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79
79화. 뗏목왕과 동치미국수
충무 김밥.
김밥과 달리 밥을 김으로만 싼 꼬마김밥에 오징어나 꼴뚜기 무침과 무김치를 곁들여 먹는 간편하면서도 맛 좋은 한 끼 식사였다.
원래는 옛 충무시, 지금의 통영시에서 뱃사람들이 배 위에서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하려고 김밥을 싸서 다녔는데, 더운 날 김밥 속 내용물이 쉽게 쉬어버려서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밥과 내용물을 분리해서 팔기 시작한 게 그 시초라나?
김과 밥을 간단하게 말기만 하면 되고, 오징어무침이나 무김치는 삭혀도 쉬이 쉬지 않고 오히려 맛이 좋아지니 미리 대량으로 만들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뱃사람들에게 딱인 음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한 때는 가성비 최악의 음식이라고 불릴 때도 있었지만 말이야.”
할아버지 때 만해도 충무 김밥은 싸고 간편하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서민들을 위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애초에 뱃사람들을 위한 음식이었으니 비쌀 리가 없지.
그런데 전국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그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말도 마. 이 충무 김밥 하나가 국밥보다 비쌌다니까? 충무 김밥 먹을 바엔 든든한 국밥을 사 먹지.’
충무 김밥이 제일 비싸던 시절을 살았던 정 여사는 충무 김밥이라면 학을 뗄 정도였으니까 말이야.
다행히 2045년인 지금은 그렇게 크게 비싸지는 않았다.
무턱대고 가격을 높여 부르던 업체들도 점점 가격을 줄였고, 애초에 게이트 사태 이후로는 먹을 걸로 장난치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
“헌터들 상대로 가격 장난치다가 경을 친 상인들이 워낙 많아야지.”
게이트 사태 초창기는 법보다 주먹이 가까웠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때까지 얌체 짓을 하던 사람들은 타의적으로 많이 반성해야만 했다.
“뭐, 이번엔 내가 직접 만드니깐 가격으로 논란 생길 일은 없고.”
재료도 내가 구하고 요리도 내가 하고 가격은 받지 않는다.
조상님들이 한반도 성좌들의 자존심을 지키고 국위선양을 하고자 경기에 나선다는데 돈을 받아야 쓰나.
그 가격은 이 땅에서 내가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받았다.
“그러니, 셀키야. 튼실한 놈으로 많이 좀 잡아다 줘.”
“꾸엉!”
내 말에 지느러미를 착 하고 경례하듯이 올려붙인 셀키가 바닷속으로 풍덩 사라졌다.
현재 나는 [남국의 해안]에 들어와 있었다.
충무 김밥에 들어갈 오징어를 구하러 와 있었거든.
“배를 모는 연습도 좀 하고.”
오징어는 해안가보다는 바다 한 가운데서 잡히는 물고기.
셀키 고생을 덜 시킨다는 명목도 있고 견우가 준 배를 조종해본다는 이유도 있어서 배를 들고 여기까지 왔다.
물론 내가 아니라 천오가 들었지만.
“사장, 이거 여기 내려놓으면 돼?”
“응. 거기다 띄우자.”
출렁!
천오가 들고 온 배를 바다 위에 띄우자, 바다 표면이 크게 요동쳤다.
그 사이즈가 꽤 컸던 탓이었다.
천우혁선(天牛革船).
소가죽으로 만든 배가 어떤 건지 나도 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카약 같은 배를 가죽으로 만든 건가? 싶었지.
그런데 실제로 보니 이건,
“통나무를 가죽 풍선으로 대신한 진짜 ‘뗏목’이네.”
혁선(革船)이라고 불리는 이 가죽 배는 소가죽으로 풍선을 만들어 물에 띄운 뒤, 그 위에 나무를 깔고 올라탈 수 있게 만든 엉성한 뗏목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고무보트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도 나름 성좌가 만든 거라고 돛대와 선실도 설치된 대형 뗏목이긴 했다.
“천우가 크긴 했나 보다. 이걸 다 가죽으로 만들다니.”
견우가 보내준 천우의 고기는 놀랍게도 제림니르보다 더 많았다.
거기다 이 뗏목에 쓰인 가죽의 양을 보면 그 크기가 대충 짐작이 갔다.
말 그대로 집채만 한 황소였겠지.
나는 혀를 내두르며 뗏목 위로 올라갔다.
“읏!”
뗏목 위에 올라가니 바로 출렁인다.
와, 이거 생각보다 불안한데?
이 커다란 배가 쉽게 뒤집힐 리는 없었지만,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내가 그렇게 달달 떨고 있자, 천오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인간 아기가 응가하는 것도 아니고 그게 대체 뭐야? 몸이라도 제대로 세워 봐.”
“네가 해보든가. 이게 생각보다 어렵거든?”
“난 털에 물 묻는 게 제일 싫어. 나중에 냄새나.”
그렇게 말하는 천오 녀석은 허공에 떠오른 근두운에 옆으로 누운 채로 킬킬 웃고 있었다.
으으, 저 얄미운 원숭이 녀석.
내가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고 있자, 옆에서 미야가 웃으며 나를 달랬다.
“걱정하지 말아요, 마스터.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지켜줄게요.”
“미야는 안 무서워요?”
“저는 예전부터 우물 속에서 살았던걸요. 거기다 제가 있던 동네는 큰 강도 있고 북해도 있어서 자주 배를 타고 나갔어요.”
생각보다 물에 익숙한 생활을 했던 미야는 아무렇지도 않게 뗏목에 올라탄 뒤, 내 손을 잡고 나를 편한 자리로 이끌었다.
“여긴 덜 흔들리죠?”
“진짜네요?”
내 표정이 그제야 편안해지자 미야가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이런 데서 미야가 활약할 줄 몰랐네.
참고로 에녹은 한 번도 바다에 가본 적이 없어서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며 오지 않았다.
하긴, 에녹은 사막 민족 출신이니까.
마음이 편해진 나는 중요한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이걸로 배를 조종한다는 거지?”
내가 들어 올린 건 천우혁선을 받을 때 함께 받았던 둥근 코뚜레.
코에 꿰어 소의 행동을 조종하는 코뚜레는 천우의 사이즈에 맞게 대형 버스 핸들 정도의 사이즈였다.
자동차 핸들, 아니 배니깐 타륜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걸 운전하듯 돌리면 뗏목이 움직인다니, 역시 천계의 아이템은 달라도 다르네.
“그나저나 일단 앞으로 좀 나가야겠지? 천오야, 돛 좀.”
아직 움직이기 힘든 나를 대신해서 근두운에 탄 천오가 돛을 활짝 폈다.
그리고 그때였다.
[‘바닷바람의 가호’가 발동합니다.] [바닷바람의 가호로 인해 당신이 바다 어디를 가던 순풍이 불어옵니다.] [배가 파괴되기 전까지, 당신이 탄 배는 절대 가라앉지 않습니다.]메시지들이 눈앞에 뜨는 동시에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천우의 가죽으로 만든 돛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면서 천우혁선이 조용히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영동 할매, 감사합니다.”
장군님들 앞에서도 날 도와주시더니 영동 할매의 가호 덕분에 항해도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열심히 기도드릴게요.
나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출항해볼까요?”
촤아악!
핸들, 아니 코뚜레를 돌리자 천우혁선이 내 생각대로 움직이며 먼바다로 향해 나아갔다.
“나는 해적왕, 아니 오징어 왕이 될 거야!”
그리고 잠시 후, 천우혁선 조종에 완전히 익숙해진 나는 셀키가 잡아 온 오징어를 만선으로 싣고 당당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 * *
항해를 무사히 마치고 ‘연성이네’로 돌아온 나는 소매를 걷고 요리할 준비를 했다.
“이제 재료도 다 구했으니, 본격적으로 만들어 볼까.”
충무 김밥은 김밥도 중요하지만, 역시 오징어무침과 무 김치란 말이지.
나는 재료를 모두 주방에 가져다 놓고 손질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할 건, 동치미예요.”
“동치미요? 충무 김밥이라는 음식은 섞박지가 들어간다고 하던데요?”
“오? 미야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요, 요즘 인터넷으로······.”
미야가 얼굴을 붉히며 주머니에 손을 가져갔다.
내가 가끔 식당 밖에 나갈 때 연락하려고 스마트폰을 개통해줬는데, 그걸로 인터넷을 하나 보네.
사람을 만나는 건 꺼려져도 인터넷은 재밌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피식 웃곤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원래는 매콤한 섞박지가 함께 나가죠.”
섞박지는 모양만 다를 뿐 깍두기와 같은 무 김치였다.
정육면체나 직육면체로 예쁘게 썰어서 담그는 깍두기와 달리 섞박지는 대충대충 먹기 편한 크기로만 써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 제멋대로인 모양이 또 투박해서 보는 재미가 있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재미보다는 다른 포인트를 추구해볼 생각이었다.
“이걸 드실 대부분이 고춧가루가 들어간 김치에 익숙하지 않으시거든요.”
고춧가루를 만드는 고추는 임진왜란 전후로 한반도에 들어왔고, 지금처럼 요리용으로 쓰인 건 더 후대의 일이었다.
그러니 20세기에 활동한 손원일 제독을 제외하면 모두 고춧가루가 들어간 김치를 먹어본 적이 없을 터였다.
“그래서 고춧가루가 안 들어간 무김치인 동치미를 만들어 볼까 하고요.”
그것도 그냥 동치미가 아니라 무를 통째로 넣어 만드는 통무 동치미를 만들 예정이었다.
그러면 동치미에 들어간 통무를 썰어서 하얀 섞박지처럼 먹을 수도 있고, 김밥을 먹다 목이 마르면 동치미 국물을 시원하게 먹을 수도 있을 테니까.
“우선 무를 깔끔하게 다듬고 소금으로 절여줍시다.”
통무를 물로 깨끗이 씻어내고 소금을 골고루 묻혔다.
원래라면 여기서 최소 12시간, 길게는 24시간 이상을 절여줘야 하지만,
“우리에겐 [숙성의 수레바퀴]가 있지.”
나는 라구티엔에게 받은 [숙성의 수레바퀴]를 꺼내 돌려주자 순식간에 무가 절여졌다.
다행히 [숙성의 수레바퀴]의 횟수는 최소 1주일 이상의 시간에만 횟수가 차감되더라고.
하루 이틀 정도는 서비스 느낌으로 숙성시켜주는 듯했다.
재료를 숙성할 일이 많은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조만간 라구티스, 라구티엔 부부 신에게도 감사를 표해야겠네요.”
“두 분도 분명히 기뻐할 거예요.”
나와 미야는 씩 웃은 뒤, 동치미의 다음 단계에 들어갔다.
“미야, 던전산 암염이랑 던전 보석 벌꿀 가루를 마력수에 녹여주세요.”
“네, 마스터.”
원래 동치미를 만들 때는 끓인 물에 소금과 설탕을 녹인다.
끓인 물에 녹이면 소금과 설탕이 빨리 녹을뿐더러 물에 있는 잡균을 죽여 쉽게 상하지 않게 해주기 때문.
하지만 마력수에는 잡균이 살 수가 없으니 끓이는 과정은 건너뛰어도 좋았다.
“사이다를 넣으면 더 시원해지지만, 마력이 깃든 사이다가 없어서 아쉽네.”
사이다의 단맛으로 설탕을 대신하고 사이다에 들어간 탄산 덕분에 동치미 국물이 더 시원한 맛이 되지만, 아쉽게도 마력 사이다는 없었다.
나중에 마력수에다가 탄산 가스를 넣어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무 외에 다른 재료들을 손질했다.
“시원하면서도 단맛을 내줄 던전 배.”
우선 육회탕탕이를 만들 때 썼던 스톤페어를 조각내고 씨를 빼주었다.
그다음은 던전 쪽파를 깨끗이 다듬어서 통째로 준비해 두었다.
마지막으론 던전 마늘과 던전 생강을 다져서 베주머니에 담았다.
나는 그렇게 준비한 재료들을 차곡차곡 통에 쌓은 뒤, 미야를 불렀다.
“미야, 절임 물은 다 준비됐어요?”
“네, 막 다 녹았어요.”
나는 미야가 가져온 절임 물을 맛보았다.
“으, 짜.”
오만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짭짤한 물이었다.
그러자 내 표정을 본 미야의 표정이 흐려졌다.
“제가 잘못한 건가요?”
“아뇨, 미야는 잘했어요. 원래 동치미 절임 물은 이 정도로 짜야 하거든요.”
동치미도 엄연히 저장식품인 김치의 일종.
오래 보관하려면 짠 물로 절여야 했다.
나는 농도가 잘 맞춰진 절임 물을 통에 담은 재료 위에 가득 차게 부었다.
“이대로 상온에서 이틀 정도 내버려 두면 기포가 올라오고 그러면 다 익은 거예요.”
“다른 김치들이랑 비교하면 생각보다 빨리 익네요?”
“바로 먹어도 되고 더 오래 익혀도 되고요.”
나는 다시 [숙성의 수레바퀴]를 살짝 돌렸다.
그러자 동치미 국물이 반투명하게 바뀌면서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기 시작했다.
훌륭하게 익었다는 소리였다.
“어디, 맛 좀 볼까?”
국자를 가져와서 그릇에 옮겨 담아 맛을 본 동치미 국물 맛은,
“크으으! 이거지.”
시큼달큼하면서도 속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함.
이거 살얼음 끼게 차갑게 하면 더 맛있겠는데?
“아, 안 되겠다. 우리 고구마 삶죠.”
“고구마요?”
“자고로 동치미 국물에는 고구마거든요.”
퍽퍽한 고구마를 목이 멜 정도로 먹은 다음 들이켜는 동치미 국물은 최고지.
“여기다 소면을 삶아서 말아 먹어도 최고죠.”
살얼음 낀 동치미 국물에 소면을 말아서 잘 익은 김치 올려서 먹으면 크으!
생각만 해도 몸이 부르르 떨리는 맛이었다.
“장담하는데 이 동치미 국물이 넥타르보다 맛있을걸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인정할 수 없다는 듯 헤르메스가 보낸 성좌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헤헤, 어쩌나?
이건 우리만 먹을 거라서.
나는 파스타 머신으로 뽑은 소면을 삶아서 동치미국수를 말았다.
내친김에 돼지 수육도 삶아서 제대로 해 먹어야겠네.
“자, 날도 더운데 시원하게 동치미국수 한 사발씩 말아먹고 합시다!”
“사장 만세!”
“가끔은 피보다 더 맛있는 액체도 있군요.”
“너무 시원한 맛이에요, 마스터. 고구마랑 먹으면 더 맛있어요.”
갑자기 열린 직원 회식이었지만, 점점 더워지는 날씨 속에 동치미국수로 우리는 시원하게 더위를 날려버릴 수 있었다.
판금 갑오징어 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