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285
“···.”
헤시오네는 침대에 누운 채 헬레네의 손을 놓고 두 손을 깍지 낀다. 헤시오네의 표정이 천천히 굳어간다.
헬레네를 보는 그녀의 눈이 날카로워진다.
“···그럼, 네 말대로 기름을 모아 적들을 유인해놓은 뒤 적들을 모조리 불살라버린다고 하자꾸나.”
“예.”
“너는 어떻게 탈출할 생각이냐? 비단 그런 방책이 아니더라도 적들이 운집한 트로이아를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겠느냐?”
“아직 거기까지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어요.”
“탈출하지 못해도 상관 없다 생각하는 걸 수도 있겠지.”
“···.”
“역시, 위험하구나.”
헤시오네는 깍지 낀 손가락으로 자신의 주름진 손등을 두드렸다. 그 박자감이 그녀를 다시 졸음에서 깨우고 있었다.
“그리고 적들 중에는 아이아스나 아킬레우스와 같이 발빠른 이들이 있지 않느냐? 그들은 어찌 따돌려고 하느냐? 그들을 피해서 어떻게든 함정까지 끌어올 수 있겠느냐?”
“그것도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만일 적들이 너를 사로잡아 죽인다면 그거야말로 개죽음이다. 아이야, 나는 네가 허망하게 목숨을 잃고 하데스의 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구나.”
헤시오네는 고개를 저었다.
“너는 젊잖니.”
“···.”
“복수심에 차서 그릇된 판단을 하지 말거라.”
“···복수심에 찬 건 아니에요.”
헬레네가 헤시오네의 눈을 똑바로 내려다보며 말한다.
“저는 이 전쟁의 승리를 바랄 뿐이에요.”
“···.”
헬레네의 말에 헤시오네는 가만히 경청한다. 발언을 허락받았음을 확인한 헬레네가 말을 이어간다.
“트로이아와 그 동맹들이 저라는 자원을 쓸 기회는 많지 않아요. 지금이 아니라면.”
헬레네는 자기도 모르게 두 손으로 주먹을 쥔다. 그 두 손에 점차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제가 성공한다면 트로이아인들은 훨씬 적은 자원을 들이더라도 적들을 분쇄할 수 있겠죠.”
“실패한다면?”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비해 너무도 하찮아요.”
헤시오네는 그 말에 곧장 몸을 일으킨다.
“트로이아와 그 동맹이 아니라, 네가 얻을 이익을 말하는 게다.”
“···.”
“전쟁의 승리를 보지 말거라. 네 승리를 보고 네 손익을 재보아야 한다. 메넬라오스에게 목숨을 걸고 복수하고 싶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이냐? 삶이란 너무도 쓸모 있고 가치 있는 것이라 버리는 것보다는 붙들고 있을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헤시오네는 걱정이 어린 눈빛으로 자기보다 한참은 어린 이 반신(半神)을 바라본다.
“네가 얻고픈 게 무엇이냐?”
“전공입니다.”
헬레네는 망설이지 않고 답한다.
“우선은 전쟁을 이겨야 저도, 트로이아인들도 목숨을 건지고 있겠죠. 다만 모든 게 끝난 다음 트로이아인들이 제게 ‘당신은 무엇을 했나?’라고 되물을 때··· 저도 뭔가 할 말이 있어야 합니다.”
헬레네는 헤시오네의 깍지 낀 두 손을 다시 붙잡고서 말을 잇는다.
“그래야만, 전쟁이 끝난 다음 다시 당당한 스파르타의 여왕으로서 돌아갈 수 있겠죠.
승리자로서.”
“···.”
“···.”
“···그렇다면야, 내가 해줄 말이 없구나.”
헤시오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네 성공만을 빌어줄 뿐이지.”
“회의에 참석하실 건가요?”
“전번에도 말했듯이 나는 늙어서 기운이 없구나. 누구와 말하려면 그 사람이 찾아와줘야지. 네가 그랬듯.”
헤시오네는 헬레네의 뺨을 쓸어내리고, 머리칼을 매만지며 말한다.
“어여쁜 아이야, 돌아가거라. 오늘은 밤이 늦었구나.”’
“안녕히 주무세요. 다음에 찾아올 땐 좋아하시는 과일도 가져올게요.”
헬레네는 헤시오네를 꼭 끌어안은 뒤 떠나간다. 헬레네가 문을 닫자, 헤시오네는 한숨을 내쉰다.
나도 젊은 시절에 저렇게 무모하고 물불 안 가렸던가. 모르겠다. 원래 제 손에 쥔 것 없는 이들, 잃을 것 없는 이들이 저런 모험에 쉽게 몸을 던지고는 한다.
하지만 그녀는 스파르타의 여왕이 비명에 횡사하는 일 따위 바라지 않았다.
“이제, 들어오거라.”
“···.”
“···.”
그러니 이렇게 조언자들이 필요한 것이고.
헬레네가 떠난 헤시오네의 방 뒤켠, 정원 쪽으로 나있는 문이 열리자 두 사람이 들어온다.
누구와 말하려면 그들이 찾아와줘야 한다. 그녀에게는 이리저리 움직일 기운이 없다.
“누님, 밤중에 한참을 기다리게 하신 이유가 이것이었습니까?”
“그래. 프리아모스야, 네가 듣기에는 어떻더냐?”
“저는 아직도 확신을 갖지 못하겠습니다. 위험이 너무 크지 않습니까?”
“그 위험을 어떻게든 줄이려고 이 아이도 불러오지 않았니?”
“···.”
“파리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작은 등불이 밝혀주는 속에서, 프리아모스의 둘째 아들이 복잡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인다. 그 아름다운 눈에 달빛이 은빛으로 일렁이다 사라진다.
그가 말한다.
“···해볼 만하겠군요.”
***
바야흐로 기원전 12세기 초, 트로이아에 주둔하던 프리아모스는 여러 장수들로 하여금 칼리폴리스로의 파천(播遷)을 명하니 그 장자인 신장(神將) 헥토르와 다른 이들도 모두 해협을 건넌 뒤의 일이라.
헌데 천존(天尊)의 딸이자 스파르타의 여후(女侯)가 프리아모스에게 나아가 가로되 “내 직접 적장들을 유인하리니 성문을 열고 날랜 병사 십수 명만 남겨 주시오. 여남은 일은 다만 나를 믿고 맡기어 주시오.”라 하였더라.
하여 프리아모스가 그에 따르니 이윽고 패왕(霸王) 메넬라오스와 그 불측한 무리가 트로이아에 당도한다. 그들이 보아하니 성문은 열려 있고 다만 천존(天尊)의 딸 홀로 향을 사르고 거문고 줄을 고를 뿐이라.
그녀가 흰 학창의(鶴氅衣)을 입고 적루(敵樓)에 앉아 거문고를 타니 메넬라오스는 “이는 필시 프리아모스의 계략이라, 트로이아의 왕은 평생 삼가고 조심하던 이다. 어딘가에 복병이 있을 터이니 군사를 물리는 것이 좋겠다” 하며 수만의 대군을 돌리더라.
한참 뒤에야 메넬라오스가 사세를 깨닫고서 땅을 치며 후회하니 후인들은 “천존(天尊)의 따님의 깊고 깊은 헤아림은 귀신도 짐작하기 어렵다.”며 찬탄을 금치 못하고···
···아니, 제갈량 탄생까지 앞으로 1,300년도 더 남았는데 왜 내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이.
“파리스, 무슨 생각을 하느냐?”
왜긴 왜겠나.
지금 내가 딴 생각을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상황이니 그렇지.
사정을 알면서도 하필 스파르타의 여왕 얘기에 나를 불러온 헤시오네가 원망스럽고, 또 그녀가 연관된 일이라고 내가 온 다음에야 말해준 프리아모스가 원망스럽고···.
“미안하다. 하지만 한시가 급한 일이라 불러오게 되었구나.”
“···아닙니다.”
···후, 별 수가 없다.
헤시오네의 말대로 한시가 급하다. 이르면 바로 며칠 뒤에 아카이아인들이 몰려올 수도 있으니.
게다가.
“네가 방금 여왕의 말에서 설득력을 느꼈다고 하였다. 네 말이 맞느냐?”
“···예.”
일단 그녀가 단순히 자살 공격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고 장담했던 게 나를 설득해낸 주 요인이었다.
스파르타의 여왕은 전쟁 이후에 그 가치가 빛을 발할 정치적 자산이다.
아카이아를 격퇴하고, 하투샤를 물리친 뒤에 신들의 이름으로 ‘제국’이 이뤄진다면 그녀는 신생 제국의 확고한 주춧돌이 되어줄 테다.
트로이아에 확고한 빚을 지고 있는 강력한 우군이 스파르타의 왕위에 복귀한다면? 가칭 ‘트로이아 제국’이 아카이아에 영향력을 뻗치는 데 가장 주요한 통로가 되어주리라.
그뿐만이 아니다. 원전에서도 많은 아카이아의 영웅들이 반역, 암살, 시민들의 불신임으로 왕위를 잃거나 추방당했다. 심지어 패배까지 겪게 된 아카이아의 왕들 역시 그 지위가 불안불안할 것이다.
그 중에 틴다레오스의 후계자는 승리자로서 독보적으로 확고한 지위를 누리게 될 군주다. 그녀가 목숨을 잃는다면 우리는 그만큼 강력한 카드를 하나 잃게 되는 셈이다.
뭣보다도, 제우스의 딸은 이 전쟁의 명분이다. 그녀가 이런 도박 때문에 죽어버린다면 우리로서도 쫓겨온 망명자를 앞세워 이익을 보려 했다고 비난을 살···
···됐다. 이름도 생각하기 두려워하면서, 변명은 이쯤이면 됐다. 아무튼 그녀도 죽을 생각은 없다고 했으니.
“확실히 위험한 전략입니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얻을 이익이 상당하죠.”
“그리고?”
“예, 아버지. 그리고 그 위험도 역시 여러 지점에서 줄여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내가 듣기에는, 시도해볼 가치가 있는 작전이다.
나는 방금 헤시오네와 그녀가 나누었던 대화를 복기하면서 헤시오네가 지적한 문제들을 몇 가지 떠올렸다.
개중에서 가장 확실하게 해결 가능한 사항이 있었다.
“일단 헤시오네 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떻게 저 오일레우스의 발 빠른 아들 아이아스와 펠레우스의 아들인 준족(駿足)의 아킬레우스를 따돌리냐고 하셨죠.”
“그래. 저 아이가 아마존의 여왕에게 무술 훈련을 받았다고 하지만 듣기로는···.”
헤시오네는 마음이 가는 이에게 차마 “처참하다”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고 말을 얼버무렸다.
뭐, 타고난 운동 신경이 아무리 뛰어나도 아킬레우스랑 소(小) 아이아스를 따돌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첩보를 통해 전해 듣기로는 아직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아로 북상하는 중이 아니라고 하지만, 여전히 아이아스와 다른 영웅적인 전사들이 문제다.
그들을 그녀가 살살 유인하면서 따라잡히지도 않을 수 있겠나? 그런 방법이 있겠나?
있다.
“다만, 그 방법을 쓰려면 남은 며칠 동안 스파르타의 여왕은 아마 잠도 못 잘 것 같습니다.”
“저 아이의 눈을 보니 그런 고난쯤은 감내할 것 같더구나.”
“그렇습니까? 그럼 말씀해주신 대로 시일이 급하니 당장 내일부터 시행하도록 하죠. 테오와 다른 병사들에게 말해놓겠습니다.”
“무슨 방법이기에 그리 급하게 움직이느냐?”
“그건···”
***
“여왕이시여, 여기를 꽉 붙잡으십시오.”
“부, 불사조 근위대장, 묻고 싶은 게 있네만.”
“근위대장이라 불러주십시오.”
“이걸··· 사람이 직접 탈 수 있는 게 맞나?”
“안탄드로스의 군주와 그분께서 이끄시는 열댓 명의 전사들은 그러합니다. 저도 조금은 탈 줄 아는데 익숙해지면 괜찮습니다.”
“나, 나는···? 아카이아인들이 올 때까지 익숙해지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걱정 마십시오. 지금 말 한 마리를 정해진 길만 오가도록 훈련시키는 중입니다. 여왕께서 조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이 녀석이 아무리 내달려도 떨어지지 않는 연습만 하시면 됩니다.”
“갑옷도 꼭 입어야 하나? 굉장히 거추장스럽네만.”
“적들이 투창을 던질 수도 있으니까요. 자, 준비도 끝났으니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잠시만, 이 녀석이 얼마나 세게 내달리는지는 알아야···”
“말보다는 경험해보시는 쪽이 빠를 겁니다. 출발하겠습니다. 흐랴!”
“어, 어어, 어어어어어···! 으아아아아앗!!!!”
곧 불사조 근위대장 테오는, 스파르타의 여왕이 약 1분 내내 흔들리는 말등 위에서 비명을 토해내는 광경을 지켜보게 되었다.
왜 1분이냐면, 정확히 1분 뒤에 스파르타의 여왕이 하늘을 날았기 때문이다.
2초 뒤에 진흙탕 위를 뒹굴게 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인상적인 비행이었다. 다이달로스와 나란히 하늘을 날았다던 이카로스의 모습이 저러했을까?
···테오는 아카이아의 군주들이 저 비슷한 광경을 보게 되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마지막 계획 (3)
대부분의 트로이아의 시민들은 전쟁 중 도시를 버리는 지경까지 왔더라도 프리아모스에 대한 신뢰와 경애를 접지 않았다.
목숨을 건 지리한 수성전 속에서 비참을 겪을 바에야 차라리 안전한 바다 건너로 나아가는 게 낫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불만을 품은 만큼, 많은 이들이 왕의 단호한 결단을 칭송했다.
그러한 신뢰와 존경은 이 전쟁에 대한 관점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많은 트로이아인들은 파리스 왕자와 헬레네 여왕의 염문을 신뢰하지 않았다.
물론 소문을 믿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조차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왕실 때문에 전쟁이 벌어졌다고? 그 전쟁에서 이기고 제국이 건설되면 그게 뭐 대수인가?
거기에 파리스 왕자는 지금껏 수많은 승전보를 가져온 장본인 아닌가? 뭣하러 의심한단 말인가?
프리아모스 왕을 신뢰하니 파리스 왕자 역시 신뢰하게 되고, 파리스 왕자를 신뢰하게 되니 자연히 그와 염문을 뿌린 헬레네 여왕도 신뢰하게 된다. 아름다운 이국의 여왕은 트로이아 시민들에게 쉽게 호감을 살 수 있었다.
“끄아으아아아아악!!”
“우와아아아!!!! 오늘은 지난번의 거의 2배로 버티셨어!!!!”
“사과 드시면서 보시오. 얼마 하지도 않는 가격이라오. 사과들 드시면서 보시오.”
“여기 3개 주시오.”
“아스파시아 님? 어제 칼리폴리스로 떠난다지 않으셨습니까?”
“이것만 구경하고 떠날 셈이랍니다.”
그렇게 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아름답고 호감 가는 여왕님의 승마 연습은 피난 도중의 즐거운 구경거리가 되었다.
헬레네 개인이 낙마하면서 느끼는 치욕감은 트로이아의 시민들에게 가닿지 않았다.
그녀가 ‘제발 구경들 말고 빨리들 떠나줬으면···.’이라고 속으로 외쳐도 시민들에게는 닿지 않았다.
아무튼 전쟁의 불안에 떨던 시민들은 웃음과 활기를 되찾았고, 전쟁의 지도자들 입장에서도 헬레네에 대한 시민들의 호감도가 높아지니 괜찮은 현상이었다.
헬레네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더 슬펐다. 저 악의 없는 시선들에 손 흔들어주면 다들 기뻐했으니까.
“좋습니다. 오늘은 대로를 통과하면서 단 한 번도 넘어지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사흘째인데 빠르게 나아지고 있군요.”
사흘.
이 고생스러운 연습을 시작한 지 고작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다.
“···흐억···허억···고맙네, 근위대장.”
“이렇게만 가면 그 어느 아카이아인 장수도 여왕께서는 따돌리실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좋은··· 소식이군.”
테오는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헥헥거리는 헬레네에게 아카이아인들을 따돌릴 수 있게 된 게 좋은 소식인지, 오늘 훈련이 끝났다는 게 좋은 소식인지 굳이 묻지 않았다.
헬레네는 물을 마시다 못해 정수리와 몸에 부어버린 뒤, 찰랑이는 머리칼에서 물기를 쭉쭉 짜낸다. 겨우 기력을 회복한 스파르타의 여왕이 불사조 근위대장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말이 달리는 경로가 이렇게 정해진 것이지?”
헬레네가 탄 말은 본래 안탄드로스의 기병대원 중 한 사람이 타던 말인데 특히 똘똘하고 기억력이 좋아 차출되었다고 들었다.
과연 녀석은 다른 먹이나 장애물에 신경을 팔지 않고 정해진 길만을 달렸다.
트로이아의 서문(西門)인 스카이아이(Σκαιαί) 문에서, 파리스의 궁전까지.
“대규모의 적들이 북상해오고, 또 트로이아를 함락시킨다는 상징성도 있으니 적장들은 아마 가장 큰 성문인 스카이아이 문으로 진입해 들어올 것입니다.
출발지가 스카이아이 문인 것은 당연합니다.”
그 점은 쉬이 납득이 되었다.
···하지만, 목적지는 왜 그 사람의 집이란 말인가?
“종착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긴 설명이 필요하겠군요.”
테오는 잠시 고민하는 듯 턱을 스다듬다가, 이내 손가락을 튕기며 헬레네에게 따라오라는 듯 손짓했다.
“마침 파리스 님과 오이노네 님께서도 이제 상시 회의를 준비하시느라 왕궁에서 생활하시니 직접 보여드리며 설명하겠습니다.”
“보여···주면서?”
“예. 아마 직접 보시면 빠르게 납득할 수 있으실 겁니다.”
그 말에 반신반의하며, 또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간다는 데 괜히 긴장하며 헬레네는 테오의 등 뒤를 따랐다.
테오의 지시에 궁전을 호위하던 병사들이 문을 열었고.
···곧 헬레네는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이 동그래졌다.
“저, 저게··· 뭐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설명을 들었는데도 워낙 복잡해서.”
헬레네는 금속으로 만든 새가 날개짓하는 광경을 보았다.
그리고··· 벽들이 움직인다.
“하지만, 이게 여왕님의 탈출 방법이 될 거라는 사실은 압니다.”
***
“그때 만들어 놓았던 장난감들이 이렇게 쓸모를 찾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장난감들.
말 그대로였다.
복잡한 비밀방들, 이런저런 지하 공간, 거기에 아주 원시적인 증기기관의 힘으로 자기가 알아서 열고 닫히는 문과 여러 움직이는 동상들.
이노에게 바칠 프로포즈를 위해서, 그리고 이런저런 장난과 손님들을 위한 과시를 위해서 꾸며 놓은 결과물이다.
안탄드로스에서 스클레오스 아저씨와 다른 장인들을 불러와 한참동안이나 뚝딱거려 만든 물건들, 거기에 헤파이스토스 신의 가호가 약간 첨가된.
마지막에 붙은 말이 특히 중요하다.
파티용 장난감들이 원래 그렇지만, 난 이 물건들을 오래도록 가지고 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 시대의 기술 수준으로는 유지하기 어려울 복잡한 물건들이다.
그럼에도 내 저택의 기기들은 지금까지 멀쩡히 작동하고 있다. 분명 헤파이스토스의 가호가 미친 영향이 크리라.
“스파르타의 여왕이 말을 타고 제 저택으로 달려오면 비밀 공간 안으로 숨을 수 있을 겁니다.
그때 문을 잠그든 병사들을 모아 막든 해서 조금만 시간을 끌면 기관장치들을 이용해 여왕의 위치를 숨길 수 있겠죠.”
“그리고 난 다음에는?”
“펑.”
“···펑?”
나는 의아해하는 펜테실레이아에게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다른 군주들도 궁금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신들께 실례되는 일일 수 있겠으나, 일단 신전에서 사르던 유황들을 모아왔습니다. 거기에 역청도 가져왔지요.”
유황에, 막 오줌 끓여서 나온 거 섞고, 여차저차, 허이차허이차 하면 흑색화약이 나온다!
···오소르콘에게 달라는 물자는 모조리 제공해주면서 여러 번 시도해봤으나 결국 나는 화약의 역사를 2,000년 정도 앞으로 끌어당기는 데 실패했다.
뭐, 사실 폭발물 관련한 실험을 진행하면서 사람 안 죽은 것만 해도 다행 아니겠냐만은.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유황은 지금 거룩한 사치품이다. 호메로스의 노래에서도 신전이나 궁전을 유황으로 정화했다는 구절이 남아있고.
역청, 그러니까 타르 역시 선박의 방수를 위해 선체 안팎에 바르는 데 쓴다. 성경에서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도 사용했지.
기름이야··· 발화점도 낮은 정제 올리브유가 지금 무한히 뿜어져 나오지 않는가.
트로이아와 안탄드로스에서 어떻게든 얻어낼 수 있는 재료들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재료를 섞으면?
“···저 고약한 물건이 된다는 말이로군.”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아주 위험합니다. 괜히 바닷가 바로 근처에 놔둔 게 아닙니다. 도시에서 사람이 모두 빠져나간 뒤에야 제 저택 안으로 들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