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ek Cheo-yong, the shaman Park Soo-yeon RAW novel - Chapter 153
153
박수무당 백처용 153화
자기들끼리 물고 뜯던 요귀들의 움직임이 다시 멈췄다.
그리고 녀석들은 신돈의 명령대로 산 정상을 향해 다시 진격하기 시작했다.
“멈춰! 모두 멈춰라!”
비형랑이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태였다.
‘…신돈.’
비형랑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귀태의 힘으로 자신을 능가했다는 사실에 놀란 눈치였다.
비형랑의 시선은 남산 너머, 동쪽으로 향했다.
음산하고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쪽. 보이지 않지만, 저곳에 신돈이 있을 것이었다.
‘일단 청룡부터.’
비형랑은 청룡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 구름을 움직였다.
그때 누군가 빠르게 날아와 비형랑의 앞을 막았다.
“…….”
“그때 끝을 못 냈지?”
비형랑의 앞에 서서 싸늘한 표정으로 말하는 여자.
정솔이었다.
이어 비형랑의 뒤로 또 다른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왔다.
백처용이 천천히 돌아봤다. 보인 것은 웬만한 매 정도로 큰 까마귀였다.
“오랜만에 다 모였군.”
비형랑이 그 까마귀와 정솔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뭔가 글썽거리는 눈빛에 희미한 미소를 띤 얼굴로.
* * *
지상의 백처용과 윤철 역시 지금 상황에 적잖이 당황했었다.
갑자기 자기들끼리 싸우더니, 이제는 아까보다 더욱 맹렬한 기세로 달려드는 요귀들.
이미 도깨비들의 방어선은 무너진 지 오래였다.
신돈의 명령을 듣는 도깨비와 요귀들. 그들에 맞서는 길달 쪽 도깨비들과 충왕의 군대, 이시미의 뱀들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난전을 펼치고 있었다.
“윤철! 뒤로 일단 물러나는 게 낫지 않겠냐!”
백처용이 사진검을 휘두르며 뒤로 소리쳤다. 뒤에서 역시 고군분투 중이던 윤철이 짜증스럽게 입을 열었다.
“뒤로 물러날 수 있으면 나도 물러나고 싶다!”
그 말대로 백처용과 윤철의 주위는 온통 신돈의 요귀들로 가득했다.
“크엑!”
촤악!
말하는 동안에도 백처용에게 새까만 개 요귀가 달려들었다. 백처용이 사진검으로 녀석을 베기 무섭게 등 뒤에서 갓을 쓴 새하얀 남자가.
그를 베자 하늘에서 매의 모습을 한 요귀가.
주변에 있던 온갖 벌레, 뱀, 짐승의 형상을 한 요귀들이 백처용에게 달려들었다.
백처용이 사진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네다섯의 요귀들이 연기로 변했다.
“하아, 끝이 없네.”
백처용이 중얼거릴 때. 갑자기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방해하는 것들을 상대할 필요 없다. 정상으로 전진하라!”
이번에도 역시 바람과 함께 들려온 것은 신돈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끝나자, 백처용을 포위하고 있던 요귀들은 무작정 정상으로 뛰기 시작했다.
백처용과 윤철을 모두 무시한 채. 녀석들은 오로지 남산 정상을 향해 전진했다.
충왕의 벌레 군대와 길달의 도깨비들이 녀석들을 막아보려 막아섰다. 그러나 녀석들은 옆에서 같은 편이 소멸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정상을 향해 움직였다.
“막아야 해!”
백처용이 소리치며 사진검을 크게 휘둘렀다.
원형 검기가 요귀들의 한가운데 떨어졌고, 단번에 열 마리도 넘는 요귀들이 소멸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것들을 막기는 힘들었다.
현재 백처용이 있는 곳은 적진의 허리 부근. 일단 그것들을 막기 위해서는 녀석들의 최선봉으로 가야 했다.
“윤철. 뚫고 우리가 먼저 정상으로 가자!”
“오케이.”
백처용의 외침에 윤철이 대답했다.
어차피 요귀들은 이제 백처용과 윤철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충분히 먼저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백처용이 정상으로 뛰어가려는 순간이었다.
쾅!
백처용 앞에 초승달 모양의 강한 기운이 떨어졌다.
충격에 움푹 파인 땅 위로 착지한 것은 새까만 정장 차림의 중년 남자였다.
처진 눈꼬리와 긴 얼굴. 두억시니였다.
백처용을 보고 씩 웃는 두억시니의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드러났다.
“무당. 지난번에는 비형랑 녀석 때문에 승부를 못 냈지?”
두억시니가 커다란 청룡언월도를 허공에 붕 휘두르며 말했다.
백처용은 놀랄 틈도 없이 얼른 자세를 취했다.
“이번에는 결판을 내보자고.”
두억시니가 말하며 달려오려는 순간.
휘릭! 픽!
화살 두 개가 두억시니의 등에 날아와 꽂혔다.
두억시니는 화살을 맞고도 담담한 표정이었다. 살짝 고개만 돌려 자신에게 화살을 쏜 사람. 윤철을 확인하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날파리가 하나 더 있었군.”
두억시니는 백처용과 윤철을 둘 다 상대할 기세였다.
백처용은 슬쩍 윤철과 두억시니의 눈치를 봤다.
‘지금 여기서 둘 다 묶여 있을 필요는 없어.’
백처용은 생각을 마친 뒤.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갑자기 달려드는 백처용 쪽으로 두억시니가 얼른 청룡언월도를 휘둘렀다.
챙!
백처용은 그것을 사진검으로 막아낸 뒤, 두억시니와 약간 떨어졌다.
“윤철, 너한테 맡긴다!”
백처용은 소리친 뒤, 산 정상으로 뛰기 시작했다.
두억시니가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었다.
“어딜 달아나려고!”
두억시니가 호통과 함께 청룡언월도를 휘둘렀다.
초승달 모양 참격이 백처용을 향해 날아갔다.
휘릭!
그러나 참격은 백처용에게 닿기 전. 하얀 천에 싸여 사라졌다.
두억시니가 바라보는 곳에는 백 염주를 든 윤철이 서 있었다.
“백처용 이 자식. 내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말이야.”
말하는 윤철의 뒤로 백색 긴 천이 살아 있는 것처럼 흐물흐물 움직였다.
그런 윤철을 보고 두억시니가 콧방귀를 뀌었다.
“빨리 처리하고 쫓아가면 금방 붙잡겠지.”
두억시니가 청룡언월도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 * *
윤철을 두억시니와 두고 백처용은 빠르게 정상으로 달려갔다.
가는 길에 길달의 도깨비들, 충왕의 벌레 요귀들이 싸우는 것이 보였지만 백처용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저 정상으로 뛸 뿐이었다.
그렇게 달려 백처용은 산 정상에 도착했다.
“허억,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직 정상에 다다른 요귀들은 없었다. 백처용은 근처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긴장과 함께 다리도 풀려 버렸었다. 백처용은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잠시라고 해봤자 2초도 안 되는 시간. 백처용은 얼른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손에는 검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도깨비나 요물들을 베면서 튄 것이었다.
백처용은 그것을 자신의 와이셔츠에 대충 닦았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와이셔츠도 흙먼지와 피로 엉망인 것을 발견했다.
“하….”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 자리에 눕고 싶었고, 쉬고 싶었다. 그러나 산 아래에서 들려오는 요귀들의 소리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백처용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진검의 칼자루를 바지에 쓱 문질러 닦은 뒤. 다시 꽉 움켜쥐었다.
“어르신! 길달 어르신!”
백처용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소리쳤다.
지금 상황을 알기 위해, 그리고 도움을 얻기 위해. 길달을 불렀으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크악!”
대신 들려온 것은 섬뜩한 요귀의 소리였다.
백처용이 소리 난 쪽을 바라봤다.
풍뎅이를 닮은 요귀 하나가 보였다. 드디어 하나둘, 정상에 도착하는 모양이었다.
촤악!
백처용이 얼른 다가가 사진검으로 녀석을 베었다. 검은 피가 튀어 오르고, 녀석은 연기가 됐다.
그러나 백처용에게 숨 돌릴 틈 따위는 없었다.
녀석 뒤로 수많은 요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촤악!
펑!
백처용은 정상으로 다가오는 녀석들을 베고, 검기까지 발산하며 저지했다.
그러나 녀석들의 수는 점점 많아졌고, 백처용은 무시한 채 정상으로 올라갔다.
남산 팔각정, 타워 근처까지. 순식간에 요귀들로 득실거리게 됐다.
‘조금만 더. 조금만…!’
백처용은 이를 악문 채 녀석들을 베었다.
연이은 폭발. 비명과 선혈이 주변을 메웠다.
백처용이 잠시 그 자리에 멈춰섰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백처용은 주위를 둘러봤다.
이미 주변을 가득 메운 요귀들. 산 아래에서는 여전히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남은 녀석들을 막기 위해 아래에서는 피나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었다.
‘후….’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백처용이 사진검을 쥐었을 때였다.
휘이잉!
갑자기 돌풍이 주변에 일기 시작했다.
주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게 느껴졌다.
이 수많은 요귀 가운데서도 백처용은 한기를 느끼지 않았었다.
이미 백처용은 세천산의 극한 음기를 받아들였고, 손에 있는 사진검은 양기를 쉬지 않고 발산 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백처용은 몸이 덜덜 떨릴 정도의 한기를 느끼고 있었다.
‘이 정도의 음기라면….’
잠시 생각하던 백처용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팔각정 바로 위. 그곳에 있는 것은 백포건 위에 유유히 앉아 있는 여우 가면, 신돈이었다.
백처용은 신돈을 보자마자 생각할 틈도 없이 움직였다.
촤악! 콰광!
사진검을 휘두르자 우레 같은 소리와 함께 원형의 검기가 날아갔다.
신돈은 여유롭게 손에서 새까만 대도를 만들어냈다.
관악산에서 봤던 흑오도였다.
날아오는 검기를 향해 신돈이 흑오도를 크게 휘둘렀다.
쿠궁!
커다란 소리와 함께 백처용의 누런 검기가 멈칫했다.
잠시 교착상태 끝에 백처용의 검기가 반으로 갈라진 후. 사방으로 흩어졌다.
여우 가면으로 가리고 있었기에 신돈의 표정은 살필 수 없었다. 그러나 신돈이 타고 있는 백포건의 표정은 훤히 드러나 있었다.
“크으….”
얼굴 털이 그을린 것은 물론, 입가에 붉은 피가 한 줄기 흐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사진검과 흑오도의 기운이 부딪쳤을 때. 어느 정도 충격이 갔는지 알 수 있었다.
신돈이 그런 백포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난번과 비교도 안 되게 강해졌구나.”
신돈의 말에 백처용은 대답하지 않고 얼른 다시 칼을 휘두르려 했다.
그때 백포건이 더욱 높이 날아올랐다.
“저 녀석을 굳이 상대할 필요 없다.”
신돈은 말을 마친 뒤 남산 상공에 뜬 거대한 저승문을 올려봤다.
“가자. 저승으로.”
신돈이 자신의 아래, 가득 메운 요귀들을 보며 말했다.
* * *
펑!
“큭!”
비형랑을 향해 대포알 같은 음기들이 날아왔다.
그것을 쏘고 있는 것은 정솔의 여우 구슬이었다. 정솔은 그 여우 구슬 뒤에서 싸늘한 표정으로 비형랑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결계로는 계속 막기 힘들겠군.’
비형랑이 양팔을 앞으로 쭉 내민 채 생각했다.
결계에 능하지 않은 비형랑으로서는 여우 구슬의 힘을 계속 막기 버거웠다.
비형랑은 결계를 유지한 채, 걸친 도포 안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 안에서 꺼낸 것은 아까 백룡들을 묶을 때 쓴 것과 같은 나뭇가지였다.
대단한 것이 아닌, 그냥 아까 밑에서 주워 가지고 온 나뭇가지. 그러나 그것은 비형랑의 손에 들어온 것만으로 만만치 않은 무기가 됐다.
휘릭.
나뭇가지는 아까처럼 사방으로 줄기를 뻗었다.
그 줄기들이 향한 곳은 정솔이었다.
“어딜!”
정솔은 얼른 여우 구슬을 움켜쥐었고 다가오는 나무줄기들을 손으로 툭툭 쳤다.
화륵!
정솔의 손이 닿을 때마다 나무줄기는 불길에 휩싸였다.
“지난번과 달라. 이번에는 진짜 죽일 거다.”
정솔이 싸늘한 눈빛으로 비형랑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정솔 옆으로 아까의 거대한 까마귀가 날아왔다.
“하나. 일단 비형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길달….”
까마귀 입에서 나온 것은 길달의 목소리였다.
길달의 장기 중 하나였던 둔갑술이었다.
정솔은 길달의 목소리를 듣자 잠깐 눈빛이 누그러졌다.
질끈.
그러나 이내 정솔은 입술을 깨물었고, 다시 눈빛이 매서워졌다.
“길달. 너에게는 원한이 없다. 물러서.”
정솔이 말하며 손을 휙 저었다.
그러자 알 수 없는 향기가 주위에 퍼졌다. 길달은 그 냄새를 맡자 공중에서 휘청거렸다.
‘미혼술이군.’
본래 정솔의 장기는 미혼술이었다. 만약 제대로 힘을 썼다면 길달은 곧장 땅으로 추락했을 것이다.
그나마 힘을 조절한 덕에 길달은 정신만 몽롱할 뿐. 계속 날갯짓할 수 있었다.
정솔이 이번에는 비형랑 쪽으로 팔을 휘둘렀다.
그녀의 날카로운 손톱에서 가늘게 뻗어 나온 참격. 그것은 비형랑을 향해 날아갔다.
비형랑은 구름을 움직여 겨우 그것을 피했다.
‘어떻게든 반격해서 싸움을 복잡하게 만들어야 한다. 일단 잠깐이라도 묶어놓으면….’
비형랑이 그렇게 생각하며 나뭇가지를 쥐는 순간.
휘이잉!
강한 바람이 비형랑의 얼굴을 덮쳤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비형랑은 정솔과 대치한 와중에도 참지 못하고 뒤로 돌아봤다.
“……!”
바람이 향하는 곳은 저승문. 그곳을 보는 순간, 비형랑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작됐군.”
정솔 역시 그쪽을 보며 중얼거렸다.
두 사람의 시선 끝. 남산 정상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은 음기였다.
그것은 바람을 받아 소용돌이 모양으로 변했었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 음기를 타고, 요귀들이 하늘의 저승문으로 올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