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chief of Jurassic Defense RAW novel - Chapter (18)
18. 랩터바이크
빌어먹을 아크한.
이런 흐름일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귀중한 사제 유닛들을 대체 왜 그렇게 갈아버린 것일까.
‘미친놈이어서지, 무슨 이유가 있겠나.’
“…체체가 많이 바쁘겠군.”
“그렇습니다… 제사장으로서의 일도 만만치 않을 텐데, 촌장의 부재까지 책임지고 있으니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군. 뭐 지금도 알아서 잘하고 있긴 하겠지만… 일단 마을의 복구 계획에 대해서는 체체와 다시 이야기를 나눠야겠어.”
아마도 지금은 ‘자동 수리’와 ‘자동 채집’ 기능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것부터 순서대로 작업 중일 것이다.
하지만 이젠 내가 직접 나서서 우선순위를 정해줄 필요가 있으리라.
그런데 그때.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로메인이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이 노구의 지나친 걱정이라면 좋겠지만, 마을의 복구는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미가 없다니?”
“이번 공룡들의 습격 사태… 족장님께서 공룡들을 몰고 왔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드문드문 나오는 것 같지만… 사실 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이 늙은이가 보기에 이는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일어났을 일 같습니다.”
“시기의 문제일 뿐이었다?”
“요즘 들어 공룡들의 포악성이 더욱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더 인간에게 적대적이 되어가고 있지요. 이번 일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 다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때가 다시 도래하기 전에 서둘러 마을을 복구해야 하지 않겠나.”
로메인은 창문 밖의 분주한 마을 주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차피 저는 이미 죽었어야 할 목숨. 얼마 남지 않은 이 생을 족장님께 바칠 것입니다. 적어도 족장님께서 다시 정신을 놓아버리지 않으시는 한, 앞으로도 쭉… 하지만 그렇기에 진솔하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말해봐라.”
“이 늙은이가 보기에는, 다시 공룡들이 찾아오기 전에 마을을 복구하는 건 이제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한 로메인은 내게 한 번 더 강조해서 말했다.
“마을을 포기하셔야 합니다.”
솔직히 말해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게임 상에서도 본진이 너무 심하게 털렸을 경우, 아싸리 다른 확장 기지로 본진을 옮기는 정도는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니까.
하지만.
“아니. 나는 브릿지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의도신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이곳이 중요하다 할지라도, 이제는 득보다 실이 큽니다.”
원래대로였다면 모자란 자원은 대족장이 다스리는 하이랜드의 교역단을 통해 공급받을 수 있었을 터.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그곳에서부터의 자원 공급을 기다리며 기존의 박살 난 인프라를 복구해 나갈 여력이 있었겠지.
하지만 로메인의 말은 바로 그게 어렵지 않느냐는 지적이었다.
마을을 그렇게 재건하는 사이, 포악해진 공룡들이 또다시 몰려들어 마을을 공격해온다면?
기껏 재건한 인프라도 다시 공염불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로메인은 그런 위험을 감수하느니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공룡이 포악해져 가는 원인을 알고 있다면?”
“…?”
“현재 마을이 당면한 가장 큰 위협인, 포악해진 공룡들이 없어지면 어떻겠냐는 말이다.”
혼란과 의심, 미약하게 피어난 신뢰가 그녀의 표정에 순서대로 스쳤다.
하지만 이윽고 그녀의 눈은 ‘그런 방법을 알고 있었다면 왜 진작 하지 않고?’라는 의문이 남은 듯했다.
‘뭘 그렇게 보냐.’
그땐 망나니 족장 아크한이었고, 지금은 유능한 족장 아크한이란 말이다.
그땐 못했어도 지금은 할 수 있다.
그때 몰랐어도 지금은 알 수 있는 거다.
“정찰을 좀 보내야겠다.”
“정찰이라고 하시면?”
“발이 빠르고 귀가 좋으며 눈이 좋은 전사들을 소집해다오. 아, 이건 체체에게 가서 말하면 되겠군.”
“족장님.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사오나, 이제 우리 마을에 정찰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음… 지난 공룡 습격 때 모두 전사했나? 사상자가 그렇게까지 아주 많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로메인은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그 이전에.”
“음?”
“공룡 습격의 건이 있기 전, 족장님께서 그들을 데스랜드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그대로 소식이 끊겼지요.”
또크한. 또 너냐?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 무엇을 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어쨌든. 당장은 쓸만한 정찰병이 한 명도 없다 이 말이군.”
“그렇습니다.”
정찰을 위해서는 적법한 훈련을 받은 정찰병이 필요했다.
하지만 새로 뽑아서 육성을 하기에는 당장 시간이 너무 소요되는데.
‘물론 게임에서야 꼭 정찰병이 아니더라도, 아무나 정찰을 보내면 됐었지만…….’
데몬족에서 일꾼 유닛인 데스 인섹트를 정찰 용도로 보내왔듯이.
우리도 적당히 아무 일꾼 유닛이나 클릭해서, 적진으로 보내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게임이니까 가능했던 일이야.’
지금 그 방법을 똑같이 따라할 수는 없었다.
이 세계가 현실이 된 이상, 엄한 사람을 픽해서 정찰을 보내고 죽음을 불사한 모험을 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안 그래도 인력이 부족한 판국에 쓸데없이 개죽음을 시킬 수도 없는 일이었고.
애초에 정찰병과 시야 공유 자체가 안 되는데, 어중이떠중이를 보내봐야 무엇할까.
그렇다면 아예 여기서는…….
“내가 직접 다녀오겠다.”
“족장님이 직접… 말씀이십니까?”
“그래. 왜, 못 미덥나?”
“그렇다기보다는, 정찰의 목적지가 그곳이라 하시니……. 이 늙은이로서는 걱정이 드는 수밖에요.”
로메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가겠다.”
“…정 그러시다면, 잘 다녀오십시오. 무운을 빌겠습니다.”
“고맙다. 너도 준비하도록.”
“예?”
짤랑!
그때 문이 열리며 초리조가 들어왔다.
“흘흘. 족장님, 생각보다 금방 달여 왔지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용기.
‘회복의 도라지’의 탕 버전이었다.
과연 효과가 드라마틱하게 올라갔을 것인가?
그것은 먹여 보기 전엔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홱 낚아채 로메인에게 건넸다.
“자. 이 회복의 도라지 물 좀 마시면서 기운을 차려라.”
“이게 무슨…?”
“그리고 나와 함께 이동하자.”
“족장님.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 어디를 말씀이신지…….”
“어디긴.”
용암처럼 뜨거운 도라지물이 담긴 컵.
나는 그것을 로메인의 꾹 다문 입에 들이밀며 씨익 웃었다.
“데스랜드로 가야지.”
***
이튿날.
나는 루리의 벨로시랩터 뒷안장에 탑승한 채로, 데스랜드를 향해 출발했다.
어차피 마을 일은 체체가 알아서 해주고 있으니, 내가 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일은 없었다.
그리고 결심을 했으면 바로 실천에 옮겨야 옳게 된 사나이인 법.
《크아앙!》
브릿지 마을의, 완파된 동쪽 성벽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주군, 무엇을 그렇게 유심히 보고 계신 겁니까?”
벨로시랩터가 내달리는 동안.
문득 내 시선의 방향을 눈치챈 듯 루리가 물어왔다.
“그냥, 생각 좀 하느라.”
“상의가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말이라도 고맙다.”
그렇게 루리의 걱정을 넘긴 뒤.
나는 다시 시스템 돌판의 기능을 정신없이 살펴보았다.
이름 : 벨로시랩터(Velociraptor)
종류 : 수각류
설명 : 갈고리 같은 발톱으로 사냥감을 찢어 먹기를 좋아하는 중형 육식공룡. 모든 지상 공룡들 중 가장 빠른 이동 속도를 지니고 있다.
이는 쥬라기 크래프트에 존재하던 기능 중 하나인 ‘공룡 도감’.
다만 도감은 인게임과 차이점이 있어서, 이 세계에서는 내가 직접 목격한 공룡만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 꼭 도감을 보지 않아도 나는 이미 쥬라기 크래프트에 등장하는 모든 유닛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긴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게임에서 내가 알던 정보와 다를 수 있으니, 확실하게 하려면 체크해두는 게 좋겠지.’
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또 읽는 것도 고역.
나는 곧 공룡도감의 내용이 적힌 정보 돌판을 시야 한쪽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그리고는 옆을 바라보았다.
《크아앙!》
《크앙!》
이번 여정에는 조니, 초리조, 로메인 세 사람이 동행했다.
우리의 이동수단은 다름아닌 ‘랩터바이크’.
이름 : 랩터바이크
HP : 75/75
OP : 20 (관통)
DP : 0 (기계)
이것은 벨로시랩터를 동력원으로 삼는 일종의 소형 전차로써, 이 게임에 존재하는 지상 유닛들 중 거의 최상급의 속도를 자랑하는 메카닉 유닛의 이름이었다.
왜 달리는 건 벨로시랩터가 하는데 메카닉이냐고?
꼬우면 당신도 쥬라기로 오십시오.
나는 양쪽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낀 채.
묵묵히 조종석에 앉아, 랩터바이크를 몰고 있는 조니를 바라봤다.
“조니, 처음이라더니 꽤 잘하는데? 혹시 면허 몇 종이야?”
“과찬이십니다. 그런데 족장님, 면허라는 게 무엇인지요?”
조니는 상대적으로 젊다는 이유로 바이크의 조종을 담당했는데, 상당히 숙련된 조종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재수 없는 녀석.
“나도 몰라!”
“……?”
반면 함께 할아버지는 울상을 짓고 있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
“이보시오, 족장님. 대체 이 힘없는 늙은이들은 왜 데리고 오신 겁니까? 설마 고려장이라도 하시려고?”
초리조 이 자식… 쥬라기 시대에 고려장이 뭐야, 고려장이?
그러나 초리조와는 다르게, 아무말 않고 가만히 있던 로메인은 황당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내게 질문을 던졌다.
“영감, 조용히 좀 해. 팔 잘린 채 끌려온 나도 가만히 있는데. 그 나이를 먹고서도 주책을 부리고 싶을까?”
“주책이라니, 로메인. 나는 합당한 이의제기를 하는……”
“기왕 이런 데 올거면, 창창한 젊은이들보다는 우리가 직접 오는 게 낫지. 영감, 군말 좀 그만하고 차분히 족장님 명에 따르라고.”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구먼. 에잉!”
무작정 데스랜드로 가자는 내 명령에, 처음에는 이들도 거부감을 표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들어오기 전의 아크한은 이미 여러 사람들을 데스랜드로 보내 실종시켜버린 전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족장이 몸소 직접 다녀오겠다고 나서는데, 나는 못 가겠다며 감히 발뺌을 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와중. 문득 로메인은 옆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던 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족장님의 호위 역께서는 참으로 다재다능하십니다.”
“그래?”
“아크툼의 전사들이 싸움광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저렇게 공룡을 부리는 재주가 있다고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말이지요.”
랩터바이크는 휴먼족의 가장 기본적인 메카닉 유닛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원래부터 기계 쪽으로 발달한 이곳 브릿지 마을의 대장간에는 이미 만들어놓은 재고품이 상당량 존재했다.
‘그러나 랩터바이크의 동력은 공룡.’
차체를 끌어줄 공룡이 없어서 생산이 완료되지 않고 있던 랩터바이크.
주요 테크 건물이 박살난데다, 자원까지 모자란 상황이었기에, 당장 공룡을 포획해와서 훈련까지 시키기에는 여력이 모자랐다.
그런데 그것을, 나는 루리를 통해서 해결해버린 것이다.
패시브 : 랩터 팩트, 만독불침
1스킬 : 가차없는 맹공
2스킬 : 기의 흐름
3스킬 : ???
4스킬 : ???
그게 가능하게 해준 것은 바로 루리의 패시브, ‘랩터 팩트’였다.
이것은 다룰 공룡이 랩터(Raptor)인 경우에 한해서 손쉽게 테이밍할 수 있는 스킬.
문득 현재 조니, 초리조, 로메인을 태우고 있는 저 랩터바이크의 벨로시랩터들을 포획했을 때가 떠올랐다.
‘크아앙!’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 흔히 그렇듯 대단히 호전적으로 이쪽을 덮쳐 오던 벨로시랩터들.
‘주군, 제게 맡겨주십시오.’
기다란 글레이브를 거꾸로 쥔 루리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놈들에게 다가갔다.
‘루리, 저 랩터들은 잡아 키울 것이다. 식량으로 쓰려는 게 아니라.’
‘걱정 마십시오, 주군. 녀석들과의 교감을 위해 간단한 서열 훈련을 하려는 것뿐입니다.’
‘간단한 훈련…?’
그리고 얼마 뒤.
놀랍게도 그렇게 포악했던 두 마리의 야생 벨로시랩터는 사람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얌전하고 온순한 개체로 탈바꿈해 있었다.
그것은 루리의 패시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루리가 손에 쥔 글레이브 때문이었을까…?
“내 호위가 조금 유능하지. 그녀는 내가 가장 신뢰하는 전사다.”
“호오…….”
과연 루리는 유능한 영웅이었다.
1,408번의 캠페인 플레이 중 단 한 번도 루리를 쓰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스타팅 영웅 유닛이라 그랬던 것도 있거니와, 성능 자체가 유별나서 키워서 사용하지 않으면 게임의 진행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인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녀의 Q 스킬, ‘가차없는 맹공’ 때문이었다.
‘일명 쿵쿵따.’
얼핏 보면 그저 평범하다고 볼 수도 있는 스킬이었다.
사용 시 일반 공격이 강화되어 공속과 피해량을 증가시켜주는, 자기 버프기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 스킬의 진가는 바로 부가효과.
이 Q스킬을 켠 채로 때리는 루리는, 세 번째 평타마다 대상의 최대 체력에 비례한 고정 피해를 입히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당장은 초반이라 그 효과를 드라마틱하게 체감하기 어려운 시점이지만… 캠페인 스토리의 후반으로 갈수록, 그러니까 더욱 강한 적이 나타날수록 그녀의 쿵쿵따는 빛을 발하게 되리라.
그야말로 대기만성형이라 볼 수 있는 스킬!
‘그렇게 Q를 켜놓은 상태에서 궁까지 키게 된다면?’
루리의 Q스킬과 무척이나 잘 들어맞는 궁극기.
그러니까 R의 경우에는…….
“주군, 슬슬 데스랜드의 입구에 도착합니다.”
잠시 루리의 스킬에 대한 상념에 빠져있던 사이, 앞서나가던 루리가 점점 속도를 줄여나갔다.
“으음.”
전방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황량한 산맥.
좌우로는 산맥의 줄기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그 중심에는 가파르고 메마른 협곡이 길게 이어져 있다.
저 협곡의 이름은 바로 데몬즈 리프트.
바로 데스랜드로 통하는 입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