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993)
993화 맑은 눈의 광인 (18)
향이 전생에 익숙하던 등급의 석유 연료들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화력과 편의성을 가진 석유 연료들이 만들어졌다.
“뭐, 내가 아는 그 연료들이 거의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 개선작업을 거쳐 온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겠지.”
결론을 내린 향은 ‘석유정제’항목을 도전록에 등재했다. 향이 포함된 심사위원회에서 내린 결과는 ‘마부작침(磨斧作針) 중중중’이었다.
* * *
‘석탄보다 화력이 세지만, 더 효율이 좋은 연료’의 문제가 해결되자, 다빈치의 신형 날틀 제작은 속도를 붙였다.
“완성되었사옵니다!”
“그래? 한번 보세.”
보고를 받고 한달음에 한강 변으로 달려온 향은 시제품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게 나온 것 같군. 수고했네.”
“망극하옵니다!”
고생한 다빈치와 공 야장, 장인들을 치하한 뒤 좀 더 자세하게 시제품의 얼개를 살피기 시작했다. 큼지막한 기름통 위에는 풍로의 얼개를 응용한 가열기구가 붙어 있었다. 가열기의 심지를 이용해 화력을 조절해, 기관의 출력을 조절하는 방식이었다.
기관부 위에는 동체의 척추 역할을 담당하는 골격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골격을 따라 구동축이 뻗어 있었다. 구동축에는 두 개의 상자가 연결되어 있었다. 하나는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역할을 맡은 바람개비들에게 동력을 전달하는 톱니바퀴들이 들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추진을 담당하는 바람개비에게 동력을 전달하는 톱니바퀴가 들어 있었다. 크고 작은 톱니바퀴들이 가득 들어간 상자 안에는 석유 정제에서 나온 윤활유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흐음….. 여기까지는 괜찮군.”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해하던 향은 조종석을 살피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조종석 안은 여러 조종간과 페달들로 가득했다. 우선 기체의 수직상승과 하강을 담당하는 조종간이 있었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동력기관의 출력을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기체의 기수를 위아래로 움직이고, 동체를 좌우로 기울이는 역할을 맡은 조종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기수를 좌우로 돌리는 것을 담당하는 한 쌍의 발판이 있었다. 그 한 쌍의 발판 좌우로는 바람개비로 향하는 동력을 차단하는 차단용 발판-클러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21세기에서 봤던 애니메이션의 대사가 생각나는군. 페달과 레버가 수십 개인데 어떻게 하냐고 징징거리던 대사 말이야.’
“후우~.”
조종석을 살핀 향은 한숨을 내쉬고, 다빈치와 공 야장을 돌아봤다.
“제대로 조종하려면 팔다리가 최소한 네다섯 개는 있어야 할 것 같군.”
“그 부분은 훈련으로 메워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대로 떠오르는지만 확인할 것이옵니다.”
“그래? 그렇게 하세나.”
“옙! 얘들아!’
“예!”
이어진 시험에서 날틀은 수직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기관의 출력을 최대한으로 높였음에도 채 3장(약 10m)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다시 내려와야 했다. 실험이 끝나고 다빈치와 공 야장, 장인들은 향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소인들의 재주가 부족해 이런 미흡한 결과를 보여드렸사옵니다. 송구하옵니다.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다빈치와 공 야장, 장인들이 용서를 구하자 향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아닌가? 그리고 제대로 떠올랐다가 무사히 내려앉지 않았나? 그것만 해도 큰 성과라고 생각하네. 참으로 수교했네. 자네들의 노력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네.”
향의 치하에 감격한 다빈치와 공 야장, 장인들은 일제히 모래사장에 부복하며 외쳤다.
“망극하옵니다!”
* * *
향의 평가는 과대평가가 아니었다. 그동안 비행과 관련된 각종 실험에서 성공했던 것은 비구와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날틀과 관련해서 성공한 것은 향이 한강에서 시도했던 인력날틀이 유일했다. 그리고 향은 이 일이 언급될 때마다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성공한 것이 오히려 이상한 케이스였지……”
병사들 가운데 가장 체구가 작은 이를 선발해 조종간을 맡기고, 각력(脚力)과 지구력이 가장 강한 병사를 골라 바람개비를 돌리는 페달을 밟게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내구성과 안전을 거의 무시하고 만든 기체에 사람을 실은 것이었다.
때문에, 이번 실험은 기념비적인 성공이라고 평가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향의 치하로 다시 용기를 얻은 다빈치와 공 야장, 장인들은 문제점이 무엇인지 다시금 분석하지 시작했다.
“역시 동력기관이 문제야.”
“증기기관보다 가볍기는 하지만, 출력도 약해.”
동력기관의 성능이 부족하다고 여긴 공 야장과 장인들은 이 부분의 개선에 매달렸다. 이들만이 아니었다. 연구소에서 열역학을 연구하던 학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도 이 작업에 동참했다.
“저들과 같이 일하다 보면 열역학에 관한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와 다른 시선을 가진 이들이야. 우리가 놓친 것을 채울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인력이 집중되면서 스털링 기관은 꾸준히 성능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빈치를 비롯한 이들이 바라는 정도의 성능은 여전히 요원해 보였다. 그리고 또 다른 골칫거리인 복잡한 조종방식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향은 이 문제 역시 도전록에 등재했다.
“동력기관의 등급은 마부작침 상중상.”
그리고 이 일이 게시판에 붙자, 많은 이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지난번 석유 정제도 다빈치의 날틀 때문에 등재된 것이었지?”
“다빈치의 날틀이 금밭이었구나!”
“석유와 동력기관은 마부작침, 조종방식은 고군분투라….. 괜찮을 것 같은데?’
“고군분투 정도면….. 어디 한번 덤벼볼까?”
“고군분투면 경쟁이 치열해, 마부작침이 좋아. 그렇다면 석유 쪽을 연구해 보는 것이 좋겠군.”
많은 이들이 치열하게 눈치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 * *
연구소와 51구역의 관계자 중에서도 명예욕, 정확히 말하자면 성공에 대한 욕구를 가진 이들은 적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도전록의 등급은 또 다른 기준이 되었다. 가장 낮은 등급이라 할 수 있는 고군분투(孤軍奮鬪)의 경우, 혼자서라도 죽어라 노력한다면 뜻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가장 높은 등급인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경우, 개념만 잡아도 이름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그 개념을 잡는 것조차 힘들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가장 만만한 것이 마부작침 등급이었다.
만만하다고는 해도 ‘적어도 3대는 매달려야 한다.’라는 부연 설명이 말하듯이 절대 쉬운 등급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군분투네 매달리듯이 죽어라 노력하면 개념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된다면 응전록에 당당하게 이름을 남기게 되는 것이었다.
“사람으로 태어나 이름 석 자 정도는 당당하게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연구소와 51구역, 52구역. 기타 여러 학원에서 야망에 가득 찬 이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이렇게 말하며 연구에 매진했다. 아니, 이들만이 아니었다. 밖에서도 도전록에 도전하는 이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향의 결정 이후, 몇 차례의 개정을 거쳐 마부작침 중중중 등급까지는 외부에서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라는 말이 뜻하는 것처럼 완전한 개방은 아니었다.
군사 분야와 깊은 연관이 있는 부분은 최대한 개방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도전록에 도전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은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들 때문이었다.
응전록에 이름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대대손손 자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거기에 만약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이나 기물을 만들어낸다면 삼대가 놀고먹을 수 있는 재물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제국 전역에서 많은 이들이 발견과 발명, 연구에 매달렸다. 심지어, 신지에서도 제국의 문물과 기술을 접한 원주민들이 정음과 제국어, 기초 학문을 익히자마자 바로 연구에 매달리는 경우도 왕왕 나왔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제국의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지식재산권’을 확실하게 보장해주면서 소소한 발명과 발견이라도 지식재산으로 등록하면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만약 그 발견과 발명이 조금이라도 유용한 것이라면 지식재산권을 통해 경제적인 이득을 볼 수 있었다.
때문에, 연구소와 학원, 51구역과 52구역 소속이 아니더라도 연구와 발명에 매진하는 이들이 계속 나오는 것이었다. ‘비싼 밥 먹고 헛짓거리나 하면서 허송세월하는 작자’가 아니라 ‘그래도 자기 밥벌이는 하는 인간’으로 대접받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훗날 역사가들 사이에선 이 시기 제국에 관한 평가는 크게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대도약의 시대’였고, 다른 하나는 ‘광기의 시대’였다.
훗날의 기준으로 봤을 때, ‘이건 미친 짓이야!’라는 평가를 받는 도전들-예를 들어 북극항로 개척-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 * *
다빈치의 새로운 날틀과 새로운 동력기관이 계속 미진함을 보이면서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것도 반가워하는 이들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제국군, 특히, 자력비행비구를 운용하는 부대였다.
“물 걱정, 석탄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것이 어디냐!”
“물만 안 실어도 무게를 크게 줄일 수 있어!”
자력비행비구를 운영할 때 가장 큰 문제가 물과 석탄 관리였다. 물이 필요 없는 동력기관과 석탄보다 화력이 좋아 조금만 실어도 되고, 비슷한 무게로 실으면 더 먼 활동 범위를 보장하는 석유는 자력비행비구를 위한 최고의 선택이었다. 덕분에, 제국군과 국방부는 바로 현에게 달려갔다.
“신형 동력기관 사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현도 합당하다 여겼기에 바로 재가했고, 다빈치와 공 야장 패거리는 제국군이 요구한 성능에 맞춰 신형 동력기관 개발에 들어갔다. 다빈치와 공 야장 패거리에게도 이는 나쁜 일이 아니었다. 신형 동력기관의 연구를 계속해서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태상황께서 봐주신다고 하셨어도 부담이 컸는데, 좋은 기회야!”
이렇게 해서 새로운 동력기관을 장비한 자력비행비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운 동력기관을 장착한 자력비행비구는 기존의 것보다 더욱 좋은 성능을 보여줬다.
좀 더 높이 올라갔고, 좀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특히나 대량의 물을 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늘어난 여유만큼 병사를 더 태울 수 있었고, 이는 정찰을 좀 더 잘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가만, 가만……”
상황이 이렇게 되면 언제나 새로운 꼼수를 생각하는 이들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물을 싣는 공간에 물 대신에 화탄을 실으면 어떨까?’
“응?”
“어?”
“가만……”
새로운 발상을 접한 제국군의 간부들은 이를 곰곰이 따져보고는 눈을 빛냈다.
“이거 괜찮을 것 같은데?”
‘공중폭격’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이를 보고받은 향은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제가 한 거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