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24
〈 224화 〉 악몽이 돌아왔다(3)
* * *
‘소중한 것을 남에게 빼앗겼을 때, 자신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한평생 자신의 것을 빼앗기긴커녕, 남의 자리를 빼앗아본 경험만이 있는 라니아에게 그것은 몹시도 어려운 질문이었다. 과거의 경험에서 답을 찾을 수 없으므로, 라니아는 곰곰이 생각했다.
일련의 사건 속에서 그녀가 깨달은 게 있다.
고작 한 달 남짓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학생들은 자신에 대해 잊고 말았다. 그것은 학생들을 탓할 문제가 아니었다. 라니아 자신이 반성해야 할 문제였다.
‘내가 고작 그것밖에 안 됐던 거지.’
지니간 시간, 벌어진 사건.
후회는 할지언정, 후회에 매몰되진 않는다. 이미 사건은 벌어졌으니 답을 찾아야 하리라.
후회와 집착으로 보낸 일주일이다.
그 끝에 라니아가 발견한 정답은, 무척이나 단순했다. 단순하기에 매력적인 그것을 라니아는 소리 내 발음해봤다.
“보다 강한 자극.”
그렇다, 바로 자극이다.
자극이 부족했던 것이다.
자신을 잊지 못하게 만들려면, 오직 자신만이 너희의 옳게 된 교수임을 뇌리에 각인시키려면··· 보다 강한 자극이 필요했다.
‘그리고, 주기적인 자극.’
아무리 강한 자극이라 한들 ‘한번’에 몰아친 자극은 결국 잊히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주기적으로 자극에 노출시켜야 한단 점이었다.
끄덕.
라니아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복도의 창가에 기대어 섰다. 창가에 기대어 선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엔 학사 게시판이 놓여있다.
[마나의 거래학(기초) 과제 안내.]그리고, 그녀가 붙여둔 학사 공지도.
하룻밤을 꼬박 새워 계획한 과제를, 라니아는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저 공지를 바라본 학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라니아의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기대해도 좋다.’
내가 너희에게 내 최선을 보여주겠다.
다시는 다른 교수를 꿈꾸지 못하게 만들어주겠다.
“···어딜 도망가려고.”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복도에 낮게 울렸다.
누가 뭐래도, 라니아는 집착이 제법 강한 편이었다.
2.
『악몽이 돌아왔다.』
르티아 교수의 마지막 수업이 끝난 뒤, 송별회를 약속한 가게로 떠나기 직전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복도를 향해 뛰쳐나갔다.
「내일부터 수업에 들어갈 예정이니, 오늘 중으로 학사 게시판을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아플리아의 악몽이 속삭인 섬뜩한 문장.
그 문장의 진위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감이 좋은 몇몇이 두려움에 몸을 떠는 가운데, 그들은 학사게시판 앞에 도착하게 된다.
“아, 빨리들 오셨군요.”
게시판의 앞에는 선객이 있다.
“라, 라니아 교수님.”
언제나와 같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라니아 교수. 그녀가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학사 게시판을 가리켰다.
“천천히 확인해도 좋습니다.”
꼴깍.
마른침을 삼키며 학생들은 게시판을 확인한다. 그곳에는 어제까지만 해도 못 보던 종이가 붙어 있었고, 종이에는 악몽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마나의 거래학(기초) 과제 안내.] [담당 교수 : 라니아 반 트리아스.]학생들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공지를 읽어내리던 학생들의 표정이 차례로 바뀌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눈을 부릅뜨고, 누군가는 제 눈가를 쓸어내리며··· 또 누군가는 숨을 헛삼킨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라, 라니아 교수님?”
학생들의 시선은 라니아 교수에게로 향한다.
창가에 기대어 서,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정리하던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뭡니까?”
“이, 이게 무슨.”
“뭐긴요.”
그녀가 미소 지었다.
“보는 그대로입니다.”
한걸음 다가온 그녀가 게시판에 붙은 공지를 가리켰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툭툭, 종잇장을 건드리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과제의 기간은 학기 말까지 입니다.”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가 학생들의 귀에는 조금 다른 식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두세 달 정도의 기간이 있으니 차근차근 해결하면 될 과제가 되겠군요. 몰아서 하려면 힘든 과제가 될 거라 예상합니다.”
두달동안 쉴 생각 하지 마라.
한 달을 놀았으면 충분하지 않는가?
“과제의 주제는 ‘마나의 거래학’ 답게 완벽한 거래식을 짜오는 것입니다. 한 달간 르티아 교수님께 ‘잘’ 배웠으리라 예상합니다.”
나 없이 잘 지낸 모양이더구나.
내가 너희를 한번 시험해보려 한다.
“마나의 거래식이 ‘주문의 작성’을 의미하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미 저번 학기에 조별과제의 형태로 경험하셨을 테니, 이번에는 혼자서 해결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겠죠.”
이미 한번 해본 거다.
할 수 있지? 있으리라 믿는다.
“물론, 완벽한 주문을 만들어 오라는 게 아닙니다. 제게 배우게 될 ‘주문 거래식의 이해’ 강좌 시간에 과제에 대해선 보다 상세히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그렇게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할 수 있게 만들어 줄 테니까.
“과제를 마치신다면, 여러분께선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 좋자고 하는 일 아니다.
다 너희를 위한 일이다.
“물론, 어렵다면 포기하셔도 좋습니다.”
“···예? 포기?”
“예, 못하겠다는 데 제가 어떻게 막겠습니까. 최대한 도와드리긴 할 테지만, 포기하신다면야 어쩔 순 없죠.”
의도가 읽히지 않는다.
학생들이 눈을 깜빡거리는 가운데, 라니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번 학기에서 가장 높은 반영 비율을 가진 과제라··· 이 과제를 포기한다면, 저도 여러분께 좋은 점수를 드리긴 어려울 것 같군요.”
그제서야 라니아의 의도를 학생들은 이해한다.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는 학생들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뭐, 점수 좀 못 받으면 어떻습니까.”
포기할거면 해라.
“재수강하면 되지요.”
내년에 다시 듣고 싶으면, 그리해도 좋다.
“더 묻고 싶은 게 있습니까?”
그녀의 질문에 그 누구도 답하지 않는다.
그저, 라니아만이 해맑게 웃고 있을 뿐이다. 그 어느 때보다 환히 미소 짓는 악몽의 앞에서··· 학생들은 절망한다.
‘마나의 거래학 기초는···.’
필수 수강항목이다.
졸업하기 위해선 반드시 들어야 한다.
듣기 싫다고 드랍이 불가능한 강의란 소리다.
하필이면 그 과목을 담당한 게, 아플리아의 악몽이라 불리는 라니아 교수다. 벗어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악몽이 학생들을 덮친다.
“남은 한 학기도 열심히 해봅시다.”
고개를 살짝 끄덕인 그녀가 자리를 뜬다.
멀어지는 라니아의 뒷모습을 학생들은 한동안 바라봤다. 또각, 또각, 복도에 나지막이 울리는 구두굽 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맴돌았다.
악몽이 돌아왔다.
너무나도 화려하게 돌아오고 말았다.
“와.”
누군가 감탄을 내뱉었다.
“진짜 환장하겠네.”
겨우 원래대로 되돌린 생활 패턴을, 도로 망가트릴 순간이 왔음을 직감하며··· 학생들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이라곤 어두 컴컴한 어둠뿐이다.
‘길고도 긴 어둠.’
그 어둠 속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엿본 기분이 들었다.
3.
“···소란스럽네.”
교수실로 돌아온 나는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봤다. 창밖에는 켈르할름과, 그를 데리고 어딘가로 향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가득했다.
‘송별회.’
분명 그런 걸 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쩝···.”
이어지는 학생들의 행렬을 바라보며, 나는 괜스레 입맛을 다셨다. 그렇게 창밖을 흘겨보고 있자니, 스승님께서 입을 여셨다.
“그렇게 가고 싶으면 너도 가지 그러느냐?”
“가, 가고 싶은 거 아닌데요.”
“내가 너를 한두 번 보느냐, 라니아.”
스승님이 참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날 흘겨보셨다.
“끼고 싶으면 끼고 싶다고 말하고, 저 무리에 끼어서 가면 될 것 아니냐. 원래 눈치도 드럽게 없는 녀석이 꼭 이런 상황에서만 눈치를···.”
“아, 진짜 아니라니까요···.”
저 무리에 끼고 싶은 게 아니다.
그냥, 좀 부럽다고 느끼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다. 애초에, 내가 저기 껴서 뭘 하겠다고?
“그냥, 저런 것도 해주는구나 싶어서요.”
마탑에선 도망치듯이 야반도주하느라 송별회 같은 건 받지도 못했고, 용사 파티를 때려치울 때도··· 제대로 된 작별인사 같은 건 받지 못했다.
‘내가 받기싫어한 것도 있긴 한데···.’
정작 송별회를 하러 가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뭔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기분일지 좀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도, 따라가긴 좀 그렇지.’
그래서 그냥 구경하기로 했다.
그렇게 내가 줄줄이 따라나가는 학생들의 수를 세고 있을 무렵이었다.
똑똑.
누군가 교수실의 문을 두들겼다.
문 가까이에 앉아 계셨던 스승님이 문을 여셨고, 손님의 얼굴을 확인한 스승님께선 조금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으셨다.
“···무슨 일이십니까?”
···존댓말?
‘누가 왔길래?’
스승님의 등에 가려 손님의 얼굴이 보이진 않았다. 내가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보니,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맴돌았다.
“아, 라니아 교수님이 안에 계시나 싶어서···.”
빼곰, 하고 고개를 내민 학생.
그녀와 내가 눈을 마주쳤다. 눈을 마주친 순간 그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저기 계시네요.”
왕가의 상징인 백금발의 머리칼을 가진 소녀.
제 4 왕녀, 아일라.
조금은 장난기를 머금은 눈동자로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스승님께서 한걸음 옆으로 물러나셨고, 그녀와 함께 몇몇 학생이 교수실 안으로 들어왔다.
“···왕녀님? 무슨 일로?”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문 목적이 짐작이 가지 않는 탓이었다. 내 물음에 아일라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무슨 일이긴요. 인사를 드리러 왔죠.”
“···예?”
“휴가에서 돌아오셨잖아요. 원래 조금 더 빨리 인사드릴 생각이었는데, 준비 하던 게 좀 많아서요.”
그녀가 쓰게 웃으며, 뒤에 서 있던 클로에의 어깨를 잡아 자신의 앞으로 세웠다. 움찔, 하고 클로에가 어깨를 떨었다.
“클로에 양하고, 저하고···.”
아일라가 뒤를 바라봤다.
“레스티 양이 함께 계획했답니다.”
레스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 무슨 계획?’
내가 벙쪄 있자니 아일라가 문밖을 가리켰다.
“르티아 교수님의 송별회에 갈 생각인데, 교수님도 같이 가실 생각 없으신가요?”
“···제가 말입니까?”
“네, 라크 공자에게 미리 말해놨거든요.”
아일라의 말에 클로에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버벅거리는 목소리로 클로에가 말했다.
“벨노아도 함께 준비하겠대요! 그 외에도, 전투 마학과 학생들도 돕는다고···.”
그러니까, 무슨 준비를?
아까부터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어서, 내가 눈을 깜빡이며 질문을 던졌다.
“무슨 준비를···.”
“뭐긴요, 감사인사죠.”
···감사인사?
“일단 공식적으론, 저희를 지키시다 부상을 입으셔서 한 달간 휴양하고 오신 걸로 기록돼 있는데··· 제대로 된 감사인사를 드리지 못했잖아요?”
그게 그렇게 남아있었나.
칼트가 ‘알아서 잘’ 꾸며서 보고한다고 해서, 나도 자세히 아는 부분은 없었다. 평소처럼 통장에 돈이 좀 많이 들어왔길래 그런가 보다 했었고.
“이번 기회에 인사를 드리려고요.”
아일라가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붉은 장미 문양이 새겨진 봉투였다.
“저는 물론이고, 저희 언니도 말이에요. 송별회에 잠깐 얼굴을 비칠 모양이라고 하시던데.”
“···예? 르뤼엘 왕녀님이요?”
“네. 르티아 교수님께는 물론이고, 라니아 교수님께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구요. 물론, 요즘은 워낙에 바쁘셔서 정말 잠깐 얼굴만 비추고 가실 것 같긴 하지만요.”
편지 봉투를 내게 건네며, 아일라가 미소 지었다.
“그래서, 같이 가실 생각 없으신가요? 송별회 규모가 되게 클 텐데.”
언제나와 같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온 아일라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아까 보니, 꽤 섭섭해 보이시던데요?”
“아니, 제가 언제 그랬다고···.”
“송별회란 단어에 그렇게 힘을 팍팍 주고 발음하셨으면서, 모른척하시긴.”
피식, 웃음을 흘리며 아일라가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얼굴이 확 달아올라, 내가 뭐라 말을 못하고 있자니 상황을 지켜보던 스승님이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튕기지 말고 다녀오거라. 아까부터 그렇게 가고 싶은 티란 티는 다내더만···.”
“아니, 제가 언제 그랬···!”
“어련하겠느냐.”
풉, 하고 아일라가 웃음을 참는다.
내가 눈을 부릅뜨고 아일라를 노려보았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은듯싶었다. 쿡쿡,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아일라가 내 팔을 붙잡았다.
“그냥 같이 가요. 교수님.”
“아니 진짜···.”
“알았어요, 알았다니까요.”
반쯤 끌려가다시피 나는 교수실 밖으로 나왔다.
‘···진짜 삐진 거 아닌데.’
나는 끝까지 내 결백함을 주장했으나, 아일라는 물론이고 클로에와 레스티 마저 웃어넘길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