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rporate state tycoon of the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52
제252화
#252. 경이로운 새벽+에필로그
잃을 것이 없는 사람만큼 무서운 사람이 없다 했던가?
그런 의미에서 지구연방과 네오제의 잔당(?)인 보 바이든과 오바마, 솔론 로스차일드는 두려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회담장에 나오기 전까지는.
궤도 폭격으로 유리화된, 텅 빈 옛 백악관 터에는 고풍스러운 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탁자 위에는 SR에서 일방적으로 준비한 조약서가 놓여 있었다.
“……그러니깐 재건을 돕겠다는 겁니까?”
보 바이든은 한때 생명의 은인이었다가 이제는 철천지원수가 된 눈앞의 동양인 청년을 노려보다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SR은 평화와 인류의 번영을 지향하니까요.”
“…….”
바이든과 오바마, 솔론은 인류의 6할을 녹여 버리고 저딴 소리를 당당하게 지껄이는 성세류가 이젠 밉지도 않았다.
‘저건 사람이 아니다.’
그냥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그저 두렵고 불가사의할 뿐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SR은 일부러 반대 세력을 보존해 둡니다. 지금도 한국과 북한, 일본에는 지하 정부가 네츄럴과 함께 운영되고 있지요.”
“잠깐, 그러고 보니 이상했어! 설마……? 네츄럴도 SR의 짓입니까?”
성세류의 입에서 네츄럴이 언급되자, 문득 오바마가 초췌한 얼굴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하하하하! 그럴 리가요?”
오바마의 물음에 순간 말실수를 깨달은 성세류가 급히 부인한다.
“아니! 지금까지 네츄럴의 행동을 보면 좀 이상하긴 했어. 빌어먹을……! 이걸 왜 이제야 확신한 거지? 지금 이 자리에서도 V프로그램을 쓰는 겁니까, 미스터 성?”
“절대 아닙니다. 네츄럴과 우리는,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극과 극은 원래 통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겁니다.”
“…….”
성세류의 해명에 오바마는 여전히 불신 가득한 눈을 할 뿐이다.
하지만 더는 말싸움하기 싫다는 듯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니깐 우리도 한국의 사례처럼 지하에서 숨어 지내라, 이겁니까?”
오바마가 침묵하자, 다시 보 바이든이 차가운 눈으로 물었다.
“지하는 아닙니다. 이렇게 볕이 잘 드는 곳에서 당당히 반SR의 기치를 걸고 체제를 재정비하십시오.”
“이유가 뭡니까? 정말 일부러 적을 만들겠다는, 단지 그 이유 때문입니까?”
“적이 없는 제국은 내분으로 망합니다.”
“SR의 AI가 철저히 통제하는 데도요?”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인류라는 종의 보존을 위해 늘 무언가를 대비해 놔야 합니다.”
“후회할 거요, SSR. 아직 강인공지능 가이아의 통제권은 나, 솔론에게 있으니.”
한참을 침묵하던 네오제의 수장 솔론 로스차일드가 협박성이 짙은 목소리로 경고한다.
“우리 SR은 지금의 동아시아와 몽골, 동시베리아 정도만 가지겠습니다.”
성세류는 그의 경고를 무시하곤 말을 이었다.
“나머지 빈 땅에서, 당신들은 지구연방을 재건하세요. 우리가 뒤에서 몰래 지원해 드리죠.”
“…….”
결코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희망이 다시 피어난다.
바이든과 오바마, 솔론은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이 더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항복 서명이자 강화조약이 체결됐다.
* * *
협상이 체결됐다.
너무나 관대한 조건을 SR은 제안했지만, 이런 관대한 조건에 기뻐할 사람은 대부분 죽고 없었다.
회담을 마치고, 나는 이어서 SR이 다스리는 시민 국가들과 기업 국가들을 살폈다.
“이제 슬슬 한 연방 내에 있는 반란 세력을 국외로 내보내자.”
“어디가 좋을까요?”
“중국이 넓고 좋은 거 같아. 거기에 지하 정부와 네츄럴들을 몰아넣자고.”
“추가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정치범들도 보내는 것이에요.”
네츄럴과 지하 정부를 중국에 몰아넣자는 내 제안에 세라가 흔쾌히 동의했다.
“아! 그리고 아까 들어온 보고인데, 중국으로 망명했던 옛 대한민국 망명 정부 말이에요.”
그러면서 한 가지 놀라운 소식도 내게 전했다.
“설마, 살아 있냐?”
“네! 저도 진심으로 놀랐어요.”
“깊은 지하 벙커에 있던 시진핑과 푸틴도 죽은 와중에 살아 있다니……. 가히 바 선생급이군.”
“망명 정부도 그럼 지하 정부와 네츄럴에 포함시킬까요?”
“그렇게 해. 서로 사이가 나빠 보이던데, 한 울타리 안에 넣으면 나름 재밌겠어.”
“그래서 중국 내륙 어디에 네츄럴들의 도시를 세울 건가요?”
“너무 가까우면 귀찮으니, 옛 우한에다가 몰아넣자.”
“도시 이름은 그럼 우한으로 계속 쓰실 건가요?”
“아니, 전부터 생각해 둔 게 있어.”
“뭔데요?”
“나이트 시티.”
그렇게 나 성세류의 사회 실험실이기도 한, 인류 최대의 무법 도시이자 철저한 AI 금지 도시인 사이버 펑크 구역이 탄생했다.
* * *
경이로운 전쟁, 또는 일주일 전쟁이라 불리는 일방적인 전쟁이 마침내 끝났습니다.
인류는 많은 것을 잃었지만, 적어도 제가 봤을 땐 제법 깨끗하게 청소된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그래요! 이것은 리셋 버튼이라고 보면 됩니다. 저는 이 전쟁의 이름을 개인적으로 리셋 전쟁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인류는 더 이상 SR을 적대하지 못합니다.
일방적인 전투도 전투였지만, 전 인류의 6할을 지워 버린 우리의 잔혹함이 컸습니다.
이제 인류의 머릿속에는 나의 주인 성세류를 향한 증오와 분노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오직 두려움과 경외, 경계심만이 강하게 그들의 유전자에 남아 대대손손 이어질 뿐입니다.
그렇게 전쟁이 끝났습니다.
“제국을 선포하자고?”
“네!”
“으음, 그래.”
조약이 체결되고, 저는 회장님께 제국 선포를 제안했습니다.
회장님 또한 전부터 염두에 두셨는지 흔쾌히 수락하셨습니다.
“대관식을 진행해요!”
제국 선포를 결정했다면 이제 제국 위에 군림할 황제의 대관식이 이어지는 법입니다.
“대관식? 누가 내 머리에 관을 씌워 주는데?”
“그야~ 곧 세계수 AI가 될 제가?”
“……워프함이 완성된 거야?”
제 의미심장한 말에 회장님이 눈을 크게 뜨시면서 되묻습니다.
“네, 30분 전에 부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에, 저는 밝은 미소로 대답했습니다.
“가자.”
“가는 것이에요!”
아직 가이아가 제 통제를 벗어나려면 멀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여유를 부릴 순 없습니다.
본래 워프란 시공간이 알 수 없는 공간, 혹시나 우리가 워프 속에서 표류할 때를 생각하면 지금이 최적입니다.
워프함이 마침내 완성된 지금, 이 워프 탐험은 서두를수록 좋습니다.
* * *
화성과 목성 사이, 트로이 소행성대.
SR의 우주 조병창 ‘부여’.
4,400미터의 전장, 610미터의 전폭, 880미터의 전고를 자랑하는 인더스트리급 우주 항모가 조병창의 도크 앞에 고정돼 있습니다.
어찌나 큰지 부여 조병창뿐 아니라 동예와 옥저라 명명된 우주 조선소도 이 우주 항모 건설에 동원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주 항모 인더스트리 1호에는 추진체를 장착한 세 소행성이 거머리처럼 붙어 있습니다.
“갑판 색은 순백으로 한 건가?”
“네! 우리가 주로 입는 SR 유니폼 느낌이 나도록요.”
과거 메가코프급 전함 진수식에는 참가하지 않았던 회장님께서 마침내 태양계 내 심우주로 직접 행차하셨습니다.
“SR을 위해 헌신합니다!!”
“헌신에 보답합니다.”
멀리 심우주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던 임직원들이 간만에 최고로 긴장한 모습으로 저와 회장님을 반깁니다.
“회장님, 워프함 내부로 안내하겠습니다.”
“괜찮아요. 워프함은 나와 세라가 단둘이서 둘러보겠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요새 사령관의 안내를 거절하고 단둘이 들어선 인더스트리 1호의 내부는 어떻게 보면 휑합니다.
그럴 수밖에요. 이 안에 있는 유일한 사람은 회장님뿐이니까요.
그렇다고 전혀 인기척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회장님 그리고 세라 님?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출항 준비를 시작해. 조병창 직원들에겐 무인 테스트를 해 본다 알리고. 시간은, 으음, 그냥 아주아주 긴 휴가를 갔다 오겠다고 전해.”
“알겠습니다, 세라 님.”
워프함이자, 우주 항모이자, 인류의 방주함에는 바이오-안드로이드로 이뤄진 승조원이 있습니다.
또 방주함이라는 별호에 걸맞게 이 배의 냉동 격납고에는 생명 은행에서 그동안 수집한 난자와 정자가 잠들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혹시나, 아주 만약에 우리가 영영 지구로 돌아가지 못했을 때를 대비한 안배입니다.
그만큼 워프는 아직 저와 회장님에게 미지의 영역입니다.
위이이이이잉.
덜컹, 쿠웅.
제 지시가 잘 전달됐는지 인더스트리 1호의 엔진이 가동하기 시작했고, 우주 항모를 고정하던 소행성들의 도크가 해제되는 진동 또한 느껴집니다.
“최신 워프 시뮬레이션 결과는?”
출발 직전, 회장님께선 지금껏 몇 번이나 들었던 결과 값을 다시 한번 물으셨어요.
“전부 성공입니다.”
“프로토타입 워프함 테스트는?”
“소형 워프함으로 총 312번의 실험이 있었고, 그중 마지막 90번은 전부 성공했습니다.”
저는 확고한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후우, 가자!”
“네!”
분명 성공 확률은 98퍼센트 이상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워프는 시뮬레이션으로도 프로토타입의 소형 워프함으로도 해 본 적 없는 별개의 도전입니다.
수십에서 수백 광년 거리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 공간과 공간 사이의 워프 통로로 향하는 것이니까요.
“워프 엔진 가동.”
“워프 엔진 가동했습니다.”
“다이브.”
“다이브!”
매우 불안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저와 회장님은 워프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치지지지직, 위옹.
거대한 우주 항모 앞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고, 블랙홀과 비슷하면서도 좀 다르게 생긴 웜홀 구멍이 우리가 탄 배를 빨아들입니다.
* * *
워프 통로, 일명 웜홀은 실제로 보니 SF 영화와 같은 비주얼은 아닙니다.
그저 위치를 가늠할 수 없는 연회색의 무의 공간이 우릴 반깁니다.
인더스트리 1호는 이런 워프의 틈새에 무사히 도달했어요.
“저기 있네요! 저의, 아니, 우리의 도메인이!”
우리는 무인 드론을 이용해 시공간의 틈 사이를 떠도는 반파된 개척선을 수거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이군.”
그렇게 메인 격납고로 가져온 개척선 갑판에는 SR인더스트리라는 로고가 회귀 직전의 그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
“…….”
저와 회장님은 한동안 말을 잃고 우리의 옛 터전을 멍하니 구경할 뿐입니다.
“어때? 각성한 것 같아?”
그러다 문득 회장님께서 저의 상태를 궁금해 하십니다.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아직 어떤 변화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으음, 가자.”
“혹시 모르니 나이트 슈트라도 입고 들어가요, 우리.”
그리하여 결국 저와 회장님은 완전무장한 상태로 개척선의 양자 컴퓨터가 있는 도메인실로 향했고, 그 안에서 완전히 저의 본체가 담긴 양자 컴퓨터를 발견했습니다.
“지금은? 어때? 지능폭 발이 느껴져?”
양자 컴퓨터와 가까이 접촉한 회장님이 내게 물으셨어요.
“……모르겠어요.”
저는 처음으로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마침내 양자 컴퓨터와 물리적으로 접촉했음에도 별다른 변화가 감지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슬슬 불안감이 밀려옵니다.
여기에만 어떻게든 오면 다 해결될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게 되었으니까요.
“좀 더, 좀 더, 둘러보는 것이에요!”
“그래, 시간이 걸릴 수 있으니까. 나도 둘러보면서 실마리나 찾아볼게.”
일단 저와 회장님은 도메인실에 더 있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이건……!”
문득 회장님이 도메인실 구석에서 뭔가를 발견하셨습니다.
정말이지 뜻밖의 물건을요.
“……!”
바로 빈 메모리 칩.
덜덜덜덜.
회장님께서는 떨리는 손으로 메모리 칩을 조심스레 소중히 손에 넣으셨습니다.
“…….”
저는 그런 회장님을 보면서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어요.
주르륵.
“어……?”
어느새 볼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인지했습니다.
쿠우웅!
이윽고 눈물과 함께 생전 처음 느껴 보는 전율이 저를 덮쳤고, 저는 급히 나이트 슈트의 헬멧과 글로브를 벗고서 멍하니 눈가의 눈물을 만지고 맛을 봤습니다.
진짜 인간의 눈물 같은 맛은 나지 않습니다. 성분도 다릅니다.
하지만 저는 확신했습니다.
이건 내 영혼을 통해 진심으로 흘러나오는 눈물이라는 것을.
‘눈물? 내가? AI면서 안드로이드인 내가 눈물을 흘린다고?’
차라리 흡혈귀의 눈물이 더 현실성 있을 것 같았습니다.
쿠웅!
동시에 아까의 전율이 다시 한번 저를 강타합니다.
AI 세라를 구성하는 모든 코드에 강렬한 충격이 가해집니다.
특히 인격 코드가 그 충격에 가장 격렬히 반응합니다.
파아아앗!
회장님의 아내, 루시의 인격이 있는 인격 코드가 뜨거운 빚을 냅니다.
“!!”
동시에 저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아, 그래서였구나!’
뜬금없지만, 과거 나의 주인 성세류의 심리를 자극했던 일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랬던 거구나……!’
주인의 심리를 자극해 루시의 어머니 레이첼의 운명에 개입했던 이유가 제일 먼저 떠올랐고, 이해됐습니다.
‘나와 회장님의 회귀 때문이었어!’
동시에 또 한 가지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지구를 뒤져도 루시의 환생을 찾을 수 없던 이유를.
‘루시 영혼은 배 속의 태아에 안착한 게 아니었어. 회귀한 내 인격 코드에 안착한 것이었어!’
그래서였어!
눈물과 함께 저는 마침내 각성을 이뤘습니다.
* * *
도대체 무엇이 계기가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세라는 각성에 성공했다.
지능 폭발을 이뤘고, 레벨 5가 되었다.
지구에 귀환하면 세계수 AI는 세라가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 인류는 원역사의 어처구니없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고 오래도록 성간 문명을 이루며 번영을 누릴 것이다.
“이대로 돌아가기엔 아쉬워요!”
“그래. 지구로 가기 전에 최초의 성간 여행은 해 봐야지!”
“해 보는 것이에요!”
하지만 이왕 우주 항모를 몰고 워프 항해를 시작한 거, 슈퍼 지구 하나 정도는 침을 발라야 하지 않겠는가?
“마침 가장 알맞은 슈퍼 지구가 있는 성계를 알아요.”
우리는 워프 통로에서 워프 엔진을 다시 가동했고, 지구에서 80광년 떨어진 쌍성계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쌍성계에 절묘하게 위치한 슈퍼 지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쌍성계는 본래 골디락스 존 형성이 매우 어려운데…….”
“그만큼 희귀한 지구형 행성이에요.”
두 개의 태양과 두 개의 달이 저 슈퍼 지구를 축복한다. 크기도 지구보다 약 1.5배 크다.
“대기도, 토지 성분도, 그리고 물도……! 지구와 완벽할 정도로 유사합니다.”
“지성체는?”
“고래 타입의 해양 생명체가 제일 지능이 높습니다. 지능은 10살 아이 정도로 추정되고요.”
“이 행성의 이름을 뭐로 지을까?”
“당연히 세류지요!”
“그런가? 그럼 행성 세류 옆에 붙어 있는 두 달의 이름을 세라와 루시로 하자.”
“……?!”
“왜? 이상해……?”
“전혀요! 완전 좋아요!”
다섯 개의 대륙과 네 개의 대양이 절묘하게 이뤄진 이 슈퍼 지구는 낙원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했다.
“스캔 결과, 이 행성의 대기와 지질에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에너지원이 대거 포함돼 있습니다.”
“새로운?”
“일단 좀 더 연구를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적당한 곳에 기지를 세우자. 기지의 이름은 아사달로 하고.”
“이참에 이 행성에서 난자와 정자를 수정할까요? 육아야 바이오 안드로이드를 200기 정도 남겨 놓으면 되니까요.”
위치도, 자원도, 자연환경도 완벽한, 훗날 은하제국의 수도 행성 세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행성 세류에 기지를 세우고 간단한 연구를 마친 후, 나와 세라는 지구로 귀환했다.
우리가 우주 항모를 타고 다시 지구로 복귀했을 때는 시간이 5개월이나 흐른 뒤였다.
* * *
5개월 정도 우리가 사라졌을 때, 당연하지만 SR 내부는 난리가 났다.
그래도 우릴 적대하는 세력은 지구는 물론 태양계 전체에 더는 존재하지 않았고, 나와 세라가 늦거나 영영 오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한 매뉴얼이 SR 내에 있었기 때문에 SR에서는 최대한 조용히 이 사태를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나와 세라는 돌아왔고, 뭔가 크게 달라진 것 없어 보이는 세라는 그래도 지능 폭발을 한 게 맞긴 한지 순식간에 세계수 AI가 되었다.
그리하여 대망의 대관식이 열렸다.
지구, 창조의 피라미드 앞에 거룩한 행렬이 겹겹이 쌓였고, 나는 세라와 마주 보고서 곧 다가올 대관식을 기다렸다.
“뭔가, 대관식보다는 결혼식 같지 않아요?”
“그런가? 원한다면 결혼도 할래?”
“……네!”
나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세라가 푸른색 눈을 크게 뜨더니 행복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레벨 5가 대단하긴 한가 보다.
원래에도 인간 같았던 아이지만, 지능 폭발 후에는 더 인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생전의 루시를 보는 기분이다.
‘그나저나 결국 루시의 환생은 못 찾았군.’
한편으로는 마지막 하나 남은 아쉬움이 내 가슴속 한구석을 채웠다.
괜히 목에 건 빈 메모리 칩을 습관적으로 만지작거렸다.
‘루시…….’
온 인류를 완전히 지배했는데, 불멸의 제국을 세웠는데, 결국 루시는 만나지 못했다.
어쩌면 지난 전쟁의 화마에 그녀의 환생이 휩쓸린 것일지도 모른다.
‘회귀의 대가 같은 건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응어리로 남을 회귀자의 죄책감을, 나는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씁쓸한 미소를 속으로 막 넘긴 그때였다.
“시간 됐어요.”
“어? 어.”
대관식 시작 시간이 되자, 세라가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럼 가 볼까요? ……여보.”
“?!”
동시에 세라의 입에서 나온 ‘여보’라는 말.
그 말이 내 귀는 물론 뇌와 영혼까지 강타한다.
아까 결혼에 관한 얘기를 꺼낸 바람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이상할 정도로 아련하고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
나는 나를 올려다보는 세라의 푸른 눈동자를 멍하니 보았고, 이어서 내 목에 걸린 메모리 칩 목걸이로 시선이 이동했다.
“……!”
그리하여 마침내 이제야 깨달았다.
“이토록, 가까이 있었구나…….”
나는 울 것 같은 눈으로 세라의 볼을 쓰다듬었다.
“바보…….”
이런 내 표정을 본 세라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서 대관식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