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406
“네, 맞아요. 조조가 후천적 성불구자가 됐다는 게 학계에서 암암리에 인정되는 정설이죠.”
나는 틈바구니에 섞여 팔짱을 낀 채로 노인을 도와줬다.
“그, 그러제! 여그도 배운 사람이 있었구먼! 누구요! 어디 그 잘난 얼굴 좀 봅시다!”
나는 팔을 높이 들어보였다.
“전데요.”
내 얼굴은 당시를 살던 얼굴과는 달랐기에, 노인이 나를 알아보지는 못했다.
“참으로 똑또거신 청년이요! 사학과 나오셨소?”
나는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뇨, 사학과를 나오진 않았는데. 그 시대에 관심이 좀 많아서.”
“아, 그려요.”
“근데요, 좌자가 저 끄트머리에 있어야 하는 게 솔직히 맞지 않나요?”
내 말에 어린 아이들은 다시 와 웃어댔고, 노인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항변했다.
“머, 머시요! 이제 본게로 순 헛똑똑이였구먼! 좌자란 사람이 을매나 공을 많이 세워불구 그렸는디!”
나는 항변에 다시 항변했다.
“공을 많이 세우면 뭐해요? 뻑 하면 황제 앞에서 시비나 걸고, 술 생각이나 하고, 뺀질거리기 일쑤인 데다가!”
내 말에 노인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분노로 일그러지는 게 아니라, 복잡한 감정이 일거에 터져 나와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까닭이었다.
“심지어 오랜만에 만난 사람도 못 알아본다죠, 아마?”
“으, 으아어……”
노인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나도 노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들은 두 어른의 이상한 재회에 눈살을 찌푸리며 슬금슬금 물러났다.
나는 노인의 팔을 팍 붙잡았다.
“잘 지냈어요?”
“이, 이게……”
“서남도독, 아니 영감님은 삼십 년 넘게 기다리셨겠네요. 오래 기다리셨어요.”
“씨, 씨벌……”
“뭐야, 오랜만의 재회에 욕부터 해요.”
“나는 반가우면 욕 먼저 텨나온단게…… 씨벌… 졸라게 반갑네……”
검사로서의 삶은 천자 못지않게 바쁜 것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아랫사람으로서의 삶에 금방 적응하여, 숨 막히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주말에는 호젓하게 밤 산책도 즐겼는데, 어쩔 수 없이 그 장소는 대개 화평사가 되었다. 그렇게 밤에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와중에는 인적이 드물어 혼자서 다른 시대, 다른 공간에서의 삶을 반추하기에 알맞았다.
이 날도 그랬다. 그런데 좀 예와는 다른 것이, 술을 조금 마시고, 아니 조금 많이 마시고 산책을 나왔다. 시시한 웃음을 조금씩 흘리면서 갈지자걸음을 걸었다. 얼굴은 살짝 발그레해져서는.
“흐흐.”
나는 문 닫힌 안쪽으로는 못 들어가고, 화평사의 바깥에서 내부를 상상하며 웃었다. 나를 우스꽝스럽게 흉내 낸 그 얼굴은 생각만 해도 우스웠다.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봐요?”
“앗, 네, 네에?”
나 혼자 있는 줄 알았던 공간에 누군가 있었다. 나는 혼자 실없이 웃었던 것이 부끄러워 얼굴이 더 빨개졌다. 나에게 말을 건 이는 한 여인이었다. 내 또래쯤 되었을까. 아니, 그냥 갈 길 가지 괜히 말을 걸긴 왜 걸어? 사람 무안하게!
“아뇨, 혼자서 웃으시길래.”
혼자서 웃는 남자를 보면 보통 피해 다니지 않나? 이런 남자에게 말을 거는 여자라면 뻔하지! 나는 퉁명스레 대꾸했다.
“아, 죄송한데 저는 도에 관심이 없습니다.”
내 말에 여자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풉.”
“왜 웃어요?”
“뜬금없는 말씀을 하셔서. 저도 도에는 관심이 없거든요?”
그녀는 말을 이었다.
“저번에 화평사에서 봤어요. 가이드 하던 노인분이랑 퍽 감동스러운 재회를 나누시는 것 같던데요?”
“네? 아, 네. 그럴 일이 있어서……”
나는 술김이기는 했지만 내가 어느 나라의 천자였고, 저 노인은 내 신하였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만큼 천지분간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둘러대고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데, 여자는 내 손목을 살짝 잡았다. 뭐야, 왜 이래?
나는 인상을 쓰면서 그녀를 돌아봤는데, 그녀의 느낌이 어딘가 익숙했다. 그것도 많이.
“참, 자기 못 알아본다고 노인분을 욕할 처지가 못 되시네요.”
“그게 무슨 말씀……?”
여자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픽 웃으면서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폐하.”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눈물을 왈칵 쏟아버렸다.
〈화평자전 끝〉
217년, 승상 제갈량, 법체계를 정비하여 신의 법률인 ‘정법대율’ 편찬
220년, 조왕 조조 사망.
221년, 백각경 가후 사망. 후임으로 백각령 등애를 지목하다. 등애, 백각경에 취임.
222년, 대도독 육손, 선비의 왕 탁발역미의 대대적인 침공을 계교에서 격퇴함. 고구려 산상왕, 보기군 2만을 지원하여 연합작전을 전개함. 계교대전.
224년, 교지공 사섭이 죽고 그 뒤를 이은 사휘가 난을 일으킴. 남만과 힘을 합하여 그 기세가 들불과 같음. 무제, 상장군 장료를 대장군에 임명하여 토벌함.
227년, 태위 손관 사망. 사망할 때에 작록과 식읍을 세습하지 않고 반납함. 이에 무수한 공신들이 공신전과 작록을 세습하지 않는 불문율이 성립됨.
230년, 승상 제갈량 사망. 백각대부 왕평이 승상에 취임함.
232년, 무제 붕어.
……
581년, 수국공 양견이 제위를 선양받음. 신나라 멸망, 수나라 개국.
후기로써 이 소설의 끝을 맺으려 합니다.
2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 이 글을 써왔습니다. 글 하나를 쓰는 데는 퍽 긴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이 긴 시간 함께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미욱한 글을, 그것도 소중한 피땀 어린 돈과 귀한 시간을 지불해가면서 읽어주신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또한 더불어서, 글을 읽는 것에 더하여 한 편 한 편 댓글을 남겨주신 독자분들께는 더욱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남겨주신 귀한 댓글들은 제가 글을 쓰는 데 더없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저를 키워주신 것은 8할이 여러분입니다.
어떨 땐 유치하고, 어떨 땐 허무맹랑한 글을 선보여 드린 점은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장르소설도 여러 번 시도해보고, 정통역사소설이랍시고 두어 질 내봤지만 여전히 소설 쓰기는 어렵더군요. 촘촘한 설정과 넓은 통찰로 글을 쓰시는 분들을 보자면 부럽고 부끄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쓴 글을 아껴주시니, 감사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부디 제 글을 읽는 데 들인 노력에 충분한 재미로써 보답이 되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음 글은 현대판타지가 될 것입니다. 이미 3권 분량이 쌓였고, 약 6권 정도가 모아지면 선보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이번 글은 조아라에는 업로드 되지 않을 것 같아 무거운 마음입니다. 제가 오래 연을 맺어온 출판사에서 이 글을 출간해주실 텐데, 여러 방면으로 고심해주신 결과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될 것 같습니다.
또한 이번 글에는 제가 지금까지 글을 써오면서 쓴 제 본명이 아니라 필명을 쓸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제 이름으로는 역사소설을 많이 써오다 보니, 현대판타지에는 새로운 필명을 쓰는 게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리신 모양입니다.
조아라에 올라오지도 않을 글을 구태여 홍보하자니 상도덕에 어긋나는 것 같아 제목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기자가 등장하고 귀태가 등장하는 소설을 혹여 만나신다면 아, 이놈이구나 하시면 되겠습니다. 마지막 화에 등장한 찬이의 현대 이름을 주인공의 이름으로 썼으니 알아보시기 쉬울 것입니다. 그리고 장르소설에 어울리지 않는, 질질 끄는 문장 스타일을 접하실 터이니 척 하면 척이겠지요.
현대판타지는 익숙한 장르도 아니거니와 계속 하오체로 일관되는 역사소설을 써오다 보니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나중에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된다는 자괴감이 들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돌이켜보면 참 부족한 글이었습니다. 시점도 통일되지 않았고, 이따금 전개가 엉성하기도 하며, 사람이 죽어가는 전장을 거푸 묘사하는 일은 참 버거웠습니다. 조금 더 쉬운 문체로 쓸 수 있었을 텐데, 후회도 해봅니다.
그러나 조악하나마 내놓은 글은 나름의 고민과 노력을 기울인 결과물이니, 어쨌든 제 새끼이고 아쉬운 만큼 보람찬 부분도 많았습니다.
이 글을 쓰는 시간에는 제가 아니라 찬이로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찬이가 아니라 다른 인물로 사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이상 찬이로 말하고 행동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조금, 아니 많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반겨주시는 독자분들이 남아계신 때에 글을 맺는 것이 독자 여러분께, 그리고 제 스스로에게도 도리겠지요.
깊은 지혜를 드리지 못하는 글이요, 다만 찰나의 재미라면 재미를 드리는 글이었기에 이 글을 오래 기억해주실 이유가 없습니다. 감히 그렇게 바랄 수도 없습니다.
다만, 전철을 타다가 동묘앞역을 지날 때에는 그런 허무맹랑한 글도 다 있었다고 가끔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랜 시간, 긴 글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른 글로 뵙겠습니다.
-2017.9.13.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김현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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