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83)
우혁 일행과 SBC 팀은 그란데 광장 근처의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먼저 식사를 마친 우혁은 필름박스 김 실장이 알려준 영화제 주최 측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래 계획은 박 작가가 섭외한 통역자에게 직원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통화하게 하려던 것인데 통역자가 바람을 맞히는 바람에 우혁이 직접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여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스위스는 독일어를 많이 사용한다고 들었는데 로카르노에서 만난 사람들은 독일어보다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우혁이 여직원에게 자신을 소개하자 여직원은 로카르노에 잘 도착했는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물어보고, 시상식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서 내일 [길 밖의 새>를 상영한 뒤에 관객과 만남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데 가능한지 물어왔다.
사전에 그렇게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거였다.
우혁은 괜찮다고 대답했다.
여직원의 설명에 의하면 개막식 이후, [길 밖의 새>를 몇 차례 상영을 했고, 내일이 마지막 상영인데 영화가 끝난 뒤에 감독과 주인공을 간단하게 소개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여직원과 통화를 끝내고 박 감독에게 통화 사실을 전했다.
“소개만 하고 마는 거겠지요? 질문 같은 것도 할까요?”
박 감독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는데, 영화에 대한 간단한 소개나 제목의 의미,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 정도는 물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통역이 있을 테니까 한국말로 말씀하시면 될 겁니다.”
“통역하려면 고생이겠어요. 독일어, 이탈리아어, 불어, 영어 중에 어떤 언어로 질문할지 모르니 말이에요.”
“그러게요..”
“스위스는 60퍼센트 이상이 독일어를 사용한다고 들었는데 막상 와보니까 이탈리아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아요.”
박 감독의 말을 듣고 있던 박 작가가 조심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가 사전 조사를 해봤는데요. 로카르노는 이탈리아 근접 지역이라 이탈리아어를 많이 사용한다고 하더라구요. 건축 양식도 거의 이탈리아식이고, 음식도 이탈리아 음식점이 많대요.”
우혁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서울 가로등>의 가로등지기 역을 하기 위해 추체험했던 이탈리아 마술사 토니 슬리디니를 다시 추체험했다.
추체험한 뒤 슬리디니로부터 전이받은 언어 능력 덕분에 이탈리아가 가장 자신 있었다.
영화제를 준비하며 추체험했던 독일 태생 배우 호르스트 부흐홀츠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으나 이탈리아어가 가장 서툴렀다.
게다가 독일어를 제외하고 글자를 읽지 못했다.
그래서 토니 슬리디니를 다시 추체험하기로 했던 것이다.
슬리디니를 다시 추체험하면서 언어 능력뿐만 아니라 마술과 복화술 능력까지 되살아났다.
추체험한 대상으로부터 전이받은 능력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멸하지만 우혁이 노력을 통해 습득한 능력은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
그때 들이는 노력은 일반적인 노력보다 훨씬 적게 들이고도 많이 습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얻은 노력은 쉽게 사라지지도 않았고.
그래서 한 동안 사용하지 않다가 필요할 때 언제든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마치 자전거를 한 번 배워 두면 한동안 타지 않더라도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처럼.
슬리디니를 다시 추체험을 하자 마술 실력이 놀랄 만큼 좋아졌다.
[서울 가로등>을 준비하며 추체험했을 때는 10퍼센트의 능력밖에 전이받지 못했는데 지금은 20퍼센트의 능력을 전이받을 수 있기 때문인 듯했다.이번에는 마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언어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탈리아어 습득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했다.
우혁 일행과 SBC 팀은 점심식사를 한 뒤 영화제가 열리는 그란데 광장으로 갔다.
광장에는 아스팔트나 시멘트 바닥이 아니라 자연석들이 깔려 있었다.
광장 좌우에는 아케이드 통로가 늘어서 있었고, 카페의 테라스석이나 샌드위치 가게 등이 보였다.
광장 중앙에 무대를 설치하고 그 무대 위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고, 그 앞에 100여 개의 의자들이 놓여 있어서 관객들이 앉아 영화를 볼 수 있게 해놓았다.
“비가 그쳐서 다행이다!”
박 작가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일 영화 상영할 때하고 시상식 때는 해가 떠야 할 텐데···.”
카메라맨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는 그쳤으나 날은 여전히 흐렸다.
흐린 날보다 밝은 날이 촬영하기도 편하고 방송 영상도 훨씬 보기 좋기 때문에 카메라맨은 날씨에 민감했다.
대형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사운드가 광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밀폐된 영화관과는 또 다른 맛이 있네요.”
박 감독이 말했다.
박 감독 말마따나 색다른 운치가 있었다.
영화 관람을 방해하는 요소도 없지 않았으나 관객들은 여유 있는 표정으로 조용히 영화를 관람했다.
스크린 주위를 오가는 사람들도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카메라맨은 영화관과 관객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인터뷰 장면 좀 딸까요?”
박 작가가 우혁에게 물었다.
“그러시죠.”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우혁은 리포터와 함께 인터뷰 촬영을 했다.
“드디어 로카르노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그란데 광장에 도착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날씨가 썩 좋지는 않네요. 하지만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영화를 감상하고 있습니다. 소리 들리시나요?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랍니다. 열린 광장에서 영
화를 보다니 신기하네요. 바로 이 장소에서 내일 [길 밖의 새>가 상영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길 밖의 새>를 연출하신 박용구 감독님과 주인공 권혁철 역을 맡아 열연해주신 강우혁 씨를 모시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박 감독과 우혁이 차례로 대답했다.
“감독님!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아, 예! 좀 떨리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리포터는 박 감독의 대답이 조금 더 있을 줄 알고 기다리다가 더 이상 답변이 이어지지 않자 우혁에게 질문을 돌렸다.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기분이 어떠세요?”
“박 감독님 덕분에 영광스러운 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영화를 만들어 주신 감독님께 감사드립니다. 처음에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는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영화제가 열리는 장소에 와서 보니 이제야 실감이 나네요. 기분 좋습니다.”
실제 방송에서는 얼마나 나갈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뒤로도 인터뷰는 계속되었다.
***
다음날 오후.
점심을 먹고 다시 그란데 광장으로 향했다.
아쉽게도 어제 오후에 잠시 멈추었던 비가 다시 내리고 있었다. 부슬비라 빗줄기는 약했지만 좋은 날씨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날씨가 안 도와주네요. 관객들 없을 것 같은데요.”
박 감독이 걱정했다.
날씨가 좋아지길 기대했던 카메라맨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가보면 알겠죠.”
우혁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관객들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꽤 많았다.
스크린에서는 [길 밖의 새>가 상영되고 있었다.
“비가 오는데도 고스란히 비를 맞으면서 영화를 보고 있어요.”
박 감독이 놀라워하며 말했다.
“그러게요.”
우혁도 적지 않게 놀랐다.
우산이 있는 관객도 있었으나 우산을 접어 의자 옆에 세워 놓거나 바닥에 내려놓았다.
우산을 쓰게 되면 뒷좌석에 앉은 관객들의 시야를 가리게 되기 때문인 듯했다.
비를 맞으며 영화를 보고 있는 광경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우혁이 준 비닐 비옷을 입고 우산까지 구입해서 쓴 박 작가와 리포터는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슬그머니 우산을 접었다.
우혁은 여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그란데 광장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여직원은 객석에 앉아 영화를 관람한 뒤에 영화 끝나기 20분 전까지 스크린 옆으로 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하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고 박 감독에게도 그 사실을 전달하고 비어 있는 의자에 앉았다.
카메라맨은 우혁과 박 감독이 영화를 보는 장면을 촬영했다.
세컨 카메라맨이 카메라가 젖지 않도록 커다란 우산을 받쳐 들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기 20분 전, 우혁은 여직원과 약속했던 스크린 쪽으로 이동했다.
우혁이 움직이자 다들 우혁의 뒤를 따랐다. 행여 우혁을 놓칠 새라 종종 걸음으로.
스크린 옆에 도착하자 여직원과 여자 통역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혁은 여직원과 인사를 나누고, 박 감독과 SBC 팀을 소개했다.
영화가 끝나자 우산을 쓴 사회자가 무대 위로 올라가 [길 밖의 새> 영화감독과 주연배우를 소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떠나려던 관객들의 거의 대부분 자리에 도로 앉았다.
“모두 가 버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았어요.”
박 작가 놀라워했다.
카메라맨은 사회자와 관객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박 감독은 두 손을 맞비비며 초초함을 감추지 못했다.
진행 요원이 박 감독과 우혁에게 우산을 하나씩 주었다.
드디어 사회자가 박 감독과 우혁을 소개했다.
우혁은 박 감독을 앞세우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관객들이 요란스럽지 않은 박수와 미소를 보내 주었다.
그 미소가 참 좋았다.
탁자나 의자도 없이 우산을 쓴 채 무대 위에 서서 질의응답을 해야 했다.
무대 위에 올라서자 관객들이 한눈에 보였는데 반가운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줄리엣 비노쉬.
마스크를 쓰거나 모자도 쓰지 않은 채 관객 속에 앉아 있었는데 아무도 그에 개의치 않았다.
워낙 평범한 옷차림을 하고 있어서 우혁도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비노쉬였다.
비노쉬는 가장 앞줄에 앉아 있었다.
비노쉬가 좌우에 앉은 남자와 여자에게 귓속말을 하는 게 보였다.
경호원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비노쉬 뒤쪽에 앉아 있었다.
어제 로비에서 만난 그 친구 아니냐고 묻는 듯했다.
비노쉬 좌우에 앉은 남자와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놀라워했다.
비노쉬가 우혁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혁도 비노쉬에게 미소로 화답했다.
사회자가 박 감독에게 영화 제목의 의미가 뭐냐고 질문을 던졌다.
“제목의 의미가 무엇인지요?”
통역사가 박 감독에게 통역했다.
“아, 그러니까, 음···. 길 밖의 새라는 제목은···.”
박 감독은 장황하게 제목에 대해 설명했다.
설명이 길어져서 지루할 텐데도 관객들은 미소를 머금은 채 조용히 들어주었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한국 사람인 우혁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요점 없이 횡설수설했다.
박 감독의 말을 듣고 있던 박 작가도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통역자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박 감독의 설명이 끝난 뒤 통역자가 이탈리아어로 통역을 했는데 역시 횡설수설이었다.
통역자의 통역이 끝난 뒤 우혁이 마이크를 들었다.
“통역 잘해 주셨습니다만 부연 설명을 좀 드리자만, 길 밖의 새는 분단으로 인해 나뉘어진 남한과 북한,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영혼을 의미합니다.”
그제야 박수가 나왔다.
사회자가 이런저런 질문들을 박 감독과 우혁에게 던졌고, 박 감독과 우혁이 대답을 했다.
사회자가 이번에는 객석의 관객들에게 질문할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관객 몇 사람이 손을 들었다.
사회자가 한 여성 관객을 지목하자 진행 요원이 우산과 마이크를 들고 그 관객에게 가서 질문을 받았다.
그 관객은 어눌한 이탈리아어로 우혁에게 질문을 하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탈리아어에 능숙하지 못한지 질문이 자꾸 끊어졌다.
우혁이 그 관객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묻자 독일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독일어로 말씀하셔도 됩니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알아들을 수는 있으니까요.”
그러자 관객이 유창한 독일어로 질문을 했다.
“주인공 남자가 중간에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고 저도 울었습니다. 주인공은 왜 그렇게 서럽게 울었을까요? 그리고 연기하실 때 어떤 생각을 하면서 우는 연기를 했는지 궁금합니다.”
질문을 받고 우혁이 직접 독일어로 답변했다.
“주인공이 눈물을 흘린 건, 고생해서 만든 날개가 부러졌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그 날개는 수퍼마켓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거든요. 그게 부러져 버렸으니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우혁의 농담에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우혁은 계속해서 답변을 이어 나갔다.
“풍족하고 살기 좋은 천국에서 살게 해주는 대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천국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천국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 막상 와보니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나 그리운 겁
니다.”
좀 전까지 웃던 관객들이 웃음을 거두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천국은 더 이상 천국이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가족을 찾아 지옥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바람 때문에 가족에게 가지 못했죠. 그가 도착한 곳은 천국이었지만 지옥에 떨어진 것처럼 깊은 슬픔에 빠져 눈물을 흘립니다. 왜 그랬을
까요?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동생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이었을 겁니다.”
관객들이 박수를 쳤다.
우혁이 마이크를 입에 가까이 대자 그제야 박수 소리가 멈추었다.
우혁은 질문을 한 관객을 바라보며 대답을 이어 나갔다.
“무슨 생각을 하며 우는 연기를 했냐고 물으셨지요? 촬영했던 곳이 해발 2000미터입니다. 힘겹게 올라갔는데 다시 내려갈 생각을 하니 막막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생각을 하며 서럽게 울었습니다.”
우혁의 대답을 듣고 관객들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은···.”
우혁은 잠시 말문을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
“아내의 뱃속에 잠시 머물다가 떠난 아이가 있습니다. 촬영을 할 때 그 아이가 많이 그리웠습니다. 주인공이 가족을 그리워했듯이 저도 그 아이가 그리웠지요.”
우혁의 말이 끝나자 장내가 숙연해졌다.
여성 관객들 중 일부는 눈시울을 붉혔다.
몇 명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고.
그때 비노쉬와 눈이 마주쳤다.
비노쉬는 애정이 담뿍 담긴 눈길로 우혁을 바라보았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누나가 어린 동생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비노쉬가 사회자를 향해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그러자 사회자가 반색하며 진행 요원에게 마이크를 부탁했다.
진행 요원이 우산과 마이크를 들고 비노쉬에게 다가갔다.
“영화 잘 봤습니다. 이따가 사진 한 장 같이 찍어 주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연기를 참 잘하시더군요. 혹시 프랑스 여배우하고 연기할 생각 없으신가요?”
빈말일지언정 감개무량한 말이었다.
관객들도 비노쉬가 우혁의 연기에 대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박수를 쳐주었다.
우혁은 비노쉬과 관객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여 감사 인사를 올렸다.
[ 프랑스 여배우와 연기할 생각 없나요? > 끝ⓒ 길밖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