어깨를 으쓱였다.
“음, 자네 이름이 지하드였던가?”
“…….”
“수백이의 친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왠지는 몰라도 지하드 자네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그거야 당연히…….”
크르르-
얘기 도중 백일진이 꿈틀거렸다.
“일단 얘기를 나누기 전에 조금만 기다리시게.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렇게 말한 백명학이 지하드의 얼굴 방향으로 손바닥을 쫙 편 다음 천천히 손을 쥐었다.
“그게 무슨…… 읍?!”
마법도 아니고 언령도 아니었다.
그냥 단순히 주먹을 쥐었을 뿐이다. 하지만 백명학이 주먹을 쥔 순간 지하드는 단단한 사슬에 속박이라도 된 듯 아무런 움직임을 취할 수 없었다.
마치 몸의 통제권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백일진의 상태를 본 백명학이 혀를찼다.
“쯧, 자네가 이렇게 만들어놓았는가?”
대답을 듣기 위해 한 질문은 아니었기에 백명학은 지하드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고 쓰러져 있는 백일진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백일진의 몸 곳곳을 더듬던 백명학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군.”
백명학이 백일진의 몸을 돌리자 목 아래에 선명히 돋아 있는 붉은 반점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위험할 줄 알았으면 아카데미에 보내지 않는 건데 말이야.”
백명학은 침음성을 삼키며 백일진의 반점 위에 손을 올렸다.
치이익- 소리가 나며 백일진의 반점이 약간 옅어졌다.
‘스스로 금제를 깼구나.’
흔적을 보아하니 일부러 금제를 깬 듯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백일진이 무차별적인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다는 것.
‘천살성에 잡아먹히지 않고 최소한의 이성은 지켰나 보군.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 할지…….’
만약 백일진의 이성이 천살성에 잡아먹혔다면 골치 아픈 일이 생겼을 것이다.
백명학의 손길이 닿는 곳부터 피부 위에 있던 비늘이 스멀스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백일진의 상반신이 전부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였다.
파직파직-
백명학이 백일진의 하반신에 손을 대자 몸에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기운을 거부해……?’
백명학은 급히 백일진의 단전에 왼손을 올려놓고 상태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피에트로의 드래곤 하트뿐만이 아니라 다른 기운이 더 있다.’
상당히 이질적인 것이 백일진이 심법으로 쌓은 기운은 아닌 듯 보였다.
‘직접 쌓았다기에는 너무 많은 기운이기도 하고.’
마치 성체 드래곤의 하트 안에 있는 기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거대한 총체였다.
백명학은 의아한 얼굴로 백일진을 살펴보다 손에 들린 천마검을 응시했다.
‘천마검?’
천마검을 손에 넣었다는 것은 곧 천수백의 유지를 이었다는 말.
그렇다면 기운이 어떤 기운인지도 유추가 되었다.
백일진의 어미인 리시아린의 기운일 것이다.
‘……어떻게 천마검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운명이라는 것이겠지.’
천마검은 백명학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은 후 한참을 머물자 검신을 부르르 떨었다.
-저 노인네가 백일진이 말하던 할아버지였어?
-왠지 금제를 걸어놓은 기운부터가 범상치 않더라니, 일진이의 할아버지라는 사람이 무신 어르신일 줄이야…….
개벽환도 꽤나 놀란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은 무슨, 그냥 성격 괴팍한 노인네일 뿐이지.
-쉿.
-어?
-잊은 게냐? 무신 어르신은 우리의 대화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흡.
개벽환, 천마검의 걱정과 달리 백명학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지 않았다.
백일진의 몸에 있는 리시아린의 기운을 제압하느라 바빴기 때문.
백명학이 리시아린의 기운까지 제압하자 백일진의 하반신이 스멀스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대충 끝난 건가.’
백명학은 백일진의 몸이 완벽하게 돌아올 때까지 확인한 뒤에야 무릎을 툴툴 털고 일어나며 지하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얘기를 나눠볼까?”
그렇게 말한 백명학이 턱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지하드를 옥죄던 무형의 기운이 사라졌다.
“허억……. 허억.”
지하드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생각해 보니 자네, 그 꼴은 뭔가. 몸에 드래곤 하트라도 집어넣은 건가?”
지하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드래곤 하트에 마력을 모았다.
백명학이 나타난 이상, 이 자리를 쉽게 넘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최대한 마력을 끌어 모아놔야 한다.’
브레스를 사용할 시간은 없을 테니 용언이고 마법이고 모조리 사용할 생각이었다.
지하드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백명학은 천천히 입가를 끌어 올렸다.
“뭐,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네.”
꿀꺽-
백명학이 성큼 다가서자 지하드가 침을 삼켰다.
“……근데 당신은 속세와 연을 끊는다고 하지 않았소?”
백명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지.”
“변심한 거요? 세상을 통치하기로 마음먹은 건가?”
지하드가 비꼬듯이 이죽거렸지만 백명학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 지금도 그 마음은 변치 않았다네.”
“근데 왜…….”
“아무리 세상을 등지겠다고 마음먹었다지만, 손주를 등질 수는 없지 않은가?”
“손주……?”
지하드의 눈이 천천히 내려갔다. 백일진을 보던 지하드의 눈이 순간 커졌다.
“설마…….”
“맞네. 자네가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아이가 내 손주일세.”
“손주…… 손주라……. 천수백의 자식이 백명학의 손주라 크하하하하-!”
지하드는 미친 듯이 웃었다.
“내 자네의 목숨은 거두지 않을 테니 이만 돌아가시게.”
지하드는 초연한 눈빛으로 백명학을 응시했다.
하지만 포기를 한 눈빛은 아니었다.
“……돌아가라. 어디로?”
“……?”
“크하하하- 이보시오, 나는 돌아가기 위해 이곳에 있는 거요.”
“그런가…….”
“그리고 목숨을 거둔다니, 누가? 누구의?”
“내가. 자네의.”
미칠 듯한 광소를 멈춘 지하드가 양손을 명치에 올리며 말했다.
“그렇게는 안 될 거요.”
지하드는 드래곤 하트에 마력을 끌어올린 다음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지하드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언어가 하나의 마법이 되어 백명학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백명학은 자신의 몸을 묶은 언령을 지그시 보더니 손을 휘저었다.
마치 몸에 묻은 거미줄을 떼어내듯 가볍게 휘젓는 그 손동작에 언령은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용언이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사라지자 지하드는 발악하듯 공격 마법을 사용했다.
하나하나가 천재지변이라 불릴 법한 마법들이었다.
지하드의 마력회로와 드래곤 하트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가열됐다.
하지만 지하드의 마법들은 백명학의 손에 닿은 순간 바람을 맞은 민들레 씨앗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백명학은 허망한 표정을 짓는 지하드를 바라보며 손을 움켜쥐었다.
“꺼어억-”
무형의 기운이 자신을 압박하자 지하드는 용언을 이용해 저항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하드의 몸은 무형의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점차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끄으으윽-”
고통에 몸부림치던 지하드는 피눈물을 흘리며 백명학을 노려봤다. 고향을 밟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며 세월을 흘려보냈다.
‘그런데 여기서 죽는다고?’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지하드는 드래곤 하트를 폭주시켰다.
이성을 잃기 직전인 지하드의 모습을 지켜보던 백명학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쯧, 드래곤 하트에 정신이 먹혀 버렸군. 더 추해지기 전에 보내줘야겠군.”
그렇게 말한 백명학은 허공에 손을 주욱- 그었다.
단지 그뿐이다.
마력을 담지도 내공을 두르지도 않은 평범한 손짓 하나.
“……어?”
분명히 드래곤 하트를 폭주시켰음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자 지하드는 당황하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목 아래로 연결된 신체가 없었다.
자신의 목 아래로 붙어 있던 신체들이 원래부터 붙어 있지 않았던 것처럼 깔끔하게 떨어져 있었다.
쿵-
뒤이어 지하드의 머리통이 떨어지며 눈밭을 굴렀다.
백명학은 지하드의 머리통이 있는 곳으로 다가와 눈을 감겨주며 말했다.
“좋은 곳으로 가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