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953)
953화. 첫 행보
영상이 올라갔다.
일부러 편집자들에게 부탁해 상점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누렁이네 옷가게.
그 이름을 공개하는 순간 손님이 미친 듯이 밀려올지도 모르니까.
‘편법을 쓰고 싶지는 않아.’
그런 방식으로 손님을 늘리고 싶지는 않았다.
연두도 마찬가지일 거다.
직접 상점을 운영하며 한 단계 한 단계 발전하는 데 의의가 있으니까.
지켜보면서도 뿌듯했다.
소소한 변화에 행복해하고 보람을 느끼는 연두의 모습을 보는 게.
그렇다면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우연히 ‘누렁이네 옷가게’라는 이름을 보고 특정할 수도 있지 않냐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래서 당근마켓에 서치해봤다.
누렁이도 검색해보고, 이든 관련 키워드도 검색해봤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 두 개의 정보를 가지고 특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안심했다.
설사 특정된다고 하면 잽싸게 상점명을 바꾸면 되는 일이고.
달칵.
이번 영상도 장난이 아니었다.
두 편집자는 내 의도대로, 아니 그보다 더 재밌는 영상을 만들어냈다.
눈에 들어오는 댓글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두랑 당근마켓?
-이 조합 뭐냐고!
-진짜 상상도 못한 조합인데 너무 잘 어울려서 닭살돋았다……
-ㄹㅇ 아까워서 못 누르는 중
-진짜 무슨 기분일까. 당근마켓 거래하러 갔는데 연두가 기다리고 있으면.
-난 과장없이 기절함.
역시 소재 자체만으로 많은 연두부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당근마켓과 연두, 내가 보기에도 신기할 정도로 어감이 잘 어울렸으니까.
아쉽게도 영상에 만났을 때의 리액션이 담겨있지는 않았다.
‘촬영 허가는 나중에 받았으니까.’
그러나 담겨있었다.
당근마켓을 개설할 때의 장면과, 촬영 허가를 받은 이후의 장면들이.
-와… 옷 하나하나 볼 때마다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니까. 다 연두가 입었던 옷들이자나.
└지금 뭔가 추억여행 하는 기분임.. 마치 어른제국의 역습에서 짱구아빠 회상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유 뭐냐고.
└그래서 어디서 살 수 있는 거죠?
└연두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야. 칠백원은 진짜 아니야.
└급발진 너무 귀여워 ㅋㅋㅋㅋㅋㅋㅋ 십만원! 아 미치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실은 급발진 아닌 게 그 가격이어도 삼 ㅋㅋㅋ
└못 참지 ㅋㅋㅋㅋ
찍어두길 잘했다.
떡하니 거래 장면만 올렸다면 맥락 파악이 어려웠을 테니까.
뭐든지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결’ 단계에 갔을 때의 임팩트가 훨씬 더 크게 다가오니 말이다.
따라서 빼놓을 수 없었다.
‘결’에 대한 반응도.
-잠깐만.. 뭐냐, 이 졸귀는?
└하얀이?
└빨간자켓에 집착하는 거 봐 ㅋㅋㅋㅋ 하긴 빨간색 한창 좋아할 나이긴 하지.
└비툴즈에 대한 철학 뭔데 ㅋㅋㅋㅋㅋㅋㅋ 논문 써도 될 듯.
└메모해라. 주황색은 오렌지맛이 아니라 당근맛이다.
└그 와중에 연두 착한 거 봐. 하나만 달라니까 색깔별로 다 주네.
└새삼스럽게…… 연두잖아.
-근데 옷 너무 잘 어울린다……
└왤케 흐뭇하냐. 연두가 예쁘게 입었던 옷 하얀이가 입는 거 보니까.
└예쁘게 입어줘, 하얀아……
└일단 저는 연하코인 탑승합니다.
└둘이 케미 너무 좋음.. 자주 만나줬으면..
└연두는 언니가 돼도 왜 이렇게 귀엽지? 대체 어떻게 해야 안 귀여운 거야……
└그런 건 없어요.
벌써부터 연하케미 열차에 탑승하는 연두부들이 많았다.
꽤나 기대가 된다.
내 눈에도 이 열차는 떡상각이 보이는 거 같으니까.
-저도 탑승합니다
그래서 슬쩍 올라탔다.
꽤나 즐거웠다.
아무도 내가 ‘초록’인 걸 모르는 상태에서 즐기는 연두부 생활은.
***
저번 프로젝트를 마치고 수많은 곳으로부터 협업 제안이 들어왔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수많은 선택지 중에 무엇을 할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입장에 놓여있다는 뜻이다.
내 입으로 말하기 머쓱하긴 하지만.
‘사실이 그렇지.’
그에 따라 나는 꽤 오래전부터 분류작업을 시작했다.
받은 제안들을 검토하고 협업 가능성이 있는 제안을 추리는 과정이었다.
기준이 뭐냐고?
최대한 프로젝트의 내용 자체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달리 말하면 회사의 이름값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했다는 뜻이다.
물론 이름있는 회사와 협업을 해서 성공한 적도 있었다.
허나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지혜씨와 함께 작업했던 한글 학습지 케이스가 그랬고, 우영이와 함께 작화에 참여했던 동화책의 케이스도 그랬다.
심지어 동화책의 경우는 장르까지 비주류였다.
‘내용이 매력 있었지.’
그 사실 하나만으로 협업을 결정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비주류 장르에 참여해서 흥행을 기록했다는 사실로 인해 성취감을 비롯해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 것들을 고려한 선택은 아니었지만.
그로 인해 깨달았다.
‘가장 중요한 건 내용이야.’
나머지는 부수적인 것들이었다.
선택은 중요하다.
선택권이 내게 있다고 해서 갑을 관계가 정해지는 건 아니다.
협업에 있어서 그런 걸 따지는 순간에, 그 관계는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낡은 줄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건 선택과 집중이었다.
어느 곳과 협업할지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우리의 역할을 수행하는 거다.
나머지는 하늘에 맡긴다.
실패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최선을 다했다면 말이다.
내 손을 떠난 일의 성패를 내가 결정할 수는 없다.
한 번의 실패가 영원한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으니 좌절할 필요 역시 없다.
그게 지금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마인드세팅이었다.
스르륵.
분류를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매력 있는 제안들이 많았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우리 작화팀은 나름 연속적인 성공을 거뒀고 그 결과는 외부에 알려졌다.
가치가 올라갔다는 뜻이다.
원래는 이름값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결과로 증명해낸 상태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기준에 따라 추려냈음에도 불구하고 열 개가 넘는 선택지가 남아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그 답은 이미 정해놓은 상태였다.
슥.
작화팀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개로 나뉜다.
많은 인력이 투입되어야 하는 대형 프로젝트, 그리고 소규모 인원으로 진행이 가능한 소형 프로젝트.
그렇다면 누군가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할지 모른다.
이제 인력이 늘어났으니 목표를 크게 잡고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논리적으로 틀린 얘기는 아니다.
‘열세 명.’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어지간한 대형 프로젝트도 진행할 수 있는 숫자였다.
게다가 팀원들에 대한 믿음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반대였다.
달칵.
추린 제안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과감하게 전부 배제한다.
이유가 뭐냐고?
간단하다.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이제 막 일곱 명의 새로운 팀원들이 합류한 상태다.
‘다들 뛰어난 팀원들이지.’
그러나 그건 개인 능력에 한해서였다.
우리는 작화팀이다.
팀원들과 손을 맞춰야 하는 팀플레이의 영역에 있어서는 검증된 바가 하나도 없었다.
설사 모두가 팀플에 익숙하다고 해도 시행착오는 필수적이다.
‘도연씨만 해도 그랬지.’
서도연.
그녀는 홍원대 수석이었다.
4년간의 대학 생활을 통해 팀플에는 적응할 대로 적응한 상태이고, 심지어 진상인 팀원들을 이끌어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정도로 역량이 뛰어났다.
그럼에도 작화팀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다.
처음 부딪히는 장르에 적응하기 어려워했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대형 프로젝트.’
당연히 욕심이 있었다.
작화팀 수장으로서 그건 로망 같은 거니까.
허나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모든 인력이 투입될 테고,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될지도 모르고, 그 규모에 걸맞은 수많은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다.
실패한다면?
그 리스크는 그대로 떠안게 된다.
내 욕심 때문에 이제 막 들어온 팀원들에게 그 무게를 짊어지게 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
‘서두를 이유는 없어.’
그 리스크를 짊어지며 서두를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내 목표는 지금 당장의 성공이 아니라, 끝내 최고의 작화팀으로 거듭나는 거니까.
새로운 팀원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개인이 아닌 팀으로 일한다는 방식 자체에 적응할 시간이 말이다.
만약에 우영이가 아무런 경험 없이 작화팀에 들어갔다면 지금처럼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을까.
장담할 수 있다.
‘절대 불가능했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영이와 함께 진행한 여러 프로젝트가 개인이 아닌 팀원으로서의 나를 성장시켰다.
따라서 필요한 건 하나였다.
새로운 팀원들이 팀플에 적응하고 팀원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나는 그 시간을 주고자 한다.
“.. 좋아.”
이미 그 방향성은 정해져 있었다.
***
다음날.
미팅룸에 팀원들이 모였다.
늘어난 팀원 수에 맞춰 전보다 더 규모가 커다래진 미팅룸이었다.
한 명 한 명 바라봤다.
‘오늘이 세 번째인가.’
내 기억으로는 새로운 팀원들의 세 번째 출근날이었다.
그동안 뭘 했냐고?
굳이 말하면 앞선 두 번의 출근은 기존 팀원들과 새로운 팀원들의 교류의 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특별히 작화팀다운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다.
‘대화를 했지.’
나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으로 이름을 잘 기억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팀원 이름을 헷갈려서 되겠는가.
이제는 확실히 기억했다.
특징과 함께 기억하니 훨씬 더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았다.
학원강사 출신 한혜주, 귀요미 윤서준, 바스키아를 좋아하는 신해수, 대장님 김동혁, 만화가 출신 주세종, 근육맨을 그렸던 조인애, 그리고……
“.. 헉.”
나도 모르게 입 밖에 헉 소리가 나왔다.
순간 헷갈릴 뻔했다.
마지막 팀원의 이름은 이도겸, 특징은 0에 가까운 존재감이었다.
‘…… 이러면 안 되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신기하게도 말을 하지 않아서 존재감이 없는 게 아니었다.
인사도 꼬박꼬박하고 대화에도 참여하는데 신기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지금도 그랬다.
자칫하면 그냥 넘어갈 뻔했으니까.
‘도겸씨.. 그래.’
다시 한번 머릿속에 각인했다.
자꾸 존재감이 없다고 생각하면 점점 더 그 생각이 확고해지는 법이다.
특징도 바꾸도록 하자.
표식씨가 유독 강하게 주장했던 팀원으로.
‘솔직히 잘 모르니까.’
내가 면접을 본 것도 아닌지라 정보가 거의 없었다.
그림도 아주 특색이 있는 건 아니었고.
함께 일하다 보면 금방 장점이나 특징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럴 거라 믿는다.
‘이렇게 일곱 명이지.’
나름 이틀에 걸쳐 교류하며 어색한 기류는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은 새 팀원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가득하다.
이유는 예상이 갔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실제로 그게 맞았다.
무엇을 할지 선택하는 게 시작을 의미한다면 그건 오늘이 될 테니까.
나는 천천히 운을 뗐다.
“자, 여러분.”
“네.”
“여러분 중에는 팀플에 익숙하신 분도 있고, 그렇지 않으신 분도 있을 겁니다.”
당연했다.
모두가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다르니까.
굳이 예상해보자면 서준씨나 해수씨, 그리고 만화가였던 세종씨는 팀플 경험이 비교적 적을 거다.
뭐, 딱히 중요하지는 않았다.
“이제 우리는 본격적으로 팀 프로젝트에 들어가게 될 겁니다.”
올 게 왔구나 하는 표정이 보인다.
여기까지는 예상대로겠지.
허나 내 이야기의 본론은 지금부터였다.
“하지만 우리 열세 명이 동시에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는 않을 겁니다.”
“……?”
이번에는 기존 팀원들의 얼굴에도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럴 만도 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기존 팀원들이 하나둘 입을 연다.
“잠시만요.”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다 같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아니라면……”
설마 하는 표정이 스친다.
빙긋 웃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부터 우리는 세 팀으로 나뉘어 세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될 겁니다.”
그렇다.
이게 내가 계획한 13인 완전체 작화팀의 첫 행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