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23
〈 223화 〉 악몽이 돌아왔다(2)
* * *
성배(??), 별을 담는 그릇.
아르카디아에서 돌아오는 길, 나는 카르디에게 성배에 대해 보다 자세한 설명을 듣게 됐다.
「성배를 통해 진행하는 ‘시련’은 기본적으로 별의 시련과 같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이계(??)로 들어가, 조건을 달성하는 게 시련의 진행과정이지.」
나 또한 별의 시련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카르디의 말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시련의 형태는 전혀 다르지.」
그러나, 그다음에 이어진 설명에 나는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기보단,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가 의문이 든 까닭이었다.
「아니, 그게 돼?」
설명을 다 듣고 나서, 그렇게 되묻는 내게 카르디는 참으로 얄미운 표정을 지은 채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하니까 되더군.」
하니까 되던데요.
내가 말버릇처럼 달고 살던 말을, 남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은 썩 즐거운 경험이 아니었다. 며칠 전의 일을 떠올리며 내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진짜 한대 후리고 싶더라고···.”
“지금이라도 아셨다니 다행입니다.”
“맞고 싶다고?”
내가 성배를 쥔 손을 들어 올리자 움찔, 하고 칼트가 어깨를 움츠렸다. 내 눈치를 살피며 칼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시련’이란게 도대체 어떤 식으로 진행됩니까? 선배님이 의문을 가지실 정도면··· 뭔가 많이 독특한 모양인 것 같은데.”
“별의 시련과 좀 달라. 닮았는데, 달라.”
내가 칼트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 별의 시련에 대해 얼마나 알고있냐?”
“···갈라할 용사님께 들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끝없이 몰려드는 마수들을 뚫고 누군갈 ‘구하는’ 형태의 시련이었다더군요.”
“갈라할 답네.”
내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갈라할과 함께한 작전에서 그가 맡았던 역할을 떠올려보자면, 참으로 그에게 어울리는 시련이었다.
“카일의 경우는 가로막는 모든 걸 베어내고, 어딘가에 도착하는 게 시련의 형태였지.”
“···성격과 가진 목적이 별의 시련과 연관이 있는가 보군요.”
“그래, 별의 시련은 그런 식으로 일정한 ‘환경’을 던져주며 조건을 달성하게 만들어.”
하지만, 하고 내가 말했다.
“성배의 시련은 환경이 아니야.”
성배를 기울였다.
백금색의 액체가 출렁였다.
“성배가 불러내는 건 인간이야.”
환경이 아닌, 인간.
「성배의 시련이 만들어낸 이계에서 등장하는 건, 인간의 형태로 빚어진 벽이다.」
카르디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성배가 불러내는 것은 환경이 아닌 인간이라고.
「나는 별처럼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기적의 영역까진 닿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용자의 기억을 빌려 ‘재현’하는 것이었지.」
창조가 아닌 재현.
「노력 끝에 벽에 도착했던, 압도적인 강자의 앞에서 벽을 마주했던 간··· 벽을 체감한 사람의 영혼에는 자신이 그리는 ‘강자’에 대한 형태가 새겨지기 마련이지.」
자신이 머릿속으로 그려보았을 이상(?).
닿고 싶은 최종적인 목적지.
그것이 벽의 형태에 관여한다고 카르디는 말했다.
「성배는 그것을 구체화한다.」
「별빛에는 이 세상을 살아갔던 모든 생명에 대한 기록이 미약하게나마 담겨있지. 그 미약한 기록을, 성배의 사용자가 가진 기억을 통해 구체화한다.」
‘솔직히,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설명을 떠올리는 지금도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불가능의 영역이야.’
어떠한 과정을 거쳤는지도, 도대체 무슨 조화를 부렸기에 그게 가능한지는 모른다. 카르디만이 할 수 있고, 최초의 성녀가 있었기에 가능한 무언가가 이 성배에 담겨 있었다.
「그렇게 격리된 공간에 구체화한 인물을 일시적으로 불러낸다. 그 인물과 마주하고, 자신이 만족할만한 조건을 달성하는 게 성배의 시련이지.」
거기까지가 카르디의 설명이었다.
그 설명을 나는 칼트에게 말할 수 있는 데까진 들려주었다. 중간마다 혀뿌리가 얽히는 감각이 드는 걸로 보아, 가려진 정보도 몇 가지 있었다.
“아무튼.”
내가 성배를 흔들며 말을 마무리 지었다.
“확실한 건, 네가 지향하는 목표에 가장 가까운 인물을 성배를 통해 불러온다는 거지.”
“···음.”
설명을 다 들은 칼트가 잠시 침묵했다.
잠깐의 침묵 후에 그가 쓰게 웃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떠오르는 인물은 한 명 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 불려 나올 건 한 분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만.”
칼트가 지향점으로 삼았던 인물.
동경했고, 닮고 싶어했던 인물.
그 인물의 이름은 나 또한 알고 있었다.
“검의 초인 쿤텔.”
내게는 쿤텔 아저씨란 이름이 더 익숙한 사람.
“빡세겠는 걸.”
“그렇겠죠.”
칼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번, 밤의 도시에서 약화된 그분을 상대할 때도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기억하는 쿤텔 님의 마지막 모습으로 불려 나오신다면···.”
칼트가 기억하고.
내가 알고 있는 쿤텔 아저씨 최후의 모습.
“그러니까.”
칼트가 말했다.
“죽음의 칼을 막아섰을 때, 그때의 모습 그대로 제 앞에 나타나신다면··· 단 한 합에 목이 날아갈 자신이 있습니다. 진짜로요.”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최후의 순간, 도망치며 보았던 쿤텔 아저씨는 죽음의 칼과 호각을 이루고 있었다. 검에 일생을 바친 인간이 도달한 경지는 분명히 재앙에게 닿았다.
‘칼트가 그때의 쿤텔 아저씨를 상대로 버틴다?’
절대로 불가능해 보였다.
조건의 달성은커녕, 검을 맞댄 순간 목이 안 달아나면 다행일 수준일 테니까.
“그럼 말야.”
그래서내가 말했다.
“일단 한번 가보고, 한번 죽어보면 되겠네.”
“···예?”
칼트가 눈을 부릅떴다.
“아까 갈 때가 됐다고 말씀하신 게, 설마 진짜 저승이었습니까? 선배님, 복선 까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
“아니, 말을 좀 끝까지 들어.”
딱!
내가 다시 한 번 성배로 칼트의 머리를 후려쳤다.
“성배의 시련에선 죽지 않아. 네 영혼이 지칠 때까진 도전을 계속할 수 있다고. 잘 버티면 세 번 정도는 도전할 수 있다던데.”
“기회는 세 번뿐입니까?”
“실패해도 계속할 수는 있다더라. 한 일 년 정도 간격을 두고 말야.”
지친 영혼이 회복되면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카르디는 그 기간을 일 년정도로 측정했다.
“그래서, 한번 해볼 거야?”
내가 성배를 칼트의 앞에서 흔들었다.
“나도 어떻게 작동되는지 한번 보고 싶긴 해. 바로 할까?”
“···지금? 여기서요?”
“그럼 왜. 밖으로 나갈까?”
“아니, 좀 기다려 보십쇼. 저도 마음의 준비는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칼트가 앓는 소리를 냈다.
“삼일, 삼일만 있다가 도전합시다.”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기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당장 할 일이 있긴 했으니··· 삼일 정도야 기다려 줄만했다.
“그럼 삼일 뒤에?”
“예, 삼일 뒤에···.”
그렇게 내가 칼트의 집무실을 빠져나가려는 순간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선배님.”
칼트가 나를 불러세웠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오늘따라 기분이 좀 좋아 보이십니다?”
“···그래?”
기분이 좋아 보인다, 라.
실제로 기분이 좋았으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오늘이 휴가에서 복귀하는 날이거든.”
“···휴가에서 복귀하는데 기분이 왜 좋습니까?”
“좋을 수밖에.”
내가 환히 웃었다.
“학생들 만날 생각에 두근대서, 어제는 한숨도 못 잤어. 한숨도 못 자고 이걸 만들었거든.”
오랜만의 밤샘이었다.
그러나 피곤하진 않다. 이것을 받았을 때, 학생들의 반응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잠이 확 깼으니까.
“아, 그러십니까···.”
칼트가 묘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가운데,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칼트의 집무실을 나섰다.
2.
『아플리아에 평화가 찾아왔다.』
지난 한 달을 가리켜, 학생들은 그렇게 표현하곤 했다. 떠올려 보면 정말로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밤잠을 설치지 않아도 된다!’
밤마다 찾아오는 악몽은 없다.
도를 넘은 과제에 시달리지 않아도 좋으며, 아침해가 뜰 때까지 코피를 흘려가며 버틸 필요도 없었다. 해가 지면 잠이 들어, 해가 뜰때 일어나는 몹시도 건전한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다른 교수들이 준 과제도 많다.
많기는 하지만, 악몽에게 질리도록 시달린 학생들에게 그런 가벼운 과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작 한 명의 교수가 휴가를 냈을 뿐인데, 학생들의 생활에 여유가 찾아왔다. 그 사실에 학생들은 눈물을 흘리며, 악몽을 몰아낸 교수를 찬양하기 시작한다.
『르티아 교수님은 최고의 교수님이시다.』
아플리아의 악몽을 대신한 교수.
수업의 수준은 물론이고, 그 인성조차 완벽에 가까운 인물이다. 과제의 양은 적으며, 그마저도 수업시간 안에 전부 해결되는 일이 다반사다.
과제는 없으며.
수업은 알아듣기 쉽고.
흐름을 놓치더라도, 칠판에 적힌 몇 줄의 핵심 문장을 통해 다시 흐름에 편승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수업마다 깨달음을 주는, 가히 완벽이라 부를만한 수업이다. 그렇게 학생들은 꿈만 같은 한 달을 보내게 됐다.
“···여기까지가, 마지막 내용이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날 때가 됐다.
약속한 한 달의 끝인 마지막 수업 날, 단상에 선 르티아 교수가 칠판을 두어 번 두들겼다.
“한 달간 내 강의가 너희에게 도움이 됐다면 좋겠군. 오랜만에 누군가를 가르치는 건 제법 즐거운 일이었다. 너희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생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누군가는 박수를 치고, 누군가는 눈가를 손수건으로 찍어누르며 눈물을 삼킨다.
댕, 대엥.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르티아 교수가 짧게 숨을 뱉는다. 그리고, 학생들이 하나둘 단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르티아 교수님.”
“저희가 준비한 선물인데···.”
“그리고, 저희가 송별회를 준비했으니···.”
학생들이 준비한 조잡한 선물을 바라보며, 르티아 교수는 엷은 미소를 짓는다. 본래 감정 표현이 희박한 그이기에, 그가 지은 미소는 학생들에게 보다 큰 의미로 다가온다.
“고맙군. 소중히 간직하도록 하지.”
선물을 준 학생은 흡사 눈물이라도 흘릴 분위기다.
모두의 박수와 함께, 르티아 교수가 단상에서 내려오고자 짐을 챙기고 있을 무렵이다.
드르륵, 탁!
강의실의 문이 열렸다.
모여든 학생도, 르티아 교수도 모두 뜬금없이 열린 문을 바라보았다. 열린 문에는 누군가 서 있다.
사락.
불어온 바람에 잿빛 머리칼이 흩날린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아플리아의 악몽이라 불리는 그녀가, 흩날리는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입을 열었다.
“한 달간 수고하셨습니다, 르티아 교수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으며, 그녀가 르티아 교수 주변에 모여든 학생들로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반갑습니다 여러분. 오랜만이군요.”
역시나 부드러운 목소리다.
하지만 부드러움 속에 감춰진 섬뜩함에, 몇몇 학생들이 몸을 부르르 떤다. 앞자리에 앉은 라크가 딸꾹질을 하기 시작하고, 그 옆에 앉은 벨노아는 제 눈가를 한 손으로 쓸어내린다.
“정말로, 오랜만이군요.”
왠지 모를 서운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다.
그러나, 그것이 얼굴로 드러나진 않는다. 휴가가 즐겁긴 했는지 더욱 매끈해진 얼굴로, 아플리아의 악몽은 환히 웃어 보였다.
“내일부터 수업에 들어갈 예정이니, 오늘 중으로 학사 게시판을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학사 게시판?
학생들에게 짙은 불안감을 남긴 채 그녀가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그럼 내일 뵙도록 합시다. 모두 즐거운 송별회 되시길 바랍니다.”
송별회를 연다는 소식은 또 어디서 들었는지, ‘송별회’란 단어에 힘을 주어 발음한 라니아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뚜벅 뚜벅.
그리곤 그대로 복도를 걸어 사라진다.
구두굽 울리는 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한 학생이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가 교실 안에 낮게 울렸다.
“···돌아왔다.”
무엇이 돌아왔겠는가.
『악몽이 돌아왔다.』
학생들의 머릿속에 한 줄의 문장이 떠오른다.
악몽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물어볼 것도 없다.
아름다웠던 청춘 극의 막이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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