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2
그녀는 조심스럽게 차가운 콜라캔에 응결된 물기를 닦아내고 치익- 캔 뚜껑을 땄다.
눈을 꼭 감고, 쓴 약을 마시듯 입을 살짝 가져다댄다.
꿀꺽- 꿀꺽-
새까만 일탈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잠시 후 그녀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목구멍을 톡톡 쏘는 청량감, 혀를 감아 퍼지는 중독성의 달콤함.
걸어 잠궜던 감각의 빗장이 느슨해졌는지, 눈빛마저 느슨해진다.
“이거…신기한 맛이네요.”
“그죠?”
이상한 남자다.
콜라를 처음 먹어보는 듯한 자신의 말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호응해주고 있다.
그녀는 캔을 내려다보곤 한 모금을 더 삼켰다.
용기를 내본다.
“감사합니다…그리고 저 때문에 자꾸 촬영이 지연되어서 죄송해요···”
“수연 씨 연기 좋아하죠?”
“네?”
“눈 한번 감아 볼래요?”
수연이 커다란 두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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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계탔다
“수연 씨 연기 좋아하죠?”
“네?”
“눈 한번 감아 볼래요?”
유명의 진지한 요청에 수연은 놀란 듯 눈을 깜빡이다 살며시 눈을 감았다.
나붓하게 펼쳐진 속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제가 말하는 걸 상상으로 따라와봐요.”
유명은 눈을 감고 앉아있는 수연의 뒤로 돌아가서 섰다.
“하얀 점을 하나 머리 속에 그려봅시다.
어떤 기억이나 정보도 빨려들어가면 소멸될 것 같은 아주 새하얀 점.”
처음 수연은 생각했다.
듣기 좋은 목소리다-
그 나즈막한 목소리의 지령을 따라 하나의 점을 창조했다. 까만 시야에 페인트 자욱같은 흰 점 하나가 똑 떨어졌다.
“흰 점의 반경이 점점 넓어집니다.”
“나의 기억이며 과거들이 하나하나 확장되는 점에 먹혀들어갑니다.”
“이제 점이 아니라 원이 되었군요. 원이 점점 반경을 넓힙니다. 지금의 당신을 화이트처럼 깨끗하게 지우면서.”
수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집중한다.
타고난 몰입력을 알딸딸하게 휘감아드는 탄산이 돕는다.
눈을 감고 있지만 눈꺼풀 표면의 움직임을 보면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건 점점 경계를 확장해가는 흰 점일 것이다.
“자, 당신은 이제 무無로 돌아갔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수연의 표정이 사라졌다.
모든 근육이 의지를 상실한 듯한 완벽한 무표정.
딱-
핑거스냅 소리가 한 번 나며 국면이 전환된다.
그녀를 지배하고 이끄는 목소리가 그녀에게 새로운 인격을 부과한다.
“자, 이제 여기는 어느 고성입니다.
낡았지만 깨끗한 성. 푸르게 우거진 정원.
성의 내부에는 예쁜 옷, 멋진 가구, 끼니마다 식탁을 메우는 진수성찬들이 가득하네요.
그런데 사람이라고는 어디보자…단 한 명도 없군요.”
눈을 감은 수연의 얼굴이 이곳 저곳으로 돌아간다.
상상의 성 내부를 탐색하는 얼굴.
“당신은 20년이나 이 성 안에서…
‘홀로’ 살아왔어요. 언젠가는 생길 친구를 꿈꾸면서.”
그 말에 그녀의 심장이 덜컹 떨어졌다.
조금씩 새로운 인격의 표정이 드러난다.
그것은 목마름. 그리움. 체념과 희망.
“그런데 어느날, 생애 최초의 친구가 방문하기로 했어요.
당신은 가장 예쁜 옷을 꺼내 입고 그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지요.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하면서.”
수연이 귀를 기울였다.
어딘가에서 발자국 소리가 타박타박 들린다. 소리는 후방에서 사선후방으로, 그리고 옆쪽으로 느릿하게 이동했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갈급해졌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했네요 친구가?
자 이제 눈을 천천히 뜹니다.”
수연의 눈이 천천히 열렸다.
눈앞에는 유명이 있었다.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는 눈을 한번 더 깜빡거렸다.
그 표정에 이미 ‘설수연’은 없었다.
“촬영 시작할까요.”
수연의 집중이 깨질까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유명이 속삭였다.
중간쯤부터 들어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민교가 조용히 움직였다.
유명이 한 손을 내밀었고,
찰칵-
꿈꾸는 듯한 얼굴로 수연이 그 손을 마주 잡았다.
찰칵-
온기를 갈구하는 소녀의 아스라한 미소.
찰칵-
그리고 친구가 그녀를 돌아봐줄 때 번지는 환한 미소까지.
찰칵-
한 번 몰입한 수연의 감정은 깨어지지 않았고, 그렇게 물 흐르는 듯이 2시간의 촬영이 이어졌다.
*
“와, 너 계탔다.”
촬영이 끝나고, 흘러내린 땀을 닦으며 민교가 안즈를 툭 쳤다.
안즈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마구 주억거렸다.
민교가 노트북에 메모리 카드를 꽂고 파일을 재생시켰다.
앞쪽은 볼 것도 없이 날린 사진들 뿐이었지만, 1500장대 이후부터는 버릴 게 없을 정도로 아까운 사진들 뿐. 유명도 한쪽에 서서 사진을 구경했다.
한 번 몰입에 빠진 설수연은, 후대의 명성이 아깝지 않게 굉장했다.
가을바람에 아스라질 듯한 연약한 소녀.
행복하지만, 유일한 친구가 혹시 떠나갈까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쌀쌀한 바람에 한 번씩 옷깃을 여미는 소녀는 애처롭고 아름다웠다.
“수연씨가 모델도 잘했지만, 형도 진짜 프로네요.”
사실 모델이라기보단 연기였다.
그녀는 따로 포즈를 취하지 않았다. 그 인물이 되어서 걷고, 웃고, 유명을 바라본 것 뿐이었다. 구도를 살려 이런 사진을 만들어낸 것은 사진작가의 공이 다분했다
툭- 하고 던진 유명의 칭찬에 민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마추어 애송이 녀석이 형이라고 부르는 것에 왜 뿌듯하고 어깨가 올라가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임마. 오늘 공로자는 너거든?”
저 녀석이 진짜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겠지.
민교도 은근슬쩍 말을 놓았다. 서로 교류하고 지내자는 행간의 딜이 성사되었다.
안즈도 거들었다.
“유명씨 진짜 고마워요. 근데 아까 그건 뭐에요? 최면?”
“아니에요. 연기에서 흔하게 쓰는 이미지네이션인데 워낙 수연씨가 몰입도가 좋은 타입이라 잘 따라온 거에요.”
유명의 칭찬에 수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오늘 신세계를 경험했다.
혼자 연습할 때만 경험했던, 역과 일체화되는 느낌을 사람들 앞에서 표출해낼 수 있었던 건 처음이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아기새가 알을 깨고 나와 처음 본 것을 어미로 인식하듯이,
설수연의 머리에 유명의 인상이 강렬하게 박혔다.
*
“오늘 뭐했냥? 뭔가 기운 센 사람을 만나고 온 것 같은뎅.”
집에 돌아가자 미호가 달라붙어서 코를 킁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