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예상초
기묘한 것은 영초가 뿜어내는 빛이 예상초의 성장환경과 항상 일치해서 수시로 색을 바꿀 수 있었다.
약성 자체도 수도자들에게 그리 특별하지 않아 일부 저계 단약을 만드는데 쓰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초가 요수를 유혹하는 풀이라는 유요초(誘妖草)라는 별명을 갖게 되면서 난성해 수도계에 파장을 불러왔었다.
당시 어느 수도자가 발견했는지는 모르나, 예상초의 13개 이파리가 평소에는 굽어 있다가 100년마다 하나씩 펴져서 7일 정도를 유지하는데 그때 이상한 향기를 뿜어낸다는 것이다.
이 향기는 선사들에겐 아무런 효과가 없으나 바다에 사는 요수들에게는 엄청난 유혹으로 다가왔다.
향기가 퍼지면 일정 범위에 있는 요수들은 만사를 제치고 달려와 예상초를 삼켜버렸다.
또한 오래된 예상초일수록 영향을 끼치는 범위도 늘어나고 더 높은 등급의 요수도 끌어들이게 된다.
어떤 원영기 수사가 외성해 깊숙한 곳에서 우연히 천년 이상 된 영초를 발견했는데 그때가 마침 열한 번째 이파리가 피어나는 시기였다.
결국 그는 수십 마리의 육, 칠급 요수들이 한 뭉텅이로 몰려오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는 놀라서 달아났다. 이후 그의 경험이 수도계 알려졌다.
수많은 선사들이 예상초의 기이한 효능을 이용해 요수를 불러 모으고 요단을 얻을 계획을 세우게 됐다.
고계 수사들이 난성해로 와 요수를 사냥할 때 가장 골치 아픈 경우가 수 개월을 돌아다녀도 요수의 흔적조차 찾지 못하는 것이었다.
대다수 선사들은 오급 요수를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았고 육급이나 칠급 요수를 만나면 무리가 전멸할 수도 있었다.
팔급 이상의 요수는 원영기 노괴들을 제외하고는 그림자만 비추어도 달아나야 하는 대상이었다.
상대를 잘못 골랐다가는 요수를 사냥하려다가 역으로 자신이 사냥 당할 수 있었다.
외성해에 요수가 많기는 많았지만 대부분이 수면에 떠있기 보다는 해저 깊은 곳에 있는 경우가 많아 찾기가 어렵다.
고계 수사의 경우 하루에 수만 리를 날아가고 의식을 통해 해저 깊은 곳까지 탐색할 수 있었기에 그나마 사냥감을 찾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1년 내내 한 마리도 마주치지 못 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외성해는 선사들이 샅샅이 뒤지기엔 너무 넓었고 대다수의 요수들도 특유의 은닉술을 갖추고 있어 선사들의 탐색에 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니 예상초가 요수를 끌어낸다는 소문에 수도계가 발칵 뒤집힌 것이다.
갑자기 백 년에서 수백 년 된 예상초의 몸값이 월등하게 치솟았다. 하지만 아무도 예상초의 개화시기를 정확히 조절할 수가 없었다.
100년 마다 이파리가 피어난다지만 2, 3년 정도 오차는 흔한 일이었다.
또한 한번 영초를 심은 곳에서 100년이 흘러야지만 이파리가 피어났고 그렇지 않으면 기이한 향기를 분출하지 못했다.
이런 연유로 예상초는 여러 선사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져 갔다. 그런데 한립은 이 이야기를 알자마자 머리가 번뜩이며 신비한 병이 떠올랐다. 신비한 병과 이 영초를 함께 쓴다면 엄청난 효과를 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한 것이다.
그는 당장 시장으로 가 예상초를 잔뜩 구해왔고 자신의 동굴로 가 녹색 액체를 떨어뜨리고 적게는 하루, 길게는 4, 5일 마다 예상초 이파리가 펴졌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발산되는 이상한 향기는 한립도 일평생 맡아보지 못한 지독하고 좋지 않은 기이한 것이었다.
한립은 여전히 향기의 효과에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혈옥지주 두 마리를 풀어놓았다. 그 결과 거미들이 달려들더니 예상초를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이후 기이한 향이 사라지니 거미들도 바로 정상으로 돌아왔다.
놀란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미들에게 이상이 없나 지켜보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어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그는 드디어 외성해로 나가 충분히 사냥을 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생겼다.
다시 한 번 필요한 것을 챙긴 한립은 대량의 예상초 묘목과 신비한 병을 챙겨 특별히 산호섬이 많은 응취도 해역을 골라 전송진을 이용한 것이다. 어쨌든 산호초가 많아야 예상초를 이용한 방법이 통할 터였다.
이제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예상초를 성장시켜 요수들을 불러 모을 일만 남았다. 한립은 섬 중앙에 예상초 묘목을 꺼내 놓았다.
오래된 것일수록 더 넓은 범위의 요수를 끌어들였으니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100년 된 예상초의 개화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다.
신비한 병을 꺼낸 한립은 영초에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이후 한립이 그 옆에 앉아 눈을 감고 운기행공을 시작하니 곡혼 역시 그를 따라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다.
3일이 지나고 드디어 예상초 이파리 하나가 피어나며 기이한 향기를 머금었다.
한립은 당장 두 눈을 뜨고는 수결을 맺어 준비해 놓은 진법 중 대다수를 발동해 그와 섬을 완전히 감쌌다.
한립은 며칠 내로 요수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시 녹색 액체를 떨어뜨려 예상초의 작용범위를 넓힐 계획이었기에 전혀 초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겨우 반 시진 만에 강력한 영기의 파동 두 개가 산호섬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기운이 다가오는 동쪽과 서쪽을 뚫어져라 살핀 한립은 조금 긴장이 됐다.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요수 두 마리를 상대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웅. 돌연 전방의 청자색 진법 깃발의 빛이 커지며 미미한 진동을 일으켰다. 그는 여전히 숙연한 표정으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오급 요수가 지능이 있긴 하지만 전도오행진에 갇혀서 단번에 진법을 돌파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급 요수의 수행 자체는 결단 초기 선사와 비슷하다는 것이 정설이었으나 정말 동급 선사와 붙으면 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지능은 인간에 비해 낮았고 사용할 수 있는 태생적인 술법 역시 소수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진법처럼 복잡한 것을 그들이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다.
이렇기에 한립은 안심하고 나머지 한 마리가 결계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때 노란 진법 법기의 빛이 분출되었다. 동시에 한립은 바로 수결을 맺어 예상초의 향기를 덮어줄 환영진을 발동했다. 그가 두 마리를 상대하는 동안 다른 요수가 또 달려온다면 문제가 커진다.
요수를 사냥할 준비를 마친 그는 허공에 손을 뻗어 빛을 발산하는 진법 법기들을 손에 쥐고는 소리쳤다.
“가라!”
뒤에 서 있던 곡혼이 입을 벌리더니 그 안에서 노란 빛이 뿜어져 나왔고 빛이 순식간에 커지며 한립을 포함해 빛줄기가 되어 날아올랐다.
푸르릉
잠시 후 한립은 서쪽의 환형천라진 상공에 도착했고 노란 결계의 보호막 안에서 황소가 낼 법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확인했다.
한립은 신풍주를 꺼내 곡혼과 따로 비행을 시작했다.
품에서 노란 진법 깃발을 꺼냈고 가볍게 손목을 돌리자 노란 빛의 깃발이 결계로 날아갔다. 드디어 그 안에 갇힌 요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길이는 이, 삼장쯤이고 몸 전체가 타오르는 듯한 붉은 빛이었는데 녹색 빛의 눈알들이 수십 개나 박혀 있었다.
요수는 연달아 맨 몸으로 결계를 들이박으며 성난 황소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천목요(千目妖)!”
수많은 어류의 눈알을 보자마자 한립은 바로 요수의 이름을 떠올리곤 기분이 좋아졌다.
난성해에서 자주 출몰하는 오급 요수 중 하나로 어찌 상대할 지 생각을 정리해 놓은 어종이었다.
아무리 진법을 설치해 놓았다 해도 요수들을 오래 가둬 놓을 수는 없었기에 한립은 바로 곡혼에게 명을 내렸다.
그러자 곡혼의 몸을 두르고 있던 노란 빛이 바로 진한 핏빛으로 변했다. 그가 두 손을 합장했다 펼치자 손에 초승달 형태의 칼날이 쥐어져 있었고 노란 빛을 머금은 법보가 천목요를 처리하려 날아갔다.
바로 곡혼이 그럭저럭 길들이는데 성공한 법보, 혼원발이었다.
천목요는 비록 결계에 갇혀 있으면서도 법보의 위험한 파동을 읽었는지 모든 눈이 혼원발이 날아오는 방향을 주시했다. 요수의 눈에서 수십 줄기의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와 하나로 뭉치더니 곡혼의 노란 칼날이 뿜는 빛을 맞섰다.
그 광경에 한립은 놀라기 보단 기뻐했다.
한립의 손이 서둘러 저물대를 스치니 그 안에서 여러 빛들이 분출되어 순식간에 결계 사방에 꼭두각시 요수들을 풀어놓았다.
꼭두각시 요수들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입을 벌리고는 각양각색의 빛을 입안에 머금고 대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립이 손바닥을 뒤집자 홍선둔광침(紅綫遁光針) 한 벌이 드러났다.
동시에 백 개가 넘는 꼭두각시 요수의 빛기둥이 뿜어져 나와 흉흉한 기세로 천목요를 덮쳤다.
푸학
요수도 위기를 감지했는지 돌연 괴상한 소리를 내며 둥그렇게 몸을 말았고 눈알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도 녹색 광선이 되어 몸 전체를 감쌌다.
쿠콰콰쾅
모든 빛기둥이 녹색 보호막을 강타하니 버틸 리가 없었다. 바로 보호막의 불빛이 한층 어두워지며 당장이라도 붕괴될 조짐을 보였다.
거기에 더 이상 곡혼의 혼원발을 막아서는 것이 없어지자 초승달 형태였던 칼날이 엄청난 크기의 원반 형태로 변해 빛기둥과 더불어 요수를 향해 공격했다.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며 천목요의 녹색 방어막이 부서져 나갔다. 이 순간만을 기다린 한립이 생각할 것도 없이 손을 뻗으니 열세 개의 붉은 침들이 날아가 요수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놓았다.
결계 속에서 한립이 계란만 한 녹색 구체를 손에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의 발밑에는 상처투성이인 천목요의 시체가 피를 뿜으며 누워있었다.
“가자!”
지체하지 않고 천목요의 시체까지 저물대 안으로 넣은 한립은 곡혼과 다른 쪽에 설치해둔 결계를 향해 날아올랐다.
이렇게 한립은 이 산호섬에서만 1개월 넘게 머물렀다. 예상초에 한 방울 한 방울 신비한 병의 녹색 액체를 떨어뜨릴 때마다 영초가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넓어졌다.
이런 식으로 매 2, 3일마다 요수들을 불러 모으고 곡혼과 사냥하는 방식으로 벌써 열 댓 마리의 오급 요수를 처리했으니 한립은 뛸 듯이 기뻤다.
다만 예상초가 400년이 되었을 때 놀랍게도 육급 요수 계관교(鷄冠蛟)를 끌어들였기에 한립은 서둘러 환영진을 펼쳐 영초의 기이한 향을 숨겼고 근처까지 왔던 요수가 씩씩대며 돌아갔다.
크게 놀란 한립은 예상초를 300년 까지만 키워야 적정한 요수를 불러들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다른 예상초 묘목을 꺼내 성장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작은 산호섬 주변의 오급 요수는 대부분 그의 손에 죽은 것이 분명했다. 6일이 지나도 요수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립은 서둘러 진법 법기를 모두 수거해 외성해의 다른 곳을 향해 날아갔다.
이런 위험한 생활이 5년이나 계속되었다. 그가 가지각색의 오급 요수를 죽이다 보니 심지어 수도계에 한 번도 알려지지 않은 희귀종을 만나 악전고투를 벌이는 경우도 생겼다.
아마 곡혼과 꼭두각시가 아니었다면 벌써 망망대해에 몸을 묻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랜 시간 꼭두각시 요수들도 거의 망가져 겨우 30개 정도가 남았고 진법 법기들도 요수들의 격렬한 반항에 멀쩡하지 못했다.
대단한 전도오행진 마저 반년 전 우연히 끌어들인 칠급 요수를 가둬놓고 달아나는 바람에 잃은 지 오래였다.
그러나 손해가 극심한 만큼 수확도 엄청났다! 수백 개의 진귀한 요단과 희귀한 요수에게서 얻은 무수히 많은 재료들이 한립의 저물대를 꽉 채우고 있었다.
심지어 가치가 조금 떨어지는 것들은 공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버리고 온 경우도 많았다.
또한 요수들을 척살하며 한립의 실전 기술도 크게 늘어 요수 사냥에 최적화되었다. 이제 한립 홀로 보통의 오급 요수를 처리하는 일도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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