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25
〈 225화 〉 악몽이 돌아왔다(4)
* * *
르티아 교수의 송별회는 규모가 컸다.
송별회의 규모가 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몇 가지 있었는데, 그것이 비단 르티아 교수를 향한 학생들의 존경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르뤼엘 왕녀님과, 아일라 왕녀님이 송별회에 참가하신다.」
그런 소문이 나돈 탓이다.
몇몇 학생이 용기를 내어 아일라에게 질문한 결과, 그것이 사실임이 밝혀졌다. 소문이 사실로 밝혀진 가운데, 가장 극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귀족가의 자제들이었다.
아플리아 아카데미는 명문이다.
출신이 고귀하지 않으나, 재능있는 아이들이 많이 입학하여 그 사실이 묻히기 십상이나··· 아플리아에는 명문가의 자제들 또한 다수 재학 중이다.
‘제 1 왕녀 르뤼엘.’
제 1 왕자 이자크의 실종과 함께, 차기 국왕으로 반쯤 확정된 인물. 그러나 세간에 떠도는 ‘미친개’란 소문 덕에··· 그녀와 유의미한 교류를 해본 귀족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런 인물이, 송별회에 얼굴을 비춘다.
그것은 명문가 출신의 학생들에게 있어선 귀중한 기회다. 르티아 교수를 향한 존경심과, 이 특별한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학생들의 열정이 합쳐진 결과··· 송별회의 규모는 지나치리만치 커지고 만다.
“이만하면···.”
“A번 테이블에 음식은? 여기 트레이 하나가 모자란 것 같은데···.”
홀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쭉 늘어진 테이블엔 온갖 음식들이 가득하다. 어지간한 귀족들의 사교회보다 거창해진 송별회에는 부단히 움직이는 학생들로 가득하다.
송별회의 시작까진 한 시간 남짓이 남았다.
르티아 교수님께선 이미 도착하셔서, 학생들과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그 모습을 힐끗 바라보며 행사를 기획한 학생 대표는 두근거리는 제 심장을 쓸어내렸다.
‘왕녀님 두 분이 찾아오신다는 게 긴장되긴 하지만···.’
그보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라니아 교수님께 감사를 전하는 무대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필요하다고 보는데.」
행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 찾아온 아일라 왕녀님의 말씀이시다. 왕녀님뿐만 아니라, 그 곁에는 수석 학생이 셋이나 붙어 있었다.
「은근히 그런 거 민감하신 분이야. 안 챙겨줬다간, 나중에 몹시, 몹시 귀찮아질 거다···.」
고개를 가로젓던 소년.
전투 마학과의 (전)수석, 벨노아.
「필요하다고 본다. 위대한 라니아 교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많이 노력하신 건 사실이니. 이 기회에 스승님에 대한 감사함을 되새기는···.」
왜인지 모르게 ‘위대한’이란 단어를 강조하는, 전투 마학과의 현 수석, 라크 반 그레이스.
「도울게. 관리할 장부 있어? 추가 예산금이나, 올려야 할 서류 작성이라면 도와줄 수 있어.」
행사 준비에 큰 도움을 준, 잿빛 마탑의 차기 마탑주 레스티 엘레노아.
그들 모두가 요구한 건 하나였다.
라니아 교수님을 위한 자리를, 라니아 교수님이 ‘만족하실만한’ 퀄리티로 만들어라. 물론, 무리한 요구는 아니었다.
‘무리한 요구가 아니긴 한데···.’
학생 대표로선 라니아 교수님이 어느 정도 수준이 돼야 만족할지 감이 안 잡혀··· 머리를 싸맨 채 며칠을 고민했어야만 했다.
‘그래서, 잘 아는 두 사람에게 어느 정도 맡기긴 했는데···.’
학생 대표는 힐끔, 홀의 한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테이블을 꾸미고 있는 벨노아와 라크가 있었다.
“여기에 더 고기를 넣는 건 어떤가.”
“왠 고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라니아 교수님은 고기를 좋아하신다. 저번에 북부에 오셨을 때도 아주 많은 고기를···.”
“···그래? 생각보다 육식을 좋아하시나.”
“고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풀보다는 고기지. 이쪽 샐러드를 다 치워버리고···.”
“미쳤니?”
자꾸만 샐러드를 치워버리려 하는 라크와, 미쳤냐며 라크의 뒤통수를 후리는 벨노아. 그 모습을 보는 학생 대표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으음···.”
···맡긴 게 잘한 일일까?
그렇게 학생 대표가 고민하는 와중에도 시간은 꾸준히 흐른다. 그렇게 송별회의 시작이 다 돼서야, 기다리던 손님께서 홀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아, 진짜 삐친 거 아니···.”
“알았다니까요. 벌써 일곱 번째에요, 교수님. 그만 말씀하셔도 다 알았으니까···.”
왠지 모르게 부루퉁 해 보이는 라니아 교수님과, 그런 그녀의 팔을 잡아 끌고 있는 아일라 왕녀의 모습이다. 그 뒤로는 레스티와 클로에가 함께한다.
탁.
이윽고 그들이 홀 안으로 들어선다.
부단히 뛰어다니던 학생들이 걸음을 멈춘 채, 문쪽을 돌아봤다. 그곳에 서 있는 교수를 바라보며··· 행사를 준비한 학생들은 마른침을 삼킨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녀가 어떤 인물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지난 1학기 동안 학생들은 그녀를 자신들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뭔가 좀 다른··· 다른 종류의···.’
도무지 사람 같지가 않다.
완벽에 가까운 인형을 보는듯한 기분이었다.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형. 그러나 그것도 전부 1학기에 국한된 이야기다.
2학기에 들어선 어떻던가.
학생들의 뇌리에 떠오르는 모습은, 배틀 메이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청을 높이던 라니아 교수의 모습이다.
「배틀 메이지는, 위대한! 위대한 잿빛 마법사님께서 직접 만들어내신 클래스입니다!」
교단에서 열변을 토하던 모습.
「주눅이 들 필요 없습니다. 승리는 쟁취하는 것. 근본은 증명하는 것. 우리의 근본은, 승리로서 쟁취하고 증명됩니다. 여러분, 자신감을 가지십시요···.」
뜨거운 눈빛으로 근본론을 설파하던 모습.
「아 시팔, 이거 놔봐! 놔보라고!」
그리고···.
「내가 이겼어. 내가 이긴 거라고. 이거 안 놔? 쏴봐! 쏴보라고 씨발! 누가, 누가 그딴 거 맞고 쓰러진대? 쓰러진댔냐고···!」
놀라울 정도로 추한 모습.
결투를 지켜보는 관객의 얼굴에 불을 질렀던 그런 모습들이, 학생들의 뇌리에 차례로 떠오른다.
그렇다.
2학기에 들어서, 라니아 교수님께선 인간적인 면모를 자주 보여주시고 있다.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완벽한 인형이 아닌···.
‘어딘가 좀 이상하신 분.’
그런 인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삐친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때로는 질투하는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옹졸한 모습에서 학생들은 인간미를 느낀다.
마냥 완벽한 인형이 아닌, 인간.
말이 길었지만, 결국에는 심리적 거리감이 조금이나마 줄었다는 이야기다. 학생들은 더이상 라니아가 완벽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안다.
“라, 라니아 교수님.”
알고있기에.
“저희가 교수님을 위한 자리를 준비해봤는데···.”
학생 대표는 용기를 내어 입을 연다.
라니아 교수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학생 대표를 바라본다. 푸르스름한 눈동자를 마주한 채 대표는 마저 말을 잇는다.
“마음에 드신 가요?”
그녀를 위해 준비한 좌석을 가리킨다.
벨노아와 라크가 아직도 투닥거리고 있는 테이블이다. 그 테이블을 바라보는 라니아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그녀가 입술을 달싹였다.
“으음···.”
잠깐의망설임.
“아니 뭐 이런 걸 다···.”
이후 그녀가 뱉은 것은 얼핏 보면 건조한 말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녀의 목소리에 묻어나오는 약간의 떨림을 놓치지 않는다.
무표정을 연기하고 있지만, 파르르 떨리는 라니아의 입꼬리를··· 학생들은 분명히 보았다.
아닌척 하고 있지만.
하나도 기대 안 했던 것 같이 연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마음에 들어 하시는 눈치다···!’
콱, 학생 대표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은 것을 참으며, 대표는 라니아 교수를 위해 준비한 자리를 힘차게 가리켰다.
“어서 오세요, 라니아 교수님!”
2.
세상에, 이게 다 뭔가.
송별회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지금까지, 라니아는 자꾸만 벌어지려는 입을 다무는 것에 온 신경을 기울여야만 했다.
‘아니 진짜뭘 이런 걸 다···.’
송별회의 규모가 남다르다.
그녀가 보아왔던 어지간한 만찬회를 방불케 하는 규모였다. 물론, 이런 행사에 처음으로 참가해 본 것은 아니었다.
‘카일과 함께 참가한 적은 몇 번 있긴 한데···.’
그런 종류의 만찬회는 온전히 카일과 자신만을 위한 행사가 아니었다. 귀족들의 노골적인 눈빛은 물론이고, 뭐라도 하나 더 빼먹으려고 수작질을 하는 놈들과 함께한 행사였으니까.
그러니까, 처음이었다.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행사는.
“라니아 교수님.”
“···예, 예에.”
“아까부터입꼬리 파르르 떨려요. 입가 가리는 부채라도 드릴까요?”
아일라의 짓궂은 목소리가 라니아의 귀에 맴돈다. 라니아는 자신이 그랬나 싶어, 제 입가를 매만져 봤으나··· 입꼬리에 떨림이 딱히 느껴지진 않는다.
“거짓말이었는데. 찔리셨나 봐요.”
“아니···.”
이 왕녀님이 또.
라니아가 짧게 한숨을 내쉬는 가운데, 그녀의 곁에 앉은 아일라가 턱을 괸 채 라니아를 바라봤다.
“마음에 드시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기분이 좋긴 하네요.”
축하를 위한 자리.
학생들이 다른 누가 아닌, 자신을 위해 꾸며낸 자리라는 건··· 제법 감동적이게 다가오는 법이다.
‘내가··· 심했나?’
라니아의 머리에 순간 그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자신을 위한 행사를 학생들이 준비하는 줄 알았다면, 자극이니 뭐니 하는 계획은 다음으로 미뤄두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으음···.”
왠지모를 죄책감에 라니아가 신음을 흘렸다.
“과제를 줄여야 하나···.”
그렇게 악몽이 인간의 마음을 얻어갈 무렵이다.
홀이 다시 한 번 소란스러워졌다. 새로운 손님이 찾아온 까닭이었다.
끼이익.
홀의 문이 열리고 둘의 기사가 들어온다. 하나는 왕녀의 호위기사로 알려진 인물이고, 다른 하나는 아플리아를 오 다니며 몇번 마주한 로얄 가드다.
안대를 낀 외눈의 로얄가드.
문을 연 그가 한걸음 옆으로 물러서며 고개를 숙였다. 뒤이어 호위 기사가 입을 열어 방문객의 정체를 알린다.
“르뤼엘 왕녀님께서 드십니다.”
홀에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고개를 숙인 두 기사를 지나쳐 누군가 홀 안으로 들어섰다.
또각.
일정한 소리로 이어진 구두굽 소리.
은발에 가까운 백금발이 찰랑인다. 찰랑이는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눈매는 날카롭다. 서늘함을 간직한 금빛 눈동자가 홀 안을 쓱 둘러봤다.
“호오.”
제 1 왕녀, 르뤼엘.
짧은 감탄과 함께 그녀가 학생 대표를 바라본다.
“그대가 송별회를 준비한 대표인가?”
“네, 네엡···.”
“본적이 있는 얼굴이로군. 데메트 공의 여식인가? 일전에 한번 데메트 공과 함께 본적이 있는 것 같군.”
“기억해주시니, 영광···.”
르뤼엘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데메트 공보다 훨씬 낫군.”
“···예?”
“데메트 가(家)의 미래가 기대되는 부분이야. 자식 복 만큼은 타고난 모양이지. 데메트 공도 훌륭한 자식을 두었군.”
저걸 자신의 아버지보다 낫다는 칭찬으로 들어야 할까, 한낱 학생인 너보다 너희 아버지는 못 하다는 욕으로 들어야 할까···.
그런 의문을 학생 대표가 가지는 가운데, 르뤼엘은 그런 반응은 개의치 않고 제 할 말을 마저 이었다.
“잠깐이지만 즐기다 가겠네. 수고가 많아.”
어찌됐든 자신을 칭찬했단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것을 영광으로 여기며, 학생 대표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뒤로 물러섰고··· 르뤼엘은 홀을 가로질러 걷는다.
그녀에게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그녀가 멈춰선 곳은 라니아 교수의 앞이다.
“오랜만이군. 교수.”
구면이라는듯한 말투.
“표정을 보아하니, 꽤나 즐기고 있는 것 같군.”
“···그렇게 티 나나요?”
“많이 나는군. 낯선 모습이야.”
쿡쿡, 하고 르뤼엘이 미소를 흘린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르뤼엘 왕녀를 마주 한적은 없더라도, 그녀에 대한 소문을 알고 있는 학생들은 많다.
왕성에 사는 철혈의 여인.
혹자는 그녀를 미친개라 부르며 깎아내리고, 또 누군가는 제왕의 기질을 타고난 여인이라며 칭송한다. 그리고, 그 소문의 공통점은 제 1 왕녀 르뤼엘은 몹시도 냉철한 인물이란 점이다.
‘그 누구도 함부로 신뢰하지 않으며, 오롯이 홀로서 완벽함을 추구하며··· 귀족들의 목소리를 묵살하는 철혈의 여인.’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 이.
그런 인물이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 웃음을 흘리고 있다. 그것도, 라니아 교수를 향해서.
‘···왕녀님과도 아는 사이야?’
보통 사이는 아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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