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513
그렇기에 함께 달렸다.”
전쟁의 불길을 꺼트리고, 신들의 군세를 가르고, 만신을 떨어트리고, 기나긴 여정의 끝에 규율을 하늘에 새겨넣었다. 수많고 수많은 시련을 넘어 기어코 종착지에 도달한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바뀌었다.”
그녀가 새긴 규율은 세상을 따스하게 비췄고, 별의 아래서 인류는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인류는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향해 소원을 빌었으며, 별의 보호 아래서 번영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토록 바랐던 세상이 열린 것이다.”
열렸지만······.”
‘그곳에.’”
그곳에, 너는 없었다.”
오직 너만이 없었다.”
“······.””
요르문이 눈을 깜빡였다.”
흘러가는 기억 사이로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내리쬐는 햇살에 요르문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너진 백금 신전의 천장으로 햇살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시야가 좁았다.”
몸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수만년의 세월 동안 자신과 함께했던 용안(龍眼)과 별자리가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전능감 또한 마찬가지다. 마치 인간으로 돌아온 듯한 감각이었다.”
“오.””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르문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곳에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인간이 하나 있었다.”
“이제야 눈을 뜨네. 죽은 줄 알고 놀랐잖아요.””
라니엘 반 트리아스.”
자신을 굴복시킨 이 시대의 인도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를 올려다보며 요르문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강철도 깨부수는 주먹을 얼굴에 꽂으면 사람은 보통 죽는다네. 상식이지.””
“그래도 어찌 살아는 계시네요.””
“이걸 살아있다고 표현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런 것 같군.””
요르문이 길게 숨을 뱉었다.”
무너진 신전의 기둥에 그는 기대어 앉아 있었다. 몸에 두른 별자리는 바스러졌으며, 온몸에는 균열이 내달려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별자리는 곧 자신의 삶이나 마찬가지다. 별자리가 바스러진 순간, 자신의 몸 또한 붕괴하기 시작하겠지.”
“내가 진 모양이로군.””
“그냥 진 게 아니라 처참히 털리셨죠.””
“그러는 자네도 멀쩡해 보이지는 않다만.””
피투성이의 라니엘을 흘겨보며 요르문이 어깨를 으쓱였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녀의 말이 정확하단 사실은 요르문 또한 알았다. 패배했다. 그것도 처참하게.”
“규율을 완전히 가루를 내버렸더군.””
“그렇게 됐네요.””
“내 이리될 줄 알았으면, 진작에 금기를 어겨서라도 밟아 둘 걸 그랬어. 너무 여유를 부렸군.””
“그런 것 치곤 표정이 후련해 보이는데요?””
“티 나나?””
“좀 많이요.””
요르문이 고개를 숙인 채 웃었다.”
마지막의 순간 보고야 말았으니까. 라니엘의 눈동자에 비춘 지금의 규율이 어떤 형태인지.”
그곳에 요르문이 지키고자 했던 규율은 없었다. 그녀와 함께 저 하늘 위에 걸었던 규율은··· 이미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어쩌면, 자신은 그 사실을 옛적에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외면해왔던 것이겠지.’”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고.”
그녀가 남긴 유일한 흔적을 끌어안은 채 놓지 않으려 했을 뿐이리라. 결국 후배의 손에 의해 모든 걸 부정당하고 나서야 요르문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후우···.””
길게 숨을 뱉은 요르문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
자신을 내려다보는 라니엘에게 그가 짧게 말했다.”
“끝장을 보지는 않나?””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 조져서 뭐하게요?””
그리고, 하고 그녀가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무엇을?””
“알면서 물어보시네.””
라니엘이 손을 뻗었다.”
쭉 뻗은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푸르른 하늘이었다. 본래 요르문이 별자리를 띄워 놓았을 하늘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구멍을 향해 손가락을 늘어트리며 라니엘이 말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모습이지 뭐겠어요?””
“내가 그리 지키고자 했던 규율이 무너지는 모습을 바라보라니, 잔인한 말이로군.””
“그래도 보셔야죠.””
라니엘이 쓰게 웃었다.”
“인류의 부모 되는 이로서, 자식이 독립하는 모습은 봐야 할 거 아니에요.””
부모, 라.”
글레투스의 말이 떠올라 요르문은 침묵했다.”
탁.”
그 말을 마지막으로 라니엘은 요르문에게서 등을 돌린 채 걸음을 옮겼다.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라니엘의 등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요르문은 이내 입을 열었다.”
“멋있게 떠나려는 와중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 탑이 없어서 곤란한 상황 아닌가? 내 알기로 자네가 준비했던 탑은 모조리 박살 난 걸로 아는데.””
후배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될 수 있으면 안 꺼내려 했던 말이지만, 탑의 재료 삼을 것이 어디 없나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라니엘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 까닭이었다.”
“······.””
움찔, 하고 결국 라니엘은 멈춰 섰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요르문을 바라봤다. 정곡이었다. 저 하늘 위로 향할 길을 만들 바벨탑은 가니칼트와의 접전에서 모조리 박살 났었으니까.”
“···알고 계셨어요?””
정곡이 찔려 귀가 살짝 빨개진 라니엘이 어정쩡하게 걸음을 멈춰선 가운데, 요르문은 웃음을 흘렸다. 웃으며 그가 입을 열었다.”
“가져다 쓰게.””
요르문이 손끝으로 신전을 툭툭 건드렸다.”
“이 백금 신전 자체가 탑의 재료니까.””
“꼴이 말이 아니구만.””
들려온 목소리에 카일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무너진 신전의 파편에 등을 기댄 채 카일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그러는 너도 비슷한 것 같은데.””
“온몸이 쑤시긴 하지.””
비굴(非屈), 데스텔.”
혈전 끝에 고룡을 쓰러트린 그가 제 어깨를 두들기고 있었다. 만신창이인 카일 못지않게 데스텔 역시 상처투성이였다. 얼굴에 묻은 그을음을 쓸어내리며 데스텔이 길게 숨을 뱉었다.”
“저기도 얼추 끝난 것 같네.””
그가 손을 뻗어 백금 신전을 가리켰다.”
공간에 금이 가고, 풍경이 뒤섞이고, 하늘이 쪼개지고 비틀려 별세상이 되어버린 곳. 그곳에서 터져 나오던 충격파도 어느샌가 잠잠해져 있었다.”
“너나, 저 녀석이나 대체 뭐하는 놈들이냐?””
데스텔이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싸우고 있는데 대뜸 신전이 산산조각이 나질 않나, 하늘이 비스듬히 쪼개지질 않나, 풍경이 뒤섞이질 않나··· 마지막에는 무슨 유리창처럼 공간이 박살 나던데?””
“마지막 건 나도 뭔지 모른다.””
“마지막 빼곤 다 안다는 거구만.””
하여간 또라이 같은 놈들.”
그리 데스텔이 중얼거리고 있자니, 신전에서 누군가 걸어나왔다. 라니엘 반 트리아스. 그녀가 승리를 알리듯이 데스텔과 카일을 향해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쟤도 만신창이네.””
“용사의 고질병이지.””
그녀 또한 사람 몰골은 아니었다.”
그렇게 한자리에 모인 용사 셋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당장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환자들밖에 없었으니까.”
“이제 부상 때문에 축제 참가를 못했다는 게 거짓은 아니게 되겠어.””
“핑계 삼아 던진 건데, 진짜 그렇게 되긴 했네.””
“이럴 땐 너희의 재생력이 부러운데. 별빛 좀 빌려주면 안 되나? 이럴 때는 별빛의 재생력이 좀 간절해.””
카일의 농담 아닌 농담에 라니엘이 웃음을 흘렸다.”
“넌 사라한테 부탁하면 되잖아.””
“그것도 맞는 말이군.””
어깨를 으쓱인 카일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래서.””
카일이 말했다.”
“이젠, 뭘 할 생각이냐?””
“올라가 봐야지.””
라니엘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오랜 세월 하늘을 묶어 두었던 거대한 규율, 별자리가 흔들리며 만들어진 균열이 그곳에 있었다. 그 균열을 바라보며 라니엘이 말을 이었다.”
“저 위에서 나눠야 할 이야기가 있거든.””
별, 그리고 오랜 선배와 말이야.”
그리 중얼거리는 라니엘의 모습이 카일은 왠지 모르게 조금 멀게 느껴졌다. 요르문과 처음 마주했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초월자를 마주한 감각.”
“라니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