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삼전중원공(三轉重元功)
금색 두루마리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는 의심스런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비록 당장 저물대에서 은색 두루마리를 꺼내 비교해 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지만 그럴 장소가 아니었다.
여기서 이상한 행동을 하면 사부에게 의심을 살 뿐이었다. 한립은 곰곰이 생각해 순식간에 선택을 완료했다.
“사부님, 이 공법으로 하겠습니다.”
그가 눈을 감고 있던 이화원에게 말했다. 이화원이 두 눈을 뜨고 한립이 손에 쥔 응원공의 법결에 잠시 놀라는 듯 했으나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를 따라 대청으로 돌아오니 여인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찌 잘 골랐느냐?”
“사모님의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공법을 잘 골라 나왔습니다.”
“그래, 다행이구나.”
“이제 생명의 은혜도 갚았으니 널 내 문하로 받아들이는 일에 대해 이야기 하자. 진심으로 내 문하로 들어와 나 이화원의 정식제자가 되겠느냐?”
이화원이 정색을 하며 엄하게 물어왔다. 그의 물음에 한립도 정신이 번쩍 들어 바로 명쾌히 답했다.
“제자 한립, 진심으로 원합니다.”
그러나 입으로 하는 말과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진심은 조금 달랐다.
‘당신이 진심으로 대해주면 자연히 나도 그러겠지. 일단은 사제 간의 도리를 지킬 것이나 이상한 마음을 먹는 날엔 나도 가만있지 않겠다.’
“좋다. 수도계의 대소사는 항상 간단하게 진행되지. 오늘부터 넌 이화원의 정식제자이니 항시 수도의 도를 지키며 내 명성에 금이 갈 일을 삼가거라.”
그제야 이화원의 표정도 부드러워졌다. 이어서 이화원은 자애로운 사부의 모습으로 몇 가지 충고와 가르침을 주었고 이야기를 잘 마친 한립은 인사를 하고 그곳을 나왔다.
사실 골짜기를 빠져 나오려는데 우연히 우 사형을 마주쳤다. 그가 굳이 데려다 주겠다고 하자 어제 그에게 걸려들어 쓴 맛을 본 한립은 단박에 거절했다.
상대는 아쉽다는 기색이 가득했지만 한립은 서둘러 법기를 타고 그곳을 빠져 나왔다. 나룻배에 오르자 지난 이틀간 벌어진 일들이 떠올랐다.
사부 이화원에 대한 인상도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의 태도는 금지 원행과 비교할 때 하늘과 땅 차이였다.
자신이 사모의 생명을 구한 일 때문인지 아니면 축기에 성공해서 인지는 모르나 드디어 결단기 수사의 눈에 든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번엔 얻은 것이 많았다. 수도계에서 내세울 만한 배경이 생긴데다 금색 두루마리를 얻어 은색 두루마리의 비밀에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그 비밀을 풀지 못한다 하더라도 특별한 점이 없는 응원공(凝元功)을 수련하면 그만이었다. 일단은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그는 침실로 들어가 저물대에서 금색과 은색의 두루마리를 모두 꺼내놓았다.
은색과 금색의 두루마리를 겹쳐서 비추어 보자 역시 적지 않은 도안이 일치하는 것이 분명 관련된 물건들이었다.
그는 바로 양 손에 두루마리를 올리고 무게를 달아보았다. 은색 쪽이 조금 무거웠다. 금색 두루마리를 만졌을 때 더 얇다는 느낌이 옳았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은색 두루마리를 들고 그 이상한 문양을 바라보고 또 만져보았다.
눈에 불똥이 튀듯 끊임없이 무언가를 놓고 고민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한립은 결심했다.
그는 돌연 두루마리를 양 손에 끼워놓고 서서히 비비며 불길을 키워냈다.
얼굴 코앞까지 불길이 이는데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쳐다보니 고온에 두루마리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얇은 은색의 층이 녹아내리자 금빛이 반짝였다. 한립이 불꽃을 조절해 두루마리로 옮겨 붙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 안의 내용물은 불길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그는 뛰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내용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점점 한립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곳에 적힌 것은 뜻밖에 비검(飛劍)이나 빛의 검을 전문적으로 수련하는 법술이 기재되어있었다. 비록 좋은 물건이긴 했지만 그가 원하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분명 연기기 수사에게는 보물이나 다름없었지만 이미 축기에 성공한 한립에게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별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한립은 이대로 끝낼 수가 없었다.
금빛으로 변한 두루마리를 다시 꼼꼼히 살펴보고 불로 태워보기까지 했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반나절을 허송세월 한 그는 열이 받았다.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자신에게 전혀 쓸모없는 물건이나 얻다니! 게다가 빛의 검이라는 말은 이미 충분히 그를 질리게 했다. 잘난 청원검결(靑元劍決)을 익혀 이미 빛의 검인 청원검망(靑元劍芒)을 쓸 수 있는데 다시 또 무슨 빛의 검이란 말인가!
침울해진 그는 돌연 두루마리를 허공으로 던져버리고 사발 굵기의 푸른빛의 검을 뽑아 날렸다.
저것을 완전히 찢어버려 울분을 씻어낼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가 상상하던 소리는 전해지지 않았고 돌연 푸른빛을 띠는 빛의 검이 바닷물에라도 빠지듯 그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마치 무언가에 삼켜진 것 같았다.
“이 무슨!”
손을 뻗어 떨어져 내리는 두루마리에 표부술(漂浮術)을 걸어 띄웠다. 그리고는 청원검망(靑元劍芒)을 이용해 작은 검을 하나하나 날리며 그것이 빛의 검들을 집어 삼키는 모습을 지켜봤다.
저 탐욕스런 놈을 만족시켜 줄만큼 빛의 검을 쏘려면 법력이 다 떨어져도 모자랄 것 같았다.
그가 막 진퇴양난에 빠져 어찌할까 고민할 때쯤 드디어 반응이 나타났다. 두루마리에서 금빛이 발산되더니 빛의 검을 더는 흡수하지 않고 튕겨내기 시작했다. 흥분을 감출 수 없었던 한립은 이제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 변화를 관찰했다.
금빛이 서서히 모여들어 각각이 개미만 한 글자로 변해 떠올랐다. 금빛으로 빛나는 것이 하늘에 떠있는 무수한 별처럼 보였다.
‘파밧’
표부술이 저절로 사라지며 두루마리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한립이 몸을 던져 그것이 떨어지기 전에 잡아채려 했다.
그런데 한립의 손가락 끝이 그것에 닿기도 전에 금빛 글자들이 물이 범람하듯 그를 향해 흘러들었다.
대경실색한 그가 서둘러 두루마리를 던져버리려 했으나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손에 붙어서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금빛은 순식간에 한립의 전신에 달라붙어서 이제 그의 온몸은 빛으로 쓰인 글자들로 뒤덮여있었다.
이런 극심한 고통은 다행히도 순간의 고통으로 끝나며 모든 글자의 흡수가 끝이 났다. 한립은 바닥에 쓰러져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하루가 지난 후에야 희미하게 정신을 차린 그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이때 두통은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도 머리가 울리고 신경 하나하나가 팽팽히 당겨져 있는 기분이었다.
그는 서둘러 침상으로 올라가 눈을 감고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머리에서 느껴지는 압력을 줄이려는 시도였다.
그 자리에 앉은 지 꼬박 삼일 밤낮이 지나서야 머릿속의 이상한 기류를 잠재우고 그 글자들의 정체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의 일성부터 십삼성까지의 온전한 법결이 모두 들어있었다. 끝까지 익히면 전설 속의 화신기(化神期)까지 이르는 것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처음 이런 정보를 인지했을 때는 조금 놀라웠으나 전혀 신이 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후 덧붙여진 삼전중원공(三轉重元功)이라는 보조 공법에는 꽤나 흥미가 생겼다.
삼전중원공을 훑어보기 시작할 때는 자신이 무언가 내용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러 번 반복해서 자세히 보고는 오해가 아니라는 사실에 광소했다.
삼전중원공은 놀랍게도 결단기에 이르기 전 성취가 오르지 않는 병목현상을 피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한립에게는 꿈같은 소식이었다.
그가 수도계에 발을 들인 이후 결단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사들은 하나같이 탄식을 금치 못했다.
한계를 깨고 결단기라는 경지에 이르는 것은 정말 하늘의 조화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 공법으로 무슨 지름길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실제로 검증되지 않은 추측에 가까웠다.
이 공법과 청원검결을 만든 고인은 그가 예상한 바를 적어놓았을 뿐이다. 그 자신도 공법의 마지막에 모든 것을 다해도 결단에 성공할 확률은 절반뿐이라 했다.
그러나 그것이면 한립에게는 충분했다. 절반이 아니라 십분의 일의 확률이라도 그는 주저 없이 시도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흥분이 가라앉고 상세히 공법을 살펴보기 시작하자 한립처럼 심지가 굳은 이도 머리를 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기분이 되었다.
이 공법을 수련하려면 일단은 청원검결을 수련해야 했다. 하지만 한립의 안색을 창백하게 만든 대목은 삼전중원공(三轉重元功)이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청원검결을 육성까지 익히면 법력을 흩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수련하라는 것이었다.
이 공법을 만든 이에 따르면 이렇게 삼전중원공을 이용해 다시 법력을 수련하면 진원(眞元)이 응축되고 다른 일반적인 법력에 비해 몇 배나 순도가 높아진다.
이렇게 연이어 세 번을 한 후 다시 수련을 해 축기기 정상에 이른 수사는 손쉽게 단전(丹田)에서 결단(結丹)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한립은 지금 법력을 흩어버리고 다시 수련하는 일이 힘들까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이번 생에 세 번이나 그렇게 할 시간이 주어질 지가 문제였다.
신비한 병의 도움을 받더라고 매우 위험했다. 게다가 상대의 생각에도 수행을 반복할수록 필요한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 했다.
진원을 최대한 응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보통 수사들 보다 수배의 진원과 법력을 보유할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훨씬 오랜 세월을 허비해야 한다.
겨우 200년 정도의 수명으로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도저히 결론을 내릴 수 없자 한립의 눈에 이화원에게서 받아온 공법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저것을 살펴본 후에 다시 생각을 해야 할 듯 했다.
결론적으로 빛의 검을 주입하고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을 겪는 같은 과정을 반복하고 나서야 다른 금빛 두루마리의 내용도 파악할 수 있었다.
청죽봉운검(靑竹蜂云劍)이 한립이 처음 떠올린 글자였다. 인내심을 가지고 모든 금빛 글자를 정리해 보면 이런 내용이었다. 두 번째 두루마리는 놀랍게도 결단기 수사가 어떻게 청죽봉운검이란 비검(飛劍) 법보(法寶)를 제련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이 법보도 한립의 금부자모인 법기처럼 여러 개를 한 벌로 만들어내야 했다.
최소한 열두 개의 나무 속성 비검이 한 벌이었고 재료만 충분하고 진원이 넘쳐흐르면 서른여섯 개 혹은 일흔두 개를 제련하는 것도 이론상 가능했다.
비록 구체적인 위력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무시무시한 법보였다. 수십 개의 비검이 동시에 공격해 들어오는 상상만으로도 겁에 질릴 정도였다.
물론 결단을 해야 시도를 해볼 것이었기에 지금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래도 한립이 청원검결을 익혀야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도와주었다. 이 나무 속성의 비검을 보자 청원검결과 얼마나 잘 어울릴 지가 머릿속에 그려졌고 서로의 위력을 증가시켜 줄 것이 확실했다.
이렇게 그는 일단 청원검결을 수련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법력을 흩어버리고 말고는 육성에 이르러 축기기 최고봉이 되어야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일단 그때가 되면 결단을 시도해 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다시 법력을 흩어 삼전중원공의 방법을 따르면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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