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31
“도련님, 어찌 웃으십니까.”
시헌의 조심스런 물음.
“목은 대감에게 나하추와 같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때 그 늙은이, 속으로는 부글부글 했을 것이야.”
“잘은 모르지만…제가 듣기로는 유창해 보였습니다만···”
“실제로 유창하였지. 명나라 사람이라고 해도 믿길 정도로 유려하고 능숙하였다.”
“네? 그런데 왜 천자께선···”
“하하하. 바닥부터 기어올라왔다더니 참으로 능구렁이같은 인간이다. 그런 식으로 돌려서 그의 청을 거절하다니.”
방원이 눈을 빛내며 목소리를 낮춘다. 시헌이 그의 입 쪽으로 귀를 갖다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고려의 내정에 간섭할 생각이 없다- 그리 말한 것이다.”
“네?!!”
방원의 대담한 설명에 시헌이 펄쩍 뛰었다.
“친히 입조하기를 바란다, 목은 대감의 이 말의 뜻은 이해했느냐?”
“말 그대로···”
방원은 웃으며 그의 우직한 수하에게 설명한다.
“창왕은 나이가 어려, 직접 명까지 오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렇게 운을 던진 후 천자의 입에서 ‘시기를 보아 나중에 입조하라’ 혹은 ‘성의는 알겠으니 입조받은 것으로 하겠다’정도의 대답만 나와도 천자의 입으로 창왕의 정당성을 승인하는 셈이야.”
“그…렇겠습니다.”
시헌이 잠시 생각해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쌩-하니 못 알아들은 척을 하고, 내게 관심을 돌렸지. 이 말의 뜻은?”
“설마…어르신께서 대업을 이루시는 것에 명이 찬성한다는 것입니까!”
“정확히는, 관여치 않겠다는 정도겠지만.”
“..왜입니까!”
“통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제국이다. 지금은 내부를 정리하는 것만도 벅차. 예전에 쌍성총관부 운운 했던 것도 공물을 더 뜯어내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지.”
“그럼······”
“그런데 명장으로 이 대륙에까지 이름을 떨치셨던 아버님이 요동 정벌에 나선다고 하니, 명 천자는 속으로 덜컥했을 게다. 그렇게까지 일을 키울 생각은 없었을테니. 그런데 위화도에서 아버님이 군을 돌리신 것을 알고 얼마나 안도했겠느냐.”
방원의 입에서 펼쳐지는, 당시 국제 정세에 대한 유려하고 대담한 분석에 시헌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럼, 도련님이 고려말을 쓰신 것도-”
“이성계의 밑에 야심찬 아들이 있다, 그런 인상을 줄 필요가 없지. 최대한 얌전히 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그 의심으로 똘똘 뭉친 천자가 마음을 놓을 테니까.”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경륜이,
눈 속에 반짝이는 총기가,
이글거리는 야심이 몸에서 솟아오른다.
방 안에서 수하와 숨죽여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 기세만은 거대한 황궁 전체를 집어삼킬 듯한 젊은 배우의 연기에, 뤄더룽은 말을 잊었다.
‘첫 날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거냐···’
그를 놀라게 한 두 배우가, 같은 씬에서 격하게 부딪히는 장면이 그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어느모로 생각해도 압도적인 그림이 나올 것 같다.
평생 수많은 영화에 참여하고, 많은 동료 배우들을 보아왔지만,
그는 또 한 번 개안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이 영화에 참여하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
조금 컨디션이 회복된 한성은 그 다음날부터 또 다른 씬을 찍었다.
그렇게 5일간의 중국 로케가 끝나고, 일행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간 함께 한 중국 배우들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마지막 날에는 뤄더룽의 끝없이 이어지는 칭찬에, 민경국조차 마음을 풀고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또 2주.
국내의 여러 지방들을 옮겨다니며 중간 중간 들어가는 장면들의 촬영을 마쳤고,
드디어,
용인 세트장에서 벌어질 다담(*茶談:차를 마시며 대화함) 씬의 촬영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한 달 간, 클라이막스의 촬영은 꽤 혹독할 겁니다. 하루동안 잘 쉬고 오세요.”
2004년 7월부터 도입된 주5일제 근무가 무색하게, 촬영장은 언제나 월화수목금금금이다.
유명은 단 하루 주어진 이 휴가를 어디에 쓸지 고민하다 학교로 향했다.
때는 8월 초중순.
4월 중순 시작한 영화 촬영은, 엑스트라만 거듭했던 1개월의 초반부 촬영, 문경에서 살다시피했던 2달간의 촬영, 중국로케 1주일과 국내 지방로케 2주일을 지나,
이제 약 한 달로 예정된 용인세트장 촬영을 마지막으로 남겨두고 있다.
지금 이 시기라면, 한참 오디우스 워크샵이 벌어지고 있을 시기이다.
친한 선배들, 동기들은 없겠지만, 눈에 익은 후배들이 반겨주겠지. 밥이라도 사주고 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유명은 거기서 의외의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준호야!”
“으왓. 유명아! 대스타님이 왠일이야!!”
워크샵이 끝날 시간에 맞춰 유명이 들어서니, 삽시간에 비명이 터진다.
‘잘나가는 오디우스 선배’이자 ‘브라운관에서나 보던 연예인’.
특히, 입단한지 얼마 안 되는 04, 05학번 후배들은 놀라서 숨을 꺽꺽거리고 있다.
“네가 여기있을 줄은 몰랐네.”
“어어, 아직 초보작가라 부끄럽긴 한데, 희곡 클래스를 한 타임 넣고 싶다고 요청이 와서…헤헷.”
준호는 인턴을 마치고 어엿한 의 신입작가가 되었다.
“어얼, 대단한데···”
“네가 더 대단하지! 촬영은?”
“하루 휴식.”
“와…뒷풀이 같이 갈래?”
“그럼. 그러려고 왔는데.”
후배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모두 같이 오디우스의 단골집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방학 기간의 호프집은 개미 한 마리 없이 텅텅 비어있어, 유명은 시선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다.
아, 물론 후배들의 시선에 엄청 시달리긴 했다.
“선배님, 좋은 배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선배님은 언제부터 연기를 그렇게 잘 하셨어요?”
“차하린 실제로 봐도 예뻐요?”
재잘재잘-
질문이 끝도 없이 쏟아진다.
스물 다섯이 보기에도 스물, 스물하나는 어린아이 같지만, 살아온 기간이 40년에 육박하는 유명의 눈에는 더욱 그랬다.
그는 후배들이 귀엽다는 듯 온화한 미소를 띠며, 많은 질문들에 간단히 대답해 주었다.
한참을 시달린 후에야 겨우 풀려난 그는 준호와 마주앉았다.
“잘 지냈어?”
“응. 선하 선배님한테 종종 얘기 전해들었어. 잘 하고 있다며.”
“하하, 열심히 하고 있어.”
선하와 같은 극단인 준호는, 선하가 촬영장의 소식을 물고 올 때마다 눈을 반짝이며 듣곤 했다.
제 자랑스러운 친구의 소식을.
“다른 애들은 다 잘 지내?”
“잘 지내지. 유리 소식이야 뉴스봐서 알 거고,”
유리는 4월부터 방영된 40부작 대하드라마에 공주 역으로 출연해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요즘 꽤 여러 개의 CF에서 모습을 보인다.
“수호 선배는 영상원 합격했고, 혜선이는 가을 정기공연에서 처음으로 단역 받아서 열심히 연습 중이야.”
혜선은 준호와 같은 이니 누구보다도 소식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명은 가장 궁금한 한 사람의 안부를 입에 올렸다.
“류신 선배는?”
*논문 인용
하정승(2011), 역대 詩話集에 나타난 정몽주 시에 대한 비평과 그 의미, 포은학회
끝
ⓒ 글술술
“류신 선배는?
그의 능력이라면 벌써 뭔가 큰 작품을 찍었어도 놀랍지 않은데, 이상할 정도로 소식이 없었다.
“어…못 들었어?
“…뭘?”
“너 지금 영화 합류하고 조금 후에, 선배도 사극 영화 들어갔잖아. 난 너 때문인 줄 알았는데.”
“응…?”
“몰랐어?”
작년 1년간, 류신은 유명에게 패배한 기억을 씻으려, 작품활동보다 연기연습에 매진해왔다. 물론 유리, 혜선, 수호는 그 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류신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유명에겐 언급을 피했던 것.
그리고 류신은 올해, 유명이 사극 영화에 들어갈 때쯤, 같은 사극 영화를 선택했다.
그것은 과연 우연이었을까.
류신의 소식을 전하니 미호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캬컁. 그 녀석답당.}
‘그냥 우연이지 않을까?’
{다른 녀석이면 몰라도 그 녀석이라면 아닐걸. 아역배우로 날리던 녀석이 복귀했으니 대본이야 쏟아지게 들어왔겠징. 그 중에 ‘하필’ ‘지금’ 사극을 고른 건 역시 너 때문일거당.}
‘정말 그럴까…’
{인간은 굳이 절벽에 못을 박고 기어올라가는 스포츠를 개발한 종자지. 안 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덤벼보는 근성, 그게 그 녀석한텐 보통 인간의 몇 배로 농축되어 있는 느낌이란 말이징. 컁.}
갑자기 미호가 유명을 휙- 돌아보더니 물었다.
{그 녀석이랑 또 작품해랑.}
‘응?’
{둘이 서로 잡아먹으려고 난리치는 거 또 보고싶당.}
‘어…언젠가 같은 작품에서 만날 수도 있겠지?’
{언젠가 싫당. 빨리 해랑.}
미호의 땡깡(?)에 유명이 피식 웃으며 풍성한 꼬리를 쓰다듬었다.
복실복실한 꼬리가 손에 감기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드디어 내일.
이제 완전히 성인이 된 이방원과, 마지막 칼을 가는 정몽주의 대치.
유명은 중국에서 본 한성의 그 기백을 생각하며, 느리게 눈을 감았다.
이방원.
태어나면서부터 심장에 새기고 태어난 듯, 뜨거운 정복욕을 타고난 남자.
그런 야심을 자신은 잘 모르지만,
자신이 어떤 처지에서도 연기를 포기할 수 없었듯이, 그에게도 왕좌가 그런 것이었다면···
{얼른 자랑. 하암···}
유명은 미호를 따라 일찍 자리에 누웠다.
내일은 최상의 컨디션이고 싶었다.
*
다음날 용인 세트장.
기와집이 무려 여섯 채가 지어져 있다.
한 채는 정밀하게 지은 이성계의 집, 나머지 다섯 채는 카메라 앵글에 걸리기에 외관만 번듯하게 올려놓은 빈껍데기다.
용인 세트장은 프리 프로덕션 때부터 제작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성계의 문병, 방원과의 다담, 그리고 그들의 시야 뒤쪽에서 벌어질 일들까지.
시야의 사각을 활용해야 하는 장면들이 있는만큼 딱 맞춘 세트가 필요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각 방에 들어차있는 가구에 벽에 걸린 서화들하며, 정원의 화초 하나까지 옮겨 가꾸어져 파릇파릇 자태를 뽐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