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92
92
여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현신을?”
“아주 잠시만입니다. 하지만 여울 님의 몸과 영혼이 버틸지는 미지수입니다. 워낙 강인한 몸이기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어차피 그가 현신하지 않으면 0.13초 후에 죽는 것 아닌가? 선택로는 애초에 하나밖에 없다. 여울은 진중한 눈빛으로 푸른눈을 보며 입을 열었다.
“현신을…… 허락한다.”
“그럼, 잠시 빌리겠습니다.”
여울의 말에 푸른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몸이 눈앞에서 점점 흐릿해지더니 이내 검은 안개로 화하여 자신의 몸을 뒤덮었다.
‘헙!’
동시에 머릿속의 뇌를 두 손으로 갈기갈기 찢는 것만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처음 보는 장면, 처음 듣는 목소리, 처음 맡는 냄새들이 눈앞을, 아니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 모든 것들이 미친 듯이 휘감겨 섞이는 모습을 보며 의식이 어두운 저편으로 사라졌다.
* * *
한쪽 면이 내려앉은 건물 옥상, 호첸의 오른팔이 여울의 몸 안에 깊숙이 들어가 있다. 여울의 몸은 죽은 자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축 처져 있었다.
번쩍!
여울의 눈이 부릅뜨였다. 푸른 불꽃이 홍채에 담겨 있는 눈빛이다.
턱.
여울은 자신의 몸을 관통한 호첸의 손목을 잡아 그대로 뺐다. 그의 손에 의해 뚫린 부분은 검은 연기가 휘몰아치며 피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다.
호첸은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손을 힘으로 빼낸 여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카르…….”
그는 여울을 카르라고 불렀다. 여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의 주인을 알아챈 것이다. 여울, 아니 카르는 호첸의 손목을 잡은 채로 그에게 물었다.
“호첸 님께서…… 어쩌다가 마족이 되신 겁니까?”
“나를 감히…… 그따위로 부르지 마라!”
호첸은 카르의 손을 뿌리치고는 다시 목을 향해 휘둘렀다.
턱.
그의 공격이 카르의 손에 의해 손쉽게 막혔다.
“아시지 않습니까? 이 인간은 이미 우리의 힘을 넘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쫓으신 것 아닙니까?”
츄아악!
카르는 손날을 펴고는 잡은 호첸의 팔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날카로운 검으로 벤 듯이 그의 팔이 허무하게 잘려 나갔다.
“크흑.”
“호첸 님은 나를 이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카르는 잘린 팔뚝을 붙잡고 고통스러워 하는 호첸을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물질, 디카르가 수백 개의 선으로 변하여 그의 앞에 촤악 펼쳐졌다.
“그럼, 잘 가십시오.”
“이런다고…….”
화악!
카르의 검은 줄은 호첸의 몸을 삼키듯이 완전히 뒤덮었다. 그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몸이 수백 조각으로 나뉘어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 핏덩어리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카르의 눈동자에 푸른 불꽃이 사르르 사그라졌다. 동시에 카르의 몸은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 내렸다.
* * *
꿈뻑꿈뻑.
마른하늘이 보인다. 해가 뉘엿뉘엿 져 가는 중이다. 피비린내가 물씬 풍겨 온다. 등바닥이 축축하고 찝찝하다. 상체를 일으켜 보니 뒤통수에서 끈적거리는 무언가가 느릿하게 떨어진다.
바닥에는 한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양의 붉은 피가 넓게 펼쳐져 있고, 기분 나쁜 고깃덩어리들도 사방으로 널브러져 있다. 여울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호첸을 담고 있던 인간의 몸…….’
여울은 그 핏덩어리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일어섰다.
푸른눈, 그의 이름은 카르였다. 검의 이름은 디카르, 신발의 이름은 카르의 신발, 자신에게 보상으로 준 것은 정말로 모두 푸른눈 카르의 무구였던 것이었다.
카르가 현신하며 강제로 주입되는 듯이 방대한 지식이 자신의 머리로 넘어왔다. 그의 뇌가 일부 공유된 것이라고 추측된다.
살아 있는 자의 몸에 현신한 상태로 오래 있으면 대상의 영혼이 망가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용에게 완전히 잠식되고 인간의 몸을 차지한 용은 마족이라고 불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카르가 호첸을 죽이고 빠르게 빠져나간 것이다. 여울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카르 자신이 마족이 되고 싶지 않아서인 듯하다. 그 기간이 누적될수록 잠식될 위험은 가증된다.
여울은 피딱지를 툭툭 털어 내고 걸음을 옮겼다. 그 걸음은 전보다 더 거침이 없었다.
카르의 지식으로 인해 마족들을 지금처럼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이 호첸이라는 마족은 장로급이라고 불리는 용이었다.
그 세계, 지금 게이트와 연결되어 있는 로다스라는 이세계에서도 10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강력한 용으로 질서를 관장하는 장로급이 마족이 된 것 자체가 희귀한 일인 것이다.
저 앞에서 창을 들고 날아오는 사내도, 뒤에서 활시위를 당기는 여인도, 아래에서 쌍도끼를 들고 올라오는 덩치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여울은 디카르와 베아를 양손에 들고 바람의 기운을 담았다.
* * *
띵 동 댕 동, 딩동 동 동.
“으아아 드디어 점심시간이다. 예서 보러 가야지~.”
은서는 기지개를 활짝 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치마를 톡톡 털었다. 최근에 친해진 예서는 특별활동 봉사부에서 만났다.
그녀는 예쁘고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여 항상 주변에 친구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처음 만난 그날에도 그녀의 주변에는 네 명의 남녀가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드르륵.
봉사부 교실에 은서가 들어오자 그곳의 온도가 뚝 가라앉았다. 은서는 항상 느끼던 분위기이기에 신경 쓰지 않고 터덜터덜 구석으로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예서는 은서를 쳐다보며 친구들에게 물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왜 그래?”
“쟤 걔잖아, 샤프, 샤프.”
한 친구가 인상을 좁히며 조용히 손바닥을 펴고 다른 손으로 찍는 시늉을 했다.
“어우, 쟤가 웬 봉사부를 왔냐…… 권투부 같은 데는 없나.”
“무섭다, 무서워. 쟤 아빠도 학교 왔었는데 엄청 살벌하대. 조폭이라나 뭐라나.”
“헤엑…….”
예서는 친구들의 말을 흘려들으며 한 팔을 턱에 괴고 뚱한 표정으로 창문가를 바라보는 은서를 흘겨보았다.
“그래? 그렇게 안 생겨 보이는데…….”
“야, 생긴 거만 예쁘장하면 뭐 해? 행동이 그렇게 살벌…… 어어.”
드륵.
예서는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방향은 은서가 있는 쪽이다.
레벨이 오르면 힘과 민첩성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기억력, 시력, 청각, 후각 등 인간의 모든 지각이 발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5레벨 은서는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렸고 보고 싶지 않아도 보였다.
오늘도 익숙한 자신의 뒷담을 음악 삼아 멍을 때리던 중, 신경 쓰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녀가 이쪽으로 걸어온다. 어떡하지? 이런 애는 처음인데?
당황하던 은서는 애써 모르는 척 계속해서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저기…… 몇 반이야? 나는 6반에 지예서라고 해.”
은서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자연스럽지 않아 자신을 자책하며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예쁘다. 자신에게는 죽었다 깨어나도 없는 상큼발랄이 저 싱긋 올라간 미소에 걸려 있다.
그녀가 한 손은 뒷짐을 지고 다른 손을 자신에게 쭉 내밀고 있다. 은서는 그 가늘고 하얀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덥석 잡았다.
“나는 2반, 여은…….”
“아읏!”
은서가 손을 잡는 순간 예서가 그 자리에서 쓰러지듯이 몸을 숙이며 신음을 내질렀다. 급한 마음에 힘이 너무 들어간 것이다. 은서는 다급히 손을 놓으며 사과했다.
“미, 미안. 너무 세게 쥐었지?”
예서는 찔끔 새어 나온 눈물을 훔치며 붉게 달아오른손을 털었다.
“큭, 아냐, 너 힘 되게 세구나? 하핫.”
한쪽 눈을 찡끗하고 아파하면서도 웃는 그녀의 모습은 창밖에서 넘어오는 햇살과 부딪쳐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은서는 자신도 모르게 따라서 미소를 싱긋 짓게 되었다.
그렇게 은서는 예서의 껌딱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친해졌다.
타닥, 타닥, 타닥.
은서는 총총걸음으로 복도를 걷고 있었다. 같은 반이 아니기에 이렇게 은서가 예서의 반을 종종 찾아갔다. 은서는 2반, 예서는 6반으로 가는 길의 복도는 꽤 길었다.
“음?”
예서의 반에 학생들이 많이 몰려 있는 것이 보였다. 은서의 귓가에 예서라는 이름이 많이 들려온다. 교실 안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은서는 학생들을 비집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교실 안에는 한 여자아이가 책상에 엎드려 있고 머리 위에는 교복 상의가 덮여 있었다. 그리고 뒷문으로는 3학년으로 보이는 언니들 세 명이 팔짱을 낀 채 교실을 나서고 있다. 염색에 네일, 붙임머리까지 한 것으로 보아 모범생은 아니다.
엎드려 있는 아이의 체구가 익숙하다. 아무도 쉽게 발을 들이지 않아 교실 안에는 그 아이 혼자 남아 있다. 은서는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가 교복 상의를 걷었다.
가장 먼저 남자처럼 짧아진 진갈색 머리가 보였다. 그제야 바닥에 떨어진 커터 칼과 지저분하게 널려 있는 머리카락들이 보인다.
은서는 가늘게 떨고 있는 그녀의 두 어깨를 붙잡아 상체를 들어 올렸다. 그녀가 다시 엎드리려고 해도 은서의 악력은 이길 수 없었다.
“흐읍, 흐읍, 흡…….”
입술과 코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고, 두 눈은 커다랗게 부어올라 있다. 한쪽 눈은 실핏줄이 터졌는지 흰자가 모두 빨갛다. 손톱으로 할퀴기도 했는지 얼굴 이곳저곳에는 살점이 뜯겨 나가 있었다.
퉁퉁 부운 얼굴, 잘린 머리카락, 어디에도 은서가 알던 예서는 없었다. 그녀의 눈에는 수치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흐읍, 흑…….”
은서는 그녀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손을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엎드린 그녀의 머리 위에 자신의 교복 상의를 덮어 주고는 조용히 바닥에 떨어져 있는 커터 칼을 집어 들었다.
무슨 이유로 이런 꼴이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이유든 간에 예서에게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다.
터벅, 터벅, 터벅.
“쟤, 쟤 말려야 되는 거 아니야?”
“쟤도 친구 따라 개 박살 나겠지. 빛나 언니가 깡으로 어쩔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래, 한번 쥐어 터지고 나면 현실을 깨닫겠지.”
예서는 친구들의 대화와 점점 멀어지는 은서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지만 일어서서 말릴 수가 없었다. 지금 이 모습을 학교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은 죽기보다 더 싫었다. 은서가 정말로 혼자 그 언니들을 찾아가지는 않을 거라는 마음도 은연중에 깔려 있었다.
드르륵!
3학년 1반 교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교실에 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모두 문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무미건조한 표정의 소녀가 서 있었다.
“뭐야?”
“쟤, 2학년 아니야?”
“야, 너 왜 왔어?”
은서는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는 교실을 한 번 둘러보았다가 다시 문을 쾅 닫았다. 이곳에는 없다. 저 뒤에는 이미 1, 2학년 무리가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다. 은서가 빛나에게 당하는 꼴을 구경하러 오는 것이다.
“뭐, 뭐야, 저 싸가지 없는 년이!”
귓가로 들려오는 쌍욕을 흘려버리며 다음 반 교실 문을 확 열었다. 창문틀에 한쪽 다리를 올리고 담배를 태우고 있는 한 학생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의 맞은편에는 두 명이 책상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다.
아까 봤던 그 세 명이다. 명찰에 우빛나라고 쓰여 있는 여학생이 은서를 보며 욕을 뱉어 냈다.
“뭐야? 저 쌍년은.”
은서는 바로 그들에게 걸음을 성큼성큼 옮겼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그들은 먼저 두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은서를 제지했다.
“뭐 하는 년인지 몰라도…….”
한 여학생이 은서의 어깨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은서는 손을 그녀에게 마주 뻗어 겨드랑이 사이에 집어넣어 뒤통수를 잡고 책상에 내리찍었다.
콰직!
책상은 부서지고 그곳에 얼굴이 박힌 여학생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창문틀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던 빛나는 꽁초를 떨어트렸다. 같이 제지하려던 여학생 한 명은 뒷걸음질을 쳤다.
“야, 야, 건들지 마…… 빛나는 헌터…….”
짜악!
은서의 거침없는 따귀에 여학생의 고개가 부러질 듯이 돌아갔다. 은서가 다시 반대로 손등으로 따귀를 갈기자 마취총이라도 맞은 듯이 그녀의 몸이 옆으로 고꾸라졌다.
은서는 여전히 창문틀에 걸쳐 앉은 빛나 앞에 우뚝 서서 입을 열었다.
“내가 오늘, 참교육이 뭔지 제대로 보여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