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21
〈 221화 〉 재앙이 할퀴고 간 흔적(8)
* * *
고대의 왕국 아르카디아.
카르디의 고국.
여행을 시작할 때 카르디는 내게 말했었다. 자신의 고국으로 향하는 목적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나는 여정의 마지막에 와서, 그 세 가지를 떠올려본다.
「성배의 탐색.」
「네 부하, 칼트라는 그 사냥개의 눈동자를 치료할 방법이 있을 거다.」
하나, 성배의 탐색.
아무것도 잃지 않고 초인이 될 수 있게끔 하는, 고대의 왕국에서 만들어진 보물. 그것을 회수해 오는 게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목적이었다.
‘칼트를 초인으로 만든다.’
녀석이 인간을 넘어선 초인이 된다면, 잃은 눈동자를 치유할 수 있는 수단도 많아질 것이다. 사라를 끌고 오지 않더라도 나와 흑탑주 선에서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그렇게, 나는 성배(??)를 손에 넣었다.
첫 번째 목적을 달성한 나는 다음으로 향한다. 재앙들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을 넘어··· 고대 왕국의 중심으로 걷고 또 걸었다.
「두 번째 진실.」
「마왕의 기원과 그늘의 이해.」
「그것이 내가 이곳에서 파악해야 할 정보다.」
둘, 두 번째 진실에 닿을 것.
카르디가 일찍이 별과 맺은 세 개의 계약과, 세개의 지워진 역사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것. 나는 고대 왕국 아르카디아의 심처에서 그것을 깨달았다.
마왕의 기원.
저주의 이해.
최초의 광인의 존재.
지옥을 보았고, 지옥에 담긴 의미를 이해했다. 이해함으로써 나는 진실에 닿았다. 나는 더는 그늘을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로 여기지 않게 됐다.
그것은 인간의 비명이자 원한이다.
그 정체를 알게 된 지금, 나는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내가 새겼던 회로를 떠올려본다. 내가 만들어낸 저주의 마나(Cursed Mana)를 되새겨본다.
‘대상을 이해하지 않고, 단순히 망가트리고자 만들어냈던 회로와 마나.’
그것에 이해가 깃든다.
다음으로 나아갈 실마리를 붙드는 데 성공했다. 조금의 시간을 필요로 할 테지 만, 나아가야 할 방향이 보다 명확해졌음은 분명했다.
「3년이다, 잿빛 마법사.」
「그것에 네게 주어진 시간이고, 내가 다음으로 나아가기까지 필요한 시간이다.」
방향이 명확해졌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나는 알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내 목표를 되새긴다.
‘불이 꺼진 시대를 밝힐 차기 용사를 육성한다.’
그것이 내가 아플리아에서 세운 목표다.
카일로 불가능하다면, 다른 용사들을 육성해 이루지 못한 목표를 이룬다. 수많고 수많은 기사들이 죽어가며 내게 맡긴 책임을 다한다.
그게 내가 걸어야 할 길이었다.
그 길에는 많은 것이 필요했고, 처음 그 길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을 때는 허무맹랑하단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아이들에겐 재능이 있다.’
내가 고른 아이들에겐 재능이 있었고.
‘그 아이들을 위한 별빛이 있다.’
그 가능성을 끌어올릴 성녀의 팔이 있으며.
‘그리고, 성배마저 내 손에 있다.’
잃지 않고 초인으로 만들 수단까지 내게 주어졌다.
‘그러니, 가능성이 있다.’
이제는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됐다.
많은 것이 내 손에 모였으므로.
더는 망상이 아니다. 가능성이 있다.
정말로,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그것은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그 가능성에 기뻐하면서도 나는 마음 한편으로는 걱정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아이들을 위한 모든 게 모였지만.’
그 무엇보다 내게 부족한 게 있었으니까.
‘내게 남은 시간.’
나의 수명.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 언제나 내 발목을 붙잡아 왔다. 그렇기에, 이번 여정의 마지막 목표는 그것을 해결함에 있었다.
아르카디아에 온 세 번째 목적.
「네 수명의 누수를 막을 수단이 있다.」
「아르카디아로 향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지.」
셋, 수명의 누수를 멈출 수단.
목적의 달성을 앞에 두고 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게, 그 해답이야?”
나는 카르디가 들고 있는 물약을 가리켰다.
내 질문에 카르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건 아르카디아에 얽힌 진실을 풀어낸 네게 줄 수 있는 일종의 ‘자료’이지.”
그가 손에 쥔 물약을 흔들었다.
“글레리아가, 벨리알이, 가니칼트가 타락한 뒤로 나는 연구를 계속했다. 정말로 수많은 방향으로 연구를 계속했지.”
카르디가 방에 널브러진 연구자료들을 가리켰다.
“계약의 무효화, 영혼의 정화, 변절자를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는 법, 계약의 일방적 파기, 별이 정한 섭리를 거스르는 법······.”
수많고 수많은 방향성.
답을 찾기 위해 마법사가 고뇌했을 수많은 흔적은, 하나의 목적을 두고 뻗어 나간 나뭇가지와도 같다. 그렇게 뻗어 나간 가지는······.
“그리고, 그중에는 이것도 있었지.”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한 곳에선 결실을 맺었다.
“마모된 영혼을 수복하는 방법.”
“···영혼의 수복?”
“그래, 그늘이 됐든 별이 됐던 간··· 닿을 수 없는 것에 손을 뻗은 이들의 그릇에는 금이 가고 말지. 금이 간 그릇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고.”
카르디가 나를 가리켰다.
“네 그릇 또한 마찬가지다. 너는 별을 담을 그릇이 아님에도, 몇 번이고 별을 담았지. 심지어는 저주에 노출되며 금이 더욱 커지고 말았어.”
“···그랬지.”
“그릇에 난 균열에선 생명이 누수 한다. 네게 남은 시간이 더 빨리 줄어드는 것도 그게 원인 일 거고.”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알고는 있으나, 나로서는 해결할 수 없어서··· 다만 받아들여만 하는 것이었고.
“이건 망가진 그릇을 수복하기 위한 성유액이다.”
성유액.
“글레리아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썼던 성수. 그것을 한데 농축해 만들어낸 것이지. 본래는 글레리아를 되돌리기 위해 쓰려 했지만···.”
카르디가 쓰게 웃었다.
“그녀에겐 효과가 없을 것 같더군. 보는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의 영혼은 마모된 게 아니라, 아예 변질한 것이라고.”
연구의 끝에 겨우 맺은 결실.
그러나 쓰지 못하게 된 그것을, 카르디는 내게 건넸다. 내가 조심스레 그것을 받아들였다.
“이제야 쓰일 데를 찾은 것 같군.”
성유액을 건네며 카르디는 쓰게 웃었는데, 그 웃음이 마냥 씁쓸하지만은 않았다. 자신의 연구 결과가 마냥 헛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기쁜 것일까.
“······.”
나는 잠깐 포션을 바라보다, 손을 뻗어 포션의 마개를 땄다.
퐁.
그리곤 포션을 기울여 입에 머금었다. 은은한 별빛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수백 년이 지났음에도, 포션은 약간의 온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따뜻하네.’
몸을 감싸는 온기와도 같은 것이 느껴졌다.
포션이 몸에 스며드는 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고, 몇 분의 침묵 끝에 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숨 쉬는 게 조금 더 편해진 것 같은데.”
“그런 부가적인 효과는 없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든다고.”
극적인 변화가 몸에 일어나지는 않았다.
단지, 숨을 쉬기가 조금 더 편해지고··· 몸이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 드는 게 고작일까.
“몸 밖으로 드러난 건 그런거고.”
내가 허공에 손가락을 그었다.
눈앞에 천칭이 놓이고, 천칭에 손을 얹은 채 나는 내게 남은 재화를 계산해 보았다.
“영혼에 나타난 변화는 더 많은 것 같네.”
영혼이 수복됐다.
갈라지고 마모된 영혼이 서서히 제 형태를 찾는다.
‘마모의 흔적은 남는다.’
하지만, 균열은 완벽하게 매워졌다.
더이상 균열을 통해 수명이 빠져나가는 일이 없으리라. 솔직히 말해 놀라웠다.
“···기적에 가까운 일이네.”
줄어든 모래가 돌아오진 않지만, 빠른 속도로 줄어들던 모래가 제 속도를 찾았다. 그리하여 내게 남은 시간을 나는 속으로 계산해보았다.
“충분하네.”
목표를 이루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한번의 기회가 더 주어졌다.
그 사실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채, 내가 엷은 웃음을 흘렸다.
“고맙다, 카르디.”
“···글쎄. 감사를 해야 할 건 나 같은데.”
내 말에 카르디는 짧게 숨을 뱉었다.
그는 온갖 자료들이 널브러진 책상에 기대어 선 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결국에는 그 어디에도 쓰이지 못한 연구였다.”
실패한 연구들의 흔적을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답을 찾지 못했고, 실패했고, 별과의 계약으로 묶임으로써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지지도 못했지. 그래서, 이곳에서 내가 보낸 모든 시간은 전부 무의미해지고 말았지.”
무가치한 시간.
그리하여 그가 느꼈을 허무함.
공허한 눈빛으로 방안을 둘러보던 카르디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향했다.
“이제는 아니로군.”
그가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내가 이곳에서 보냈던 기나긴 시간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의미하지 않았단 사실이 나는 기껍다. 정말로.”
딱, 하고 카르디가 손가락을 튕겼다.
사방에널브러진 자료가, 연금술의 흔적이, 실패한 연구들의 파편이 전부 빛줄기로 변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찬란한 백금색의 별빛이 모여들어 만들어낸 것은, 한 권의 책이다.
“내가 연구해왔던 모든 기록이 담겨 있다.”
그 책을 카르디가 내게 내밀었다.
“이 또한, 네게 도움이 되면 좋겠군.”
한 권의 책을 손에 들었다.
오랜 세월 주인을 찾아 헤매던 책의 첫 장에 적힌 글자를 보며, 내가 쓰게 웃었다.
「다음을 위하여.」
다음, 다시 다음으로.
북부의 탑에서 보았던 문장이 떠오르는 문구였다.
“너, 다음이란 소리 되게 좋아하더라.”
“이해해라. 오랜 여행을 하다 보면, 동료에게 말버릇 한둘 정도는 옮는 법이니까.”
“옮아?”
“글레리아와 가니칼트, 벨리알. 그 세 놈이 지겹도록 내 앞에서 말해댔던 문장이다.”
약간은 그립다는 듯한 목소리로, 카르디가 말했다.
“다음으로, 다시 다음으로.”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그리 말하며 카르디가 책상에 기댔던 허리를 땠다.
“그럼 가도록 할까.”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카디아에서 이뤄야 할 목표는 전부 이뤘다.
이제는, 돌아갈 차례였다.
2.
잿더미의 땅을 건너 왕도로 돌아가는 길은 몹시도 평화로웠는데, 딱히 사건이랄 만한 게 없는 까닭이었다.
‘사건이라 해봐야, 뭐···.’
잿더미의 땅 인근에 터를 차린, 불법 노점상들을 좀 밀어버리긴 했는데··· 라니엘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딱히 사건이라 부를만한 일도 아니었다.
「주인이 뻔히 있는 땅에 관문을 차리고, 통행세를 거둬? 여기에 장사판을 벌였다고? 다시 보니 괘씸하군. 어딜 같잖은···.」
고대의 엘프가 분노를 노래하고.
「어? 그럼 밀어버린다?」
라니엘이 몇번 주먹을 휘둘렀을 뿐이다.
제 집을 잃은 몇몇 불법 거주민이 창칼을 앞세워 저항하긴 했지만··· 그조차 오래가진 않았다.
「크아아아아아악!」
주먹을 한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건물을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마법사 앞에서··· 평범한 창칼이란 이쑤시개만도 못한 것이었으므로.
「큰 것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다시는 발을 들이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잿더미의 땅에 자리 잡은 암흑가, 잿빛 황무지.
그곳의 수장이라 불리는 인물이 카르디의 발밑에 머리를 조아리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됐다.
‘싱겁게 끝났지.’
하루는 커녕, 반나절도 안되는 시간.
고작 그만큼의 시간에, 백 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던 암흑가의 역사는 종점을 맞이하고 만다. 몹시도 허무한 결말이었지만, 본래 재앙의 앞에 인류가 쌓아올린 역사는 무가치한 법이다.
고대의 왕국, 아르카디아조차 잿더미로 변하는 데는 반나절이면 충분했으므로.
아플리아의 악몽이 슬럼가에 발을 디뎠으니, 그 멸망 또한 정해진 수순이었으리라.
“흐아암.”
그리고, 악몽은 늘어져라 한숨을 내뱉는다.
왕도로 향하는 마차에 탄 그녀는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덜컹거리며 마차는 앞으로 나아가고, 조금씩 왕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 삼 주 정도 걸렸나.’
정확하진 않지만, 그 정도 걸린 것 같다.
잠깐 아플리아 아카데미를 떠나 있었을 뿐인데,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삼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켈르할름이랑 잘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네.”
라니엘이 문득 그리 중얼거렸다.
안전장치를 하도 많이 걸어놔서, 걱정이 크게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켈르할름은 광인(?人)이란 이명을 지닌 인물이다.
‘사고방식이 남들과는 다른 인물.’
그런 인물의 수업을 듣는 것은 몹시 괴로운 일이리라. 도를 넘은 수업에 고통받고 있을 학생들을 떠올리자니,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빨리 돌아가야겠네.”
학생들도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오랜만에 교편에 서서 수업을 하고, 과제를 만들 생각에 라니엘은 손가락이 근질거려옴을 느꼈다.
그렇게 라니엘이 근질거리는 손가락을 뚝, 뚜뚝 꺾고 있는 가운데, 그런 그녀를 흘겨보는 카르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
“뭐냐?”
마치 악어의 눈물을 보는 초식동물과도 같은 시선.
라니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왜 그렇게 봐? 할 말 있어?”
“···얼마 전에, 클로에가 비명을 지르던데.”
“비명? 왜?”
“과제가 많다더군. 몹시도.”
“에이, 고작 그게?”
라니엘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엄살이 심하네.”
나 만큼 친절한 교수가 어딨다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라니엘이 미소 지었다.
“분명 다들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걸?”
* * *
“···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나?”
“네?”
아플리아의 총학장실.
그곳에 앉은 아론이 휴가에서 일주일 일찍 돌아온 라니아를 흘겨봤는데, 결코 그녀의 귀환을 반기는듯한 눈치는 아니었다.
“한 달 동안 휴가를 내지 않았나. 남은 일주일도 마저 쉬고 오는 게 좋을 것 같다만.”
“···네?”
라니아가 눈을 깜빡였다.
“아니, 학생들도 저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빨리 수업을 들어가야······.”
그렇게 말하다 말고 라니아는 창밖을 바라봤다. 아까부터 창밖에서 하하호호, 하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 까닭이었다.
아하, 이렇게··· 하는 건가요?
그래. 잘하는군.
르티아 교수님, 저도 질문 좀···.
교수님, 제 것도!
총장실 창문에서 보이는 정원.
그곳의 햇볕이 가장 잘 드는 벤치에 앉아있는 젊은 교수가 있다.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인 채 교수는 학생들이 가져온 과제를 봐주고 있다.
역시 르티아 교수님이세요!
르티아 교수님이 계속 수업해주시면 좋을 텐데······.
몹시도 보기 좋은 모습이다.
보기 좋은 모습이지만···.
“어···?”
그것을 보는 라니아의 동공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녀는 삐걱거리는 고개를 돌려 아론 총장을 바라본다. 설명을 요구하는 라니아의 시선에, 아론 총장은 고개를 살짝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게 됐네.”
라니아는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