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21
21화. 칠귀서혼(七鬼噬魂)
둘은 서로를 제압할 나름의 패를 쥐고 있었다. 한립이 먼저 입을 떼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패에 자신이 있었다. 이번에는 문 대인을 물러나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어르신, 당신의 목숨은 이미 내 손 안에 달렸습니다.”
“내 목숨이 네 손에 달렸다?”
“상처 부위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습니까?”
“헛소리! 내 분명히 단검을 살펴보았으나 그 어떤 이상한…….”
문 대인이 말끝을 흐렸다. 분명 그는 한립의 단검을 미리 점검했다. 하지만 그를 상처 입힌 무기는 그것이 아니라 송곳 모양의 무기였다.
“안색을 보니 제가 더 설명해드리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한립이 웃음을 띠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것이 어쨌다는 게야. 잊지 말거라. 내가 바로 네게 약제 만드는 법을 가르친 사람이다. 어떤 독이든 해독제를 만들 수 있다.”
문 대인은 침착했다.
“하하! 아, 말씀 드리는 것을 잊었군요. 제가 무기에 발라 놓은 것은 전향사입니다!”
“전향사(纏香絲)?”
문 대인의 놀라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의 예상을 크게 벗어난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문 어른신도 이것이 어떤 것인지는 아실테지요?”
여유로운 한립의 말투에는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헛소리, 네가 어찌 이런 독약의 제조법을 안 단 말이냐? 알려준 일이 없거늘!”
문 대인은 아직도 한립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강경한 태도였다. 그러나 상처 부위에서 느껴지는 통증으로 인해 그의 말이 십중팔구 맞을 것임을 직감했다.
한립은 아직도 문 대인이 굴복하지 않자 한숨을 내쉬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어르신, 잊으셨습니까? 애초에 누가 저에게 서책을 마음대로 열람해도 된다고 허락 했었는지 말입니다. 이 전향사를 제조하는 약방이 실린 서책도 책장의 구석에서 찾아냈지요. 정말 자세히 살피지 않았으면 모르고 지나칠 뻔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야 문 대인은 겨우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처음 전향사의 제조법을 알아냈을 때, 필요한 약재가 너무 많은데다 제조 방법 또한 복잡해서 상세히 기록을 해둔 일이 있었다.
그리고는 약재에 관한 서책에 끼워 놓고 잊은 것이었다. 그간 많은 일이 생겨 신경 쓸 새가 없었다. 그런데 한립이 그것을 발견해 이런 말썽이 생긴 것이다.
“그럼 이제 우리 앉아서 이야기를 좀 나눠 볼까요?”
한립이 자신 있게 외쳤다. 허나 문 대인은 콧방귀를 뀌며 한립을 상대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전향사의 제조법과 약효에 대해 떠올리고 있었다.
‘전향사란 이름은 듣기에는 별 게 아니지만, 그 약효는 뼈에 사무칠 정도로 치명적이지.’
전향사는 보통 사람에게는 그다지 해롭지 않지만, 무인에게는 치명적인 독으로 일단 독에 중독되면, 온몸으로 빠르게 퍼져 손을 쓰기가 매우 까다롭다. 무인이 독이 퍼진 채 내가진기(內家眞)氣를 운용하면 독성이 몸 속 깊숙이 파고들어 혈액이 역류하는 고통을 견뎌내야 하고, 전신의 골격이 수축되면서 변이하는데, 나중에는 진흙처럼 뭉쳐져 땅에 엎드려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더욱 무서운 것은 독성이 골수에 닿으면, 그 이후에는 제거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단지 독성이 가진 발작을 막을 수 있을 뿐이다.
해독제 또한 구하기가 어려워 같은 재료라 해도 미묘한 차이가 있어, 오직 전향사를 만든 사람만이 해독제를 만들 수 있다. 결국 전향사에 중독된 사람은 그 독을 제조한 사람의 손아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 대인은 한립이 이렇게 방자하게 구는 이유를 깨닫고는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이것이 네가 준비한 최후의 수단이로구나.”
문 대인의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더 이상은 없는 모양이지? 그럼 이번에는 내 손에 잡힐 일만 남았구나.”
문 대인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한립을 향해 말했다. 그는 온몸에 독이 퍼졌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한립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대신 문 대인은 기분이 좋아졌고, 눈에는 간사한 기쁨이 흘러 넘쳤다.
“철노, 저 녀석을 잡아와라!”
한립은 지금까지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의 존재를 기억해내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문 대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방구석에서부터 검은 그림자가 맹렬한 바람을 일으키며 다가왔다.
쏴아아악
눈앞에 다가온 그는 너무 크고 힘이 세서 마치 괴물 같았다. 한립이 검은 그림자의 하복부에 수중의 암기를 찔러 넣으려고 했지만 한발 늦고 말았다. 그가 내지른 손목은 목에 부딪힌 채 꺾여 버렸고, 몸도 그 충격으로 몇 보나 뒤로 밀려났다.
“크윽”
게다가 복부를 노린 암기는 바위에 부딪힌 듯 튕겨나가 종적을 감춰버렸다. 조금 전의 충격으로 몸을 가다듬기도 전에 눈앞이 새까매졌다. 거대한 그림자가 다가와 자신의 견갑골(어깨뼈)을 붙잡은 것이다. 그 힘은 어마어마해 마치 한립을 으깨버릴 것만 같았다. 필사적으로 반항했지만, 마치 거대한 산 밑에 깔린 것처럼 꼼짝 할 수 없었다.
한립은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다. 간신히 무릎을 들어 거한의 다리 사이에 있는 급소를 걷어찼다.
“으악!”
비명 소리는 거구의 사내가 아닌 한립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 괴물은 급소마저도 단단하기가 이를 데 없었고, 순간 한립은 자신의 무릎뼈가 부러진 것 같은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한립의 일격은 그에게 조금도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했는지 어깨에서 느껴지는 괴력이 배가 되고 말았다. 한립은 거의 기절할 지경이 되어 축 늘어졌다.
“철노야, 살살하거라. 이놈은 아직 쓸 데가 있으니.”
그의 말이 귓가에 들리자마자 한립은 어깨가 조금 가벼워졌고 통증도 줄어들었다. 처음으로 문 대인의 목소리가 반가웠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고, 이전부터 그를 괴롭히던 의혹이 더욱 커져만 갔다.
처음부터 문 대인은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공격을 거두고는 한립을 다치게 할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아마 한립이 모르는 숨겨진 사정이 있을 터였다.
그 덕분에 한립의 미력한 실력으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이제는 정말 그의 마수에서 도망갈 다른 방법이 남아있지 않았다.
문 대인의 얼굴에는 마치 한립의 생각을 읽었다는 듯 비웃는 표정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는 한립의 명치 부근에 있는 호심경(護心鏡)을 찾아내고는 침묵했다.
‘바로 이것이 점혈(點穴)을 막은 게로구나.’
그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장방형의 황색 함을 꺼내 들었는데, 윗면에 용과 봉황이 그려져 있었다.
함을 열자 그곳에는 은으로 된 칼이 들어 있었는데, 이 칼들의 형태가 이상했다.
칼날이 굽어져 마치 초승달 같기도 하고, 길이가 짧아서 또 비수 같기도 했다. 또 손잡이에는 눈을 감은 귀신의 머리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흉악하기 그지없었다.
칼은 매우 얇아서 마치 종잇장처럼 보였는데, 서늘한 빛이 감도는 것이 굉장히 날카로웠다. 저런 칼이라면 오장육부를 해체하는 일도 한순간일 듯 했다. 상자에서 칼을 꺼내든 문 대인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한립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 한립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설마 저 칼로 나를……? ’
문 대인은 한립에게 칼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높이 들어 올렸다.
태양 빛에 반사된 칼날이 더욱 날카롭게 빛났다. 칼날은 멈추지 않고 곧장 그의 목으로 다가왔다. 칼날의 한기가 느껴지자 한립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날 산 채로 잡으려고 이렇게나 공을 들였는데 이제 와서 죽일리 없어.’
문 대인은 분명 자신이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뿐이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비록 겉으로는 태평한 듯 보였으나 속으로는 두려워 벌벌 떨고 있었다.
‘문 대인이 정말 저 칼을 쓰려는 것일까? 살려달라고 빌어볼까? 이렇게 어린 나이에 죽다니. 부모님께서 아시면 힘들어하시겠지? 날 칠현문으로 보낸 것을 후회하…….’
생사를 앞에 두고 그의 머리에는 온갖 감정이 밀려들었다. 지금까지 겪었던 고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푸욱-
드디어 칼날이 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전혀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응? 아무렇지도 않은걸.’
한립이 두 눈을 뜨자 앞에서 펼쳐진 광경에 온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놀랍게도 칼은 문 대인의 어깨에 가서 박혀있었다. 어찌나 깊이 박혔는지 칼자루만 남아 흔들리고 있었는데, 찔린 상처에서는 한 방울의 피도 흐르지 않았다.
어안이 벙벙한 한립과 다르게 칼에 찔린 문 대인은 도리어 아주 침착했다.
“허허, 녀석 정말 담도 크구나. 칼끝이 목에 닿아도 살려 달라 빌지 않다니!”
“내가 강호를 종횡무진 할 때, 무수히 많은 영웅들이 목숨을 잃어도 두렵지 않다고 소리치고 다녔었다. 허나 이 몸과 싸우면 내가 약간의 위협만 해도, 바로 바닥을 구르며 살려 달라 애원했었지. 정말 비겁한 놈들이었다.”
한립은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죽자 살자 달려들다가 순식간에 안면을 몰수하고 애걸한다는 것이 자존심 강한 한립에게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립의 마음은 복잡했다. 그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야 하는 것인가, 비참해야 하는 것인가?
그는 빠른 손길로 나머지 칼들을 자신의 몸에 꽂아 넣고 있었다. 하나하나 깊숙이 살에 박혀 칼자루 끝만 남겨졌다.
총 일곱 개의 예리한 칼이 문 대인의 양 어깨, 두 다리, 복부, 앞가슴 등에 꽂혔다. 멀리서 보면 누가 보아도 칼에 찔려 죽은 시체처럼 보였다.
‘스스로를 해치면서까지 대체 무엇을 하려는 거지? ’
모든 칼을 찔러 넣자 문 대인은 아무 말도 없이 몸을 숙였다. 그러고는 한립을 마주보고 가부좌를 한 채 정신을 집중해 운공에 들어갔다.
한립은 이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움직이려고 하자 어깨에서 무서운 힘이 느껴졌고, 이전보다 더 움직이기 어려워졌다.
도망치려던 한립은 바로 옆에 있던 거한에게 제지당해 꼼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철노라고 불리는 이 괴물의 온몸은 문 대인의 마은수(魔銀手)처럼 도검불침(刀劍不侵)이었다.
한립은 이제 이들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한립이 그에게 감탄을 하고 있을 때, 눈앞의 문 대인의 몸에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의 근육이 꿈틀대기 시작하더니 변하기 시작했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또 몸에 꽂혀있는 일곱 개의 칼은 음산한 분위기가 풍겼다. 엄청난 음기가 방 안을 메우기 시작했고 문 대인은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 듯 했다.
그의 몸은 끊임없이 발작을 일으켰고, 입에서는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낮게 울리기 시작했다.
이 소리는 마치 야수의 괴성과 같아서, 사람이라기 보다는 막 수풀에서 뛰쳐나온 맹수 같았다.
더욱 무서운 것은 문대인의 얼굴에 귀무(鬼霧)가 드리웠다는 점이었다. 그가 일전에 보여주었던 기운과는 달리 짙고 어두웠으며, 아예 검은 까마귀가 앉은 것 마냥, 문 대인의 얼굴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그 귀무 밖으로 촉수 같은 것이 뻗어 나와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어두운 빛을 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문 대인의 얼굴 위를 넘나들며 기괴한 춤을 추었다.
이에 문 대인은 양쪽 손가락을 기이한 형태로 꼬아 마치 꽃모양처럼 만들어 무엇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염불을 외는 듯했는데 그 소리는 너무 작아 뭐라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허나 이 귀무만은 그의 말을 알아듣고 요동치기 시작했다. 끓는 기름에 물을 부은 것처럼 거세게 움직이자, 곧이어 더 많은 촉수들이 솟구쳐 난동을 부렸다. 마치 문 대인의 다음 행보를 막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검은 안개가 사방을 다 삼켜버릴 것처럼 짙어진 후에야 문 대인은 두 눈을 떴다. 그 두꺼운 귀무 속에서도 한립은 그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기이한 광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칠귀서혼(七鬼噬魂)!”
문 대인이 자신이 실행하고 있는 비술의 이름을 밝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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