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22
〈 222화 〉 악몽이 돌아왔다(1)
* * *
무언가 잘못됐다.
나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감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에 부딪혔음을 직감했다. 깍지를 낀 손 위에 턱을 얹은 채 나는 사색에 잠겼다.
‘켈르할름이 생각보다 평판이 좋다.’
아니, 좋은 걸 넘어서 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학장실에서 나오고 나서도 나는 켈르할름을 멀찍이서 관찰했고, 그 결과 한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가만히만 있어도 학생들이 모여든다···!’
켈르할름은 벤치에 앉아있을 뿐인데, 학생들이 그 주변으로 모여든다. 누구는 과제를 물어보는가 하면, 또 어느 학생은 켈르할름과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커피를 사다가 바치기까지 한다.
‘···내가 학생들에게 커피를 받은 적이 있던가?’
있던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케이크까지 사다 주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지.’
나는 학생들이 사다준 케이크를 먹던 켈르할름의 모습을 떠올렸다. 왜인지 모르게 배가 아팠다. 배만 아픈 게 아니라, 입안도 조금 쓴 것 같았다.
“쓰읍···.”
달달한게 땡겨, 시럽을 잔뜩 탄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과할 정도로 시럽을 탄 커피이지만··· 오늘따라 쓰게만 느껴진다.
「르티아 교수님이 계속 수업해주시면 좋겠다.」
「수업도 잘하시고, 질문도 잘 받아주시고.」
「과제도 적당하고! 이게 제일 좋아요.」
「라니아 교수님이 돌아오시면, 다시 떠나시는 거에요? 아······.」
커피를 음미하는 와중에도, 귓가에는 조금 전 들었던 학생들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아쉬워하는 듯한 목소리와, 켈르할름이 떠나질 않기를 바라는듯한 목소리.
‘그러니까.’
내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듯한 말투.
“아니, 대체 왜???”
탁!
커피잔을 내려놓고 내가 미간을 짚었다.
내가··· 켈르할름보다 못하다고? 아니, 물론 수업의 완성도에서야 내가 좀 밀릴 수도 있다. 그 점은 시원하게 인정할 수 있다.
켈르할름이 누구인가.
그 이름 높은 학술도시, 아르티아의 총장역을 맡았던 인물이다. 교육에 있어서 켈르할름을 능가하는 경력을 지닌 인물을 찾기란 어려운 법이었다.
‘내가··· 밀···리지. 그래, 응. 밀려.’
교육으론 못 이긴다.
100년 짬밥의 교육자를, 교편을 잡은 지 고작 일 년 남짓밖에 안된 내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수업의 수준이 많이 차이가 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밀리는 건 밀리는 거니까···.’
거기까진 인정할 수 있었다.
시원하게 인정하고, 패배를 인정할 수 있었다.
“근데, 이건 별개의 문제지.”
인기를 독차지한 켈르할름.
내가 반년 가까이 줄여온 학생들과의 거리를, 고작 한순간 만에 줄여버린 켈르할름.
‘이건 인망의 문제잖아.’
인망(人?).
나는 내 성격이나 됨됨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정말로, 단 한 번도 없었다. 사라와 레미아에 비교하면······.
‘아니, 걔네는 사람이 아니니 비교 대상이 안 되고.’
르뤼엘 왕녀에 비하면···.
아니, 그 사람도 조금 그렇고.
‘칼트?’
「하운드의 정신적 지주.」
「존경할만한, 긍지 높은 기사.」
아니, 걔도 평가되게 좋은데···.
‘스승님은 당연히 나보다 뛰어나고. 흑탑주? 아니, 그 사람도···.’
머릿속으로 선택지가 하나씩 줄어든다.
업적을 제한 인망의 영역에서 비교해보자니, 나보다 잘난 사람들뿐이었다.
“으음···.”
그렇게 고뇌하기를 한참.
커피가 차게 식어갈 무렵, 내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나, 생각보다 평가가 안좋···나?”
그러니까.
“···내 인성에 문제가 있나?”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나는 정상이다. 내 인성에는 문제가 없다. 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 조금 더 지켜본다.’
관찰과 미행, 그리고 조사.
이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2.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교수들의 평가도 조사할 필요가 있다.’
그런 생각을 품은 채 라니아는 학사 곳곳을 돌아다니며 켈르할름의 평판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르티아 교수님? 아, 좋은 분이시죠. 다소 무뚝뚝하긴 하시지만, 수업도 깔끔하고 행동거지도 신사적이고··· 뭣보다 잘생기셨잖아요?」
「그나저나 라니아 교수님, 휴가에서 돌아오셨나 봐요? 조금 천천히 돌아오셔도 됐을 텐데···.」
여교수들 사이에선 평판이 아주 좋다.
하지만, 그것은 외모가 변수로 작용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 편협한 시선으로 자료를 해석하며, 라니아는 계속해서 학사 내를 돌아다닌다.
「르티아 교수 말인가? 좋은 교수지.」
「보고 배울 점이 많아. 특히 그 수업의 깔끔함에 대해선 더 할 말도 없지. 한 번의 수업, 그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일을 끝내니 말야. 듣기에 따르면, 과제도 거의 없는 것 같더군.」
아니, 그래도.
「응? 수업 말고 인망? 인성?」
「아니, 뭐 인성이야 문제가 있을 게 있나. 학생들의 평판이 좋은 것도 그렇고, 무뚝뚝하면서도 다른 교수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걸 보면··· 인망에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이던데?」
······.
「솔직히 말하자면 자네보단···.」
「뭐, 뭔가? 왜 그렇게 보나?」
···교수들 사이의 평판 또한 좋다.
라니아는 이를 악물고 그 사실 또한 인정한다.
「아, 라니아 교수님 돌아오셨네요···?」
「교수님이 빠져서, 수업이 버벅거리거나 하지 않았냐고요? 빈자리? 아뇨, 그런 거 전혀 느낀 적 없었던 것 같은데······.」
학생들의 말에 라니아는 귀 기울인다.
그러나, 누구에게 물어보던 ‘교수님이 그리웠어요!’ 라는 답을 들려주는 학생은 없다. 라니아는 쓰디쓴 침을 삼키며 계속해서 걷는다.
「케잌은 왜 사다 드렸냐구요?」
「으음, 뭐라도 드리고 싶어서?」
‘뭐라도 드리고 싶을’ 정도로 좋은 교수.
「떠나시는 게 너무 아쉬워요···.」
「혹시, 언제 떠나시는지 아시고 계시나요? 저희끼리 나온 이야기인데, 송별회라도 열어 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송별회를 열어 드리고 싶다.
떠나시는 게 너무 아쉽다.
좋은 교수님인데, 안타깝다.
그런 반응들이 태반이다. 더이상 학생들을 붙잡고 물어보는 것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도 지친 라니아의 걸음이 무거워졌다.
‘···인기 많네, 켈르할름.’
털썩.
그녀는 정원의 한구석에 걸터앉는다.
저 멀찍이 보이는 켈르할름이 앉은 자리는 온기가 가득해 보이지만, 자신이 앉은 벤치는 차갑기 짝이 없다. 거리를 두고 라니아는 켈르할름을 바라본다.
그는 여전히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라니아가 한 달간의 휴가에서 돌아왔음에도, 그녀를 알아보고 다가오는 학생은 없다. 정말로, 한 명도 없다.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아프다.
“쩝···.”
어째 햇빛마저 저곳이 더 잘드는 것 같다.
‘아니, 좋은 일이긴 한데···.’
자신이 떠난 동안 켈르할름이 수업을 완벽하게 진행했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됐다는 건 좋은 일이다. 라니아가 의도했던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뭐지 이건.’
왜 배가 아픈 걸까.
왜 속이 근질거리는 걸까.
기분이 굉장히 묘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라니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좋은 일을 마주하고도, 왜 배알이 꼴리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으으음···.”
굉장히, 굉장히 자극적인 감정이 치밀어 오른다. 라니엘은 고개를 숙인 채 고뇌에 잠긴다. 학생들이 자신을 그리워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내가 좀 빡세게 굴렸나?’
조금 살살할 걸 그랬나.
아니, 근데 나중에 마탑이나 전장에 취직할 거 생각하면 그 정도는 굴려야 하는데. 스승님도 과제는 팍팍 내라 하셨고, 이 정도면 굉장히 인간적인 범주 안에서 굴린 건데···.
‘그래도 좀 살살 할 걸 그랬나.’
첫 번째로 밀려드는 감정은 후회다.
더 잘해줬어야 했던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라니아는 켈르할름이 앉은 자리를 바라본다. 처음에는 후회가 담긴 시선이나, 그 시선에 점차 열기가 깃든다.
하하호호 떠드는 학생들.
학생들에게 받은 케잌을 쪼개 먹는 켈르할름.
그 따사로운 풍경에 끼지 못한, 옹졸한 마법사는 입술을 꾸욱 깨물며 중얼거린다.
“내 자린데···.”
저기 저 자리는 내 것인데.
내가 앉아있어야 할 자린데.
내가 받아야 할 커피고, 케잌인데···.
후회에서 집착으로 조금씩 감정이 움직인다. 후회와 집착,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건 대체로 ‘피폐’여야만 한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후회와 집착 속에서 그때 더 잘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아니 씨팔, 생각해보니까 괘씸하네?’
하지만 라니아는 아니다.
그녀는 결코 피폐해지는 법이 없다.
평범과는 거리가 먼 그녀는 눈을 부릅뜬 채 켈르할름 곁에 앉은 학생들을 노려본다. 생각해보니 괘씸했다. 아무리 그래도, 한명 정도는 자신을 알아보고 찾아와야 하는 것 아닌가?
과제가 부족했구나.
쉴 틈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니었는데.
나를 잊지 못하게, 주기적으로 환기를 시켜줬어야 했던 게 아닐까?
그녀의 머릿속에 온갖 계획이 떠오르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 하나하나가 학생들에게서 비명을 뽑아낼 계획이란 점에서, 참으로 그녀다운 발상이었다.
‘차라리 중간기말을 과제, 현장 시험으로 분리해서 며칠에 걸쳐···.’
후회와 집착은 하되, 피폐는 그녀의 몫이 아니다.
피폐는 그녀를 잊은 학생들이 겪어야 하리라.
그렇게 라니아가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을 무렵이다.
“아, 라니아 교수님 돌아오셨네요?”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라니아의 고개가 휙, 하고 뒤로 돌아갔다. 그녀는 제 뒤에 선 학생을 바라봤다.
“진짜 오랜만에 뵙는 것 같네요. 휴가는 잘 다녀오셨어요?”
환히 웃는 소녀.
“라니아 교수님도 이것 좀 드실래요?”
그녀의 손에는 방금 막 카페에서 사온 듯한 머핀이 들려있다. 그것을 건네며 소녀가 라니아의 옆자리에 앉는다. 라니아는 자신의 손에 들어온 머핀을 보았다.
따뜻했다.
그리고, 푹신푹신해 보인다.
이어서 라니아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앉은 소녀를 바라본다. 소녀는 환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한달간 이것저것 많이 배웠는데, 그래도 라니아 교수님이 좀 그립더라고요. 빡세긴 했지만, 그때 배웠던 것들이 도움이 많이 됐기도 하구요.”
자신을 그리워하는 인물이 하나는 있었다.
그 사실에 라니아가 눈가를 쓸어내렸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구상하던 계획을 전부 접어서, 한구석으로 치워버렸다.
‘내가 잠깐 미쳤지.’
잠깐 마가 꼈던 게 분명했다. 라니아는 환히 웃으며 클로에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클로에···.”
“네?”
“네가 최고다, 그냥.”
“네? 갑자기요?”
한명의 신입생이 타락을 직전에 둔 교수를 막아 세웠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위업을 이루어 낸 클로에는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3.
“아, 선배님 돌아오셨습니까?”
“엉. 잘 지내고 있었냐?”
“저야 뭐.”
칼트가 한쪽 눈을 가린 안대를 긁었다.
“이제는 슬슬 외눈에도 적응이 돼가는 것 같습니다. 한쪽 눈으로 보는 것도 할만하더군요.”
거리를 재기 어렵긴 하지만, 그것도 차차 적응해 나갈 문제이리라. 그렇게 칼트가 너스레를 떨고 있자니, 라니엘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녀가 집무실의 의자에 앉은 칼트의 앞에 멈춰 섰다. 허리를 살짝 숙여, 칼트를 내려다보며 라니엘이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 없을 텐데.”
“···그럴 필요 없다뇨?”
“너, 벽을 체감 한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뜬금없는 질문이다.
뜬금이 없지만, 제 선배가 뜬금이 없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었으므로 칼트는 질문에 답했다.
“대충 한 삼, 사 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더 오래됐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
“예. 근데 그건 갑자기 왜 물으십니까?”
라니엘이 품속에서 무언갈 꺼냈다.
“슬슬 갈 때 됐네.”
“뭘요. 저승을요?”
“아니, 초인 새끼야. 초인.”
라니엘이 손에 쥔 잔으로 칼트의 머리를 딱, 하고 후려쳤다. 칼트는 제 정수리를 문지르며 눈을 깜빡였다. 초인?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그게 무슨···.”
말을 하다말고 칼트가 입을 다물었다.
제 선배가 손에 쥐고 있는 잔. 조금 전, 자신의 머리를 후려친 잔을 보는 칼트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게 뭡니까?”
백금색의 별빛이 고여있는 잔.
누가 보아도 평범과는 거리가 먼 물건을 앞에 둔 채 칼트는 질문했고, 그 질문에 라니엘은 답했다.
“성배(??).”
그녀가 웃었다.
“잃지 않고 초인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기적의 성유물이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