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648)
제 649화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데, 난 진심이다.
“도관의 그 버러지 새끼들과 저기 죽어 있는 군나르의 버러지들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너희도 다를 바 없다. 도관에 속한 자들로서 왜 그걸 보고만 있었지?”
“…….”
“이해는 해. 너희의 정체성 문제이기도 하니까. 무엇을 따르는지, 너희의 목적이 무엇인지, 과거와 현재가 얽혀 무엇이 진실인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썩어 빠진 눈깔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안토니오, 네가 대답해 봐라. 내 말이 틀렸는가?”
“……전혀, 틀리지 않습니다.”
뒷짐을 진 채 잠시 주변을 훑었다. 떠는 이들도 있었고 묵묵히 내 말을 듣는 이들도 있었다. 적어도 이들은 방관했을지언정 동조는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는 머리가 박혀 있는 놈들이라는 뜻이다.
“이쯤에서 확실히 말해 주지. 너희의 목적은 황권을 지키는 것이다. 너희가 따르는 건 ‘피’가 아니라 제국이다. 너희에게 명령을 내리는 자는 황제와 차기 황제, 즉 황태자 말고는 없다.”
목소리에 진심이 새겨진다.
“황권을 지켜야 할 놈들이 고작 공작 따위에게 놀아나기나 하고, 정말이지 가관이군. 거의 식충이나 다를 바 없는 놈들이지 않은가.”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해야 하나? 너희 자신한테 죄송해야지.”
“…….”
“내 말 명심해라. 너희는 한 번의 기회를 더 얻은 거다. 너희에게 명령을 내리는 존재는 ‘피’가 아니라, ‘황권’이다. 황권이 아닌 존재의 명령 같은 것은 듣지 마라. 그게 싫으면 그냥 이 자리에서 자결해라. 아니면 제국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영영 꺼지든지.”
행동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게 싫으면 황권을 지키는 호위부대답게 마음을 다잡아라. 너희가 무너지면 안 그래도 막강한 ‘황권’은 길을 잃게 된다. 길을 잃은 그 강대한 힘이 어느 곳으로 향할지, 너희는 진정 모르는 것이냐.”
“아닙니다. 태자 전하!”
아버지의 힘과, 내 힘은 솔직히 세상을 멸망시킬 정도의 힘이다. 그렇다고 세상 전부를 내려다보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알아내고 관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조언해 주는 이가 있어야 하고 정보를 전해 주는 이도 있어야 한다. 그게 도관이다.
도관의 역할은 막중하다. 이렇게 무너져서는 안 되는 조직이고 흔들려서도 안 되는 조직이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분명 바보가 아니었다. 내 말의 속뜻을 확실하게 눈치챈 것이 분명하다.
“너희도 들었을 거다. 오늘 아침, 2대 관주였던 타노스가 관주 자리에서 내려왔다는 소식을.”
이것도 진실이다. 오늘 아침, 타노스는 정식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아버지는 그것을 재가했고.
“오늘부터, 도관의 제3대 관주는 안토니오 세나다. 불만 있는 이가 있나?”
그걸 내가 정할 수 있냐고 묻고 싶은 이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도관에게 명령을 내리는 자는 황제와 황태자다.
나는 충분히 도관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임명권도 가질 수 있다. 아버지가 내게 모든 것을 일임한다고 선포했으니까. 내 의견이 곧 밀로스 제국의 의견이다.
“없나 보군. 안토니오.”
“예. 태자 전하.”
“도관의 제3대 관주에게 첫 번째 명령을 내리지.”
“경청하겠습니다. 태자 전하.”
앞서 안토니오에게 몇 가지 명령을 내린 적은 있었지만 그건 ‘안토니오 세나’라는 개인에게 했던 명령이지 관주에게 한 명령은 아니었다.
지금은 관주에게 명령을 하는 거다. 내 명령은 간단했다.
“도관을 배신한 놈들의 가족을 전부 처형해라.”
“……예. 태자 전하.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모를 군나르 공작가의 사생아를 찾아. 있으면 전부 죽여.”
안토니오는 그 자리에서 깊게 고개를 숙였다.
안토니오뿐만이 아니라 모든 관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안토니오가 대표로 답했다.
“존명-!”
* * *
도관의 관원들이 썰물 빠지듯 자리를 비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굉장히 긴 시간이기도 했다.
다시 절벽 위로 올라가, 무너진 군나르 공작가를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1분 정도 흘렀을 때였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아버지가 있었다.
“언제 오셨습니까?”
“좀 됐어. 한 2시간?”
솔직히 눈치 못 챘다.
이렇게 아버지가 존재감을 드러냈으니 눈치챌 수 있었던 거다. 아버지가 말했다.
“말 잘하더라. 나중에 연설 같은 거 해도 잘할 거 같아.”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내게 다가왔다. 그대로 내 어깨를 짚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들, 괜찮아?”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뭐가 괜찮냐는 걸까.
“혈족이잖아. 아들의 피에는 군나르의 피도 섞여 있어.”
“피는 그저 피일 뿐입니다.”
“그래?”
“예. 아무리 핏줄이 중요하다고 해도 죄보다 우선되지는 않습니다.”
아버지가 웃었다.
“나중에 거슬릴까 봐 미리 정리해 놓는 건 아니고?”
“……그런 것도 있긴 했지만 그들은 선을 넘었습니다.”
“그래?”
“예. 제가 황태자인 것을 알고도 암살을 지시했습니다. 한 나라의 공작이, 그것도 핏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그 공작이 황태자의 암살을 지시했다면 그가 무슨 생각을 했건 간에 그 의도를 좋게 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건 맞지.”
여전히 웃고 있는 아버지를 잠시 바라보았다.
왜 이러시는 걸까.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걸까.
“아들.”
“예.”
“만족해?”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전체적으로 다.”
잠시 가만히 있었다. 전체적으로 만족스럽냐는 아버지의 질문이 뭔가 묘했다.
다른 뉘앙스가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도관을 정리하라는 명령은 완벽하게 수행했습니다. 제가 황제가 되었을 때 제 앞길을 막을 이들도 정리했습니다. 예. 전체적으로 만족스럽습니다.”
내 어깨를 짚고 있던 아버지의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잠시 어깨를 바라보았다. 따듯하다고 해야 할까. 온기가 맺혀 있는 것 같다.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계신지.
아버지께 물었다.
“걱정되십니까?”
“뭐가?”
“제가, 고모님을 해할까 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내 행보를 보면 나는 군나르 가문을 멸문시켰다.
아버지는 바보가 아니었고, 앞서 이야기한 대로 나는 황권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했다.
이건 정말 만약의 경우인데, 만약에, 정말 만약에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죽고, 거기에 나까지 죽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발란티에 공작가의 발란티에 공작, 내게는 고모 되시는 엘리자베스 발렌타인과 군나르 공작가의 데니스 군나르가 황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일 것이다.
다른 공작가는 이 상황에 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조력은 가능하겠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 피 때문에.
그렇다. 피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황권에 도전할 수 있는 세력.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지금 군나르 가문이 사라졌다. 황권에 도전할 수 있는 세력은, 이제 발란티에 공작가가 유일하다.
아버지는 내게 묻고 있는 것이다.
내가 발란티에 공작가를 지금의 군나르 공작가처럼 멸문시킬지를.
당연한 소리지만 내가 발란티에 공작가를 무너뜨릴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아버지와의 관계도 지금과는 달라질 거다.
“아버지.”
“말해. 아들.”
“저는 군나르 공작가를 해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
“예. 군나르 공작가나 발란티에 공작가, 둘 다 마음속으로 경계 정도는 항상 해 왔지만 단 한 순간도, 기회를 봐서 그 가문들을 무너뜨려야겠다는 생각 같은 것은 맹세코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진심이다.
“아버지, 저는 황제라는 자리는 고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독이라……. 틀린 말은 아니지.”
“고독함에 져서는 안 됩니다. 세상 모두에게 외면받는 선택이더라도 황제는 해야 합니다. 마음속으로 적을 정했다 하더라도 내색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밀로스 제국은 작지 않습니다. 그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는 그 누구보다 독해야 하고 그 누구보다 단호해야 합니다. 아버지.”
“응.”
“군나르 공작가는 선을 넘었습니다. 저를 죽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가슴속에 품어 놓았던 경계를 그대로 가지고만 있었을 겁니다. 황제 근위 부대로서 선을 지키며 제 역할에만 충실했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행동해야 했고 감히, 제국의 정당한 후계자를 죽이려던 세력에게 철퇴를 내려야 했습니다.”
묵묵히 말을 이었다.
“고모께서,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황권에 도전을 하려는 낌새가 보인다면, 그리고 그것을 실천한다면. 안타깝지만 저는 고모를 적으로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것보다 나는 진심을 말하는 것을 택했다.
솔직히 이 자리에서 그냥, 저는 고모를 절대로 적대할 생각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누나고, 아버지가 누나를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제가 확실히 아는데 설마 그러겠습니까, 하비 발란티에가 욕심을 내도 그냥 가볍게 타이를 겁니다, 제가 발란티에 공작가를 힘으로 어떻게 할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이렇게 말했더라면 이런 분위기도 아니었을 거고 이 불편한 대화가 조금은 일찍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솔직해지고 싶다.
그래서 다 말했다.
내 말을 전부 들은 아버지는 묵묵히,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묘했다.
왜 저렇게 바라보시지.
“잘 컸네.”
“…….”
“황태자로서, 그리고 황제로서는 정말 잘 컸어. 지금 당장 선위를 하고 싶을 정도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뭔가, 되게 슬픈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보다 보니 확신이 생긴다. 아버지는 지금 매우 슬퍼하고 계신다.
왜? 대체 왜?
설마 군나르 공작가가 무너져서? 그럴 리 없다. ‘그딴 일’에 아버지는 슬퍼하지 않는다.
“발렌타인이 없으니까 하는 말인데, 가끔 이런 생각을 해.”
“어떤 생각이요?”
“내가 황제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 생각.”
“…….”
“그랬더라면 네가 지금처럼 황제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조금 더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지금 진심이었다.
“지금의 너에게 실망했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야. 오히려 너무 좋지. 너무 좋아서, 미안하기도 해.”
아버지가 내 얼굴을 한 손으로 쓸어내렸다.
“나와 발렌타인의 욕심에, 너를 희생시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
“예.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아버지.”
“응, 말해.”
“슬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
“아버지가 황제가 아니었더라도, 저는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아들이기도 하고요.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가?”
“예. 결국 저는 힘을 얻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수련을 하고, 또 했을 겁니다. 그리고 만인의 위에 서려 노력을 했을 겁니다. 아버지가 황제가 아니었다면 저는 건국을 했을 겁니다. 그러니 슬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지금의 제 역할에 만족합니다. 제가 황제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건, 저 개인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러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아버지가 웃는다. 내 말이 진심이라는 것은 충분히 전해졌을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버지의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아버지의 말대로 아버지가 황제가 아니었더라면 많은 게 달라졌을 거다.
아버지가 의도한다면 나는 정말 평범하게 살았을 수도 있다.
어느 마을 같은 곳에서 오순도순, 평범하게 살며 농사도 짓고, 과일도 가꾸고.
아마 그렇게 살았을 수도 있다.
황태자라는 자리는 아버지가 만든 거다. 나를 황제로 만든 것도 내가 아니라 아버지다.
“아버지는, 후회하십니까? ‘과거’에 그러셨던 것처럼?”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살아온 모든 세월, 단 한 순간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괘념치 마십시오.”
아버지가 웃는다. 나도 웃었다.
아버지가 물었다.
“아들, 오랜만에 안아 봐도 되나?”
“언제는 묻고 안으셨던 것처럼 말씀을 하시네요.”
아버지는 말없이 나를 끌어안으셨다.
우리는 잠시 그렇게 있었다.
내 등을 토닥이며, 아버지가 말했다.
“동대륙의 재건이 끝나면 그때 선위해 달라고 했었나?”
“예.”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선위하고 싶은데, 아쉽네.”
천천히 아버지가 나를 떼어냈다.
“가 봐. 셀이 기다리겠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 동대륙으로 넘어가려던 나는 잠시 멈칫했다.
다시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동대륙의 일은 최대한 빨리 끝내겠습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아닙니다. 빠르게 끝내고, 아버지랑 어머니를 편히 쉬게 해 드리겠습니다.”
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웃었다.
확실히 피는 못 속이나 보다.
나는 웃음이 많다.
아버지도 웃음이 많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아버지.”
“그래, 가 봐.”
나는 곧장 동대륙으로 넘어갔다.
나를 반기는 영월과 타노스, 유설하 등등.
미안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나는 동대륙 감찰청으로 사용하던 그 건물로 향했다.
마당에서 수십이 넘는 드래곤들에게 무언가를 명령하는 스승님이 보인다.
그쪽으로 다가갔다. 나를 눈치챈 스승님이 고개를 돌린다. 무언가 말하려 하는 것 같았지만 의미 없었다.
들리지도 않았다.
그대로 스승님을 끌어안았다.
꽉.
스승님의, 아니, 셀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다녀왔습니다. 스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