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126
도합 7,500명은 넘길 대군세가 그만큼 거대한 규모의 군세를 마주하고 있다.
못해도 1만 하고도 5,000의 인명이 서로를 죽이기 위해 모였다는 소리다.
이들의 피가 곧 이 땅에 이전까지 있었던 모든 시시한 역사들을 씻어낼 것이고, 이전의 지명 역시 그리 되리라.
피로 쓴 역사가, 피로 쓴 새 이름이 이 벌판에 다시 새겨지게 될 것이다.
번뜩이는 전차들만 하더라도 수십 대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트로이아의 것을 제외한 모든 전차들은 그 바퀴축이 강철로 되어있지 않았고, 대부분의 장수들이 구릿빛으로 빛나는 청동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아가멤논은 예외였다.
그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철갑을 두르고서 레소스의 옆에 섰다.
그러니까, 거의 8,000명에 달하는 전군의 앞에.
“필멸자들은 싸울 때, 신들의 이름을 부르짖고는 한다!”
레소스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그는 입을 열었다.
“현명한 올빼미들과 함께 저 올림포스 산정에서 우릴 지켜보실 팔라스 아테나에게 지혜를 청하고! 무수한 이들의 피로 비를 만들어 뿌리시는 아레스께서 우리와 함께 거닐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신들은 누가 더 목청높여 부르짖는지를 보지 아니하신다!”
아가멤논이 쇠가죽으로 만들어져 그 위에 강철을 얇게 덧씌운 방패에다 창을 두드린다.
“신들은 누가 의로운지를 보신다!
오늘 우리는 행운이 닿아 의로운 이들의 편에 섰으니! 이 땅의 정당한 군주와 함께 승리하리라!!”
“우와아아아아아아!!!!”
아가멤논의 귀에 꽂히는 발성으로 전해진 연설은 병사들의 함성을 불러내었고, 대강 저 상대쪽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는지 소리의 파도가 이쪽으로 넘쳐흘러 왔다.
그리고···
“그대들이여!”
레소스가 마지막으로 목이 찢어질 듯한 음성으로 외쳤다.
“죽여라!!!!”
그 말에 마치 꼬리에 불 붙은 개들처럼, 1만의 사람들이 일제히 서로를 향해 질주했다.
“부케팔로스, 가자!”
대체로 각지의 귀족들이 전차를 타고 달려나가면 그 뒤로 보병들이 질서 없이 구름처럼 따라 달리는 형태.
당연히 사람보다는 전차가 더 빠르니, 전투의 첫번째 대결 역시 전차와 전차가 마주하는 데서 시작했다.
선두에서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달리는 아가멤논과, 트라키아의 어느 이름 모를 족장이 서로를 마주했다.
족장은, 이 시대에 2미터에 가까울 정도의 거구였다. 전차가 흔들릴 때마다 그 큰 키 때문에 불편한지 위압적으로 몸을 숙이고서 아가멤논을 노려본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방패를 몸 가까이 끼고서, 투창을 쥐는 자세를 바꿔가며 아가멤논을 조준한다.
“이름 드높은 아카이아의 왕이여! 오늘이야말로 그대에게 호적수가 있음을 보여주겠소! 그대를 꺾을 영광을 주신 데 대하여 아레스께 감사드리나니! 내 이름은···”
-콰득.
그리고 곧 방패와 투구째로 꿰뚫려 오른쪽 눈이 박살나자, 그 거구는 속절없이 전차의 아래로 떨어졌다. 그의 이름을 알 길은 영원히 사라졌다.
“···파리스.”
“···.”
속도를 조절한 나보다 살짝 앞에서 달리던 아가멤논이, 곧 다른 투창을 꺼내들며 말한다.
“그대는 얼마나 많은 적들을 상대할 수 있나?”
“···모, 모르겠습니다. 한번도 전차를 상대로 싸워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혹시 자네는 말 위에서 활을 쏘거나 할 수 있나? 정말 켄타우로스들처럼 말일세.”
“없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아가멤논은 또 하나의 투창을 던진다.
이번에 그의 창날은 마부의 흉갑과 갈비뼈를 짓부수고, 그 너머에 있던 어느 젊은 전사의 사타구니까지 관통해버렸다.
금속판을 몇 겹씩 뚫고, 다시 살을 꿰며, 뼈를 부수는 위력.
마부가 휘청이면서 쓰러지자 그에 딸려서 전사의 하복부 역시 날붙이로 헤집어졌고, 곧 내장과 피를 흘리며 땅바닥에 쳐박혔다.
“그럼, 잠시 비켜 있더라도 되겠군.”
아가멤논은 마부에게 속도를 줄이라 명한 뒤 부드럽게 커브를 돌아 아카이아인들을 향해 칼을 뽑아들어 보인다.
주군의 위용에 모두가 흥분하여 소리지른다.
“아가멤논! 아가멤논! 아가멤논!”
그들의 함성에 화답하며 아가멤논은 다시 전차의 방향을 돌렸고, 그대로 적진을 향해 내달렸다.
“···부케팔로스?”
나는그런 아가멤논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다리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등근육을 느끼며 다시 발뒤꿈치로 말의 허리를 두드렸다.
녀석이 급가속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 힘을 실어 눈앞의 전차에다 창을 놓아주었고.
곧 적의 어깨에 기다란 장대가 하나 자라났다.
전쟁의 시작이었다.
트라키아 전기 (6)
1만이 넘게 모인 사람들.
무수한 청동 창날이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불꽃처럼 일렁이며 떠다닌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를 죽이기 위하여 달린다.
“저기! 프리아모스의 아들 파리스다!!”
“소문처럼 말에 타고 있다!”
전차들이 서로 뒤엉키며 복잡한 궤적을 그리기 시작한다.
서로의 꼬리를 물려는 개처럼 그들은 서로의 뒤쪽을 노리며 이리저리 달렸고, 마부와 말들이 씨름하는 동안 전사들은 투창과 돌과 욕설을 날리며 적을 죽이려 애썼다.
“거기, 프리아모스의 차남은 멈춰라! 나는 코티스의 아들… 어어?”
-콰직.
“..아들이었던 것이겠지.”
몇 번씩이나 얘기하지만, 마부와 전차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전차보다 말이 더 빠르다.
예상 외의 접근 속도에 당혹하던 트라키아인은, 내가 칼을 뽑아들어 그의 얼굴을 덮칠 때까지 계속 그렇게 당혹한 상태였다.
살덩이를 꿰뚫는 축축하고 기분나쁜 감촉과 함께 그의 아래턱과 그 위쪽이 분리되었다.
깨진 껍데기 속 상한 굴처럼 이리저리 흩어졌을 그 이름 모를 트라키아인의 잔해를 보고 싶지 않아 굳이 뒤돌아보지 않았다.
“인어 살해자여! 나는 키코네스 족의 장수인 헤브로스다!!”
그리고 그 광경에 겁에 질리지도 않는지 곧장 다른 장수의 투창이 내게 날아온다. 적당히 피하려고 말의 속도를 높이고 있을 때쯤…
-텅!
쇠가죽으로 만든 튼튼한 방패에, 날이 박히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새 곧장 다가온 아군의 전차들이 나를 호위하듯 양쪽으로 감싼다.
나에게 향하던 투창 하나를 막아낸 전사는, 놀라울 정도로 새하얀 백발에 얼굴이 흉터 투성이 팔을 들고 있었다
그 반대편의 전사 역시 회색의 머리칼을 두르고는 상처가 길게 가로지르는 눈으로 여기저기를 정찰한다
“프리아모스의 차남이시여! 아카이아의 왕중왕께서 당신을 보호하라 명하셨습니다!!”
“악간 뒤로 빠지십시오! 여기서부터는 적진에 혼자 너무 근접하게 됩니다! 주군께서는 참시 후에 신호할 때 다 함께 적진에 뛰어들자 제안하십니다!”
그제야 주위를 돌아보니,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적 보병 무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들이 던지는 투창이 부케팔로스의 발치까지 와닿는다.
“고, 고맙네.”
“죽어라! 아카이아 개새끼들!!”
곧 보병들이 투창의 비를 쏟아내자 나와 전차 두 대는 후퇴했고, 그렇게 선회할 때의 빈틈을 노려서 트라키아의 다른 전차들까지 끼어든다.
“멈취라! 여기서 네놈들은 죽는다!!”
“우리는, 아카이아의 왕중왕께서 소년이실 적부터 싸워온 이들이다! 주군의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나를 보병들의 사거리에서 떼어낸 두 노병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한 몸처럼 동시에 선회하여 적들을 향해 투창을 날렸다.
노병들의 투창은 각각 적 전차의 바퀴와 말의 다리에 박혔고,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던 전차 2대가 허무하리만치 빠르게 허물어졌다. 노병들은 즐거이 웃으며 전차를 죽은 적들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는 잠시 내려 적의 시체에서 갑옷을 벗겨 전차 한 쪽에 걸어두었다.
꽤나 인상적인 광경이다.
“아가멤논!!”
그리고, 익숙한 이름이 들려 뒤돌아보자 역시나 적의 갑옷과 투구를 노획하던 아가멤논을 황하여 전차 서너 대가 한꺼번에 물려든다.
“아가멤논! 위험합니다! 위험…”
아가멤논은, 내 경고 따위 듣지 않고 노회한 흉갑을 가법게 던져 마부에게 건넸다.
사실 들을 필요도 없었다.
고개를 돌린 아가멤논은 마치 일상이라는 듯 적 시체에 꽃혀 있던 투창을 뽑아 트라키아인 천사에게 던졌다.
그 투창은 전사를 죽였고,
“끄아아악!! 팔이! 파, 팔이…!”
그대로 관통해서 마부의 팔까지 꿔뚫었다.
운반되어야 할 사람과 운반하는 사람 모두가 통제불능에 빠진 전차는 이리저리 방향을 뒤틀다가 바로 옆의 트라키아군 전차와 부딧혀 휘청거렸다.
그리고 아군 피해에 운 나쁘게 휠쓸린 그 전차는 옆으로 그들을 크게 피해 아가멤논을 노리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아가멤논의 두번째 투창이 타이밍 좋게 그 전차의 한쪽 바퀴를 산산조각냈다.
…그러니까, 박힌 게 아니라 산산조각냈다는 말이다.
“바퀴가 날아갔다!!”
그게 전복된 전차에 타고 있던 전사의 유언이었다.
그렇게 전차 둘이 순식간에 무력화되었고, 나머지 하나는 빠르게 방향을 틀어 도망쳤다. 그 전차는 아가멤논이 손짓으로 불러온 다른 전차들 사이에 부딧혀 부서졌고, 나머지 하나는…
“프리아모스의 아들이여! 여기, 갑옷 3벌을 그대에게 양보할 테니 이것들을 수습할 때까지 총 부탁하네!”
“…좋습니다!”
내 몫이었다.
부케팔로스는 콧김을 뿜으며 가속했고, 곧 흙먼지를 일으키며 날아다니던 전차의 뒤꽁무니를 잡았다. 전차에 타고 있던 전사는 두려움 없이 흉흉한 눈을 빛내며 나를 돌아본다.
“그대가 반도의 정복자인가! 나는 리코스의 아들 리키스다!”
“그래! 내가 프리아모스의 아들 파리스다!”
자기소개와 함께 우리는 서로 명함 대신 창을 던졌고.
하나는 적의 허리띠를 끊어내었다.
하나는 내 어깨에 부뒷혔고.
-쾅!!
“크아악…”
순간 충격에 몸이 뒤로 넘어갈 뻔하자, 영리한 부케팔로스가 알아서 속도를 늦춰추며 나의 낙마를 막았다.
창날은 흉갑이 튕겨냈지만 쇄골이, 그리고 그와 연결된 모든 근육이 방금의 충격으로 믹서기에 들어간 듯 얼얼했다.
물론 적이 내 상태를 봐가며 공격해줄 이유는 없었다. 리키스라는 트라키아인은 다시 내게 투창을 던졌고, 이번에 나는 고개를 숙여 스쳐가듯 피했다. 내 등갑예 무언가 살짝 긁히는 소리가 났다.
적의 공격을 한 번 피하자,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마침 부케팔로스의 등에 실어놓은 단창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적에게 부메랑처럼 던졌다.
그건 저도 예상치 못했는지, 리키스라는 자는 자기 가슴을 향해 회전하며 날아오는 칼날을 나처럼 겨우 피해냈다.
“끄으으윽… 주군! 주군!!”
그러나 옆에 있던 마부의 팔이 잘리는 건 예상하지 못했던 듯싶다.
당황한 그가 직접 고삐를 취며 말들을 통제하려고 하자 전차의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한다.
나와 그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고, 슬슬 남은 무기가 없으니 남들 못 보게 망치로 슥삭해야 하나 생각했다.
아가멤논의 투창이 그 전사의 목을 꿰뚫기 전까지는.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운전자까지 행동불능이 되자 곧 말들은 굴레가 답답한 듯 여기저기로 날뛰며 짐을 벗으려 애썼고, 그 난동에 아직 살아 있던 마부와 죽은 전사의 시체 모두가 떨어저 버렸다.
내가 말에서 내려 다가가자 마부는 떨어질 때 목이 부러져 죽어 있었다.
“미안하네. 자네가 좀… 느려서. 자네는 말등에 뭔가 싣기 힘들어보이니 내가 전차로 운반하겠네. 괜찮나?”
“아, 감사합니다.”
멋쩍은 듯 아가멤논이 다가와서는 리키스라는 자의 갑옷을 벗긴다. 청동으로 된 판갑을 들어올리자 그의 흉터투성이 팔근육이 도드라져 보인다.
그제야 나는 아가멤논이 일리아스에서 죽였던 트로이아 용사가 두자릿수 단위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내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아가멤논은 달리 해석했는지 내 어깨를 가법게 두드리며 말한다.
“여기서 제일 좋은 갑옷에다 저 말들까지 줄 테니 전공을 빼앗겼다고 너무 속상해하지 말게나. 곧 일제히 적 보병들을 부수고 나면.”
-팅.
아가멤논이 말하자마자 적 보병들이 던진 투창이 근처 돌맹이에 부딧혀 떨어진다.
“…전리품 분배가 있을 테니.”
“형님! 형님! 괜찮으십니까?”
그리고 다가오는 전차 하나
“데이포보스? 너..”
철물점이라도 차리려고? 거기까지 말할까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전차 뒤에 쌓인 갑옷이 한가득이다.
“멀리서 봤을 때는 투창을 맞으신 것 같았는데…”
데이포보스의 말에 나는 말없이 한쪽 어깨를 가리켜보였다. 살짝 찌그러진 흉갑 부분을
“어… 오이노네 님께서 경을 치시겠군요.”
“이번엔, 입 닫고 있어.”
“…네.”
“데이포보스, 자네도 전리품을 아군 진영으로 놓고 오지. 파리스, 그대도 나와 함께 재정비하고. 그 다음에….”
아가멤논은 전차들의 싸움을 돌아본다. 슬슬 아군이 우위를 차지해가니 적들 역시 조금씩 퇴각을 택한다.
그리고 그들을 감싸며, 서로에게 투창을 던지며 근접해오는 보병들이 양편으로 수천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
“적들을 친다.”
그 말대로 우리는 곧 후퇴하여 전력을 가다듬었다.
전차의 상태를 점검하고, 전리품들을 모아다 놓으며, 투창과 화살과 투석용 돌을 실었다.
트로이아에서 온 전차들은 대부분 멀정했다. 특히, 가장 많은 무게를 지탱하는 차축 역시 튼튼하게 버텨주었다.
모두 안탄드로스제 강철로 만들어진 덕분이었다.
아가멤논은 황금빛 갑옷에서 피도 닦아내지 않고서 다시 전차에 올랐다. 오히려 그 모습이 내게는 어떤 위압감을 더했다.
그의 곁으로, 아까 나를 도왔던 노병들을 비롯해 연로한 전사들이 전차 위에 탄 채 도열한다.
아까 들었던 말을 기역해본다면 분명 아가멤논이 어릴 적부터 그를 보좌해온 전사들이다.
그가 외국으로 쫓겨나 아버지 아트레우스와 함께 다른 이들의 영토를 전전할 때부터, 다시 왕위를 되찾기 위한 전쟁을 시작할 때까지.
그의 곁에 있던 이들. 그 폭풍 같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살아남은 정예들. 아가멤논을 아카이아의 왕중왕으로 만든 이들.
그들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난다.
“트라키아인들은 준비되었다. 동맹들은 춘비되었는가?”
“아카이아인들은 그대에게 승리를 가져다 출 준비가 되었소.”
레소스 역시 화려한 갑옷을 걸친 채 창을 든다.
그리고 구릿빛 갑옷과 창칼이 가득한 곳에서.
“트로이아인들도 싸울 준비가 되었습니다.”
유일하게 서늘한 무색광을 팅겨내는 이들.
데이포보스는 강렬한 눈빛을 빛내며 전차에 오르고, 나 역시 휴식을 취한 데이포보스의 머리에 물을 부어 흙먼지를 닦아주고 쓰다듬는다.
우리의 앞에서는 갖가지 소음과 냄새가 끔찍하게 섞여 반죽되고 있었다.
바람이 우리쪽으로 불자 이미 수백의 목숨을 들이마신 공기가 피비린내를 풍기며 내 뒷목을 감싼다.
수천의 보병들이 서로를 향해 악을 쓰며 창을 던지고, 칼을 휘두르며, 돌을 던지다가, 무기가 떨어지면 이로 악문다.
그 혼란의 폭풍 속으로.
“그럼 진격한다.”
다시 우리는 뛰어든다.
“달려라! 달려라, 트라키아인들아! 너희의 영광을 찾아 달려라!”
“아카이아의 족속들이여, 그대들의 동맹을 위하여 싸우라!”
“가장 존귀한 프리아모스 만세!”
수십의 바퀴가 대지를 긁으며 흙먼지를 일으키자, 앞에 서 있던 병사들은 환호하며 양옆으로 갈라진다.
우리는 아군 보병들이 선 곳을 크게 우회하여 달린다. 적들의 측면을 치기 위해서다.
당연히 그를 두고 볼 리가 없는 적 전차부대 역시 우리를 마주보고 달려든다. 그러나, 아까의 손실이 컷는지 이미 수가 형편 없이 줄어 있었다.
-쉬이이이익! 콰득.
그들은 우리를 막을 수 없었다.
“죽여버려!”
“던져! 던지라고!”
사방에서 말과 말이, 사람과 사람이 얽힌다. 햇빛을 튕겨내는 병장기들이 높이 솟았다가 다시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저기, 말 한 마리를 탄 놈을 노려라!”
“저자가 파리스다! 트로이아의 둘째 왕자가 저겠다!”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며 명예를 쫒는 아름다운 전통은 급박한 전투 속에서 한없이 간략화된다.
그리고, 나는 할버드를 들었다.
전차에 타고 나를 노리던 어느 창수의 창이, 재빠르게 끼어든 데이포보스의 방패에 막힌다.
“파리스! 내가 마부를 죽이겠다!”
레소스의 그 말과 함께 창수의 옆에 있던 마부의 목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혼란에 빠진 창수가 급하게 전차의 고삐를 쥐고 이리저리 서성인다.
나는 그의 흉갑에, 할버드 날을 걸었고
“어?”
그는 미처 깨닫기도 전에 전차에서 굴러떨어졌다.
온몸에서 피홀리면서 바닥을 구른 몸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죽어나가자 마침내 파리처럼 따라붙던 전차부대라는 장막은 사라지고 적병들의 부드러운 아랫배만이 남는다.
별다른 진을 짠다는 개념 없이 뭉쳐 있던 병사들은 곧 들이닥쳐오는 말들의 달음박질에 기겁하여 달아나지만, 그것 오히려 적들의 전열을 어지럽힐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어지러이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는 이들은…
-콰드드드득!
“달려라! 칼과 도끼를 휘둘러라!”
모두 죽는다.
“제, 제발… 판이시여, 제발 살려…”
“도망쳐! 어서 도망치라고!!”
전의의 상실은 마치 마른 벌판에 불처럼 번지더니, 수십의 동요가 수백의 공포로, 수백의 공포가 수천의 공황 상태로 이어진다.
사람은 모으는 것보다 흩어지는 것이 더 쉽다.
구심점 없이, 그저 레소스가 자신들을 지배하는 것이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뭉쳐 있던 각지의 귀족들은 곧 자기들끼리 전차에 올라 후퇴한다.
그들이 데려온 백성들 역시 사분오열되어 벌판으로, 숲으로 도망쳤고 굳이 죽이거나 사로잡지 않은 이들도 그렇게 안개처럼 사라졌다.
피가 흐르고, 그 때문에 미끈하고 질척해진 땅을 밟으며 레소스는 말했다.
“승리했다!”
그렇게 전투가 끝났다
트라키아에서의 마지막 전투였다.
***
그 뒤로 이어진 정치적 쿵짝쿵짝은 전투의 뒤처리에 가까웠다.
‘그리핀도르의 바실리스크 퇴치에 100점! 슬리데린의 퀴디치 우승에 100점!’ 처럼 서로가 얼마나 죽였느냐를 가지고 갑옷과 노예와 말을 나눠가지는 즐거운 정산 시간부터.
패배한 군주 몇몇의 요새로 설렁설렁 걸어가니 문을 열고 살려만 주십사 항복하는 추태를 지켜보는 일에다가.
레소스가 트라키아 대부분의 족장들을 모아놓고(또는 잡아놓고) 자신을 트라키아인들의 유일한 왕이라 선포하는 즉위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