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98
98
변호인 강태훈 098화
1차는 소고깃집에서 치러졌다. 1인분에 7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 가게였다. 기태는 깍듯하게 방송국 사람들을 대접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태가 이 방송에 출연하게 됨으로써 쌓은 인지도가 어마어마하다고 들었다.
“자, 태훈이 너도 한 잔 받고.”
기태가 따라 준 술이 잔에 가득 찼다.
술 한 잔을 들이켰다.
술자리는 분위기 좋게 이끌어졌다.
1차가 끝이 나고. 담당 PD나 주요 관계자는 슬쩍 작가들이나 다른 이들에게 눈치를 주는 듯싶었다.
“저흰 이만 가보겠습니다.”
“내일 출근하려면 일찍 들어가 봐야지요.”
“아, 그래그래. 조심히들 들어가.”
그들이 몸을 빼주고 태훈도 몸을 빼려 했다.
그렇지만 기태는 그를 잡았다.
“왜 임마 더 마시고 가. 형이 좋은 데서 술 한 잔 살게.”
“좋은 데는 무슨. 나중에 삼겹살이나 먹자.”
“삼겹살? 무슨 삼겹살이냐. 아 거참. 오라니까. 형이 수백만 원짜리 술 먹여줄게.”
“어휴.”
태훈이 몸을 빼내려 했지만 기태는 계속 그의 팔을 잡고 이끌었다. 수백만 원짜리 술이라는 목소리에서 강한 자부심이 맺혀졌다.
태훈이 일부러 가지 않으려는 이유는.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지 눈앞에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황이 벌어지면 자신이 기태에게 크게 실망할까 싶어서 가지 못하는 것이다.
2차로 온 곳 역시도 고급 술집이었다.
술이 나왔다.
정말 수백만 원짜리 술이었다.
이 양주 몇 병 마시면 수백만 원이라는 돈이 나간다.
“한 잔 마셔봐. 이런데 안 와 봤지?”
“뭐. 그렇지.”
기태가 하는 행위가 자신이 예전에 하던 행위와 똑 빼닮았다. 이런 곳 안 와봤냐고?
전생에서는 고위급 인사들, 혹은 잘 보여야 하는 사람들 대접하겠다고 숱하게 왔던 곳이다.
“크. 괜찮네.”
“그치. 한 잔 더 받아라.”
태훈은 잔에 따라진 술을 받았다.
“아이구, 이번 회의 시청률의 공신이신 PD님도 한 잔 받으시지요.”
“하하, 뭐 제가 공신이겠습니까. 다 한기태 변호사님이 유능하셔서 그런 것 아니었겠습니까.”
“유능이요? 하하, 제가 유능하나요? 담당 PD님이 유능한 거지요.”
서로에게 아부를 떠는 그 모습에 태훈은 혀가 절로 내둘렸다. 그렇지만 사람들 다 있는 앞에서 찬 소리를 하는 게 꺼림칙했다.
술잔은 계속 꺾어졌고 어느덧 시간이 2시가 훌쩍 넘었다.
눈치를 본 담당 PD와 관계자가 몸을 일으켰다.
“시간이 늦었네요. 저흰 이만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벌써요?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그럼 들어가셔야지요.”
그들은 몸을 일으켰다. 밖으로 나서는 그들에게 태훈은 작게 묵례를 취했다.
“잠깐만 있어봐라, 태훈아.”
그들을 기태가 뒤따라 나섰다.
유리로 되어 있는 문을 통해서 기태가 품속에서 종이봉투를 꺼내 그들의 품에 쑤셔주는 모습이 보였다.
태훈의 얼굴이 처참히 일그러졌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고, 기태가 과거 자신이 하였던 짓과 다를 것이 없는 일을 해버리고 있었다.
대한 법무법인에서 그는 현재 실세였다.
그 실세의 의미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았다.
태훈은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크.”
기태가 얼마나 힘들게 삶을 살아온 지 태훈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기태는 지금의 자신에 자아도취에 빠졌을 것이다.
누구도 떠받들어주는 대한 법무법인의 변호사가 되었고 그의 연봉은 남들은 수십 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 되었을 테니까.
그렇지만 그가 원했던 그 선에서만큼만 그 자리를 지켜주길 바랐다.
기태의 꿈은 소박했지 않은가.
남부럽지 않은 오피스텔이나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행복하게 사는 것.
남들에게 무시당하며 살지 않는 것.
그것이 기태의 꿈이었다.
그러나 그 꿈은 이제 변질되어 변해가고만 있었다.
“우린 한잔 더 하고 가자.”
“기태야. 너 돈 봉투 주는 거 봤다.”
“……그러냐. 하여튼 눈썰미는. 다 그런 거 아니겠냐.”
“다 그런 거? 그렇지. 다 그런 거지.”
태훈은 술잔을 꺾어 목에 넘겼다. 그렇다. 돈 봉투는 어디에서나 흔하게 오고 가는 것이었다.
어린 청소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도 흔하게 오고 가는 것이 돈 봉투였고, 어떤 일 하나 잘 처리해주면 ‘감사합니다. 약주나 한잔하시지요.’ 하면서 몇만 원씩 넣어서 주기도 하는 게 돈 봉투였다.
그렇지만 기태의 과거를 생각하면.
그는 너무나도 많이 변해 버렸다.
돈이 아까워 버스도 타지 않고 걸어서 집까지 가고 가끔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그래도 누구보다 어머님을 모셔야겠다는 집념으로 공부했던 그 기태는 변질되었다.
“그래도 적당히 해라. 나중에 좋을 게 뭐가 있다고.”
태훈은 진심으로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에 뱉은 말이다.
그렇지만 기태는 아니었나 보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술을 한 잔 들이켰다.
“태훈아. 내가 아직도 너보다 못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냐?”
“그건 무슨 소리야.”
태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래, 맞아. 넌 학교 다닐 때도 나보다 공부도 잘했고 남들은 한 번에 붙기 힘든 사법고시도 한 번에 붙었지. 난 떨어졌는데.”
탱!
기태가 꺼낸 지퍼 라이터가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담배에 불을 붙인 그는 허공에 뿜었다.
“어딜 가나 너하고 범현이는 이슈였지. 그리고 난 항상 삼등. 그 기분 알아? 최고들과 함께 친구로 있는 기분. 근데 있잖아. 이거 하난 알아야지. 난 학생 때의 연수원 때의 한기태가 아니야. 어디서 훈계 질이야.”
“기태야.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잖아.”
태훈의 얼굴이 안타까움에 일그러졌다. 훈계가 아닌, 친구에 대한 걱정이었다. 자신이 겪어봐서 아니까. 추후 그것이 어떤 식으로 자신을 엄습하게 될지 아니까.
“배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 왜 너도 황당하냐? 예전에 네 밑에서 꽁무니만 쫓아다니던 내가 이렇게 위에 서니까.”
“야, 한기태!”
“배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
기태의 목소리가 룸 안을 가득 메웠다. 그의 눈은 붉어져 있었다.
“한기태. 내가 하는 말은 친구로서 한 말이었어. 네 식대로 생각하지 마.”
“친구? 그래 우린 친구지. 아주 친한 친구. 그래서 나도 너희 둘처럼 살아야 하냐? 이범현처럼! 언제 잘릴 줄 모르면서도 ‘난 정의롭다!’라면서 싸워야 하고, 너처럼 그런 실력에 그런 스팩을 가지고도 담뱃값 술값, 기름값 오른다고 하면 월급 걱정부터 하는 그런 식으로 나도 살아야 하는 거냐?”
“넌 지금 돈에 너무 집착하고 있어.”
“돈 싫어하는 사람도 있냐.”
기태는 히죽 웃었다.
태훈은 몸을 일으켰다. 그는 화난 숨을 골랐다.
나서기 전 그는 기태를 돌아보았다.
“기태야. 적당한 선을 찾아라. 친구로서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기태는 대답하지 않았다.
태훈이 거칠게 나서고 기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도 모르게 화를 내버렸다.
범현과 태훈은 자신을 유일하게 지켜준 자신의 친구였고 그가 하는 말이 정말 걱정이었음을 자신도 알았다.
어쩌면 자신에게 스스로 화가 난 것일지도 모른다.
와장창!
그의 앞에 놓인 양주잔이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그는 머리를 싸매었다.
복잡하다.
* * *
5일이라는 시간 동안 진행되는 촬영의 막바지에 이르러 있었다.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태훈은 평소의 자신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이 변론하고 있었다.
“변호인. 그렇다면 변호인이 하시는 말씀에서 안타깝다면 법이 봐줘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고진호 변호사였다. 물론 모의재판인 지금 이곳에서는 검사 역할이었다.
그의 질문에 태훈은 고개를 저었다.
“법의 무게는 공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법도 사람의 형평성을 따집니다. 한번 묻고 싶군요. 방청석에 여러분. 그리고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의자는 분명히 해서는 안 되는 보험사기를 행한 것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피의자의 그 행위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이 아닌 가족을 살리려는 필사의 헌신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숨을 골랐다.
고진호 변호사를 날카로운 눈으로 본다.
카메라는 태훈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이야…… 진짜 장난 아닌데요?”
“나 닭살 돋은 거 보여?”
태훈은 법정에서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흥분하기도 하였고, 냉정하게 변론하기도 하였다.
그 모습은 실제 법정의 열정 가득하고 실력 있는 변호사를 보듯 했다.
담당 PD 스스로도 TV가 아닌 실제 현장에서 보면 자신도 모르게 넋을 잃고 몰입하고 있을 정도였다.
“대박이다. 정말.”
시청률 대박. 확실시하게 담당 PD는 점치고 있었다.
최종변론.
“존경하는 재판장님. 현재 피의자는 손자를 살리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었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법의 체계는 무너지지 않을까 합니다. 하물며…… 이에 진중한 눈빛으로 본 법정에 임하여 주시옵고…… 대가를 받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상입니다.”
태훈은 풀어 헤쳐진 마이의 단추를 잠그며 몸을 일으켰다.
“재판장님. 피의자의 행위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이 행위는 누군가의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손자를, 누군가는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벌였던 사기행위였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타당했다고는 볼 수 없는 방법입니다. 그렇지만 변론했듯이 피의자의 자녀는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안 한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하였고 손은 다 퉁퉁 불어 텄을 정도입니다.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병원비가 없어서 자식을 병원에 데려가지 못하는 그 심정을 말입니다…… 이에 정상참작 하여…… 선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컷! 잠시 쉬었다 가도록 하겠습니다.”
담당 PD의 말에 태훈은 자리에 착석했다. 진짜 법정이라고 생각하고 임하다 보니 이 자리를 떠나는 게 쉽게 되지 않았다.
담당 PD가 다시 혀를 내둘렀다.
“멋있네.”
그에겐 들리지 않았겠지만, 그는 정말 이 시대의 변호사였다.
* * *
태훈이 출연한 방송 분량이 쪼개져서 모두 방영되었다. 태훈이 출연함과 동시에 그는 전국의 관심을 받았다.
훤칠한 키 잘생긴 얼굴. 그리고 노련한 말솜씨. 못내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또한, 계속되는 방송에서 그가 법정에서 보인 진실성 어린 진짜 변호사다운 변론 모습은 수많은 SNS에 급속도로 퍼졌다.
그 당시 시청률 9%를 기록하면서 케이블 방송에서의 큰 획이 그어졌으며 ‘격돌! 모의재판’ 내에서도 가장 높았던 시청률로 기록되었다.
그와 함께 태훈에게 수많은 인터뷰 요청. 방송 출연 제의가 쏟아져 들어왔다.
오죽하면 그중에는 광고도 있었다.
보험사 광고와 아파트 광고 등 다양한 편이었는데 태훈은 단칼에 전부 거절했다.
광고비가 꽤나 큰돈을 만질 수 있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자신은 방송인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국선 변호인들의 이미지를 완화하기 위해 나선 것이지 돈 벌자고 나선 것은 아니었다.
단칼에 그가 거절하자 방송 관계자들은 의아해하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실상, 광고 몇 편 찍으면 5억 이상은 단숨에 만질 수 있었고 더 나아가 다른 프로그램 혹은 예능에도 출연하게 되면 더욱 많은 돈을 만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단칼의 거절에 관계자들이 묻자 태훈은 그리 답했다.
‘전 그때 그 방송에서도 변호하러 간 거지. 방송하러 간 건 아니었습니다. 변호사가 광고라니요. 죄송합니다.’
그 말을 하나 같이 들은 관계자들은 꼬리를 내렸다.
국선 변호인들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상승했다. 물론 태훈의 방송 때문만은 아니었다. 요즘 국선 변호사들은 치열해졌다.
로스쿨 제도의 도입으로 변호사의 숫자는 계속 증가하니 꾸준히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국선 변호인이 이제 경쟁력을 쥐게 된 시대이기 때문이었다.
– 선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재희의 시선은 TV에 향해있었다.
태훈이 변론을 하고 있는 방송이 식당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소현도 함께였다.
두 사람의 시선뿐만이 아니라 주위의 수많은 사람이 방송을 보고 있었다.
태훈은 더욱더 변호사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소현은 젓가락을 입에 넣고는 재희의 눈치를 살폈다.
“괜……찮아……?”
“안 괜찮을 건 뭔데.”
방송이 끝나고 재희는 다시 젓가락을 움직여 배추김치를 아삭 씹었다.
“아니, 그냥 강 변호사님…….”
“누구나 첫사랑은 다 아픈 거잖아.”
소현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음식을 모두 씹고서 넘긴 재희는 힘껏 웃었다.
첫사랑은 모두 아프다.
자신에게 남은 것은 강태훈이라는 사람을 잊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