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cromancer before awakening RAW novel - Chapter 203
204화. 옥좌 속 세계(1)
강지예가 살로 이루어진 미라와 같은 모습을 하였지만, 숨 쉬며 복부를 움직이는 포르네토스의 모습에 기겁하자 강사후가 다시 육체를 집어넣었다.
짧은 충격의 폭풍이 지나고, 강사후가 뒤이어 자신이 멸망주의자의 기지를 공격하며 얻은 정보를 정리하여 전달하였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가서스를 제외한 모두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기 시작하였다.
명왕의 눈치를 보고 있던 베르닥트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데스나이트다운 무겁고 진중한 자세로 그의 정보를 경청하였다.
이야기가 끝나자 아까 전의 장난스러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무거운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심각한데. 녀석들의 행적을 보면 결국 각 세력이 갖고 있는 보물을 노리는 거 같은데.”
[세계수와 네크로노미콘은 확실하다 하더라도, 러시아는 대체 왜 점령하고 있는 걸까요….]“남은 건 소서리스의 보물뿐이니, 역시 이사벨라 언니에게 물어보는 게 좋을까요?”
명왕과 베르닥트, 강지예가 머리를 맞대며 고민하고 있을 때 가서스가 하나 남은 팔의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다른 곳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 네크로맨서 탑을 지키는 것 아니겠습니까. 공교롭게도 저 역시 회복에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고요.]가서스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사후가 손을 들었다.
“전 지예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세력의 보물은 사실상 기정사실화된 것과 마찬가지죠. 하지만, 소서리스의 보물은 짐작조차 가지 않는군요.”
물론 이나모라티가 금제를 무릅쓰고 알려준 ‘움직이는 별’이라는 힌트를 얻기는 하였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다지 추론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애당초 모든 별은 움직이고 있었으며, 아무리 가까워 보이는 별도 몇 광년은 떨어져 있는 만큼, 적들이 그것을 노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즉, 움직이는 별이란 어디까지나 비유적인 표현일 뿐, 실체는 다른 것이라는 게 가장 유력한 진실이었다.
팔짱을 낀 채로 고민하던 명왕이 이내 뾰족한 수를 떠올리지 못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짐작 가는 게 없네. 사후 말대로 직접 남아있는 멸망… 아니, 세계배신자들의 기지를 찾아가는 거면 모를까. 그 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어.”
명왕의 말에 모두가 공감하였다.
모두 고개를 끄덕여 긍정하는 모습을 본 명왕이 씁쓸한 표정으로 강사후를 돌아보았다.
“또 네가 고생하겠구나. 미안해.”
“응당 해야 할 일일 뿐입니다.”
강사후가 고개를 숙이며 겸손하게 대답한 후 턱을 쓰다듬었다.
‘러시아라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몬스터로 인해 국토의 4분지 1이 점령당하고, 대격변 이후 이념의 대립으로 발생한 내전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나라.
러시아로 입국할 방법을 찾던 강사후의 머리로, 오랜 동료인 한 사람이 떠올랐다.
* * *
의식을 되찾은 포르네토스가 신음하며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하였다.
이미 육신은 없는 혼만 남은 상태였으나, 그녀의 시야로 광활히 펼쳐져 있는 녹색과 청색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하늘이 보였다.
상황을 살피던 포르네토스의 눈으로 한 그루의 거대한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잔뿌리 하나하나가 나무만 한 거대한 나무 아래로 여러 존재가 걸음을 옮기는 것이 보였다.
하늘색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세계에서조차 본 적 없는 나무, 그리고 그 아래를 아무렇지 않게 활보하는 자들을 보며 그녀는 초현실적인 감정을 느꼈다.
[뭐지…? 여긴 어디야…?]만약 그녀가 죽음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면, 자신이 죽은 것이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포르네토스는 이미 몇 번이나 죽음을 겪어봤던 만큼 자신이 죽은 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몸이 없어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저 황망히 신비로운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나무 아래를 거닐던 존재 중 하나가 절뚝이는 걸음으로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역시 너였군.]흐릿한 인상의 누군가가 그녀를 알아보듯 말을 걸었다.
포르네토스가 긴장하며 자신에게 다가온 존재를 노려보았다.
[누구냐?] [못 알아보겠는가?] [내가 너 따위를 어떻게….]다짜고짜 자신의 상급자라도 된 것 마냥 말을 놓는 상대의 반응에 욱하던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상대가 자신을 모르겠냐고 묻자, 물에 번진 듯 흐릿했던 인상이 조금씩 또렷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서, 설마…?]이윽고, 상대방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가 되자, 포르네토스가 깜짝 놀라며 황급히 사과를 건네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그라샬라….] [그만. 이름을 입에 담지 마라. 이 공간 역시 금제는 유효하다.] [네, 네. 알겠습니다. 남작… 님.]포르네토스가 그라샬라볼라스의 이름을 부르려다 가로막히자 조심스럽게 계급을 통해 존경심을 내비쳤다.
그 재치 있는 행동에 그라샬라볼라스가 피식 웃었다.
[현명하구나. 백작님의 영애답다.] […과찬이십니다.]포르네토스가 황급히 대답하였다.
지금만큼은 육신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나 다행일 수 없었다.
‘지, 지, 지, 진짜 그라샬라볼라스 님이라니…!’
비록 포르네토스가 백작, 파타메토스의 딸이라고 하나 그녀 자신이 백작인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어 칭호이자 작위는 승계되는 것이 아닌 오롯이 스스로 업적과 강력함을 통해 인정을 받아 얻을 수 있는 고결한 것.
그런 만큼 그들에게 작위란 여러 존재가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 오직 단 한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명패였다.
수많은 동족 중 당당하게 남작의 작위를 갖고 있는 그라샬라볼라스는 그만큼 대단한 존재였기에, 포르네토스가 어려워하고, 존경하는 것도 당연하였다.
[한데, 남작님. 어찌하여 이곳에 계십니까? 그리고, 이곳은 어디입니까?] [이상한 질문이군. 이곳의 주인인 강사후를 상대하지 않았었나?] [강사후…. 그 네크로맨서를 말씀하시는 건지요.]얼핏 본격적으로 싸우기 전 통성명을 했던 것을 떠올린 포르네토스가 묻자 그라샬라볼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곳은 그자의 의식세계. 혹은 그가 지배하는 세계지.] [어떻게 그런…! 놈이 감히 남작님을 해하기라도 했단 말씀이십니까?! 한낱 아스라짐이!]포르네토스가 분노하자 그라샬라볼라스가 웃었다.
[그 말이 맞지. 하지만 한낱 아스라짐이라… 그 말에는 동의하기 힘들겠구나.]말하면서 그라샬라볼라스가 고개를 돌리자 자연스럽게 그녀의 고개가 그를 따라 돌아갔다.
수많은 혼이 담겨 있을 정도로 큰 의식 세계,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으나 크기만 보더라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거대한 나무.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있는 그라샬라볼라스를 본 포르네토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보다,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참이지. 슬슬 형(形)을 갖추는 게 좋을 텐데.] […형을, 말씀이십니까?]그 자신 없는 대답에 그녀가 방법을 모른다는 것을 눈치챈 그가 친절히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그 설명에 따라 자신의 육체를 강하게 그리며, 몸을 갖추고 싶다는 욕망을 강하게 떠올리자 이내 포르네토스는 자신의 육신을 되찾은 것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남작님.] [별거 아니다. 놀랐을 텐데, 좀 걷지.] [영광입니다.]안 그래도 막 몸을 되찾아 감각을 익히고 싶었던 포르네토스가 거절하지 않고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육신을 얻어 걸을 수 있게 되자, 그녀는 이곳에 생각보다 훨씬 많은 혼들이 모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이 세계에 익숙한 것인지, 나름대로 게임을 하듯 놀기도 하고, 편히 쉬기도 하는 등 편안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게 다 그 네크로맨서가 품고 있는 존재들입니까…?]아스라짐의 수가 가장 많았으나, 그 외에도 자신의 세계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존재들까지 보이자 포르네토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나름 동족 중 명성을 떨친 볼라즈와 베고메데흐까지 있었다.
[아니. 이게 전부는 아니지. 이곳과 다른 곳에는, 여기 있는 이들보다 더 많은 존재들이 모여 있다.] [더 많은 존재 말입니까? 그, 그게 가능합니까?]포르네토스가 깜짝 놀라며 믿기 힘들다는 듯이 물었다.
그 반응에 잠시 고민하듯 턱을 괸 그라샬라볼라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음 같아서는 보여주고 싶다만, 권하고 싶진 않군. 좋은 광경은 아니니. 아. 대신 소리만 듣는 건 어떤가?]뜻 모를 설명에 의아한 포르네토스였지만 그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아는 만큼 그녀는 순순히 수긍하였다.
그라샬라볼라스가 그녀를 데리고 거대한 나무뿌리를 통해 깊은 아래로 내려갔다.
청색과 녹색의 빛이 선으로 이어진 세상은 뿌리 안쪽이라 하더라도 어둡지 않았다.
거대한 뿌리의 길을 따라 반 정도 내려왔을 때.
문득 아래에서 들리는 끔찍한 비명의 합창에 포르네토스가 깜짝 놀라며 온몸의 잔털을 곤두세웠다.
그녀의 반응을 본 그라샬라볼라스가 걸음을 멈추고 쓰게 웃었다.
그가 설명해 주었지만 포르네토스는 대답할 수 없었다.
비명을 지르는 자들 중에서는, 멀지 않은 근래에 들어본 비명도 함께 뒤섞여 있었다.
그것이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이 명령에 따라 보호해 주었던 멸망주의자라는 아스라짐들의 목소리라는 것을 깨달은 포르네토스가 뒷걸음질 쳤다.
그라샬라볼라스 역시 더 머물 생각이 없다는 듯 그녀를 이끌고 뿌리를 돌아 위로 돌아왔다.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 당도하고 나서야 정신을 추스른 포르네토스가 경악스러운 시선을 띤 채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방금 그 광경은, 과거 자신이 그렇게도 빠져나오고 싶어 하던 풍경과 너무나 흡사한 곳이었다.
[…남작님.] [그래, 너도 느꼈겠지.]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나,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그라샬라볼라스가 대답하였다.
포르네토스가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어떻게 아스라짐… 그것도, 단 하나에게 이런 의식세계가 가능한 것입니까? 그리고 이 무섭도록 흡사한 광경과 느낌…. 이것은….]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던 그라샬라볼라스가 손을 들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는 포르네토스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
[그건 나도 모른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어본 결과, 확신할 수 있겠더군. 그는 다르다. 네가 생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그 말에 포르네토스가 고개를 들어 그라샬라볼라스를 바라보았다.
그라샬라볼라스가 자신을 믿으라는 듯,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그때, 이 세상을 받치고 있는 나무를 중심으로 세상을 비추던 청색과 녹색의 빛줄기가 모여들었다.
그 순간, 포르네토스의 몸을 중심으로 녹색과 청색의 빛이 소용돌이치듯 그녀를 감싸기 시작하였다.
포르네토스가 처음 겪는 일에 당황하며 그라샬라볼라스를 바라보았다.
[나, 남작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너를 부르고 있는 거란다.]아까 전의 여유롭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그라샬라볼라스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눈과 마주친 포르네토스가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 그런데 왜 그런 시선으로 보시는 거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별일 아닌 거죠? 남작님?] [신참이 바로 끌려가는구먼.] [딱 보면 모르겠나. 인간이 아니지 않나.] [아, 저런.]화려한 빛에 이끌린 인근의 혼들이 하나되어 그녀를 향해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자 포르네토스의 공포가 극에 달하였다.
[아이야.] […! 네! 남작님!]포르네토스가 마침내 입을 연 그라샬라볼라스를 신뢰 가득한 눈으로 마주보았다.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그라샬라볼라스가 짧게 조언하였다.
[힘내거라. 그리고, 걱정하지 말거라.] […네? 남작님?]알 수 없는 말에 포르네토스가 벙찐 표정으로 되물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몸을 둘러싸기 시작한 빛이 몸을 완전히 감싸자, 그녀의 혼이 거부할 수 없는 인력에 끌려가기 시작하였다.
그 아찔한 감각에 잠시 눈을 깜빡인 그녀가 앞에 보이는 거대한 존재의 모습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왔구나.”
청색과 녹색의 태양을 눈으로 삼은 거대한 강사후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포르네토스를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