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56
〈 56화 〉 풀 수 있죠?(3)
* * *
홀로 남은 교수실에서 나는 테이블에 올려둔 종이들을 바라봤다. 내가 만든 시험지였다.
“흠···.”
시험지를 빤히 쳐다보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든다. 떠오르는 생각 중에는 의문도 섞여 있다.
‘내가 처음으로 문제를 만들어 봤던 게 언제였더라?’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확실한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란 것이다.
‘한 7년쯤 전에, 마학회 새끼들이 지랄할 때 하나 냈던 것 같긴 한데.’
아마, 차기 마탑주 시절이었을 거다.
내가 낸 논문에 사사건건 지랄하는 마학회 놈들이 있었다. 좀 많았다.
‘이건 가짜 논문이니, 과정이 생략된 논문은 가치가 없다느니···.’
대충 그런 식이었다.
그 아가리를 좀 닥치게 하고 싶어서, 악의 가득한 문제를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수십 개의 회로를 다 섞은 문제였지, 아마?’
작정하고 풀지 말라고 던진 문제다.
풀 수는 있는데, 시간을 뒤지게 오래 잡아먹는 그런 종류의 문제.
그리고 그 효과는 꽤 확실했다.
‘몇 대 난제이니 뭐니 하면서, 한 반년간은 조용했던 것 같기도 해.’
그게 내가 냈던 첫 번째 문제였다.
마학회에는 난제라고 기록된 문제.
옛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
그리곤 말없이 문제지를 들어 올렸다.
문제지를 들어 올리자, 흑색 마탑주가 남기고 간 말이 귓가에 맴돈다.
난이도를 좀 낮추는 게 좋지 않을까 싶네.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마학회에서 내는 난제 급이라네. 학생들 수준에는 힘든 문제이지 않겠나?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그 문제랑 같은 난제라고?”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서, 좀 억울한 평가였다.
‘그때처럼 악의를 담뿍 담지도 않았고, 풀 수 있게끔 1번에서 풀이 방법을 제시해줬는데···.’
난제라니.
‘풀면 풀리지 않나?’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교수들이 참고하라고 동그라미 쳐둔 문제를 바탕으로 문제를 만들었지 않은가?
‘학생들 수준이 이 정도라며?’
이 정도 수준을 유지하되 난이도를 낮추는 방법.
그 방법이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으음.”
한참을 고민해 봐도 답은 안 나온다.
어딜 어떤 식으로 건드려야 할지 잘 감이 안 잡힌다. 애꿎은 종이만 구겨질 뿐이다.
“흠.”
이럴 때는 방법이 있다.
나는 시험지를 한 아름 품에 들었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승님한테 가자.’
모르겠으면 물어보면 된다.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2.
마나의 거래학 담당 교수.
로셀 반 트리아스.
그는 한 손에 쥔 종이를 바라봤다.
종이에는 여덟 개의 회로가 그려져 있다. 회로의 아래로는 문제가 요구하는 사항을 적어놨다.
로셀은 마학자이자 교수이며, 마탑의 원로다.
오랜 기간 누군가를 가르치고 평가해온 그답게, 문제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일은 익숙하다.
“·····.”
로셀은 눈을 가늘게 뜬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각 문제마다 새겨진 회로들이다. 회로에 오류가 있다면, 그것은 완성도를 운운하기 이전의 문제다.
로셀의 눈이 빠르게 회로를 훑어본다.
‘회로 자체는 완벽하군.’
곧장 결론을 내린다.
회로 자체는 더 볼 것도 없다. 회로의 정교함은 흠잡을 데가 없다. 완벽한 예시였다.
‘다음은 문제의 요구 내용이겠군.’
문제에서 요구하는바 역시 담백하다.
문제의 서술문을 꼬아 내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오롯이 그 내용으로만 승부를 본다.
과연, 그 담백함은 칭찬할 만 하다.
“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요소를 확인한 이후, 로셀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군.’
전체적인 평가를 내리자면 꽤 좋은 문제다.
요구하는 바가 명확하다. 예시는 완벽하고, 다루는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본에 대해 논한다.
마나의 거래학이 모든 학문의 기본이자, 기초로 깔리는 과목임을 감안했을 때 이 부분은 칭찬할만하다.
로셀은 문제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좋은 문제로구나.”
그리 말하며 로셀은 고개를 든다.
맞은편에 앉은 제자가 환히 웃는다.
“그렇죠? 괜찮죠?”
라니엘이 어깨를 으쓱인다. 역시 틀리지 않았다는 듯, 확신을 얻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그럼 이대로 제출···.”
“개소리 하지 말고 자리에 앉거라.”
“예?”
고개를 갸웃거리는 제자 녀석에게, 로셀은 딱 잘라 말했다.
“내가 좋은 문제라 했지, 언제 이대로 내도 된다고 하였느냐?”
“어···.”
“라니아, 혹 아론 학장이 진심으로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
“아뇨, 없는데요···.”
“이 문제를 그대로 제출하게 된다면, 볼 수 있을 거다. 보는 사람이 다 애처로워지는 그 모습을 말야.”
아론은 화를 낼 때 머리를 쥐어뜯는다.
얼마 남지 않는 머리칼이 공중에 날리는 걸 보고 있자면, 잘못한 게 딱히 없더라도 죄책감이 드는 법이다.
‘···이대로 이 문제를 냈다간.’
아마도,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명을 지르는 친구의 모습이 로셀의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후우···.”
로셀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자연스레 손바닥이 이마를 탁, 하고 친다. 어째 요즘 들어 이마를 치는 빈도가 늘어나는 기분이다.
“라니아, 네가 맡은 과목이 뭐지?”
“어··· 마나의 거래학이죠?”
“기초. 마나의 거래학 기초다. 기초란 말이다.”
로셀은 강조하여 말했다.
“기초! 이 못난 제자 녀석아. 기초 시험에 마학회에서나 낼법한 문제를 실어 놓으면 어쩌자는게냐···.”
한숨이 섞인 로셀의 목소리에, 라니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풀 만하지 않나요?”
“···뭐라 했느냐?”
로셀이 눈을 부릅뜨자 흠칫, 하고 라니엘이 몸을 움츠린다. 그러더니 품 안에서 주섬주섬 종이 몇 장을 꺼내 들었다.
“아니, 그게···.”
그리곤 기어가는 목소리로 답한다.
“다른 교수님들도 이런 수준으로 내더라고요. 그래서 이 정도 수준이면 풀만 하지 않나 싶었죠.”
“···어디 한번 보자꾸나.”
로셀은 받아든 시험지를 보았다.
별표가 쳐져 있는 시험지를 보며, 로셀은 혈압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환장하겠군, 정말.’
그 난이도가 말이 턱 막힐 정도다.
시험문제에 어찌나 열정을 쏟았는지, 꼭 연구 리포트를 보는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마음만 같아선 뭐라 한마디 하고 싶지만.
그들을 폭주하게 만든 주범이 눈앞에 있으니, 교수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후우···.”
한숨이 자꾸만 는다.
눈앞이 깜깜해짐을 느끼면서, 로셀은 펜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시험지에 달린 주석에 밑줄을 그었다.
폭주했다 한들, 아플리아의 교수들은 훌륭한 교육자다. 애당초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들어 놓친 않았다는 것이다.
그 증거가 바로 이것이다.
“자, 보거라.”
로셀은 제자의 눈앞에 시험지를 들이밀었다.
“밑줄이 그어진 부분 보이느냐? 이 교수들은 어려운 문제를 내더라도, 최소한의 방향성은 잡아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지.”
시험지의 밑에 달린 주석은 대략적인 풀이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를 보여주진 않더라도, 그 방향성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최소한의 힌트는 나와 있단 뜻이다.”
“힌트요?”
“그래, 힌트. 네 문제가 학생들을 바다 한복판에 나뭇조각 몇 개와 함께 던져놓고, 배를 만들어서 알아서 살아나와 보시오, 하는 것이라면···.”
툭툭, 로셀은 시험지를 가리켰다.
“이 교수들의 문제는 최소한, 그 옆에 모형은 가져다준단 이야기다. 보고 따라 할 수라도 있게.”
“오···.”
라니엘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잘 모르겠단 느낌이었다.
“어찌 됐든 말이다.”
로셀은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말했다.
“풀 수는 있게 만들어야 한단 소리다. 그 방법조차 짐작할 수 없는 문제는, 학생들의 의욕을 역으로 꺾어버린다.”
그리곤 결론을 입에 담았다.
“요컨대, 난이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단 소리다.”
“난이도를 어떻게 조절하는데요?”
“문제 자체를 간단히 만들거나, 풀이 방법에 대한 힌트를 문제에 넣어두거나··· 뭐, 그런 식이겠지.”
라니엘이 입가를 매만진다.
“힌트, 풀이 방법···.”
그렇게 중얼거리는 제자의 모습을 보며, 로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난번 수업으로 교육자로서 얼추 감을 잡아가나 했더니···.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하나가 문제로군.’
문제가 쉬지 않고 튀어나오는 기분이다.
“아.”
문득 라니엘이 탄성을 내뱉었다.
무언가를 깨달은듯한 표정이다.
“힌트를 주면 문제가 좀 어려워도 된단 건가요?”
저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로셀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왜 그런 결론이 나오는 것이지?’
로셀은 굉장히 떨떠름한 표정으로,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므로.
“···일단은 틀린 말은 아니구나.”
“그리고, 스승님이 문제 자체는 괜찮다고 하셨죠? 문제에 오류는 없고, 의도는 좋다고.”
“그렇게 말하긴 했지.”
“그럼 문제는 그대로 두고, 여기에 제약 회로를 그리듯이 제약을 더 해 문제 자체의 코스트(Cost)만 낮추면··· 되는 게 아닐까요?”
로셀이 침묵했다.
라니엘은 계속해서 말했다.
“결국에 수준이 높은 거니까?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끔 문제의 수준을 낮추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제자를 보며, 로셀은 머리가 아득해짐을 느꼈다.
‘사고방식이 다르다.’
일반인과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
자신과 다른 것을 보았을 때,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한들 잠시 할 말을 잃고 마는 법이다.
로셀은 할 말을 잃었다.
“문제 자체를 주문이라고 보면··· 제약 회로는 여기서 힌트가 되겠네요.”
“···그렇겠지.”
“그럼 한번 해볼게요.”
무엇을?
그렇게 묻기도 전에 라니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도대체 뭘?
“···어딜 가느냐?”
“다음 수업 개요 짜려구요.”
“개요는 이미 짜두지 않았느냐?”
“문제에 대해 설명하려고요. 문제 풀이를 아예 설명해두면, 난이도를 낮추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그리 답하며 예쁘게도 웃는다.
“괜찮지 않나요?”
그 해맑은 미소를 보며 로셀은 눈을 감았다.
“···그래, 내키는 대로 해보거라.”
3.
중간고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번 주가 시험 전 듣는 마지막 수업이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이전 수업들에서 다뤄왔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그 수업의 중요도는 안다.
하지만 과제에 시달린 학생들은 반쯤 몽롱한 정신으로 그 수업을 듣고 있었다.
과제가 끝나지 않아.
시험 준비? 그게 뭔데?
과제가 안 끝나···.
교수님이 밉다. 교수가 밉다···.
흡사 언데드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다.
그들이 중얼거리는 말들을 모아 담는다면, 훌륭한 흑마법의 매개가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학생들의 목소리에는 생기가 없다.
그 목소리에 담긴 건 절망뿐이다. 절망이 담긴 신음을 흘리며, 학생들은 복도로 걷는다.
학사공지에 뭐가 붙었다.
새로운 공지가 붙었다.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린다.
그 중얼거림에 학생들은 공지가 붙은 게시판 앞으로 모여든다.
수업 안내 공지.
그곳에 못 보던 공지가 붙어있다.
수업 안내 공지라니? 휴강이라도 한다는 것일까. 약간의 희망을 품으며 학생들은 공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그곳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학생들의 얼굴이 전보다 조금 더 어두워진다.
마나의 거래학 (기초).
담당 교수 : 라니아 반 트리아스.
라니아 반 트리아스.
아플리아의 새로운 악몽.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학생은 없다.
그 악랄한 과제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는 학생들이 있다. 많았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담담한 목소리로 과제를 내던지는 교수에 대한 악명은 자자하다. 양과 질을 동시에 챙긴 과제는, 어떤 면에서는 그녀의 스승인 로셀 교수를 능가한다.
아플리아의 절망.
그녀의 이름이 실린 공지를 보는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진 않는다.
‘또 뭘 하려고?’
그런 걱정이 앞선다.
그렇게 그들은 천천히 공지를 읽어 내린다.
“어?”
이윽고, 학생들의 눈동자가 크게 뜨인다.
“이게 뭐야?”
누군가 중얼거린다.
“이거.”
누군가 게시판을 가리킨다.
“시험지 아니야?”
게시판에 종이가 붙어있다.
학생의 수만큼 붙은 종이의 위에는 라벨이 붙어있다. 그 라벨을 학생들은 한눈에 알아본다.
“이거, 중간고사 시험지잖아.”
게시판에 중간고사 시험지가 붙어있다.
그것도 학생의 수만큼.
심지어 시험지에는 보안 주문이 걸려있다.
한 명에 한 장씩, 그리고 시험에 관한 내용을 발설하지 못하도록 금언 주문까지 곁들여져 있다.
그러니까.
진짜로 중간고사 시험지란 것이다.
“···뭔데 이거?”
누군가 그리 중얼거린다.
모든 학생의 마음을 대변한 한마디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