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6
〈 6화 〉 뭐야 돌려줘요(5)
* * *
마법사는 세상, 그러니까 별과 거래하는 존재들이다.
일으킬 현상에 걸맞은 ‘대가’를 지불하고, 별에게서 세상을 왜곡할 권리를 받아내지.
스승님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그 거래에 너무나도 익숙해졌기에 다들 까먹곤 하지.
그러나 라니엘, 천칭(Balance)을 다룰 줄 아는 너는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마나(Mana)란 결국, 별과 거래하기 위한 재화란 것을.
재화.
마나를 가볍게 여기지말거라.
마나는 지불되고, 또한 거래되는 것이다.
별과의 거래를 위한, 재화.
나는 그것을 되새기며 입을 연다.
“천칭(Balance).”
바라는 것을 말하라.
“저주가 삼킨 것. 내 몸에 스톡되어있던 주문들.”
대가를 지불하라.
나는 저울의 반대편에 매달 무게추의 이름을 발음한다.
“내 마나의 9할.”
지불된 대가로는 부족하다. 제약이 따른다.
그 제약이 무엇인지 자연스레 이해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상관없어.”
거래는 성립됐다.
몸에서 무언가 쑤욱, 빠져나가는 듯한 감각이 느껴진다. 두통과 함께 피로가 몰려온다.
치이이이익.
살갗이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팔뚝 위에 주문이 떠오른다. 나는 그 주문의 종류를 확인하곤 짧게 혀를 찼다.
‘이래서 하기 싫었는데.’
가성비가 더럽게 안 좋다.
빠져나간 마나에 비해 돌아온 주문들은 볼품없다. ‘일시적’이란 제약이 붙었음에도 삼중주문이 끝이다. 이 상황을 한 번에 엎어버릴만한 주문을 돌아오지 않았다.
‘마나 9할을 써서 새겼으면 팔뚝이 아니라, 온몸에 주문을 두르고도 남을텐데··· 하여간 별자리 새끼들.’
더럽게 쪼잔한 건 여전하다니까.
그래도 뭐 어쩌겠냐. 아쉬운 놈이 참아야지.
새어 나오는 한숨을 참으며, 나는 스톡(Stock)된 주문의 수를 가늠한다.
각 손가락에 하나씩, 10개.
양 손바닥, 양 팔뚝에 하나씩 새겨져 4개.
도합 14개의 주문.
다중 캐스팅(MultiCasting).
주문 가속(Magic Boost).
가속화(Haste).
근력 강화(EnhanceStrength).
그중 가장 기본이 되는 주문을 해방한다.
몸에 활기가 감돈다.
‘10개.’
나는 손을 쥐었다 폈다를 몇 번 반복한 뒤, 벽에 손을 가져다 댔다. 벽의 너머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벽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한 이쯤인가.’
적당한 위치를 잡고 손바닥을 벽에 밀착시킨다.
“후우.”
짧게 숨을 내뱉고, 눈을 가늘게 뜬다.
벽에 맞댄 손바닥을 기어 다니는 마나의 흐름을 느낀다. 그 흐름에 방향성을 부여한뒤, 팔뚝에 스톡(Stock)된 주문을 해방한다.
분쇄(Smash).
잿빛 마나가 빛을 뿜는다.
2.
백인대장, 오지렌은 생각한다.
이 상황이 어디서부터 어떤 식으로 잘못되었는지.
‘분명 명령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 어려운 명령도 아니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에서 검은 구슬을 찾아오라는 명령. 자신이 아끼는 병사 열 명 남짓을 데리고 오지렌은 임무에 나섰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무려 사천왕 님께서 직접 짜주신 결계가 아닌가?
한낱 인간들에게 뚫릴 일이 없다.
오지렌은 그렇게 확신했었다.
결계의 안에서 한명의 인간을 마주치기 전, 까지는 말이다.
오지렌은 떨리는 눈동자로 모여있는 병사들을 바라본다.
“으, 으힉! 대열을, 대열을 맞춰라!”
“백인대장님이 함께하신다! 물러서지마!”
“옵, 옵니다!”
“억!”
병사 하나가 비명을 지른다.
피를 토하며 엎어진다. 한 명의 병사가 엎어 질적, 그의 곁에 서 있던 다른 병사의 목이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인다.
눈 깜짝할 새에 두 명의 병사가 쓰러진다.
‘이게 뭐란 말인가.’
오지렌은 눈앞이 깜깜해짐을 느낀다.
답이 보이질 않는다.
“커헉!”
“백, 백인대장님…!”
아끼던 병사들이 하나둘 픽픽 쓰러진다.
열이 넘었던 병사들은 벌써 셋으로 줄어 있었다. 오지렌은 병사들의 너머를 바라본다. 병사들의 창칼이 향하는 곳을 바라봤다.
“·····.”
그곳엔 잿빛 머리칼의 소녀가 서 있다.
병사 여럿을 쓰러트린 소녀는 무표정하다.
맞지 않는 로브의 소매를 걷어붙인 소녀가 가볍게 손을 털었다. 이윽고 철퍽, 하고 핏덩이가 바닥에 떨어진다. 소녀의 피가 아니었다.
병사들의 피였고, 병사들의 살점이었다.
“후우···.”
이윽고, 소녀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든다.
오지렌은 그녀와 눈동자를 마주한다. 가늘게 뜬 눈. 반개(半?)한 푸른 눈동자가 섬뜩하다.
꼴깍.
마른침을 삼키며, 오지렌은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 이내 그 사실을 깨닫고 경직한다. 자신이 물러선 것을 본 병사가 없음이 다행이었다.
‘도대체, 이 무슨···.’
오지렌은 소녀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 두려움은 미지에서 온다. 오지렌은 저 소녀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어떤 기술을 구사하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짐작조차 되지 않으니, 섣불리 다가설 수 없다.
애꿎은 병사들을 보내며 간을 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보아도 모르겠구나···.’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저 그녀의 손가락이 병사에게 닿았다 하면,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병사들의 몸이 꺾였다.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처음 폭발에 휘말려 넷을 잃긴 했어도···.’
그 넷이 있었다 한들, 결과가 다를 것 같진 않았다.
“·····.”
오지렌은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처음에는 마법사라 생각했으나, 그도 아닌듯하다.
그 어느 것도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상황 속에서 병사들은 속절없이 소녀에게 달려들기만 한다.
“억!”
“커헉, 큽···.”
“어억!”
결과는 참담하다.
남은 세 명의 병사마저 쓰러진다.
한 명은 목이 꺾여서, 한 명은 가슴팍을 움켜쥐고선, 또 한 명은 피를 게워내다 쓰러진다. 그 최후는 가지각색이지만, 원인은 같다.
소녀의 손가락이 닿았다.
병사들의 창칼은 소녀에게 닿지 않았으나, 소녀의 손가락은 병사에게 닿았다. 그게 다였다.
‘무투가? 기공사? 동방의 주술사들이 저런식의···.’
여러 추측이 머릿속에 난무한다.
그러나 오지렌은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지 못한다.
내놓지 못한 채.
“야.”
오지렌은 소녀의 접근을 허용한다.
“어, 어억!”
눈 깜짝할 새 에 코앞까지 다가온 소녀의 모습에, 오지렌은 기겁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 검은 소녀에게 닿지 않는다.
콰직.
소녀는 맨손으로 칼을 붙잡는다.
별로 힘을 준 것 같지도 않은데, 칼은 반으로 부러진다.
“사람이 말을 하는데 칼을 막 휘두르네.”
“무, 무슨 소리냐!”
“무슨 소리긴 시발아. 귀 열고 이야기나 들으라고.”
고개를 치켜들고 오지렌을 노려보던 소녀의 인상이 험악해진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소녀가 팔을 뻗어 오지렌의 멱살을 붙잡는다.
“뭘 내려다보고 있어. 기분 나쁘게.”
“커헉!”
눈앞에서 무언가 번뜩이고, 알 수 없는 충격이 머리를 뒤흔든다.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고통에 오지렌은 무릎 꿇는다.
“너네는 이렇게 갑옷에 나 누구요, 어디 출신이요, 계급은 뭐요. 다 써놓고 다녀서 참 좋단 말야.”
오지렌을 내려다보게 된 소녀는 피식, 웃는다.
“제4군단, 흑기사 부대의 백인대장.”
“·····.”
“흑기사 부대면···. 혹시 네 상관이 다이크인가 하는 그놈이냐?”
“…!”
“표정 보니까 맞는 것 같네.”
소녀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칼을 쓸어넘긴다.
쓸어넘기며, 로브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든다.
“너, 이거 뭔지 알지.”
검은 구슬.
오지렌은 눈을 크게 뜬다. 상관인 다이크에게 회수를 명령받은 바로 그 구슬이었다.
“이게 뭔지, 이게 뭐길래 너희가 저딴 결계까지 펼쳐가며 도시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지.”
소녀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알아듣게 설명해.”
“내, 내가 그걸 말할 것 같으냐!”
“아니, 안할것 같으니까 지금부터 하게 만들려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반응이다. 소녀는 망설임 없이 팔을 뻗는다. 뻗어서 오지렌의 턱을 붙잡는다.
“자, 눈 감고. 안 감으면 눈 튀어나온다.”
“웁, 우웁! 이, 이거 놔라!”
“쓰읍, 가만있어.”
소녀는 오지렌의 턱을 붙잡은 채, 오지렌의 두 눈을 감긴다. 그리곤 눈을 뜨지 못하게 눈두덩이를 꾸욱 누른다.
“잘 생각해봐.”
오지렌의 턱을 붙잡은 소녀의 손가락 중 하나가 천천히 오지렌의 턱에서 멀어진다. 그리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로 오지렌의 턱에 다시 붙는다.
툭.
가벼운 건드림.
그 순간.
“억!”
오지렌은 비명을 내질렀다.
쿵! 알 수 없는 충격이 그의 뇌를 어지럽혔다. 뒤흔들었다.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충격이, 다시한번 엄습한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강하게.
“말 할 생각은?”
“흡, 흐으읍. 이, 이게 무슨…!”
“없나 보네.”
투욱.
“어억!”
툭.
“커흡, 커헉!”
알 수 없는 충격이 연달아 뇌를 뒤흔든다.
소녀가 손가락을 두들길 때마다 충격에 충격이 더해진다.
주륵.
오지렌의 코에서 피가 흐른다. 입가에 침이 흐르고, 감긴 두 눈두덩이 사이로 피눈물이 흐른다.
“자, 끝.”
“허억, 허억, 허어어억!”
소녀가 턱을 놓아주자마자, 오지렌의 몸이 기울어진다. 두 손으로 땅을 짚은 채, 오지렌은 숨을 몰아쉰다.
눈물이, 콧물이, 침이 멈추질 않는다.
시야가 끊임없이 흔들린다.
“이래도 말할 마음이 안 들면 뭐, 별수 없고.”
“하겠다! 하겠다! 당장, 내 아는 걸 전부 말하겠다!”
오지렌은 소녀의 발밑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 간절함이 담긴 모습에 피식, 하고 소녀가 웃음을 흘린다. 이윽고 소녀는 손을 뻗어 오지렌의 머리칼을 쓸어넘긴다.
“그러니 말하라 할 때 말하지.”
땀에 젖은 오지렌의 머리칼을 쓸어넘긴 그녀의 손가락이 툭, 하고 오지렌의 이마에 맞닿는다.
“설명해. 허튼수작 부릴 생각은 말고.”
3.
“그러니까, 제대로 전해 들은 건 없고 그냥 찾아오라고만 들었다고?”
“그,그렇다!”
“쓰읍, 이게 아직도···.”
“정말, 정말이다! 나는 전해 들은 게 없다! 그저 다이크님이 그곳에 놓아둔 구슬을 찾아오라 시켰다!”
나는 턱을 매만진다.
“왜 본인이 안 오고? 이 결계는 그럼 누가 친 건데?”
“결, 결계는 사천왕 중 한분이 직접 치셨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기사단이 근처에 있으니 오래는 유지 못 하고, 기척만 숨겨줄 뿐이라며···.”
사천왕 중 한 명에, 이 정도 결계를 칠 수 있는 놈이라면···.
‘그놈이겠네. 해골바가지 마법사.’
확실히 그놈이라면 이런 결계를 칠 수 있긴 할 거다. 그러나,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이만한 결계를 쳐놓고 고작 너네 같은 놈들만 보냈다고?”
“이,이유는 나도 모른다.”
“쯧.”
나는 짧게 혀를 찼다.
버림말인가.
회수하면 좋고, 안 돼도 그만이라 생각한 거겠지. 나는 내 앞에 무릎 꿇은 기사의 머리 위를 확인했다.
거짓 간파(Detection).
떠 있는 문양은 파란색이다.
거짓을 고하진 않았단 소리다.
‘그래도 앞뒤가 안 맞긴 해.’
의문이 남긴 하다.
그러나, 더이상 캐낼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뭐, 뭔가.”
“너, 서큐버스 퀸이 어디에 있는 줄 알아?”
“그 분이라면···. 아마 다이크님의 곁에 있는 거로 안다. “
“거기가 어딘데.”
“제 1군영.”
제 1군영 이면···.
찾아가는 건 힘들겠네. 거긴 마계의 심층부니까.
“뭐, 수고했고.”
나는 기사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겼다.
“곧 경비병들 몰려올 테니, 걔네한테 마저 심문당하면 되겠네. 힘내고.”
“뭐, 뭣! 이야기가 다르지 않나! 성실히 대답하면 놓아주는 것 아니었···!”
기사가 허겁지겁 내 다리를 붙잡는다.
그 모습에 나는 눈살을 찌푸린다.
“야.”
“흡, 흐읍…!”
“이거 안 놔?”
나는 발로 툭툭, 그 손길을 걷어내고 쪼그려 앉는다. 쪼그려 앉아, 바닥에 엎드린 기사와 눈을 마주한다.
“너네 같은 마족 새끼들이, 인간의 도시에 들어와 놓고 그럼 그냥 넘어갈 줄 알았냐?”
“그,그건···.”
“너네도 마계로 들어간 인간들 박제해다가 걸어놓잖아. 야, 그래도 우리 기사단은 착해. 박제까진 안 하더라.”
“정, 정말인가?”
“엉. 적당히 심문하다가 성수에 푹 담그지.”
“·····.”
기사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다.
“그,그게 박제와 뭐가 다른…!”
“다르지. 회개하고 천국 가라.”
나는 툭, 하고 기사의 이마를 밀쳤다.
그렇게 작별 선물로 강타(Smite)라도 하나 꽂아줄 생각이었는데, 때마침 별과의 거래 시간이 끝나고 말았다.
일시적으로 새겨졌던 주문이 증발한다.
그 결과 내 손은 그저 기사의 이마를 가볍게 두들겼을 뿐이지만···.
“커흡,커흑···.”
기사는 거품을 문 채, 눈을 까뒤집고 픽 쓰러졌다.
“···왜 저래?”
엄살 피우기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