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69
69
변호인 강태훈 069화
자신이 나갔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지 못하는 태훈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효성도, 채수진도, 이태영도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자신들이 응원해야 할 일에 그를 따돌리고 욕한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무척 부끄러운 일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태훈도 멋쩍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커피 한 모금 입으로 축였다.
한기의 눈이 광채를 머금었다.
‘시작되고 있구나.’
박문수와 자신이 생각했던 신의 한 수.
그 수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오늘 저녁은 간만에 회식 어떤가.”
“회!?”
“한우!?”
회식이란 말에 변호사들이 눈을 반짝였다. 한기는 고개를 저었다.
“삼겹살이지.”
“우우우.”
장난스러운 야유가 들렸다.
* * *
소맥이 말아지고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을 두고 한 잔 두 잔 꺾어지기 시작했다.
실상 이들과 술을 마시는 것은 처음이었다.
태훈은 말한 적은 없지만 상당한 말술인 편이었다.
“이번 일 형사사건이니까. 어려운 일 있으면 물어봐. 이래 보여도 강력계 형사 출신이니까.”
안효성의 말이었다.
부드러워진 변호사들의 말투에 싫지는 않았다.
술잔을 내밀었다. 효성이 잔을 부딪쳐주었다.
“크-”
달았다.
한 잔 두 잔 술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국선 변호인들은 유독 술꾼들을 모아놓은 곳이었다.
기본 주량들이 소주 세 병씩이었다.
어느덧 그 술자리는 경쟁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이야, 강태훈 변호사. 술 좀 하는데?”
이태영 변호사는 히죽 웃었다.
‘그럼 한 번 신입 족치기를 해볼까.’
그에 대한 반성은 반성이고. 신입에게 술로 기선제압 하는 건 어떤 회사를 가고, 어디에서 일을 해도 항상 있는 일이 아니던가.
고운 빛깔로 말아진 소맥을 이태영 변호사가 건넸다.
“자, 선배가 줬으니 쭈욱.”
“네.”
태훈은 쭉 들이켰다.
한 잔 깔끔히 비워냈다.
“캬.”
“잘 마시네.”
그들이 작은 박수를 쳐줬다. 술이 계속 들어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신입을 취하게 만들기 프로젝트는 실패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태훈은 멀쩡한 것에 반면 채수진과 한기는 이미 취기가 오를 대로 올랐다.
이태영과 효성 역시도 알딸딸했다.
그렇지만 태훈의 경우는 술기운이 크지 않았다.
‘질 수 없지…….’
태영과 효성이 눈에 불을 키고 달려들었다.
그렇지만 30분 후 모두가 테이블 위로 고개를 파묻었다.
“하하.”
태훈은 얼굴을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술로 이긴 건 좋은데 상황이 좀 그렇다. 대리 운전기사들을 불렀다.
다행히도 몸을 가눌 수 있는 정신들은 남았기에 태훈의 부축에 모두 자신들의 차를 타고 대리운전기사와 사라졌다.
대리운전 한 사람이 다소 늦다.
태훈은 마지막으로 효성을 부축했다.
“음냠음냠, 강태훈 변호사. 내가 정말 미안해…….”
“아닙니다.”
술주정인지, 아니면 술을 가정한 본심인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그가 미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빙긋 웃은 태훈은 그마저도 태웠다.
그는 서서히 사라져가는 그의 차량을 보며 싱긋 웃었다.
* * *
접견을 오면서 편의점 봉투를 들고 있는 태훈을 보며 강력계 반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봉투 안에는 분명 음식이 있었다. 그 특유의 식욕을 돋우는 기름 냄새가 퍼져왔다.
“편의점에서 파는 치킨입니다.”
“식사 안 하셨어요?”
이른 시간인지라 그걸로 끼니를 때우려는가 싶다.
“아니요. 조태석 씨 줄 겁니다.”
“살인마 새끼요? 아니, 저런 새끼 뭐가 예쁘다고 이런 걸 사다 줘요.”
강력계 반장은 기가 찼고 어이가 없었다.
저런 놈한테 몇천 원도 아깝지 않나 하는 모습이었다.
태훈은 쓰게 웃었다.
“때로는 이 몇천 원짜리 때문에 진실이 토해질 수도 있답니다.”
“변호사님. 아시잖아요. 저런 새낀 죽어야 돼요. 또 음식물 마음대로 반입하면 안 됩니다.”
그는 태훈이 말하는 바는 알겠지만 난감하다는 모습이었다. 태훈이 작은 웃음을 지었다.
강력계 반장은 그 웃음에 사람 돌겠다는 표정이다.
곧 한숨을 쉬었다.
그 정도 직권은 자신이 가지고 있긴 하다.
문이 열렸다.
“자기 왔어?”
태훈은 코를 씰룩였다.
“그래, 자기야. 내가 맛있는 거 사 왔어.”
태훈이 씨익 웃으며 그의 앞으로 봉투를 던졌다.
“뭡니까? 이건?”
코끝을 찌르는 알싸한 냄새에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치킨.”
그는 곧 봉투를 열어보았다. 편의점에서 파는 점보 닭 다리 하나와 콜라가 들어 있었다. 그의 눈이 살짝 떨렸다.
“하하 내가 맛있는 거 사오라니까 진짜 사 왔네. 내가 치킨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알고.”
그는 그 기색을 감추며 다리를 잡아 수갑 찬 손으로 뜯기 시작했다.
태훈이 콜라를 따서 그의 앞에 내줬다.
닭다리를 뜯던 그의 손이 멈췄다.
그는 닭다리를 내려놓았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되지 않았다. 그의 어둠 낀 눈은 천천히 태훈을 보았다.
“왜 이러십니까. 도대체.”
“뭐가요.”
태훈은 퉁명스레 물었다.
태석은 말문이 막혔다.
목이 멘 목소리가 나왔다.
“이러시면 변호사님 이미지도 안 좋아져요. 저 같은 새끼한테 이런 몇천 원 쓰는 것조차도 사람들은 욕할 걸요? 밖에서 그러지 않던가요?”
“네, 그런 말씀 하시더군요.”
“얼마 전에는 경찰서 앞에서 밀가루를 뒤집어썼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하세요.”
“다른 사람들은 어떤데요? 그냥 감옥 들어가서 반성해라?”
태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훈은 싱긋 웃었다.
“사람마다 가치관은 전부 다릅니다. 그리고 제 가치관은 이겁니다. 변호사이기 때문에 의뢰인이 어떤 사람이든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유일한 사람은 저입니다.”
태훈은 그의 앞에 놓인 콜라를 자신이 가져와 목을 축였다.
“크. 시원하네요. 모두가 욕하고 손가락질해도. 당신의 유일한 편이 돼주는 사람은 바로 변호사입니다. 그게 바로 저고요.”
태석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유일한 자신의 편.
강태훈 변호사를 신문에서 몇 번 접한 그도 알았다.
그는 꽤 인지도 있는 변호사였다.
어쩌면 자신의 변호 때문에 그 위신이 추락할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천하태평이다.
다른 법조인들과는 달랐다.
목이 메었다.
태석은 아무 말 하지 않고 묵묵히 남은 닭 다리를 모두 뜯었다. 태훈이 몸을 일으켰다.
문고리를 잡자 역시 그가 자신을 부른다.
“변호사님.”
태훈이 고개를 돌렸다.
“밀가루 맞지 말아요.”
“네. 참 내일 현장검증이지요? 그때 시간 맞춰 오겠습니다.”
평소완 다른 목소리에 태훈은 싱긋 웃으며 밖으로 나섰다.
태석의 눈이 그가 나선 자리를 한참 동안 향했다.
* * *
범현이와 서울중앙지방 검찰청과 머지않은 카페에서 만났다.
커피를 시키고 앉은 범현은 그의 앞으로 서류를 내밀었다.
“재밌고 눈물 나는 사건이야. 그리고 모순이 존재하는.”
범현의 목소리는 진중했고 무거웠다.
태훈이 서류봉투에 담긴 자료를 펼쳐 보였다.
사건내막을 샅샅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조태석이라는 쓰레기가 생긴 이유.
범현이 그 설명을 시작했다.
“찾는데 조금 힘들었다. 두 사람이 가족관계가 아니었던지라. 증인으로는 참석했어서 그나마 찾았어.”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얻은 사람들의 증언과 그의 호적을 떠올리면 혼인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었다.
강간 사건이었다.
그렇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인해서 가해자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 당시 변호를 섰던 사람이 판사에서 막 변호사가 된 사람이었어. 전관예우지.”
전관예우. 법조인들에게 존재하는 부도덕한 관례. 사라지는 조짐이 보이나 여전히 조금 남아 있었다.
“재밌는 건 그 가해자 가족력이 우리 집처럼 법조인 집안이라는 사실이야. 할아버지가 대법관으로 근무하셨었고, 아버지께서 지청장이었어.”
지청 검사장. 검사로서는 꽤나 큰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였다. 법조인의 집안에서 강간 사건이 벌어졌다, 라.
딱 보아도 모순이 존재했다.
어쩌면 가장 크게 비리가 존재하는 곳은 바로 검찰계와 경찰계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무죄라. DNA는?”
“내가 봤을 때는 발견되지 않을 수가 없었어. 근데 국과수에서는 DNA 검출이 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어.”
“강간은 했는데, 그 흔한 털 쪼가리 하나 없었다.”
“냄새가 나지. 뭐 흔히 있는 비리지.”
범현은 쓰게 웃었다. 진동벨이 울렸다. 몸을 일으켜 커피를 가져온 범현이 자신의 앞에 놓았다.
“그 피해자 여성은.”
“죽었어.”
역시나였다. 태훈이 생각했던 대로다.
범현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웃었다.
“강간을 당했을 당시가 임신 12주였어. 그런데 충격으로 유산되고 만 거지. 증인으로 섰던 조태석은 그 당시 ‘결혼할 상대’라고 자신을 밝혔고, 그 아이는 조태석의 아이였지. 여자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의 아이를 잃었어. 그것도 강간으로. 누명도 벗기지 못했지. 주위에서는 가해자가 ‘무죄’를 받으니까. 다른 남자들과 숱한 성관계를 맺다가 유산했다는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하는 거야. 그걸 참다못한 여성이 결국…….”
“그래.”
범현은 마지막 말은 하지 않았다. 대충 짐작이 되었다. 두 사람의 입에서 한숨이 짙게 흘러나왔다.
“희대의 연쇄살인범. 조태석의 내막. 재밌네.”
범현은 헛웃음을 흘렸다. 태훈은 그를 보았다.
개꼴통 범현의 경우 이런 사건을 아주 좋아하는 놈이었다.
“뭘 쳐다봐.”
“그냥 웃겨서.”
“뭐가?”
“너 가만히 안 있을 거잖아.”
“당연한 거 아냐?”
범현은 싱긋 웃었다. 그는 다리를 꼬았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는 말한다.
“내가 이런 사건 가만히 있는 거 봤냐?”
“족치게?”
“두말하면 잔소리지.”
“너 그러다 잘리는 거 아냐?”
“그런 짓 무서워하면 검사 못 한다.”
개꼴통이라고 불리는 범현은 하는 짓이 꼴통 같아서이기도 하였지만 가장 큰 이유는 ‘비리’에 연관이 되지 않는 진짜 검사였었기 때문이다.
윗사람에게 주눅 들지 않고 옳지 못한 것은 지적할 줄 아는 몇 없는 진짜 검사.
그렇기에 그가 개꼴통이었다.
그러한 행실 때문에 ‘승진’은 거의 물 건너갔지만 개꼴통 이범현은 현재 국민의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검찰의 윗선에서도 개꼴통 한 녀석을 어떻게 하지 못할 정도였다.
“멋지다, 자식.”
“너도.”
그리고 범현이 보는 강태훈이라는 녀석도 상당한 개꼴통이었다.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출세에는 관심이 없는 요즘 몇 없는 변호사 중 한 사람이었으니까.
* * *
산으로 경찰차와 기자들의 차량이 쉴 새 없이 도착했다.
기자들의 숫자가 40여 명을 넘어섰다. 피해자의 유족들도 보이고 있었다. 투입된 경찰의 숫자만 자그마치 70여 명을 넘어섰다.
경찰들은 양옆으로 쭉 써서 기자들과 유족들의 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다.
형기차 하나가 멈춰 서며 그곳에서 조태석이 내렸다. 그 등 뒤로는 강력계 형사들과 안도혜 검사. 태훈이 함께 내렸다.
곳곳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피해자 유족들이 조태석을 보자마자 경찰들을 뚫고 다가서려 했지만, 경찰들은 굳건히 막아냈다.
강력계 형사들은 그 암담한 모습에 가슴이 저렸다.
가족을 잃는다는 슬픔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으니까.
“아, 플래시 터져 쌌네. 왜 이렇게 시끄러워요. 여기.”
걸음을 멈추며 인상을 팍 쓰는 조태석이다.
안도혜의 손이 그의 뒷목을 움켜잡았다.
“걷기나 해.”
“오, 검사님 얼굴도 예쁜데. 손도 따뜻해. 천상여자.”
안도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느끼는 것이 없는가.
이 통곡 소리에. 절규에. 분노에 찬 음성에.
그러나 그는 천하태평이었다.
그는 이곳에 다섯 사람 모두를 묻었다.
현장검증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하면 되나?”
현장검증을 하는 조태석은 마음대로 마스크를 내리고 히죽 웃었다.
강력계 형사들이 서둘러 다시 마스크를 씌웠다.
“좀 진지하게 임해.”
“아니, X발 날도 퍽퍽한데 진지하게 어떻게 임해요. 아 귀찮게 하네, 진짜.”
그제야 그는 하는 둥 마는 둥 한다.
현장검증이 끝이 났다.
이제 하산하는 일만 남았다.
“평생 감옥에서 콩밥 한 번 먹어봐.”
안도혜는 치아를 뿌드득 갈았다. 태훈은 그 옆에서 쓰게 웃을 뿐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조태석의 오른팔을 잡고 있던 강력반 형사 한 사람이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어어.”
쿵-
“아야…….”
태석의 한팔이 여유로워졌다.
“근데요, 검사님. 저 아직 콩밥 먹고 싶진 않아요. 정말 죽여야 할 새끼가 남았거든요.”
그의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앞서가는 그녀의 귀에 스며들었다.
그 순간, 조태석이 왼쪽을 잡고 있던 형사를 온 힘으로 밀쳐냈다.
그러고는 강력반 형사의 허리춤의 총을 꺼내 안도혜의 등 뒤를 덮쳤다.
“어어어…….”
“X 됐다…….”
기자들, 경찰들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연쇄살인범 조태석이 총을 들었다.
인질을 잡았다.
현직 검사인 안도혜를.
“X발…….”
태훈이 낮게 조아렸다.
그 순간 조태석이 허공으로 총을 치켜세웠다.
타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