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03
103
103. 알 권리는 개뿔
특유의 냄새가 나는 하얀 건물.
이곳은 수언과 보라가 입원을 하고 있는 신한그룹 계열의 신한병원이다.
여울은 은서와 함께 5층 입원 병동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기 전부터 밖이 소란스럽다. 5층에 도착하니 병실 쪽에 사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다.
“다들 돌아가 주세요! 우리 헌터들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니.”
부길드장 김이수가 그들을 막아서며 손을 휘휘 저었다. 수언이 이곳에 입원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몰려든 기자들이다.
얼마 전, 대구 지원에서 수언이 자신의 기량을 아낌없이 보여 준 덕에 우리나라의 두 번째 S랭크로 소문이 퍼지고, 수원도시에서는 그의 허락을 맡고 공식 발표를 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사람들을 피하는 수언은 사냥터를 전전긍긍하며 한 번도 얼굴을 제대로 비춘 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두 번째 S랭크의 첫 인터뷰라는 대특종을 따 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리가 없는 기자들이었다.
“레이드를 갔다가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아는데, 얼마나 심각한 거죠?”
“30초만 인터뷰할 수 없습니까?”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습니다! 어떤 사고가 일어난 거죠? 헌터님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기자들은 몸을 공격적으로 들이밀며 김이수에게 질문을 해 댔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4레벨 김이수를 밀어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는 바닥에서 한 발자국도 떼지 않고 우뚝 서서 그들을 온몸으로 막아 냈다.
“거참, 이러면 다른 환자들한테도 안 좋아요. 여기 병원이에요, 병원. 다 내쫓…….”
그때, 병실에서 긴 생머리를 찰랑이며 한 여인이 나왔다. 톡 건드리기만 해도 깨질 것만 같은 유리 피부, 흑요석을 담은 듯이 검게 반짝이는 눈동자, 환자복 브이 라인을 19금으로 만드는 볼륨감. 그녀가 등장하자 급격히 조용해졌다.
그녀는 아직 정신이 몽롱한지 반쯤 눈을 감은 채로 기자들을 보며 메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아이씨, 진짜 겁나 시끄럽네. 알 권리는 개뿔이 알 권리?! 우리도 사생활 보호받을 권리 있어! 다 좀 꺼져!”
후우웅.
청아한 목소리와 상반되는 거친 언어에 장내가 순간 얼어붙었다. 마이크를 들이대던 기자들의 움직임도 정지화면처럼 멈춰 버렸다.
‘일 터졌네.’
김이수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가다가 뒤쪽에서 멍하니 지켜보는 여울과 은서를 발견했다. 그는 다급히 그들에게 손짓했다.
“빠, 빨리 와요. 와서 보…… 3조장 좀 데리고 들어가요.”
“앗, 넵!”
은서는 얼음이 땡 풀리고 있는 기자들 사이를 지나쳐 벽에 기댄 채 그들을 노려보고 있는 보라를 데리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여울도 그녀의 뒤를 바짝 쫓아갔다.
쾅!
병실 문을 닫고 조금 지나자 김이수가 무슨 수를 썼는지 조용해졌다. 은서는 보라를 침대에 앉히고는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언니, 괜찮아요? 아까 보니까 멀쩡해 보이기는 하던데.”
보라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흔들거리다가 은서의 머리 위에 손을 툭 얹으며 말했다.
“조용해, 꼬맹아. 언니 아직도 아파 죽겠다. 왼쪽 팔은 아직도 바늘 수천 개가 찔러 대는 느낌이야.”
은서는 두 손을 올려 보라의 손을 잡고 품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눈동자에는 걱정이 가득 담겨 있다.
“정말? 어떡해…… 그래도 언니 덕분에 수언 오빠가…….”
그 말에 보라가 고개를 번쩍 들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 맞아! 수언이! 수언이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됐어요?”
보라의 마지막 시선은 여울에게 도착했다.
“시간에 맞춰 수혈해서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연락받았다. 아직 가 보지는 않았고.”
보라는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래요? 같이 가요, 언능.”
“그래.”
“언니, 조심조심.”
은서는 그녀를 부축하며 걸음을 옮겼다.
병실 문을 여니 이제 막 도착한 지연, 원팀과 마주쳤다. 모두 조장급이니 길드에서 뒤처리를 할 일이 있었던 것이다. 여울은 그들과 대충 눈인사를 나누고 바로 옆에 수언의 병실로 갔다.
그곳에는 길드장 지천욱과 김이수, 그리고 담당 의사가 와 있었다. 천욱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울에게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감사합니다…….”
그의 반응에 담당의는 누가 신한길드의 길드장에게 이런 대우를 받나 싶어 뒤돌아서서 여울을 보고는 고개를 한 번 숙였다.
보라는 눈을 감고 있는 수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담당의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수언이 괜찮나요?”
보라의 질문에 담당의는 지천욱과 눈을 마주쳤다. 천욱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설명을 이었다.
“우선, 보시는 바와 같이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입니다. 그러나 뇌 활동이 전혀 없습니다. 희귀한 상황인데 추측하기로는, 부상을 당했던 그 당시에 받았던 쇼크로 자신이 죽은 것으로 인지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금방 깨어나겠죠.”
은서가 맑은 눈을 촉촉이 적시며 말했다.
“그, 그러면 그 뇌사 상태? 그런 거랑 비슷한 거예요?”
담당의는 두 손을 내저으며 고개까지 도리도리했다.
“아니, 아니. 아닙니다. 뇌사 상태보다는 훨씬 희망적인 상태입니다. 어디까지나 추측성이지만 자신이 살아 있다는 인식만 한다면 깨어날 것이라고 봅니다. 계속 말을 걸어 주세요.”
“그렇…… 군요.”
의사의 말에도 신한길드 사람들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수언은 신한길드의 하나밖에 없는 S랭크, 가입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가 이렇게 병상에 누워 있다는 것 자체가 신한의 대들보가 꺾인 마음이 들었다.
담당의의 소견에도 불구하고 수언은 사흘이 지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보라는 하루 만에 퇴원을 했고 은서는 여울과 함께 수언의 병실에서 계속 머물렀다. 보라와 지연은 길드 일을 끝내고 저녁때마다 한 번씩 들렀다.
“수언 오빠…… 얼른 일어나야지.”
은서의 눈은 하도 울어서 눈동자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퉁퉁 붓고 빨갛게 달아올랐다.
“금방 일어날 거야. 그만 자자, 은서도.”
“우웅…….”
여울은 은서를 소파에 눕히고는 병동과 이어져 있는 테라스로 나왔다.
여울은 수언이 일어날 때까지 일본으로 가는 것을 무기한 연장했다. 한국에 있는 모든 마족의 씨를 말려 버릴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 * *
해당 기업을 상징하는 초록색 간판이 커다랗게 걸려 있는 거대 빌딩, 그 마지막 층은 마치 고급 호텔처럼 바닥은 온통 대리석이고 그 위에는 붉은 카펫이 죽 늘어져 있다.
그 위를 진한 남색 정장을 입은 한 사내가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그의 한쪽 눈은 머리카락으로 가려져 있었다.
똑똑.
그가 정중앙에 위치한 문을 두드리자 문 너머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라.”
지이이잉.
대답과 함께 특수 합금으로 된 무거운 문이 옆으로 열렸다. 사내는 안으로 한 발자국 들어가 허리를 깊게 숙이고는 입을 열었다.
“회장님, 한성에서 파악하고 있던 능력의 소유자가 나타났습니다.”
“한성이라…… 아하, 재미있겠네, 오 실장이 알아서 진행해 봐.”
오 실장이라고 불린 사내는 다시 한번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 * *
신한길드 본부, 주보라는 지천욱의 집무실에서 그와 일대일로 마주 앉아 있었다.
“음…… 보라 씨가 얘기하지 않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전투의 향방에 영향을 끼치는 특성은 밝히는 것이 규칙이라서. 수언이…… 치료했던 그 힘, 나한테 조금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겠어요?”
보라는 두 무릎에 손을 대고 가만히 있다가 돌연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네, 제 특성은…… 상대방의 상처를 저한테 옮기는 거예요. 이미 죽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살릴 수 있어요. 제가 얻은 상처는 짧게는 반나절에서 길게는 일주일이 지나면 자가 치료되고요.”
보라의 말에 지천욱은 입을 쩌억 벌리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보라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예의상 미소를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을 하고 싶었…… 아니, 말도 하기 싫었고, 계속 감출 생각이었어요. 이렇게 어쩔 수 없이 들켰지만……. 이 일로 절 퇴출시키려면 하셔도 돼요.”
천욱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직 그의 특성을 들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더 하실 말씀 없으면 나가 볼게요.”
그녀가 허리를 숙이고는 걸음을 옮기려는 그때, 지천욱의 입이 열렸다.
“많이!”
그의 외침에 보라가 멈칫했다.
“많이…… 힘들었겠군요. 감히 제가 그 고통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길드에서 보라 씨의 위치나 역할은 변동 없을 겁니다.”
그는 잠시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이번 일로 소문이 퍼졌을 겁니다. 우리 길드도 그렇지만, 타 길드에서도 그 기적의 순간을 목격했으니……. 저는, 아니, 우리 신한길드는 보라 씨가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보라는 다시 뒤돌아서 눈을 맞추고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길드장님.”
길드장 지천욱과의 면담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해가 산 끝에 걸려 있을 즈음이었다.
사람들이 아직 많이 다니는 거리에 한 무리가 보라의 앞을 막아섰다. 진한 남색 수트에 한쪽 눈을 머리카락으로 가린 사내 한 명과 그 뒤로 검은 수트를 입은 네 명의 사내다. 무장은 하지 않았다. 옆구리에 검도 차고 있지 않았다.
보라는 멈춰 서서 그들을 경계하는 눈빛을 보냈다.
“뭐죠?”
그녀의 말에 머리카락으로 한쪽 눈을 가린 사내가 고개를 절도 있게 숙이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주보라 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짐작했지만 이름도 알고 있다. 치료 능력을 사용한 것이 벌써부터 파장이 있는 것이다.
“저는 싫은데요.”
보라는 그들을 지나쳐 가려고 했다. 그런데 뒤에 있는 네 사내가 그녀의 진로를 가로막았다. 보라는 검의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대며 말했다.
“피를 보고 싶으신가요?”
“이 거리에서 무장도 하지 않은 일반인을 헌터가 다치게 했다. 누가 손해일까요?”
‘일반인?’
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무장하지 않은 것은 맞는 말이다. 보라가 멈칫한 모습을 보고는 그가 말을 이었다.
“5분이면 됩니다. 여기서 얘기할까요?”
“네, 여기서 얘기해요.”
“알겠습니다.”
사내는 보라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더니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조금 더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주보라 씨를 고용하고 싶습니다. 그 특성으로 저희가 지목하는 대상만 치료해 주기를 원합니다.”
전에 한성그룹과 방법만 조금 다르지, 같은 이유가 확실하다. 보라는 그를 살펴보며 대답했다.
“저 비싼데. 돈 많은가 봐요? 얼마나 주는데요?”
“원하시는 대로.”
“그쪽이 생각하는 나의 가치가 얼만지 먼저 들어 보고 싶네요.”
“최소 가치 연봉 200억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 이상 부르셔도 협상의 여지는 충분합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미안해요. 돈은 별 필요가 없어서.”
“원하는 것을 말씀하십시오. 뭐든…….”
보라는 그의 말을 끊었다.
“날 이대로 두는 거?”
그녀의 장난스러운 표정과 말에 사내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다시 눈을 마주했다. 그러고는 안주머니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주었다. 이름도, 직책도,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고 오직 전화번호 하나만 적혀 있는 특이한 명함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실 듯하니 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사이에 제가 다른 곳으로 간다면 어떻게 할 건데요?”
“저희가 찾지 못하는 곳은 없습니다. 그럼, 보중하십시오.”
사내는 보라를 향해 허리를 깊이 숙였다. 보라는 그가 준 명함을 바닥에 바로 버리며 사납게 쏘아 댔다.
“헛수고하지 마시고요. 그쪽 윗사람한테 전하세요. 나는 그딴 정치 놀음에 이용될 생각 추호도 없다고요.”
보라는 바로 뒤돌아서 걸음을 옮겼다. 사내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