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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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랭크 발표
드르륵.
조그마한 배식구를 통해 스테인레스로 된 식판이 들어왔다. 식판을 건네는 것은 사람의 손이 아니라 강철로 된 집게다. 마치 무시무시한 죄수가 된 느낌이다.
“흐음…….”
보라는 바로 식판을 받아 들어 오늘의 반찬을 구경했다. 단식투쟁 같은 무식한 짓은 하지 않는다. 기운이 있어야 머리를 쓰든지 탈출을 하든지 할 것 아닌가?
오늘은 안심 스테이크에 샐러드와 오곡밥이다. 풍미 가득한 것을 보면 오성급 호텔의 요리사가 해 주는 것이 분명하다. 만약 이 정도 음식이 보장된다면 감옥 생활도 할 만하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이 떠오른다.
이들의 목적을 알고 있으니 계속해서 거절한다면 이런 귀족 대우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쩝쩝.
그래도 맛있는 건 맛있는 거다.
똑똑.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식사를 갖다 준 지 얼마나 됐다고 무개념한 노크다.
보라는 식사를 멈추고 빠르게 입을 휴지로 닦고는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침상 앞에 각을 잡고 앉았다.
삐빅.
곧 기계음과 함께 문이 옆으로 열렸다. 이렇게 무방비하게 대놓고 들어오는 사람은 단 한 사람이다. 오태현 실장.
그는 식탁에 눈이 갔다가 보라에게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식사 중에 실례합니다.”
“매너 있는 척은…….”
보라는 팔짱을 끼고 다리를 확 꼬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오 실장의 뒤로 두 명의 사내들이 더 들어온다. 신장이 2미터는 될 법한 덩치들이다. 그들의 손에는 검은색 두꺼운 끈이 들려 있었다.
‘벌써 시작인가?’
보라가 일어나 뒷걸음질을 치자 오 실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얌전히 계십시오. 금방…….”
그때 그의 뒤에서 다부진 체격에 하얀 머리의 중년인이 뒷짐을 지고 들어왔다.
“아니, 됐어. 아리따운 숙녀를 그렇게 대하면 쓰나?”
“알겠습니다.”
오 실장은 절도 있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숙인 채로 뒤로 걸음을 물렸다. 상당히 낮은 자세다. 보라는 그 모습에 바로 눈치를 챘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 중년인이 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는 것을.
저벅저벅.
중년인이 여유로운 눈빛으로 보라에게 다가오자 오 실장이 한걸음 나서며 말을 이었다.
“위험합니다, 회장님. 이 여자가 A랭크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허허, 사내가 돼서 이런 미인을 멀리서 두고만 보라고? 그런 고문이 어디 있나? 걱정 말게.”
시종일관 신사인 척을 하고 있지만 그 눈 속에 품고 있는 음욕을 알아챈 보라였다. 회장이라고 불린 중년인과 그녀와의 거리는 1미터, 손만 뻗으면 심장을 꿰뚫을 수 있는 거리다.
보라는 오 실장을 살피며 몇 번이나 고민했다.
“아가씨는 내가 대범하다고 생각하나? 그래서 그렇게 살기를 뿌리고 있나? 천만에. 나는 내 몸을 극도로 아끼지. 지금은 오 실장이 옆에 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야. 아가씨가 무슨 짓을 꾸며든 그 전에 막아 줄 거니까. 오 실장은 등록만 안 되어 있지 S랭크나 마찬가지거든.”
보라는 회장을 흘겨보다가 입을 열었다.
“말이 많으시네요.”
“허헛, 본론만 얘기해라? 그래, 내 스타일이야. 돈이…… 싫다 했다고?”
회장의 물음에 보라는 가만히 팔짱만 끼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가 금세 말을 이었다.
“뭐가 필요한지 말만 하게. 대한민국에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없으니.”
“오만하시군요. 지금 당장 나도 설득 못 시키면서.”
보라의 말에 회장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설득은 아니더라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방법은 많지. 확인하고 싶나?”
보라와 회장의 눈빛이 공중에서 부딪쳤다. 보라는 가만히 그의 시선을 담담히 받아 내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해야 할 겁니다.”
“신한의 무력을 믿는 건가, 아니면 법을 믿는 건가? 이미 전부터 법은 돈이 만들고 있었거늘…… 그리고 돈은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무력을 만들지. 내 무력을 신한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나?”
보라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궁금하네요. 감당할 수 있을지…….”
회장은 그녀의 얼굴이 뚫릴 듯이 바라보다가 뒤돌아섰다.
“재미있는 아가씨야. 다음에 또 보지. 어떤 선택을 할지 기대가 되는군.”
회장이 뒤돌아서 나가자 그 뒤로 덩치 두 명이 따라 나갔다. 오 실장은 주보라를 바라보다가 마지막에 그곳을 나섰다.
양쪽이 금속 벽으로 되어 있는 복도, 회장은 금세 옆에 붙은 오 실장에게 말했다.
“말투가 거슬리는군…… 콧대 좀 꺾어 놔.”
“예, 회장님.”
* * *
수원도시 헌터등록소.
수십 명의 사람들이 소름 돋는 연주가 끝난 것처럼 모두 기립해서는 탄성을 내질렀다.
“와!”
“헐!”
“우아…….”
“미쳤다.”
“사, 사람이야?”
대기 벤치에 있던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때, 측정 장치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저벅저벅.
모두의 시선이 그의 담담한 얼굴에 집중되었다. 직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36세 여, 여울 씨…… 425점, SS랭…… 크.”
여울은 고개를 돌려 점수판을 확인했다. 전에 다른 기기에서 측정했을 때를 떠올리며 힘의 30퍼센트를 사용한 것이다. 점수는 생각보다 적게 나왔다. 후에 최대치로 테스트를 하면 몇 점이 나올지 궁금해졌다.
“우와!”
“헐…….”
“SS랭크래. 들어 본 적도 없는…….”
“400점 이상…… 신의 영역…….”
“잠깐, 전 세계 최초 아니야? 그런 역사적인 순간을 내가 보고 있는 건가?”
“기계 고장은…… 아닌……?”
여울은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지나쳐 이진태에게 갔다. 그는 완전히 얼이 빠져 있는 얼굴이다. 눈동자만 자신을 쫓아올 뿐이다.
“랭크 확정 발표, 언제쯤 가능할 것 같습니까?”
마치 건강검진을 마치고 온 것 같은 가벼운 말에 정신을 차린 진태는 손을 뻗어 그의 팔뚝을 잡으려다가 다시 내리고는 더듬더듬 말했다.
“그, 아, 이게, 이 점수는 생각지 못했던 거라서…… 그, 전문가들과 상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가능할 때 연락 주십시오.”
“앗! 아, 넵! 알겠습니다. 여울 님, 감사합니다. 제가 금방 연락드리겠습니다!”
뭐가 감사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여울은 고개를 대충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때, 20대 초반의 한 여인이 여울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 저기요! 저 같이 사진 한 방만 찍어도 될까요?”
“저도요!”
“저도 한 번만요!”
“기계 고장이라니까…… 난리들 치네.”
공격적으로 달려드는 사람들, 저 멀리서 구경하는 사람들,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 등등 다양하다. 여울은 맨 처음 물었던 여인을 힐끔 보고는 입을 열었다.
“싫습니다.”
그는 그 말과 함께 다시 걸음을 옮겼다. 여인은 그의 눈빛과 어투에서 거절당할 줄 알았는지 실망한 기색은커녕 바로 태세를 전환하고 그의 뒷모습을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그녀를 따라 몇몇 사람들도 뒷모습이라도 담고자 사진을 찍어 댔다.
이진태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고는 전화기를 들었다.
“어, 판별사들 불렀어? 아직도? 그 사람들한테 다시 전화 돌려, SS랭크 떴다고.”
* * *
이진태와 진 부장은 여울이 가고 난 이후로 더욱 바빠졌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능력 판별 전문가들과 고위급 간부들을 불러내어 측정 장치에 장착된 초고속 카메라 영상을 보며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분명 예측은 500점대까지 움직임을 자세히 잡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UST 이 새끼들…….”
여울의 시험 영상은 카메라가 완벽하게 잡아내지 못하여 정확한 판독이 불가능했다. 움직임이 프레임이 낮은 것처럼 뚝뚝 끊기는 것이었다.
“벌써 기계가 고장 났나…….”
“카메라가 우리 생각과는 다르게 낮은 것 아닙니까?”
“어허, 제가 다 체크해 봤어요. 제 전문성을 의심하는 겁니까?”
“이거, 모든 기기 체크해 보고 한 번 더 시험을 치르게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문가들의 말에 이진태 옆에 있던 진 부장이 발끈하며 입을 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미래의 SS랭크에게 그런 대우를 한다고요? 그건 절대 안 됩니다.”
그때 수원도시 외교부장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6개월 만에 우리나라에서 S랭크가 둘이나 나왔습니다. 귀환자라고는 해도 이 조그마한 나라에 그만한 능력자가 있다는 것에 알게 모르게 반발이 심하다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그는 조용해진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SS랭크가 나온다면 기상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랭크 측정에 관한 신뢰가 떨어질 수도 있고요.”
“맞아요. 원래 거짓말도 두 명이 하면 사실이 되어 버린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지금 미국 눈치 때문에 우리 인재를 깎아내려야 한다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현재 상황이 그렇다는 거 아닙니까?”
그때 이진태가 일어서서 두 손을 아래로 휘적거려 과열된 분위기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이건 어떻습니까? 우리가 먼저 UST에 연락을 해서 지금 상황을 대충 설명하고 그들에게 직접 인정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겁니다.”
“아…… 원정 검사입니까?”
측정 장치 전문가가 말을 덧붙였다.
“최신형이라고는 해도 여기는 보급형이 한계고, 그곳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될 테니까…… 가장 세밀하고 정확하겠죠. 거기서도 400점 이상이 나온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요.”
“찬성합니다. 그 방법이 가장 적절하겠군요.”
“저도 동의합니다. 대한민국의 위상도 높이고, 인정도 제대로 받고, 좋은 방법입니다.”
“그럼, 바로 연락해 보겠습니다.”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드는 외교부장을 보며 진태가 만류했다.
“잠깐, 그 전에 제일 중요한 게 있습니다. 여울 님의 의사를 물어야죠.”
“의사야 당연히…….”
“이 정도 능력을 가진 존재는 우리 같은 일반인과는 가치관과 생각 자체가 다릅니다. 랭크 따위에 연연하지 않을 수도 있지요. 일단 우리가 정한 쪽으로 설득은 해 보겠습니다.”
“음…… 다녀오시지요.”
“네, 그럼.”
이진태는 그들을 보며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회의실 밖으로 나왔다.
“여울 님! 그게, 좀 찾아뵙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네네! 아닙니다. 제가 거기로 가겠습니다!”
여울과 만난 이진태는 SS랭크로 제대로 인정을 받고 발표를 하려면 미국의 UST 본사에 가서 다시 테스트를 해야 한다고 전달했다.
“전용기로 원하시는 시간에 바로 출발이 가능하고요. 한국에 다시 도착할 때까지 모든 편의를 책임질 겁니다.”
미국, 어차피 한국과 일본의 마족들을 처리한 후에는 그쪽으로 넘어가야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그럼 S랭크는 어떻습니까?”
“네?”
“S랭크는 바로 발표가 가능합니까?”
“가…… 가능할 겁니다.”
“그렇게 합시다.”
여울의 말에 진태는 멈칫했다가 말을 이었다.
“여울 님, 우리나라에서 UST가 직접 나서서 인정하는 SS랭크가 최초로 나온다면 그 어떤 나라도 우리를 만만히 볼 수 없을 겁니다. 지원도 투자라고 생각하며 아끼지 않을 거고요. 여울 님의 랭크 발표로 인해 우리나라에 퍼져 있는 수백만 명의 이재민들을 살릴 수 있는 효과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울은 열정적으로 설명을 하는 진태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항상 순종적이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알랑거렸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뜻에 반발하는, 아니, 설득하려는 모습이 신선했다. 이것이 그의 참모습인가?
여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당장은 할 일이 있어서 기간을 조금 미루겠습니다. 먼저 S랭크로 발표를 하죠.”
“아…… 알겠습니다!”
* * *
며칠 후, S랭크 발표 기자회견을 갖는 날.
끼익.
강당 문이 열리고 검은 수트를 입은 여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기자가 그를 알아보고는 소리쳤다.
“엇, 나왔다!”
“여울이다!”
찰칵찰칵! 촤촤촤촤악!
그의 등장과 함께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여울은 건조한 표정으로 중앙에 마이크가 설치된 곳에 자리했다.
“언제 레벨업을 하신 겁니까!”
“소속 길드가 없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입니까?”
“중국 지원에 나간 적이 있으십니까?!”
“B등급 게이트를 혼자 닫으셨던 것이 사실입니…….”
콰앙!
연달아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가만히 있던 여울이 돌연 손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 돌발 행동에 순간 장내가 싸늘해졌다.
“저는, 질문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지, 질문을 받지 않는다면 회견은 왜…….”
한 기자가 질문을 잇다가 여울의 눈빛과 마주하고는 입을 닫았다. 여울은 그들을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랭크를 밝히고 나온 것입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할까 싶어 장내가 조용해지며 더욱 집중되었다. 생방송 카메라들은 여울의 얼굴을 더욱 클로즈업했다.
“나는…… 신한길드에게 피해를 주는 자들에게 그에 합당한 응징을 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찾게 하지 마라.”
여울은 잠시 입을 닫고는 장내를 둘러보았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온 살기에 기자들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침묵만이 맴돌았다. 그때 그의 입이 다시 열렸다.
“이건 부탁이 아니다. 협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