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561
1561화 염라왕(閻羅王) 칙봉
청금의 상태를 보니 과연 진양의 판단은 옳았다.
영제가 아무리 이곳에서 천년만년을 기다린다고 해도 청금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고해는 자아를 잃은 망자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곳.
배를 타고 고해를 빠져나와 이곳까지 올 수 있는 건 최소 자아이성을 지켜낼 정도로 강한 사람뿐.
충분히 강하지 않은 사람들은 청금과 같은 상태에 빠지게 된다.
자아이성을 잃은 채 강시와 같은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광기에 사로잡힌 귀신들은 난폭하게 날뛸 수라도 있지만, 이곳에 있는 자들은 날뛰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것쯤은 큰 문제가 아니다.
일단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이곳으로 데려오기만 한다면 자아이성은 점차 조금씩 회복될 것이다.
진양은 곧장 흑옥 신문을 통해 생사간으로, 그리고 생사간을 통해 고해로 향했다.
이번에는 살성 대신 황천마종의 뱃사공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살성의 배는 너무 강력한 기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청금처럼 연약한 망자가 탔다간 눈 깜짝할 사이에 소멸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땐 오히려 작은 나룻배를 타고 다니는 황천 뱃사공이 훨씬 더 안전하다.
진양은 황천 뱃사공의 배를 타고 동거울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직 본능에 의해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망자들이 모여있는 해역에 도착했다.
배는 천천히 수많은 망자들을 지나치며 청금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멍한 눈의 그녀를 보고 있으니 진양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예전에 일념의 바다 안에 있던 영제가 잘라낸 기억 세계에서 진양은 청금의 동생이 되었었던 적이 있다.
비록 그녀와 오랜 시간을 마주한 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매우 따뜻하고 선량한 사람이라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청금 소저, 이만 저와 함께 가시죠. 당신의 부군께서 아주 오래전부터 당신을 기다리고 계셨답니다.”
진양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청금을 구출한 뒤 유유해 고해를 빠져나갔다.
청금과 마주하게 된 영제.
그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 맺혔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그녀를 안고 싶었지만 선뜻 그럴 수가 없었다.
진양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피해주었다.
비록 지금까지 알고 있던 영제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긴 했지만, 그래도 썩 나쁘진 않았다.
적어도 이쪽이 훨씬 더 인간적인 편이었으니까.
거래를 마치고 나니 한층 더 홀가분해진 진양은 정처 없이 망자의 세계를 떠돌기 시작했다.
망자의 세계의 변화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아마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다.
천제의 출현과 함께 진양이 소설책을 밖으로 꺼내든 덕분에 망자의 세계의 규칙은 한층 더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다만 앞으로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심 가득한 규칙을 추가하는 건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더 이상 추가할 만한 규칙도 없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모두 마쳤기 때문이다.
한편, 진양은 어느덧 망자의 세계의 끝에 도달했다.
수많은 죽은 세계들이 있는 곳.
이곳에선 여전히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무한으로 반복되는 굴레였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회색 태양이 있는 곳도 가보았다.
회색 태양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완전히 그곳을 벗어날 수 있게 된 듯했다.
풍도대제는 천제가 되었다.
물론 풍도대제로부터 떨어져 나온 열 개의 화신들도 원한다면 신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당장은 아무런 반응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신이 될 생각이 아예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급 신이 되는 건 애초에 되는 의미도 없고, 상급 신이 되는 건 대다수의 생명체에게 있어 자살이나 다름없는 행위다.
신도(神道)는 극단적인 장단점을 가진 양날의 검이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이 태일을 처치했던 방법을 떠올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일이 많은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소설책의 존재도 알려지게 될 것이다.
그랬다간 예기치 못한 귀찮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아니, 감히 진양의 심기를 건드리려는 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진양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될 수도 있다.
한참의 고민 끝에 진양은 다시 흑검을 꺼내 들었다.
흑검 손잡이에 새겨진 검은 봉황이 날개를 펼쳤다.
선천충각으로 만들어진 두 눈이 반짝이며 빛을 뿜어냈고, 양 날개와 꽁지엔 무려 다섯 개의 선천충각이 보석처럼 박혀있었다.
진양은 머릿속에서 기억을 뽑아낸 뒤 흑검으로 잘랐다.
태일을 처치하며 만들어진 기억들이었다.
잘라낸 기억은 광구로 변했다.
검광은 광구의 주변을 맴돌며 눈 깜짝할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베었다.
진양과 동일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예외 없이 모두 기억이 잘려 나갔다.
그렇게 잘려 나온 기억들은 전부 진양의 광구 속으로 흘러들었다.
이렇게 역사의 한순간이 광구가 되어 진양의 주머니 속에 보관되었다.
일전에 소설가의 반응을 보며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많은 공을 세우고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특히 진양 같은 외부인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얼핏 계산해 보니 지금 이 세계로 온 지도 어느덧 삼천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이 세계에 머물 의미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상 신선이 될 생각도 없었고, 이곳의 우주를 벗어나 먼 곳으로 모험을 떠날 생각도 없었다.
그러므로 혹여나 자신에게 독이 될 수 있는 것들은 철저하게 제거하는 게 상책이었다.
적어도 이곳에 있을 동안 만큼은 말이다.
이어서 진양은 또다시 무언가 떠올랐는지 자신에 관한 수많은 기억들을 흑검으로 베어냈고, 수많은 역사들이 광구로 변해버렸다.
다소 거대한 범위를 건드린 탓인지, 아니면 역사와 관련된 부분을 건드린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진양의 눈앞에 시간의 강이 나타났다.
진양이 과거를 바라보려는 순간 한 자루의 투명한 검이 참격을 가해왔다.
시간의 강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려는 자들은 반드시 이 검을 견뎌내야만 한다.
참격으로부터 현묘한 기운과 도가 느껴졌다.
아주 잠깐 느꼈을 뿐인데도 상당한 깊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다시 참격을 다해온다면 그때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강하고 현묘한 기운과 도가 느껴질 것이다.
이것을 남긴 건 천존이 분명하다.
천존은 과거를 베며 과거를 베었던 검을 영원히 과거에 남겨두었다.
이로써 한 번 지나간 과거는 다시 돌이킬 수 없게 된 것.
이번에는 미래 쪽을 바라보았다.
마기를 뿜어내는 검은 관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온 미래를 매장해버릴 듯한 기세였다.
그때, 관뚜껑이 서서히 열리는 모습이 보였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두 개의 눈, 그리고 관뚜껑에 걸쳐진 한 쌍의 팔이었다.
몽의의 것이 분명했다.
그의 눈은 미래에 매장되었다.
그러나 두 팔은 미래로 향하는 방향을 찾지 못해 시간의 강에 버려진 듯했다.
진양은 포권을 취하며 천존과 마존에게 경의를 표했다.
만약 두 사람이 미리 길을 열어두지 않았다면 이 시대의 인간들은 결코 세 천제를 완전하게 처치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래는 일자결을 익힌 탓인지 마음속에서는 천존에게 훨씬 더 친근감을 느꼈었다.
그러나 마기를 뿜어내고 있는 검은 관을 보고 있으니 마존에 대한 친근감이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마치 관짝 장인 진 노인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르신, 저는 결코 과거나 미래를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조용히 현재에서 살아가고 싶은 것이 제 바람이지요. 단지 이것 하나를 위해 저와 관련된 기억을 조금 지운 것일 뿐, 결코 역사를 자르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몽 사숙의 두 팔은 다시 가져가도 상관없겠죠? 미래에 있는 것도 아니고, 과거에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진양은 몽의의 팔이 있는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진양의 손이 몽의의 팔에 닿는 순간.
시간의 강에 잔잔한 물결이 일어나며 몽의의 팔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
그와 동시에 산 자의 세계에 있는 몽의에게 팔이 돌아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관 안에 매장되어 있는 두 눈은 진양의 힘으로는 다시 회수할 수가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바로 코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미 미래에 매장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다음 순간의 물건을 취할 수는 없는 법.
단 한 순간이라도 미래에 영향을 끼치는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를 느끼고 나니 눈을 회수해야겠다는 마음은 깨끗하게 사라져버렸다.
검은 관은 오랜 세월 동안 시간의 강에 존재했던 만큼 이미 시간의 강의 일부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것을 취하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 정면으로 시간의 강과 마존이 남긴 검은 관에 대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죽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 갇혀 다시는 현재로 돌아오지 못하게 될 확률이 높았다.
‘괜히 쓸데없이 사고를 칠 필요는 없지.’
진양이 다시 한번 포권을 취하자 시간의 강은 점차 희미해지며 사라졌다.
생각해 보면 몽의는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가 진양을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도 그가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강하지 않았던 시절에 미래를 훔쳐보고도 관 안에 매장되지 않았던 건, 어쩌면 마존이 남겨둔 무언가가 자비를 베푼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볼일을 마친 진양이 다시 산 자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순간.
거대한 힘의 파동이 느껴졌다.
대취의 힘이었다.
그의 몸에선 신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풍도대제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듯했다.
그는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신이 될 것이다.
썩 나쁜 건 아니었다.
풍도대제로부터 떨어져나온 열 개의 화신들은 그야말로 제각각의 모습과 성격을 가지고 있다.
신이 된다면 일종의 제약이 가해지는 셈이니 오히려 잘된 일이다.
‘그렇다면…….’
풍도대제는 진양에게 상고 지부를 맡기고 떠났다.
다만 진양은 거대한 상고 지부를 모두 관리할 만큼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여유롭게 유람을 하는 건커녕 매일 수많은 일에 치여 살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진양은 곧바로 대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한참 누군가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신의 기운을 느끼며 진양은 큰소리로 외쳤다.
“대취를 상고 지부의 십전염왕(十殿閻王) 중 한 사람인 염라왕(閻羅王)으로 칙봉한다!”
진양의 외침에 풍도대제와 상고 지부의 영향이 더해지자, 대취의 몸 안에서 흘러나오던 신의 기운이 한층 더 강력해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는 검은 장포를 입고 흑철로 만든 관을 쓴 인간 형태의 생명체로 변했다.
“풍도대제께서는 희생되셨지만, 그분은 여전히 존재하십니다. 그분의 이름은 절대로 잊혀져선 안 되는 법.
그분은 여전히 상고 지부의 대제이시지만, 단지 그 어떤 일에도 개입을 하시지 않을 뿐입니다.
당신들은 풍도대제로부터 분리된 존재. 천제 휘하의 십 대 대장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러니 당신들을 왕으로 봉하여 풍도대제 대신 상고 지부를 관리하도록 하는 것도 매우 합리적인 일입니다.
열 명이 돌아가면서 사이좋게 우두머리를 맡도록 하고, 서로 협력과 견제를 이어나가도록 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아직 다른 사람들까지 칙봉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쓸데없는 잡무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은 편했다.
상고지부의 일을 맡기기에 이 열 명의 사람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다.
게다가 풍도대제가 천제가 되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각자 제각각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건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여기에 풍도대제까지 버티고 있었으니 안정적으로 수평이 유지될 것이다.
한편 대취는 새로워진 자신의 모습을 보며 크게 기뻐했다.
정확히 어디서 들려온 목소리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천제가 된 풍도대제의 목소리가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