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42
말이 많으시던 사범님은 활을 재고 과녁을 노릴 때는 사람이 변한듯이 눈빛이 예리해졌다.
자신도 저런 눈빛이었을까 생각하며, 유명은 사범의 자세와 눈빛을 자세히 관찰했다. 언젠가 다시 필요한 날이 있을 것이다.
피잉- 콱!
화살이 중앙의 붉은 원을 관통하는 것을 촬영한 후, 국궁장에서의 촬영은 끝이 났다.
Unmask씬은 대사 없이 박주원의 다채로운 모습을 컷컷으로만 담기 때문에 한 곳에서의 촬영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안에 모든 야외 촬영을 끝내야 하기 때문에 일정은 빡빡했다.
“다음 장소로 빠르게 이동하겠습니다.”
*
이동한 장소는 이태원의 한 힙합 클럽.
한 낮이라 영업을 시작하지 않은 클럽에는 카메라와 조명, 여러 기기들이 미리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클럽을 채울 엑스트라들도, 낮 시간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과 화장으로 클럽의 한 켠을 메우고 있었다.
유명도 준비된 의상으로 갈아입고 머리에 살짝 스타일링을 더했다.
“유명씨 춤 좀 춰요?”
“어…글쎄요. 이런 종류의 춤은 춰본 일이 없어서.”
“춤 동작이 화려하기보단, 표정이 생동감있는 게 중요하니까 너무 부담갖지 마시고 적당히 주변과 맞춰서 리듬타시면 됩니다.”
주원과 시선이 맞닿는 위치에 가장 화려한 여성 엑스트라들이 배치된다.
그들의 유혹적인 눈빛을 아랑곳않으며, 주원은 음악과 춤에만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컨셉이었다.
곧 음악이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바깥과 단절된 공간은 밤인지 낮인지 착각을 불러일으킬듯 번쩍이는 네온사인을 흩뿌린다.
“다들 움직여주세요.”
엑스트라는 클럽 동호회에서 뽑아온 사람들이 절반이 넘는다고 했다. 그들은 어제 밤에도 왔었고, 오늘 밤에도 올 클럽에서, 익숙하게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유명은 잠시 그들을 관찰했다.
쿵쿵 울리는 힙합 음악에 몸을 맞춰 흔드는 몸짓에는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지만, 일정한 패턴 또한 엿보인다.
‘몸을 쓰는 것’에 관해서는 프로인 유명은 곧 그 패턴을 캐치하고, 함께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dum- dumm-
춤의 기본은 업다운.
리듬에 맞추어 살짝씩 튀는 무릎과 허리가 몸에 바운스를 만든다.
물결을 타듯이 넘나드는 바운스는 멋스러우면서도 과하지 않다.
조금 몸에 익자, 한 자리서 위아래만 타던 바운스가 변형하며, 어깨가 조금씩 스윙하기 시작한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감독은 묘한 감각을 느꼈다.
몸을 보여줄 줄 아는 배우.
옆의 사람들처럼 아직 이 공간에 익숙해 보이지는 않지만 손끝 하나까지 ‘보여주기 위한’ 정돈된 라인의 동작들, 발끝의 방향이 시간차를 두고 몸을 뒤늦게 회전시킬 때의 시선을 뗄 수 없는 맵시.
태가 난다.
그리고 음악이 흐를 수록, ‘익숙해 보이지 않는’ 느낌은 점점 희석되었고, 변형된 동작들은 조금씩 ‘고유한 느낌’이 되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dumm!!!
한 곡이 끝나고 카메라가 잠시 멈추었을 때 엑스트라들이 웅성였다.
“춤 좀 춰본 사람 같은데?”
“해외파인가? 국내 클럽 스타일이랑은 좀 다른데.”
“나 예전에 미국 클럽 투어 갔을 때 시카고 클럽이 좀 저런 느낌이었던 듯.”
레퍼런스가 불분명한 평론들이 주변에서 난무하는 가운데 유명이 어색하게 물었다.
“어…대충 이런 식이면 될까요?”
“……”
감독은 말을 잃었다.
그리고 인적없는 광활한 도로에서 크루드를 달리는 유명의 모습과,
서킷장에서의 거친 운전이라는 컨셉까지를 모두 촬영하고 그 날의 촬영이 끝났다.
15초 버전은, 사무실의 딱딱한 박대리가 몇 컷으로 조명된 후, 바로 사무실을 탈출하여 after퇴근life 를 즐기는 박주원의 모습이 크루드를 거칠게 모는 영상으로 집약될 예정이었고,
미니 드라마 형식의 3분 버전은, 대사까지 붙여 박대리의 빡빡한 일상을 보여준 후, 크루드를 몰고 뛰쳐나간 그가 ‘박대리가 아닌 박주원’으로 사는 씬들을 보여주고,
다음날, 다시 박대리가 되어 반듯하게 출근하는 모습까지가 담길 예정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CF 촬영이 끝났다.
*
지난 주 유명과 함께하며 계를 제대로 탄 박진희의 눈이 퀭했다. 아드레날린 과분비로 밤마다 잠을 설쳤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정말 피곤할 때만 먹는 공진단 한 알을 꿀꺽 삼켰다.
‘인생 최고로 보람찬 나날이었다…여태까지 회사에서 시달리고 구른 걸 단번에 보상받았어!’
박진희는 일을 잘 했고, 프로페셔널한 자신의 모습에 자부심이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일은 일’이었다.
이번 크루드 광고는 그런 ‘직장인 박진희’의 판타지가 가득 농축된 결과물이었다.
오후 6시에 퇴근하는 판타지, 사무실을 부수고 뛰쳐나가는 판타지,
직장에서는 유능한 박팀장의 가면을 쓰고 살고 있지만 퇴근 이후의 시간은 온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고 싶은 판타지가 꽉꽉 눌러진 컨셉.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를 하며 처음으로 일과 취미가 일치했다. 서로 북돋우는 방향으로.
그녀는 상기된 표정으로 USB를 꾸욱 쥐었다.
오늘 그녀는 중요한 미팅이 있었다.
종로의 어느 커피숍,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커다란 화분으로 가려진 구석 자리에 오늘의 접선 인물이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안녕하세요, 보형양제님.”
정소진이었다.
“우선, 물건부터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보신 후엔 이성적인 대화가 불가능할지도 모르는데···”
“그…그 정도입니까. 그래도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싶습니다!”
“후훗, 그렇다면.”
그녀가 USB를 건넸고, 소진은 준비되어 있던 노트북에 잽싸게 꽂았다. 그리고 안에 저장되어 있는 수십장의 사진을 한 장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흐억, 정장···”
“네, 정장입니다.”
“자…잠시만요. 와이셔츠 단추 끌른 거 실화인가요? 아니, 소매도?!”
“진정하세요, 회장님.”
그녀가 마우스를 쥔 손을 달달 떨기 시작하자 박진희는 소진에게 물을 따라 건넸고, 그녀가 벌컥벌컥 들이긴 후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니까, 보형양제 님은 이 장면을…라이브로 보신 거군요.”
“…후훗.”
“아악!! 정말! 정말 부럽습니다. 그 눈이…무척 탐이 나는군요.”
박진희는 섬찟한 그녀의 발언에 땀을 흘리며, 합의된 용건을 꺼냈다.
“말씀드렸지만 출처는 익명의 제보자인걸로. 절대 저인게 알려지면 안 돼요.”
“그건 당연한데, 이거 괜찮은 건가요? 뭔가 산업 기밀이라든지…법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니죠?”
“네. 노이즈 마케팅으로 상무님 결재 떨어진 건입니다. 회사에서 대응하는 일은 없을 거에요.”
“그럼 그냥 풀면 되지 왜 이렇게 번거로운 방식으로?”
“사진과 [유출]사진 중에 뭘 더 눌러보고 싶으신가요?”
“아아….그렇군요. 그런 깊은 뜻이···”
정소진이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그리고 카페를 열어 운영진 관리에서 그녀를 바로 골드회원으로 바꿨다.
“작은 성의입니다.”
“아앗, 감사합니다!”
“혼자 계타신 건 질투나지만, 전 회원에게 일부라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오시다니, 충분히 골드회원의 자격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네. 나중에 광고 런칭된 후에는, B컷 등도 풀겠습니다. 팬클럽 통해서 풀지는 못하겠지만, 떡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요.”
“옳은 말씀입니다.”
오늘 박진희는 꿩먹고, 알먹고, 깃털까지 회수하여 유용하게 사용했다.
유명의 멋진 모습을 공유하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과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크루드 마케팅팀장으로서의 목표를 달성했을 뿐 아니라, 골드회원 뱃지까지 달게 되었으니까.
그야말로, 취미와 일의 일치.
아름다운 콜라보레이션이었다.
*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유명은 오랜만에 바람을 맞으며 한가하게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검은비니에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옷도 최대한 수수하게 입었지만 그래도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끔흘끔 쳐다본다. 일반인과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기 때문.
오늘 그는 가을정기공연을 보기 위해 와 있었다.
이선하와 오디우스 동기 혜선이 출연하는 공연이다. 한성과 준호, 수호 등 시간이 맞는 오디우스 사람들도 함께 관람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유명은, 오랜만에 햇빛을 받고 좀 걷기 위해서 공연 시간보다 일찍 대학로에 와 있었다.
-형, 혹시 들켜서 사람 몰리면 바로 연락주셔야 해요.
-응, 너무 걱정하지마. 나 흔하게 생겨서 잘 못알아볼거야.
-…아닐걸요.
로드매니저 호철은, 요즘 부쩍 가만 있어도 눈에 확 들어오는 유명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엄청 조각같은 얼굴이거나 특징적인 외모가 아닌 것은 맞지만, 요즘의 그라면 꽁꽁 싸매고 있어도 범상한 인물로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로드매니저 일을 몇년 째 하면서, 연예인들이 인기와 관심을 받으면서 훌쩍 ‘연예인다워’지는 과정을 많이 목격한 호철이었지만, 유명처럼 드라마틱한 케이스는 처음이었다.
{사람들이 자꾸 쳐다본당, 컁.}
‘그래?’
{들키기 싫으면 생기를 좀 죽여봐랑. 그러면 좀 나을 거당.}
유명이 가만 있어도 발산되는 존재감을 스윽- 억누른다.
미호는 제 눈에 보이는 그의 아우라가 부피를 줄이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신기해했다. 인간이 이렇게 생기를 잘 컨트롤하는 것은 본 적이 없으니까.
‘바람이 좋다, 그치?’
선선한 가을 낮이었다.
10월 말에 접어들어 공기는 약간 쌀쌀했지만, 햇살이 비추는 양지는 따뜻했고 가끔 선선한 바람이 몸을 스치고 지나는 상쾌한 날씨였다.
여기저기서 음악 소리가 울렸다. 버스킹이었다.
{저기, 저 사람은 연기하는 거 같은뎅?}
‘어디?’
미호가 가리킨 방향에는, 마스크를 쓴 한 여자분이 뭔가 몸동작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녀는 열심히 팔을 움직이며 ‘베니스의 상인’의 대사를 하고 있다.
몇 명의 사람들이 그녀를 지켜보고 있지만, 노래처럼 썩 와닿지는 않는지 발길을 금세 돌려버린다.
유명은 그 앞의 화단에 걸터앉아, 그 연기를 바라보았다.
{어? 쟤 걔 아니냥?}
‘응?’
{그, 너랑 화보 찍었던 애. 원생에서 네가 하던 드라마 여주였다는 그 친구 같은데?}
유명이 놀라서 마스크 사이로 삐져나온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정말이네···데뷔한 사람이 왜 여기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는 그녀는,
유명과 함께 화보를 찍었던 그녀, 설수연이었다.
끝
ⓒ 글술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