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54)
954화. 급식
“네. 지금부터 우리는 세 팀으로 나뉘어 세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될 겁니다.”
말 그대로였다.
세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한다.
이것도 전에 들은 윤호삼촌의 업무 방식에서 착안한 아이디어였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팀을 꾸린다고 했지.’
팀원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해당 프로젝트를 잘 수행할 수 있는 팀원들이 뭉쳐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거다.
그와 비슷한 논리였다.
따라서 나는 선택지를 세 개로 좁혔다.
서너 명 남짓의 인원이 진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 말이다.
‘장점은 확실해.’
팀으로 하는 작화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질 수 있다.
그게 첫 번째 장점이다.
두 번째 장점은 부담이 적다는 거다.
바로 대규모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것에 비해 부담이 명백하게 적었다.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가 적으니까.
그러나 아무런 긴장감이 생기지 않는 건 아니다.
하나의 작화팀에서 또다시 팀을 세 개로 나눠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건 한 가지 사실을 시사한다.
‘경쟁의식.’
그렇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필연적으로 경쟁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질주하는 걸 보면서 나는 걷고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개인이 아닌 팀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경쟁심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부분이었다.
‘좋게 발현되면 의욕을 고취하지.’
그게 세 번째 장점이었다.
너무 과열되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 점에 관해서도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아직 팀원들은 얼떨떨한 표정이다.
그럴 만도 했다.
기존 팀원들은 새 팀원들이 들어왔으니 당연히 다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생각했을 테고, 새 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이제 나눠드릴 건 우리 작화팀에 들어온 제안 중, 제가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세 개의 프로젝트입니다. 그리고 1부터 3을 표기할 수 있는 용지도 함께 나눠드리겠습니다.”
바로 나는 팀원들에게 나눠줬다.
“궁금한 점이 있다면 뭐든지 편하게 질문해주세요.”
가장 먼저 입을 뗀 건 최표식이었다.
“그럼 이 용지에는 선택을 하는 건가요?”
“맞습니다. 주위 선택을 참고할 필요는 없고 프로젝트 내용을 보고 소신껏 선택해주세요.”
굳이 말 안 해도 기존 팀원들은 그렇게 할 거 같지만 말이다.
공교롭게도 다들 그랬다.
무언가를 선택함에 있어서 주위 영향을 크게 받는 타입은 아니었다.
우영이는 말할 것도 없고.
스륵.
벌써부터 마이웨이로 프로젝트 용지를 넘기고 있다.
궁금하네.
어떤 프로젝트가 우영이 마음을 사로잡을지.
“그럼 초록님은……”
“저는 기본적으로 인원이 적은 팀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하지만 정식 팀원이라기보다는 세 팀을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할 거라 보시면 됩니다.”
이번에 한해서 나는 팀 전체를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할 생각이었다.
프로젝트 매니저라 해야 할까.
혹여나 적응을 힘들어하는 팀원들을 돕고, 방향성이 흔들리는 팀이 있다면 바로잡아주는 역할이었다.
납득했다는 듯이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시간은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천천히 읽어보시고 결정해주시면 됩니다.”
그에 따라 팀원들은 천천히 프로젝트 용지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각기 다른 세 개의 프로젝트.
미리 말해 둔 탓인지 주위를 살피는 팀원들은 없었다.
오로지 내용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기대가 되네.’
당연한 얘기지만 나는 세 프로젝트의 내용을 전부 알고 있었다.
꽤나 재미있었다.
그 상태로 팀원들의 표정을 관찰하는 건.
놀란 얼굴이 스치기도 하고, 골똘히 고민하는 표정이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차라리 알아서 팀을 꾸리게 하는 편이 좋지 않았냐고.
‘그것도 괜찮았겠지.’
하지만 이 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결국은 나중에 호흡을 맞춰야 하는 팀원들이다.
팀원을 선택한다면 나와 호흡이 잘 맞을 거 같은 사람을 선택해서 팀을 꾸릴 확률이 높다.
나만 해도 그랬다.
오래 호흡을 맞춘 우영이를 가장 먼저 선택하겠지.
‘결과는 가장 좋을 수 있어.’
기본적으로 나는 결과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실이 그렇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과정을 봐주지 않으니까.
허나 이번에는 달랐다.
아마 결과보다 과정에 지향성을 두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둘 다 좋은 게 제일 좋긴 하지만.’
기존 팀원들과 새 팀원들이 섞여서 호흡을 맞춘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지향점이었다.
‘역시 오래 걸리는군.’
나름대로 세 개의 프로젝트의 밸런스는 완벽하게 맞췄다고 생각한다.
그 많은 선택지 중에서 세 개를 고른 거니까.
그래서인지 상당히 긴 시간이 흘러갔다.
“내면 되나요?”
가장 먼저 나선 건 우영이였다.
역시 다른 사람이 어떤 걸 선택할지는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다.
“네.”
우영이를 시작으로 팀원들이 하나둘 용지를 제출했다.
“햐.. 진짜 어렵네요.”
“근데 행복한 고민 아니에요? 세 개 다 너무 매력 있는 선택지라서.”
“맞아요.”
끙끙 앓으며 고민하던 조인애가 마지막으로 용지를 제출했다.
그렇게 내 손에 열한 장의 용지가 들어왔다.
툭.
사실 조금 걱정이 있긴 했다.
인원수를 억지로 맞춘 게 아니다 보니 팀원들이 하나의 선택지로 쏠리는 경우가 발생하지는 않을까 하고.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밸런스가 맞다고 해도 취향이 겹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나뉘지.’
정확히 3, 4, 4였다.
경리인 하나씨를 제외한 열한 명이 거의 정확하게 3등분을 이룬 거다.
이어서 멤버 구성을 확인했다.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 하하……”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앞으로 구도가 상당히 재미있어질 거 같았다.
***
선화초등학교.
연시레지월이 한자리에 모였다.
다섯 명이 모일 수 있는 장소는 학교에서 두 군데였다.
교장실 또는 음악실.
지금은 교장실에서 다도를 즐기고 있었다.
“.. 허허.”
교장 강덕호의 미소.
왜일까.
원탁에 앉아 찻잔을 기울이는 아이들의 모습만 봐도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뭐라고 해야 할까.
‘.. 그래.’
과거에 읽었던 소설.
내로라하는 꼬마 영애들이 모여서 차를 마시는 거 같다.
막상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귀엽기 그지없지만.
“어제도 운동했어, 월아?”
“응, 예은이랑 같이 했다! 어제는 가볍게 세 바퀴만 돌았다.”
“세, 세 바퀴..?”
그게 가벼운 거라니.
고개를 끄덕이며 월이는 말했다.
“연두 니는 뭐 했는데.”
“당근마켓에서 손님들이랑 대화했어! 옷을 사고 싶다는 손님 두 명이 찾아왔거든……”
“오.. 두 명이나?”
“응..”
조금은 풀 죽은 목소리로 연두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한 손님은 대답이 없어……”
“개안타, 개안타! 원래 그런 기다. 오는 손님 안 막고, 가는 손님 안 잡고. 일해일비할 필요 하~나도 없다!”
어디선가 멋진 말을 배워 온 월이였다.
시은이는 갈등했다.
‘일해일비’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일희일비’로 정정하고자 하는 욕구가 치솟았으니까.
월이가 민망해할까 봐 간신히 참긴 했지만.
“그, 그렇구나..”
“시은이랑 레나는? 니네는 어떻노. 니네도 당근마켓 시작했다 안 캤나?”
레나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찾아왔서! 손님!”
그렇다.
레나네 상점도 이제 막 활동을 개시한 참이었다.
시은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도. 그래서 오늘 만나기로 했어.”
“진짜?”
“응.”
지우가 얘기했다.
“머, 멋지다.. 벌써부터 가게도 만들고……”
그러자 연두가 말했다.
“지우도 할 수 있어!”
“응?”
지우는 무리라는 듯이 얘기했다.
“나, 나는 예쁜 옷도 많이 없구……”
무엇보다도 손님을 직접 만나야 한다는 게 무서웠다.
“괜찮아! 꼭 옷이 아니어도 되니까..!”
“으, 응?”
“옷이 아니어도 당근마켓에서는 뭐든지 팔 수 있어! 그러니까 지우도 생각해봐.”
연두는 생긋 웃으며 덧붙였다.
“지우가 팔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같이 나가줄게!”
“저, 정말?”
“응!”
옆에서 레나와 시은이, 월이도 동참했다.
“나도!”
“나도 같이 나가줄게.”
“뭐 어렵겠노.”
용기가 생겼다.
친구들과 함께라면 뭐든지 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강덕호는 실소를 지었다.
당근마켓 거래를 하러 나갔는데 연시레지월 다섯 명이 나오면 어떨까 상상해 봤으니까.
그런 와중에 레나가 툭 내뱉었다.
“언제 올까?”
“응?”
“피디님.. 언제 데리러 올까?”
아이들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레나가 뭘 얘기하는지.
“오도이촌?”
“응!”
“레나는 오도이촌 빨리 하고 싶어?”
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거기에는 진짜진짜 마싯는 꿀떡도 있다고 했고..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게 있다고 햇스니까!”
“마, 맞아!”
“그리고.. 또 너희들이랑 여행 가고 싶어!”
연두도 배시시 웃으며 얘기했다.
“아빠도 초대하기로 했어……”
“아저시?”
“응.”
그렇다.
아이들은 오도이촌의 꿈에 젖어있었다.
아직 김성목 피디가 얘기한 시골집의 환상에 젖어있는 상태였으니까.
“.. 빨리 가고 싶다아.”
아이들은 몰랐다.
그 환상이 생각보다 빠르게 산산조각 날 거라는 사실을.
***
급식 시간.
밥을 먹기 싫어하는 예은이에게 있어서는 가장 싫은 시간이기도 했다.
안 먹을 수도 없었다.
초등학생에게 있어서 급식은 선택이 아닌 의무였으니까.
슥.
특히나 예은이는 요주의인물이었다.
몇 번이나 점심을 거르려다 들킨 경우가 있었기에, 담임인 김수희의 시선은 항상 예은이를 향하고 있었다.
따라서 체념했다.
급식을 받고 괜찮은 메뉴만 골라 먹고 남기는 식이었다.
오늘도 급식 시간이 찾아왔다.
“.. 윽.”
예은이가 얼굴을 찡그렸다.
이 정도면 거의 습관성 급식 혐오였다.
슬쩍 선생님 쪽을 봤는데 그대로 눈이 마주쳤다.
“……”
옅은 미소를 띠는 선생님을 보고 예은이가 생각했다.
피하기는 글렀다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두가 다가와서 말했다.
“예은아! 같이 줄 서자!”
역시 예은이를 챙기는 건 연두였다.
울상이 된 채로 예은이는 연두를 따라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유는 어제저녁에 한 조깅 때문이었다.
‘안 가! 오늘은 절대 안 갈 거라구!’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이 가는가?
그 예은이가 중2병 컨셉마저 버리고 문 앞에서 나오지 않고 버틸 정도였다.
월이는 말했다.
‘걱정 마라. 오늘은 진짜 가볍게 할 거다! 진짜다!’
그 말을 믿었다.
허나 간과한 게 있었다.
월이의 ‘가볍게’와 예은이의 ‘가볍게’의 기준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결국 세 바퀴를 돌았다.
후유증은 지금까지 남아있었다.
예은이는 다짐했다.
‘이제 절대 안 나가.’
계획도 세웠다.
월이가 오면 바로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는 거다.
바보 언니도 들어올 수 없도록.
오늘 급식당번은 석호와 재호였다.
“조금만 줘.”
그런데 웬걸?
석호는 밥을 한가득 급식판 위에 얹어줬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보니 석호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안 돼, 허예은.”
“.. 뭐?”
“많이 먹어야지. 넌 너무 말랐다고.”
흡사 드라마 남주의 대사였다.
막상 의도는 예은이를 놀려먹으려는 장난기 가득한 심보였지만.
“아, 아니……!”
예은이가 뭐라 말하려는 사이에 급식판이 또 한 번 출렁였다.
시선을 내린 예은이는 경악했다.
나물이 한가득이었다.
다시 고개를 드니 보이는 건 재호의 인자한 웃음이었다.
“나물을 많이 먹어야 쑥쑥 커요!”
“빠, 빨리 덜어줘!”
“어허! 나물에 비타민이 얼마나 많은데요! 뒷사람 기다리니까 빨리 이동하세요!”
정말이지 어디서 본 건 기가 막히게 킹받게 써먹는 두 녀석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예은이는 급식판을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으, 으으……”
양이 평소의 두 배였다.
원래도 다 못 먹고 남기는데 이걸 어떻게 다 먹으란 말인가.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급식 남기지 말기!
칠판에 쓰인 문장.
선화초등학교에는 ‘급식 남기지 말기’ 주간이라는 게 있었다.
그게 바로 이번 주였다.
“하아..”
한숨을 내쉰 예은이는 젓가락을 들었다.
괜히 열 내지 말자.
어차피 다 먹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아예 안 먹을 수는 없으니 평소처럼 조금만 먹고 남기는 거다.
마침 선생님이 바라보고 있었다.
슥.
예은이가 나물을 집어 올렸다.
선생님이 볼 때 나물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암.”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몇 번 입을 오물거리고 나서 예은이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아서였다.
“왜.. 왜 나물이 맛있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나물이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