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401
“이보게! 구리 주전자는 언제 수리가 끝나나?”
“고, 곧 완성될 거요! 재촉하지 마시오!”
“그게 안탄드로스산이란 말일세. 금박이 벗겨진 것도 그렇고, 구멍이 뚫린 것도 그렇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이렇게 시간을 줬는데 아직도 완성이 더디면 곤란해.”
그리고 어떤 상인이, 어떤 대장장이를 다그쳐 결과물을 재촉했을 때.
“이봐! 너희, 농땡이 피우지 말고 거푸집부터 가져와!”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일단 집게부터 챙기고 나서···”
욕심을 부려 새 도시로 왔건만, 제대로 된 대우는 받지 못해 화가 난 대장장이가 제자를 재촉해 어린 제자가 어설프게 구리 녹인 물을 흘렸을 때.
“어··· 어어어···!!”
“물!! 물 양동이 어딨어!!”
그리고 그 구리 녹인 물 때문에 근처에 있던 창고의 양모에 순식간에 불길이 옮겨붙었을 때.
삽시간에 이 번잡스러운 신시가지 각지에 불길이 옮겨붙었을 때가 되어서는··· 누구도 이를 방치하지 못했다.
“예···. 성문 바깥 구역의 1할에서 2할 사이가 불탔다고 합니다. 다행히 죽거나 다친 이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하는데···”
“사정은 잘 들었네. 아노이토스, 곧장 트로이아로 가지.”
그리고 프리아모스의 차남이자 안탄드로스와 크레타의 왕 파리스는 트로이아로 향했다.
***
“···파리스, 반갑구나. 어쩐 일로 찾아왔느냐?”
프리아모스는 궁전에 들어선 나를 보자마자 웃으며 말했다.
“혹시 네게 건설대금을 빼먹은 이가 있더냐? 아니지. 그런 일이 있었더라면 네 하인을 보내거나 그자와 직접 문제를 해결했을 테니···”
“그런 문제는 아닙니다. 아버지를 돕고 싶어서 왔지요.”
“나를 도우러 왔다고?”
“예.”
프리아모스는 내 말에 한쪽 눈썹을 들어올리면서도 세부적인 내용을 더 캐묻지 않았다.
지금 트로이아에서 내가 그를 도울 만한 문제는 한 가지뿐이었으니까.
“괜찮다. 내가 네 손을 더 벌리고 싶지는 않구나.”
“명확히 하자면, 아버지가 제 손을 빌리신 적은 없습니다. 지난 재건 사업도 아버지의 배려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
“우선 타고 남은 잔해부터 치워야지 않겠습니까? 죽은 이들을 장사치르고 말입니다. 그 일부터 도울 테니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내 말에 프리아모스는 잠자코 침묵하더니, 결국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럼, 부탁하겠다.”
나는 그에게 고개 숙여 보이고 알현실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이내 트로이아의 왕궁을 나서자 아노이토스가 내게 서판 하나를 내민다. 그 내용을 살펴보니 대강의 약도였다.
“트로이아 시민들에게 물어가며 만든 도시 외곽의 지도입니다. 말씀하신대로 북쪽을 위쪽으로 해놨습니다.”
“잘했어. 깔끔하군.”
대강 그려진 약도 위에는 트로이아 성벽 바깥에 생긴 새 시가지의 주요 도로와 여러 시설들, 불타버린 지역의 상황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주위를 툭툭 두드리면서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지저분하군. 자네 그림 실력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맞습니다. 엉망이죠.”
나는 수천 년 뒤 중세 도시의 어지러운 길가와 부산의 도로 사정 등을 떠올렸다.
누군가의 손을 타지 않고 이리저리 누더기처럼 난개발로 불어난 도시의 어지러움.
소규모 도시가 대부분인 이 시대에는 겪어보기 힘든 번잡스러움이었다.
트로이아가 요 몇 년 사이 급속히 몸집을 불린 만큼 약도 위에 그려진 도시 전경에는 성장기 어린아이의 몸 같은 불균형함이 엿보였다.
내가 그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자 아노이토스가 가까이 다가와 내게 묻는다.
“그런데, 주군.”
“무슨 일이지?”
“왜 프리아모스 님께서 청하시도 않으셨는데 트로이아로 오셨습니까?”
“그야··· 가족 일이니까? 받은 것도 많고.”
“흠···.”
“물론, 실험해보고 싶은 것도 있어서.”
나는 그렇게만 말해두었고, 아노이토스는 그 말만으로 충분하다는 듯 옆으로 비켜섰다. 우리는 그렇게 트로이아의 성벽을 넘어 외곽으로 향했다.
···이 곳은, 다른 도시들과 분위기가 달랐다.
원래 도시는 여러 씨족과 부족이 서로 모여살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트로이아 외곽에 붙은 이 시가지에 온 이들은 가족들 일부만 챙겨온 상인들이나 날품팔이, 장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접점이 없는 이들이 트로이아에 일거리를 찾아 모여들었으니··· 어떻게 보면 내게 익숙한 근현대의 도시에 좀 더 가까웠다.
그리고 그 말인 즉슨···
“공동주택은 안 짓는 편이 낫겠군.”
지주들이 직접 지어서 월세 받으면서 관리할 것도 아니고, 씨족들끼리 생활공동체로 모여 살면서 관리할 것도 아니라면? 공동주택을 지어봤자 유지보수할 사람이 없으니 금방 폐허가 되고 말리라.
거기에다 여기 있는 이주민 중 상당수가 공인들이라 자기 작업장을 꾸리고 있다. 화재도 그런 대장간 중 한 곳에서 난 것이고. 그것도 고려해야 한다.
“···흠.”
“파리스 님? 어쩌시겠습니까?”
“일단 양피지와 필기구부터 챙겨야 할 것 같은데.”
지도를 살펴보며 걸어오다 보니 어느새 내 저택이었다. 아노이토스가 손짓하자 기다리고 있던 시종이 급히 내 앞에 양피지와 깃펜을 내려놓았다.
나는 그를 들어올린 뒤 양피지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게 트로이아 성벽이고 이 바깥쪽이 우리가 새로 건드릴 신시가지다.”
신시가지는 기본적으로 트로이아의 여러 성문 바깥에서부터 이끼가 자라나듯 불규칙하게 뻗어나간 형태였다. 트로이아 성벽 안쪽에 사치품이나 노동력을 제공하던 이들이 모여 생겼으니.
“북쪽에는 온갖 가인과 상인들, 양조장들이 몰려있네. 대부분 트라키아에서 온 이들이지. 동쪽과 남쪽에는 날품팔이들부터 직인들, 그리고 도공들, 목수들이 모여 있고. 이 근방에 새로 모인 주민들의 거주지가 집중되어 있어.”
그리고 그런 장인과 상인들은 자연적으로 분야에 맞춰 한 곳에 모이게 되어있다. 서로 쓰는 자재와 연장이 비슷하니 같이 모여 있을수록 이런저런 불편이 덜어질 테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성벽 서쪽을 두드리며 말했다.
“서쪽 스카이아 문 쪽에는 대장장이들과 여러 상인들이 잡다하게 모여 있는데··· 여기가 불에 탔지.”
불과 금속을 다루는 대장간 옆에 에게 해에서 온 물건들을 끊임없이 실어나르는 상인들이 정신없이 나돌아다닌다.
내 눈에는 언젠가 사고가 나는 게 당연한 배치였다. 안탄드로스나 다른 도시들처럼 씨족별로 불이 나지 않게 관리하는 이들도 없고, 번잡스럽기까지 하다면 말이다.
“이것부터 손 보지. 대장간은 전부 동쪽으로 옮긴다.”
“그럼 동쪽의 거주지구는 어쩌려고 하십니까?”
“남쪽으로 옮기지.”
서쪽은 해안을 마주보고 있으니 트로이아에 사치품을 공급하는 상인들을 놓고.
반대로 내륙에 자리잡은 동쪽에는 대장장이들을 모아놓는다.
북쪽은 크게 건드릴 필요가 없어보이지만, 남쪽은···
“다 밀어버리지.”
“알겠습니다. 그곳에 뭘 지으려 하십니까?”
내 말에 아노이토스의 눈동자에 살짝 기대감이 비친다. 내가 아노이토스에게 말했으니까.
‘실험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
나는 그 눈빛을 의식하며 말했다.
“이곳에 주택 단지를 만들 거다.”
···앞으로 닥칠 일을 염두에 둔.
교외 개발 (2)
-드르르륵. 드륵. 드르륵···.
“백열하나, 백열둘, 백열셋···”
“거기, 몇 걸음째 걷고 있나?”
“총 3117보 걸었습니다.”
“그럼 저쪽 천막으로 가서 수평계나 가져오게.”
“이쪽은 지반이 아직 무릅니다!”
“그야 늪지를 메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테니 어쩔 수 없지. 기록해 두게.”
갑자기 굴러다니는 바퀴들, 불타버린 작업장과 집들을 둘러싸고서 무언가를 엄밀히 따져보는 병사들.
화재 현장을 비롯한 신시가지 곳곳에 나타난 낯선 이들은 트로이아의 토박이들과 새 이주민 모두에게 화제거리이고 구경거리였다.
“이봐요. 뭐하는 겁니까?”
“물러서시오. 도시의 일을 집행 중이니.”
“아, 아니··· 저기 내 집이 있는데···.”
“이미 불탔잖소. 물러서시오. 도시의 일을 집행 중이니.”
“···.”
무슨 말을 하든 똑같은 대답으로 응대하는 그들을 향해 ‘물러서시오스’ 따위의 농담 섞인 별명을 지어주면서도 트로이아의 시민들은 저 낯선 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들 했다.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며 이런저런 추측을 이어가던 시민들을 멈춘 것은, 다른 도시에서 온 상인들이었다.
“···여기도, 갈아엎나?”
“갈아엎는다니?”
“파리스 왕이 이곳에 오지는 않았소?”
“···.”
“···.”
“···아.”
“거기! 다들 물러서시오!!”
목제 고깔을 입에 대고 외치며, 또 다시 어느 ‘물러서시오스’가 다가오자 시민들은 순순히 그의 말에 따랐다.
아무튼 그렇게 의문은 해소되었다.
화재와 그를 전후로 일어난 강도와 날치기 사건 등등 갖은 난리가 있었으니, 그를 트로이아의 늙은 왕이 문제로 인식한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 그가 현명하기로 소문난 자신의 둘째 아들을 불러와,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보려 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민들은 무의미한 추측을 이어가는 일도 그만두었다. 며칠 동안 돌아다니는 병사들의 모습도 어느새 익숙해져서 더 이상 구경꾼도 나오지 않았다.
그 뒤로 며칠이 지나자 측량을 계속하던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시민들은 잠시 쑥덕거렸으나 더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병사들이 측량을 이어가던 자리에, 안탄드로스에서 온 인부들이 벽돌과 목재를 잔뜩 싣고 돌아오기 전까지.
“이 남쪽에 사는 이들은 모두 손을 들고 이름과 직업, 가족들의 머릿수을 부르시오! 모두 모이시오!”
“여기서 뭘 할 예정이기에 갑자기 불러내는가?”
“여기 사시오?”
“그렇네만.”
“직업은 어떻게 되시오? 가족은?”
“···대장장이고, 가족은 아들이랑 딸 하나씩.”
“우선 거처를 옮길 준비부터 하시오.”
“거처를 옮기다니? 작업장을? 아니면 집을?”
“둘 다요.”
그들은 도시 하나를 통째로 다시 세우려는 듯했다.
안탄드로스에서 왕명을 받들어 올라온 상인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이번 화재로 집을 잃은 이들의 명단을 마련한다. 그리고 그 머릿수를 대강 파악하고는 다시 자기들끼리 쑥덕대며 마차와 배를 나른다.
곧 그 명단의 숫자와 이름에 따라 수많은 인부들이 빈 땅에다 금을 긋고 그 위에 팻말을 올린다. 그 팻말들 주위로 일정량의 목재와 벽돌 등이 차곡차곡 쌓여올라간다.
사람들이 유심히 지켜보는 가운데 인부들은 바닥에서 흙을 퍼올리고, 벽돌로 바닥에 무언가를 꼼꼼히 깔아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집 바깥쪽 한 곳에 화로를 설치한다.
그러고 나서야 다시 인부들은 벽을 올렸다. 지나가던 구경꾼들은 그 벽이 올라가는 속도에 놀라고, 그 속도에 맞춰 움직이는 인부들이 정확하고 재빠른 손놀림에 놀라다가 이내 새로 지어지는 집들의 구조를 보고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모든 집들의··· 크기와 형태가 하나같이 똑같다.
인부들은 마치 기계처럼, 정해진 동작을 반복한다.
수천 명이 살아갈 집이 그렇게 새로 지어진다.
***
“아무래도 대장장이들의 거처를 새로 옮기는 건 무리일 것 같아. 그렇지 않나?”
“그야 그렇죠. 다른 상인이나 공인들도 그렇고 말입니다.”
현대에도 자영업자나 프리랜서는 집과 일터가 딱 잘라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 시대에야 말할 것도 없다. 나도 대장장이였던 만큼 그런 사실은 누구보다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러니 웬만하면 복층으로 쌓아올리지. 장인들과 상인들의 거주지구를 따로 떨어뜨려봤자 번잡해질 뿐이겠지.”
보통 도시화된 지역에서 복층 구조가 나타나면 1층은 상점이나 공방이 되고 그 위에 1층에 가게를 소유한 본인이 산다. 고대 그리스부터 에도시대 일본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랬다.
하지만 당장 여기서는 마구잡이로 도시가 확장되기도 했고, 아직 건축기술도 그리 발달되지 않아 다들 대강 말린 진흙 벽돌과 나무로 급히 집을 지었다.
복층으로 쌓아올라가 봤자 붕괴되는 건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고대 로마의 인술라도 주기적으로 붕괴했는데 그보다 1,000년도 더 전이다.
그밖에도 길은 구불구불하고, 집들은 서로 아슬아슬하게 기대서 벽과 기둥이 마구잡이로 공유되니 위험하고 지저분했다. 그런 것들은 모조리 정리한다.
“대장간들은 서로 간격을 넓게 벌려놓게. 화재 위험은 최대한 줄여야지. 다른 상인들과 동선이 얽히지 않도록 주의하고.”
“알겠습니다.”
“지난 화재에서도 양모상의 창고에 불이 옮겨붙었다 그랬지. 결국 그런 상인들은 바다와 인접한 서쪽과 남쪽에 몰릴 테니 앞으로도 대장간은 도시 동쪽에만 자리잡도록 조치해야지.”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도시 정경은 간단했다.
길은 곧고 넓게, 집들 사이의 거리를 확보하고, 웬만하면 관리하기 쉽게 도로는 격자식으로 구성한다. 공기가 순환하기 좋고, 물류의 흐름이 원활해지도록.
물론 격자식 도로가 항상 용이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람과 물자가 드나들기 좋다는 말은 곧 침공해온 적들이 길을 찾기도 좋아진다는 의미니까. 안탄드로스처럼 작정하고 방어를 염두에 두고 설계해도 적이 압도적인 화력으로 뚫으려 애쓰면 답이 없었다.
하지만, 당장은 그를 신경쓸 필요 없었다.
트로이아는 이미 이 일대에서 패권을 쥐었으니 군사적 위협이 닥쳐오기는 쉽지 않을 테고, 만일의 경우에도 이미 트로이아에는 불락의 성벽이 있으니까.
무엇보다도 이제 트로이아는 일개 도시국가가 아니다.
“하는 김에 양조장도 둘러보지. 화재가 일어나기 좋은 물건들을 다루는 곳들은 모두 둘러봐야겠네.”
“알겠습니다. 저 그런데···”
고로 나는 철저히 안전과 효율에 맞춰 이 도시를 재건하면 되었다.
“음? 뭔가 물어볼 거라도 있나, 아노이토스?”
“새로 남쪽에 짓는 주택 단지 말입니다.”
“아. 그것 말이지.”
표준화된 단독주택으로 가득한 거주지구. 그게 내가 내린 최선의 해결책이었다.
공동주택은 필연적으로 욕탕, 화장실, 조리공간 등을 공유하면서 관리해야 하니 소가족 단위로 이주해온 시민들의 생활에는 맞지 않는다.
그러니 소규모의 주택을, 격자식으로 뚫은 도로 사이로 수백 개씩 깔아놓는다.
서로 다른 종족, 언어, 씨족의 사람들이 섞여있는 만큼 관리의 용이성을 위해 직종을 기준으로 시민들을 나눠 배치하고 움직인다.
···이 정도면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했는데, 아노이토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르는 걸 보니 뭔가 설명을 덜하고 지나간 게 있는 모양이었다.
“뭐 때문에 그러나? 주택 단지의 관리에 대해 아직 합의하지 않고 넘어간 부분이 있던가?”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단지, 주군께서 집집마다 바닥에 깔아놓으신 ‘그것’의 용도가 궁금해서 말입니다.”
나와 함께 건설현장을 시찰하던 아노이토스가 주거 단지 쪽을 가리키며 말한다. 올라가는 벽돌벽 사이로 드러난 화로와 굴뚝들.
화로 옆에 더운 공기가 흘러갈 구멍을 뚫어놓고서, 그것이 바닥을 통해 흘러간 다음 결국 굴뚝으로 빠져나가는 바닥 구조.
나는 더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손을 내저었다.
“말하지 않았나? ‘뜨거운 돌’일세. 난방용이지.”
···한국 이세계물 국뽕 소재 1순위를 이제야 도입했다. 내가 감격에 차 눈물을 흘리려는 순간에 아노이토스가 눈치 없이 말을 걸어온다.
“그, 분명 주군의 영명한 지혜로 무언가 염두에 놓고 계심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굳이 저런 게 필요하겠습니까?”
“···필요하네. 요리할 때 낭비되는 열을 이제 ‘저것’을 통해 방 안을 데우는 데 쓸 수 있으니 혹독한 겨울을 버틸 수 있지.”
“혹독한 겨울이 오면, 옷을 껴입고 창문을 닫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제야’ 도입한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이 온대 기후 치고는 기괴할 정도로 춥고 더운 지역이기는 하지만, 만주, 독일, 러시아, 알래스카 등 고위도 지역에서는 온돌과 비슷한 방식의 난방 문화가 발견된다.
원리 자체는 복잡하지 않으니 온돌의 규모를 키우고 그 위에 물을 올리면 로마의 공중 목욕탕과 흡사한 구조가 된다. 실제로 로마인들이 게르마니아에서 그와 비슷한 방식의 난방시설을 설치하기도 했고.
이런 난방 방식을 채택하느냐늬 여부는 결국 그 일대의 기후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이곳의 겨울은 아주 온화하니까.
눈이 내리는 일도 많지 않고, 한겨울이 되더라도 대개 한국 가을 수준의 쌀쌀함을 유지한다.
이제까지는 그랬다.
“분명 훌륭한 방식임은 알겠으나 꼭 필요한 물건일지는···”
“아니. 언젠가 반드시 필요해질 걸세.”
이제까지는.
나는 환상 속에서 느꼈던 칼 같은 바람을, 환생한 이래 한번도 느껴본 적 없던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를 다시금 떠올린다.
“일단 시민들에게 간단한 사용방법을 가르치지. 일단 트로이아 왕궁에 온실을 조성해두었으니 ‘때가 되면’ 다들 알게 되겠지만.”
안탄드로스의 공동주택은 복층이라 온돌을 깔아주기 어렵다. 게다가 이미 주민들이 다닥다닥 모여 살고 있으니 열효율을 극도로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의 주택들은 외따로 떨어져 있게 설계해야 한다.
그 때문에 이런저런 불편도 컸지만, 내가 온돌을 시험해보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건설에 걸리는 시간도 그닥 길지 않았다. 어차피 이미 벽돌과 목재, 기와 등의 건축 자재는 안탄드로스에서 트로이아로 꾸준히 유입되고 있었고, 프리아모스의 지원 아래 작업도 별다른 잡음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트로이아 외곽은 예상보다도 꽤 빠르게 재건되어가고 있었다. 벌써 여러 곳에서 새로 지은 대장간이 운영되고 시장도 다시 열린다.
애초에 트로이아에 물자 수요를 맞추기 위해 자생한 공간이다 보니 한 번 무너지고 재건되었다 해서 그동안 활기를 잃거나 하지 않았다.
슬슬 남은 세부적인 일들에서는 손을 뗄 때가 된 듯싶었다. 앞으로는 이 외곽을 통제하고 통치할 구체적인 방안 등을 프리아모스와 논의하고, 적당히 몇몇 공공시설들을 세워주면 마무리될···
“파리스 님? 대장장이들끼리의 싸움입니다!”
“···젠장, 또? 어디서?”
“동쪽 성문 바깥 100걸음 정도에 있는 대장간입니다!”
···그래. 해결할 문제만 해결하고 말이다.
시종의 부름에 내가 급히 달려나가자 금방 우리는 싸움의 현장에 닿을 수 있었다.
“이 새끼! 죽어! 죽어버려!”
“상도의라는 게 있어야지, 너는 시발 이 동네에서 혼자 다 쳐먹으려고 그 짓거리를···!”
“당장 꺼져!”
자세히 보니 싸움보다는 집단 린치에 가까웠는데 대장장이들 여럿이 한 사람을 두들겨 패다가, 견디지 못한 피해자가 망치를 들고 이리저리 휘두르며 호신하는 중이었다.
다들 평생 쇳덩이 두드리고 살아서 그런지 팔근육이 장난 아니었고, 싸우는 동안 망치와 집게가 날아다니니 누가 말리지 않으면 피를 보겠다 싶은 싸움이었다.
“멈춰라!!!!”
다행히도, 여기에 싸움을 멈출 만한 책임자가 왔다.
내 목소리를 들은 대장장이들은 뭔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가 내 얼굴을 보고 곧장 손에 들려있던 연장과 무기를 내려놓거나 숨겼다.
나는 급히 무리들 사이로 나아가 두들겨 맞던 대장장이를 일으켜 세우고 그의 손에서 망치를 떼어냈다.
“괜찮나? 말은 제대로 할 수 있겠나?”
“와, 왕이히여···.”
입술이 터지고 이빨이 달랑거려서 그런지 발음이 부정확했다. 나는 다른 대장장이들을 보고서 외쳤다.
“자네들은 부끄러운 줄을 알게나! 명예롭지 못하게 여럿이서 한 사람을 공격하다니!”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