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87)
“오빠, 프랑스어 할 줄 알았어?”
SBC 연예인뉴스를 통해 우혁이 줄리엣 비노쉬와 프랑스어로 인터뷰하는 모습을 본 아내가 우혁에게 물었다.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야.”
“그게 어디야. 우리 오빠 멋있다!”
“당신 남편 좀 멋있어.”
“인정!”
“인정을 너무 쉽게 하니까 싱거운데.”
“오빠랑 살아보니까, 볼매야. 볼수록 매력덩어리.”
“복이 많아서 그렇게 보이는 거야. 내가 생각해도 난 인복이 참 많아.”
“오빠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인덕이 많은 사람이야.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면 장인 장모가 있는 아내를 만났겠지.”
“쓸데없는 소리! 나보다 장가 잘 간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드라마를 봐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을 봐도 그래. 오빠처럼 처복 없는 사람도 없어. 마누라가 대학을 나오길 했어, 똑똑하길 해, 애를 잘 낳기를 해, 씨암탉 잡아주는 장모가 있어. 내가 아는 남자 중에 오빠가 제일 불쌍하다니까.”
“그렇지 않아.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처복 하나는 확실히 있어. 내 주변을 다 둘러봐도 당신 같은 사람은 없어.”
“없지. 난 맹한 바보잖아.”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맹한 바보라니. 당신처럼 현명한 여자, 난 본 적 없다.”
“현명하다는 소리 어디 가서 말하지 마. 욕먹는다. 난 내가 생각해도 맹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날 눈사람 아저씨처럼 사라져버릴까 봐 두렵다는 걱정?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우혁은 아내를 이해한다.
아내를 낳아준 생모와 생부가 있었을 것이고, 어느 날 자기를 두고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네다섯 살 아이에게는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우혁은 그 충격과 슬픔이 짐작도 되지 않는다.
학창 시절 학교에서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없는 집은 얼마나 쓸쓸했던가.
무슨 일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번은 엄마가 ‘내가 이 집구석에서 나가든지 해야지.’라는 말을 한 적이 있고, 그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엄마가 집에 없어서 온 동네를 찾아다닌 기억이 또렷하다.
아무리 찾아도 엄마가 없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런데 집에 가보니 엄마가 있었다.
어딜 싸돌아다니다가 해가 저물어서야 오느냐, 누구한테 맞았길래 울고 들어오느냐며 등짝을 맞아야 했다.
그날 우혁은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등짝이 아파서가 아니라 엄마가 도망 가지 않고 집에 있어 줘서.
그 짧은 엄마의 부재에도 가슴이 미어졌는데, 아내는 오죽했을까!
그래서 우혁은 눈사람 아저씨처럼 사라질까 봐 걱정하는 아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요즘 고민이 하나 있어. 내가 보육원 출신이라는 거, 우리 아이가 알면 어떡하지?”
“부끄러워할 게 뭐가 있어. 그게 당신 잘못이야? 가고 싶어 간 거 아니잖아. 당신 아이는 당신 닮을 테고, 당신 닮으면 엄마가 보육원 출신이라고 무시하고 그럴 리 없어. 만약 그러면 집에서 쫓아낼 거야. 그런 자식 키워서 뭐해.”
“그래도 집에서 쫓아내는 건 좀 그렇다.”
“아주 어릴 때야 그럴 수도 있겠지. 잘 타이르고 그렇게 하지 않도록 교육을 해야지. 그런데 머리가 굵은 뒤에 엄마를 무시한다면 난 용서 안 해. 자기 엄마가 아니라 다른 사람 엄마한테도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오빠, 그거 모르지?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은 나라는 거. 내 친구들 만나 보면, 만난 지 5분도 안 지나서 남편이랑 시댁 흉보기 시작이야. 난 흉 볼 게 없거든.”
“흉 볼 게 왜 없겠어. 안 보고, 모른 척하는 거지. 흉을 찾아볼까? 남편이라는 작자가 일 한답시고 걸핏하면 새벽에 들어와, 지금이야 좀 벌지만 옛날에는 쥐뿔도 없는 주제에 배우랍시고 돌아다녀, 쉬는 날에는 삼시 세 끼 다 찾아먹는 삼식이지, 무좀 있지, 피곤하면 밤에 코 골지, 가끔 이도 간다며? 흉을 잡으려면 백만 가지도 넘을걸.”
“오빠가 모르는구나. 내 특기가 불평 불만 찾아내는 데 선수라는 걸. 올림픽에 그런 종목이 있다면 내가 금메달 땄을걸.”
“불평 불만 찾기는 내 특기야. 정예은이 불평 불만 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오빠랑 살면서 오빠한테 배웠으니까 지금은 없지. 옛날에는 달랐어. 모든 게 다 불만이었거든. 단 한 가지도 만족스러운 게 없었어. 단 한 가지도.
오빠를 만나서 달라진 거야. 오빠는 불평 불만을 하지 않더라. 오빠를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고, 기적이고, 마법이야.”
우혁은 아내의 왼쪽 팔꿈치를 쓰다듬으며 장미꽃 한 송이를 만들어 아내에게 건네주었다.
아내가 눈을 크게 뜨며 꽃을 받아들고서 향기를 맡았다.
이번이 48번째 장미꽃이다.
같은 마술이건만 아내는 꽃을 받을 때마다 행복해했다.
“고마워!”
스위스에 귀국한 뒤로 매일 예닐곱 송이씩 아내에게 선물하고 있다.
“이 마술은 진짜 신기해. 받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
“이 마술로 줄리엣 비노쉬, 멜라니 로랑한테도 장미꽃을 선물했어.”
“좋아하지?”
“별 거 아닌데 무척 좋아해 줘서 고맙더라.”
“당연히 고맙지. 꽃을 받고 싫어할 여자가 어디 있어.”
“···끝이야?”
“응?”
“더 없어?”
“뭘?”
“질투 같은 거 안 나?”
“질투? 왜 질투를 해? 나한테 질투심 유발하려고 그 얘기한 거였어?”
“그런 의도가 없지는 않지.”
“질투심 때문에 잠을 못 잘 것 같으다. 으으으 질투나!”
아내가 연기를 했다.
아내는 연기 쪽엔 영 재능이 없는 것 같다.
“관둡시다.”
“오빠는 나 아닌 다른 여자한테 마음을 줄 사람이 아니라는 거 알아. 같은 장미를 줬다 해도 그 배우들에게 줄 때랑 나한테 줄 때랑 전혀 다른 마음이었을 거야. 내 말이 맞지?”
아내가 독심술을 하는 것 같다.
줄리엣 비노쉬에게 장미를 드릴 때는 선배 연기자에 대한 존경심, 멜라니 로안에게 줄 때는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와 여우주연상 수상 축하 의미였다.
하지만 아내에게 꽃을 선물할 때는 의미가 달랐다.
사랑, 그리움, 고마움, 미안함, 축복, 행복, 기쁨···.
꽃을 받을 때마다 행복해하는 아내의 모습이 보기 좋다.
그 뒤로도 장미꽃 마술은 계속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켤 때 겨드랑이에서.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배에서.
소파에 뻗은 발바닥에서.
독서를 하는 책 속에서.
왼쪽 팔꿈치에서.
목덜미에서.
정수리에서.
귀 뒤에서.
턱에서.
장미꽃이 생겨났다.
그럴 때마다 아내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고.
***
드디어 내일부터 [마른 풀잎의 노래> 촬영을 시작한다.
신여랑 감독은 몇 년 전부터 준비해 왔기 때문에 캐스팅이 끝나자 곧바로 촬영에 돌입할 수 있었다.
돈을 최대한 아끼면서 촬영하는 데 천재랄까.
하긴 남녀 주인공 두 사람이 노개런티로 출연하니 제작비가 대폭 줄어들기는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장편영화를 5억에 찍을 수 있다는 게 우혁으로서는 믿기지 않았다.
“5억으로 가능해요?”
“가능합니다. 남을 수도 있어요.”
신 감독은 장담했다.
이전 영화는 이보다 작은 금액으로 찍은 사람이니 그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우혁은 오전 내내 연습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외운 대사와 연기를 다시 한 번 연습했다.
점심식사를 위해 2층에 올라왔을 때, 서재에 놓고 간 휴대전화에 부재중 전화가 몇 통 걸려와 있었다.
전화를 걸려는데 마침 착신음이 울렸다.
필름박스의 김 실장이었다.
– 배우님! [길 밖의 새>가 프랑스에 수출되었습니다.
김 실장가 들뜬 목소리로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줄리엣 비노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비노쉬의 인터뷰를 마치고 식당 다락방에서 식사를 할 때 필름 에퀴지션 매니저가 [길 밖의 새> 수입에 관심이 있다고 비노쉬가 귀띔했다.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가 열렸던 그란데 광장에서 [길 밖의 새>가 마지막으로 상영하던 날, 비노쉬가 가장 앞자리에서 영화를 관람했고, 비노쉬 옆에는 눈매가 날카로운 40대의 한 여인이 앉아 비노쉬와 귓속말을 주고받곤 했다.
그 여인이 바로 필름 에퀴지션 매니저였다.
김 실장의 소식을 듣자 그 여인의 모습이 또렷이 떠올랐다.
비노쉬 말에 따르면 필름 에퀴지션 매니저가 우혁에게 관심이 있어서 우혁의 차기작에도 관심을 가질 거라고 했다.
당시 우혁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립서비스인 줄 알았다.
[길 밖의 새>를 수입했다는 말을 듣고 보니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우혁이 차기작 [마른 풀잎의 노래>에 대해 말해 주었을 때, 줄리엣 비노쉬와 멜라니 로랑 두 사람 모두 매우 놀라워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건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런 소재를 왜 지금껏 영화로 만들지 않았지요? 내가 한국에 살았다면 가장 먼저 이걸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을 거예요.”
로랑이 다소 흥분해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알란 파커 감독을 비롯해 수많은 세계의 유명 감독들이 자기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한국 전쟁과 분단 문제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소재에 대한 부러움과 욕심.
영화감독으로서는 그 소재가 탐이 나고 부러웠을 것이다.
로랑이 출연했던 타란티노 감독의 [버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나치에 대한 복수극을 소재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치를 소재로 한 영화는 수도 없이 만들어졌고, 지금도 누군가가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본이 자행한 일에 대한 영화는 나치 영화에 비해 현저히 적다.
일본은 미국의 핵폭탄 투하로 겪은 자국민의 상처와 고통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피해자 코스프레.
[반딧불의 묘>라는 일본에서 만든 만화 영화가 있다.아무런 죄도 없는 일본 아이가 폭격으로 어떤 고통을 겪는지 가슴 아프게 그려낸 반전 영화이다.
폭격으로 인해 죽어가는 아이의 모습은 가슴이 미어진다.
그 영화를 보면서 우혁도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백곰과 함께 그 영화를 보았는데, 백곰은 꺼이꺼이 소리까지 내면서 울었다.
그런데 우혁은 영화가 끝난 뒤 뒷맛이 영 개운치 않았다.
일본은 국가적 차원에서 그 영화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지원했다.
[반딧불의 묘>뿐만 아니라 반전 영화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일본 영화들은 수도 없이 많다.그런데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사실은, 그 영화 속의 일본인들은 모두 피해자로만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 동남아 국가들에게 자행한 가해자의 모습은 철저하게 가려져 있다.
독일에도 연합군의 공격으로 희생된 자국민이 있었을 텐데, 독일 영화중에 그것을 주제로 한 영화는 본 적이 없다.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모습을 그린 영화가 거의 대부분이다.
많은 미국인들은 일본에서 만든 반전 영화를 보며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일본에게 미안해한다.
일본은 미국인들의 반성과 사과를 너그럽게 용서하며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반응한다.
“가증스러워!”
영화가 끝난 뒤 우혁이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백곰이 깜짝 놀라서 우혁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이 영화 자체는 매우 좋은 영화야.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 일러스트레이터 모두에게 찬사를 보낼 수 있어. 전쟁이 개인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고 끔찍한 비극인지 알려주는 영화니까.”
“[반딧불의 묘>를 보면서 전쟁은 정말 어리석은 짓인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것 같아.”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반딧불의 묘>에서 가해자는 누구지?”
“평화로운 마을에 폭탄을 떨어뜨린 사람?”
“누가 폭탄을 떨어뜨렸는데?”
“일본에 폭탄을 떨어뜨린 건, 미국 아니야?”
“미국! 맞아.”
“그럼 미국이 가해자라는 거네.”
“그렇지.”
“미국 사람들은 이 영화 보면 미안하겠다.”
“미국인들에게 미안하라고 만들 거야. 아무런 죄도 없는 일본 아이에게 이런 짓을 자행한 미국인들을 부끄럽게 만들려고.”
“그런데 미국이 폭탄을 터트린 건 일본이 먼저 미국땅인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시작된 거잖아.”
“그렇지.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거기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이들이 불쌍하다, 전쟁은 나빠, 그 정도겠지. 나처럼.”
“일본 정부와 여러 관변 단체들은 왜 이런 영화들을 지원하고 열심히 홍보할까? 자국민들도 모두 볼 수 있게 하고, 전 세계인들에게 엄청나게 홍보하고 있단 말이야.”
“독일은 나치를 비판하는 영화들을 수도 없이 만들었잖아. 결국 자기 부모랑 조부모들이 저지른 짓인데.”
“반성이지.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일본이 한국인에게 자행한 짓을 그린 일본 영화 본 적 있어?”
“못 봤어.”
“있기는 해. 다큐 영화가 몇 편 있어. 하지만 그 수가 워낙 적은데다가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피해자의 모습을 담은 반전 영화가 문제라는 게 아니라 독일처럼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라도 가해자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는 거지.”
“그러고 보면 일본은 참, 반성 안 해. 일본 정부나 정치하는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일본 사람들은 왜 자기 부모들이 저지른 잘못을 영화로 만들지 않을까? 자기들이 겪은 고통이나 상처를 드러낸 영화는 열심히 만들면서.”
“교육의 결과일 거야. 실제로 많은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부모와 조부모가 어떤 짓을 했는지 몰라. 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고, 부모한테 들은 적도 없고, 책이나 영화에서 접하기도 어려우니까.”
“설사 누군가가 영화를 만들어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도록 방해할 것 같아. 영화 보면서 괜히 울었네!”
“우는 건 괜찮아. 저렇게 슬픈 영화를 보면서 울지 않을 수가 있나. 반전의 의미를 새길 수도 있고 말이야. 다만 이면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진실은 직시해야 해.”
“형 얘기 들으니까 형이 왜 가증스럽다고 했는지 알겠다.”
“한국 전쟁이 일어났을 때 말이야. 일본 천황을 비롯해 많은 일본인들이 만세를 불렀대. 조상님 감사합니다. 일본을 살려 주셔서, 하고 말이야.”
“세상에!”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했는데도 불구하고 금세 경제 대국으로 일어선 건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전쟁 덕분이야. 미국을 지원하면서 무기를 신나게 생산해서 팔아먹었고, 초토화된 남한과 북한에 생필품을 팔아먹을 수 있었거든. 일본으로서는 한국 전쟁이 축복이었던 셈이지. 지금이야 북한하고 사이가 좋지 않지만 전쟁 직후에는 남한보다 북한하고 교역이 더 왕성했어.”
“양다리 걸친 거네?”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뤘잖아. 나라가 반으로 쪼개졌단 말이야.”
“어? 이상하다! 일본도 2차 대전을 일으켰는데 왜 독일처럼 반으로 쪼개지지 않았지? 왜 우리가 분단된 거야?”
“비극이지. 비극! 강대국들과 권력욕에 눈이 먼 한국 정치인들이 만든 비극.”
“속상하다!”
“정신 바짝 차려야 돼. 안 그러면 똑같은 비극을 당할 수도 있어.”
“화가 막 나려고 하네!”
“반일감정으로 흥분해서 화만 내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그보다 나쁜 건 무관심한 거지만.”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된다 이거지?”
“그래!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이제야 알 것 같아. 형이 왜 [마른 풀잎의 노래>랑 [안중근 장군>에 출연하려고 하고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는지.”
백곰은 한국과 스위스를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 영화제 행사가 없는 호텔이나 카페에서 [마른 풀잎의 노래>와 [안중근 장군>의 대본을 외우는 우혁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형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으면 독립군이 되었을 거야.”
“그랬을까?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그런 그릇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 생각에는 독립군은 못 되고, 독립군을 연기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 같다. 딴따라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기쁨과 위안도 주고, 희망도 주고···.”
“내가 그때 태어났으면 지금처럼 형만 따라다닐 거야.”
“그거 좋은 생각이다. 동수가 옆에 있다면 뭐, 일제강점기라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살려고 형 옆에 붙어 있으려는 건데?”
“그 반대일걸.”
[ [마른 풀잎의 노래> 촬영을 앞두고 (제목 수정) > 끝ⓒ 길밖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