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necromancer villain in a game novel RAW novel - Chapter (404)
404화
철망으로 둘러싸인 좁고 축축한 곳에서 눈을 떴다.
불쾌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벌써 오랜 시간 손질하지 못한 털들은 진흙 덩어리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근래에는 밥이 괜찮게 나오는 편이다.’
철망 아래 비좁게 뚫린 구멍으로 주둥이를 밀어 넣고 사료를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포만감을 느끼는 건 잠시다.
한 점의 빛줄기가 유일한 공간 사이를 걷는다.
도착한 곳은 이 장소와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 유독 이질적인 기계였다.
***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있지.”
흑똘똘은 앞발을 포갠 채,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있었다.
그 자리에 모인 개들은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바닥만 바라보며 흑똘똘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개 팔자는 상팔자가 아니다. 다른 개새끼들은 모르겠지만 나와 너희는 잘 알고 있을 거다.”
그 자리에 모인 개들의 몰골은 그야말로 들개나 다름없어 보인다.
애완견이라기보다는 야생의 사나움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게임 속에 접속할 수 있는 개’가 얼마나 선택받은 존재인지를 고려해 본다면 이질적이기 짝이 없다.
“이번 달 할당량까지도 얼마 안 남았다. 오늘 하루도 목숨을 부지하고 싶으면 발바닥에 땀 나도록 뛰어다녀야 할 거다. 하고 싶은 말은 여기까지다.”
흑똘똘의 전언이 끝나자 개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의문을 제기하는 견공은 아무도 없었다.
언뜻 보기에는 차분하고 기품 있어 보이는 대장의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들 절도 있게 움직이며 기계적으로 행동을 시작한다.
개들이 향하는 곳은 초보견 사냥터였다.
넓은 필드에서는 이제 막 이곳에 발을 들인 견공들, 혹은 이제 슬슬 냄새가 코에 익숙해지는 개들도 뜨문뜨문 보인다.
‘오늘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흑똘똘의 수하 중 한 마리인 구찌는 꼬리를 부드럽게 내저으며 오늘의 사냥감을 물색했다.
사냥감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뉴비견들이 사냥하고 있는 두더지 따위가 아니다.
구찌의 레벨은 약 100, 명백히 초보견 사냥터에서 놀 만한 레벨은 아니었다.
하지만 구찌가 노리는 사냥감은 두더지가 아니다. 그는 우선은 익숙한 냄새가 풍기는 개를 향해 다가갔다.
털이 반드르르한 푸들은 구찌를 알아보고는 콧잔등을 찌푸렸다.
“멍, 며칠 만에 보는군.”
“…….”
“알고 있겠지?”
푸들은 꼬리를 치켜들고 적대 의사를 내뱉으면서도 으르렁거림 한 번 없이, 방금까지 열심히 두더지를 잡아 드롭한 개껌들을 내놓는다.
“말이 통해서 좋단 말이지.”
구찌는 꼬리를 흔들며 푸들이 내놓은 개껌을 앞발로 채 가고는, 그러고도 몇 번 정도 더 낯이 익은 견공들과 면담을 진행했다.
‘이거 가지고는 똘똘이가 지랄을 할 텐데.’
그래도 할당량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물론 상관없다.
일단은 귀찮은 일을 미뤄 뒀을 뿐이다.
이제는 낯에 없는 개들을 찾아간다.
‘딱 봐도 초보군.’
윤기가 흐르는 털, 주인이 정성스럽게 선물해 준 듯한 장비, 필드를 바라보며 반짝거리는 벌레 등딱지처럼 까만 눈알, 사정없이 흔들리는 꼬리.
누가 봐도 사랑을 듬뿍 받은 것 같은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가 이번 표적이었다.
구찌는 저런 사랑받은 듯한 개를 싫어했다.
“이봐.”
“……월?”
골든 리트리버는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출현에 고개를 틀었다. 흔들리던 꼬리가 멈췄다.
자세히 보니 큰 덩치에 비해 어린 개 같았다.
“두더지는 좀 잡히나.”
“월, 이 마을은 처음인데 재밌네요.”
예의도 바르지. 구찌는 앞발로 턱 아래를 긁었다.
“꽤 잡은 모양인데.”
“아저씨도 해 보세요. 재밌어요.”
“개껌도 많이 모았겠군?”
“꽤 모았죠. 이거 가져가면 장비로 바꿀 수도 있다면서요?”
“실은 말이야. 아저씨가 몸이 안 좋아서 두더지를 잡을 수 없어. 그래서 그런데 개껌을 좀 나눠 줄 수 있을까?”
다시 필드에 눈을 돌리려던 골든 리트리버의 고개가 구찌를 향한다.
고개를 살짝 흔들더니 인벤토리에서 맛난 개껌 하나를 툭 던진다.
“그럼요.”
“이것 가지고는 좀 부족하겠는데.”
골든 리트리버는 그제야 개껌 하나를 다시 툭 던진다.
하지만 구찌는 이제는 더 이상 짖음 한 번 없이, 앞발로 땅을 툭툭 건드렸다.
그제야 골든 리트리버의 둥근 눈썹이 찌푸려진다.
이 온순한 젊은 개는 상대를 지그시 살핀다. 자신의 큰 덩치에 비해서는 작고 연약해 보이는 덩치를 가진, 종을 알 수 없는 잡종견이다.
코를 통해 전해지는 냄새로 보아, 상대는 지금 자신에게 싸움을 걸고 있었다.
태어난 지 한 살을 갓 넘긴, 세상에 대해 잘 모르는 개라고 할지라도 본능적으로 투쟁이 발생했다는 걸 알아차린다.
먹잇감을 허투루 빼앗길 수는 없다.
머신으로 인해 발달된 지능의 너머, 퇴색되지 않은 본능이 싸움의 경종을 알렸다.
먼저 움직인 건 골든 리트리버였다. 뒷발로 땅을 박차며, 긴 주둥이가 쩍 벌어진다.
체중을 실은 앞발로 상대를 짓뭉갠 뒤 목덜미를 물어 제압한다는 생각이었다.
아마도 현실이었다면 골든 리트리버의 생각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을 거다.
구찌와 골든 리트리버의 체구 차이는 거의 두 배가 넘었으며, 넘어설 수 없는 체급의 차이라는 게 있는 법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호라이즌이었다.
골든 리트리버는 뉴비견답게 호라이즌에서의 전투에 대해 경험이 부족했다.
그리고 구찌는 전문가였다.
구찌가 움직인 건 골든 리트리버가 땅을 박차는 순간이었다.
하중을 실어 뛰어오르는 건 초보견들이 호라이즌에서 흔히 벌이는 실수 중 하나였다.
현실이라면 물론 나쁘지 않지만, 호라이즌에서는 굳이 저런 식으로 큰 동작을 펼쳐 상대에게 허점을 보일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구찌는 골든 리트리버보다 후수로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빨랐다.
앉은 상태에서 번개처럼 내지른 앞발이 골든 리트리버의 콧잔등을 강타한다.
골든 리트리버가 자랑하는 치악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아니 주둥이가 벌어지기도 전에 느낀 갑작스러운 고통에, 싸움이란 걸 겪어 본 적 없이 그저 애완견으로서 살아왔던 골든 리트리버는 신음하며 그대로 쓰러져 땅에 박혔다.
‘이런 놈은 물 필요도 없어.’
실제로는 체력도 많이 달지 않았을 거다.
그저 엄살일 뿐이다.
구찌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꼬리 한 번 흔들지 않고 그대로 골든 리트리버의 목덜미를 다른 쪽 앞발로 밟았다.
“이대로 물어뜯어 줄까?”
살짝 벌린 아가리에서 침 몇 방울이 늘어지며 떨어진다.
흙투성이 골든 리트리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여긴 우리 구역이야. 재미를 보고 싶으면 구역의 주인에게 상납을 해야지.”
구찌는 꼬리로 골든 리트리버가 내민 개껌을 말아 허공에 던지고는, 솜씨 좋게 주둥이로 받아 내 골든 리트리버의 머리 옆에 던졌다.
“한 개 두 개가 아니라 버는 족족 갖다 바치란 말이야.”
그 뒤로는 일사천리다.
개들은 알고 있다. 승부의 비정함이란 생사의 결정권과 같다. 한 번 패배자는 목숨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자신을 제압한 흉포한 포식자에게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낀다.
‘똥까지 지리는 놈은 오랜만이군.’
빼앗은 개껌이 한가득이었다. 골든 리트리버답게 활동력이 넘치는 모양이다. 대부분 그렇다. 이곳에 발 도장을 자주 찍는 놈들은, 어차피 뺏길 걸 아니까 약간의 유희만 즐기고 금방 돌아가 버린다. 하지만 뉴비견들은, 이 놀이에 큰 흥미와 재미를 느끼기에 쉴 새 없이 사냥을 한다.
‘몇 마리만 더 족치면 할당량 채우겠군.’
그런 구찌의 눈에 또 한 마리의 사냥감이 포착됐다.
‘저놈으로 할까.’
새하얀 백구다. 착용하고 있는 장비는 하급품 중에서도 하급품. 뉴견 중에서도 아주 뉴견이었다.
현실에서야 젊음의 힘과 타고난 덩치를 바탕으로 힘깨나 쓸 터.
어쩌면 방금 쓰러뜨린 리트리버보다도 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는 호라이즌.
저런 녀석을 쓰러뜨리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조금 더 쉬운 방법이 있었다.
구찌는 그대로 언덕을 내려가 어그로를 끌었다.
일부러 자리에 있던 모든 개의 주목을 받을 만큼 적당히 시끄럽게.
“멍, 개새끼가 개새끼 급을 떨어뜨리는 짓을 하고 있군.”
걸려들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구찌는 속으로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어떤 놈의 뉴견 새X가 이 형님이 말하는데…….”
“나다.”
앞으로 걸어 나온 흰색 백구 한 마리가 대답했다.
“확실히 아저씨 꽤 레벨 높은 것 같은데. 그럼 지금 우리가 두더지 잡는 게 우스워 보일 수도 있어. 그런데 아저씨도 레벨 1이었던 때가 있던 건 마찬가지잖아?”
“푸흐흐…….”
분노로 말을 놓았지만, 이내 정중해진다
온실 속에서 주인에게 교육을 잘 받은 개의 특징이다.
어릴 적부터 철저히 예절을, 그리고 다른 개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말과 행동으로 배웠으리라.
구체적으로는 산책 때 짖지 마라, 다른 개들이랑은 싸우지 마라, 씻을 때는 가만히 있어라 같은 것들.
“게다가 아저씨, 원하는 건 따로 있는 거 아냐?”
“흐음?”
“개껌, 이것 때문에 온 거지?”
흰 뉴비견이 바닥에 개껌 하나를 놓았다.
“가지고 가. 나는 됐으니까.”
“백구 님……!”
“저희를 돕느라 가진 것도 없으실 텐데.”
주변에서 머뭇거리던 개들이 당황하며 앞을 막았다.
“이놈!”
“네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우리 주인님이 나서면 너 같은 놈 따위는…….”
그 순간 구찌가 말을 이었다.
“너희 설마 철망파에 반기를 드는 건 아니겠지?”
삽시간에 사방이 조용해졌다.
구찌는 이때가 가장 만족스러웠다.
기고만장하던 개들이, 철망파의 이름을 대면 일제히 조용해지는 순간이.
“그리고 주인님? 어디 데려와 보든가.”
애초에 도그 타운에 온 개들은 주인이 반쯤 싫증 내거나 귀찮아하는 녀석들이다.
성장시키면 1인분은 하지만, 24시간 신경 쓰고 싶지는 않은.
그런데 그런 주인들이, 도그 타운까지 들어와 뉴비견들을 구해 줄 리 없었다.
“원하는 게 뭐야.”
“개껌, 그리고 고기맛 개껌이 있으면 그것도 다 내놔라.”
구찌가 씩 웃었다.
“아, 그리고 일도 좀 해 줘야겠고. 너희가 하면 딱 좋은 게 있거든.”
“개껌을 다 가져가고 일까지 시키겠다고??”
“뭐, 걱정하지 마라. 일한 값은 주지. 나중에 철망파 지부에 와서 찾아가라.”
저 말이 지켜지지 않을 것이란 건 1개월 먹은 강아지도 알 거다.
그러나 철망파의 위세 앞에서 개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물론 구찌는 그 철망파 지부의 말단이었지만, 뉴견들이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다.
‘어디, 저 뉴견은…….’
뉴견, 복돌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정확히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녀석들이랑 그 철망파란 놈들은 별것 아니겠지만, 그랬다가는 내가 복돌이라는 게 드러나게 될 거다.’
말하는 걸 봐선 철망파는 동네 양아치급보다는 큰 조직.
그런 조직과 싸운다면 당연히 개들의 세계에 소문이 날 테고, 자연스레 주인인 파프닐에게 폐를 끼치게 될 것이다.
일단 소문이 퍼지면, 그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으니까.
‘하는 수 없지. 일단은 따라 주는 수밖에.’
눈을 뜬 복돌이가 말했다.
“이 견공님들을 괴롭히는 건 그만둬라. 찌질하게 굴지 말고.”
“뭐?”
“대신 내가 가겠어. 개껌이건 다른 일이건 하면 되는 거 아냐?”
“크릉……. 웃기는 소리 하는군.”
구찌가 히죽 웃었다.
“네가 쟤네 몫까지 다 채우겠다고? 혼자서?”
“못 할 것도 없지.”
복돌이는 대답했다.
“안내해.”
“…….”
주인을 위하는 이타적인 개는 흔한 이야기다.
하지만 다른 일반 개들까지 아울러 그런 말을 하는 건 정말로, 정말로 흔치 않았다.
뿌득.
이를 간 구찌가 다가와 앞발을 휘둘렀다.
뺨이 반대쪽으로 돌아간 복돌이가 태연히 고개를 원상태로 돌렸다.
‘이놈 대체…….’
구찌는 순간 꿀꺽 침을 삼켰다.
분명 레벨1 초보, 최하급 장비의 뉴비견일 텐데.
“뭐, 좋아. 따라와라.”
천천히 몸을 돌린 구찌가 고갯짓했다.
“할당량을 못 채우면 각오해야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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