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Haired U.S. Army Marshal RAW novel - Chapter (210)
210_거인의 맥동 (4)
독일 전역은 광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개전 직후만 하더라도 절망과 불안으로 가득하던 독일 국민들은, 이제 누가 혹시 간첩으로 신고라도 할라 제 발이 저린 것처럼 거리로 뛰쳐나와 목 놓아 총통 각하의 영웅적인 대업을 찬양했다.
“지크 하일!”
“하일 히틀러! 하일 히틀러!!”
독일 역사에 이토록 빠르고 신속하게 유럽의 패권을 잡은 적이 있던가?
역시 총통께서, 위대한 지도자께서 틀릴 리가 없다. 그분은 진정 독일 민족을 구원하고자 내려온 메시아가 틀림없다!
이제 히틀러는 살아 있는 신이 되었고, 그 누구도 그분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설령 독일의 지배자라고 자부하는 융커들이라 할지라도.
“이게 어떻게 성공할 수 있지?”
“대체… 왜?”
독일 군부의 히틀러 반대파들은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 멍청한 상병 놈은 전쟁을 무슨 소설로 여기는지, 누가 봐도 명백히 군수물자가 부족한 데도 공격만을 외쳤다.
‘총통 각하. 현재 남은 물자로는 2주도 채 공세를 유지하기 힘듭니다.’
‘멍청한 녀석들! 우리가 2주 치밖에 없다면 영국과 프랑스는 1주일분도 채 없을 거라는 생각은 왜 못 하는 거야! 이 패배주의자들! 그러니까 너희가 지난 대전쟁에서 졌던 거야. 지금이다. 5년 동안 전쟁만을 준비했던 우리가 2주 치 남아 있다면, 겨우 1년도 준비하지 못한 저놈들은 얼마나 대단하겠나?’
총통은 펄펄 뛰었고, 군부의 친나치 인사들이 이 허황한 이야기에 영합하자 결국 서부 전선 공세가 확정되었다.
전투 진행은 실로 참담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 방면의 조공(助攻)은 적의 주의를 끌기 위해 며칠간 신나게 쏴재낀 후, 침묵해야 했다. 보유 탄약량이 정말 이젠 빠듯해졌으니까.
영혼까지 끌어모아 출격한 아르덴 숲의 주공이 승승장구하면서 승리를 예감했으나, 없는 포탄이 그런다고 튀어나오진 않는다.
그 결과,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항복하자마자 독일군은 군수물자 탈취에 열을 올려야 했다.
됭케르크에서 영국 주력군이 도망칠 때도 적당히 툭툭 치는 시늉만 하며 사실상 방관했다. 괜히 총공세니 뭐니 헛짓거리했다가 탄약 부족이라는 실상이 까발려지면 대참사가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겼다.
역사에 남을 대승리를 이뤄버렸다.
공갈꾼의 실적에 걸맞은 또 하나의 공갈포 승리였다.
이제 그들의 관심은 새로운 정복지로 향하고 있었다.
“올해는 더 이상의 군사행동이 어렵습니다, 각하.”
“영국과 프랑스가 어마어마한 물자를 방기하고 도망쳤다 하지 않았나?”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그걸 그대로 쓸 수는―”
“왜 못 쓰나! 무기도 그놈들 걸 그대로 쓰면 탄약을 쓸 수 있지 않나?”
히틀러는 노르웨이 공격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었다.
스웨덴에서 철을 공급받으려면 필연적으로 노르웨이가 필요하다. 같은 아리아인인 스칸디나비아를 독일 제국의 발밑에 두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등등.
“영국이 먼저 노르웨이를 치면 어쩐단 말인가!”
“저들은 됭케르크에서 모든 걸 버리고 몸만 내뺐습니다. 최소 몇 달간은 저들도 군사행동이 무리입니다. 곧 겨울이라는 점을 상기해 주십시오.”
“흐음… 어떻게 해야 영국을 무릎 꿇릴 수 있을지, 의견들 내보시오.”
“10만 정도의 육군만 브리튼섬에 상륙시킬 수 있다면―”
“그게 안 되니 이 고민을 하는 겁니다.”
해군도 공군도 모두 난색을 표했다.
껍데기뿐인 해군에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게 넌센스였고, 괴링 역시 떨떠름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육군이 노르웨이를 정복한다면, 유보트 기지를 설치해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영국을 고사(枯死)시킬 수 있습니다.”
“내년이나 내후년의 장기 계획이라는 전제하에서라면 육군도 협력할 의사가 있습니다.”
“이집트 정복은 어떻습니까? 수에즈를 끊는다면 영국의 식민지 중 캐나다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물류 이동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저 무능하고 아집만 가득 찬 이들과 달리, 이 아돌프 히틀러는 오직 기상천외한 발상과 불굴의 의지만으로 승리를 거머쥐어 왔다.
저들의 의견은 늘 그렇듯, 너무 빤하다. 영국인들도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 아닌가? 실제로 그놈들은 프랑스가 휴전 협정서에 묻힌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프랑스 함대를 공격하는 미친놈들인 것을.
됭케르크에서 자비를 베풀었는데도 불구하고, 영국인들은 항전을 선택했다.
처칠, 처칠이라? 하! 갈리폴리의 그 병신, 전쟁광을 총리에 앉힐 정도로 전쟁을 하고 싶다니. 그렇다면 이제 매를 들어야지.
참으로 기이하게도, 탄이 부족해서 섣불리 공격할 수 없었다는 현실은 히틀러의 머릿속에서 조용히 짬처리되고 어느새 ‘자비’로 번역되어 괴벨스의 입을 통해 전 세계에 흩뿌려지고 있었다.
기발한 발상.
전 세계에, 역사서에 영원히 남을 만한 위대한 행적.
“미국.”
“미국… 말씀이십니까?”
“미국이 곧 참전할 게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단어가 장내 중진들의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메리카를 괄시한 대가는 저번 대전쟁에서 뼈저리게 체험해야 했다. 그 끝없는 물량, 그 끝없는 병력!
“미국이 참전하기 전에 영국을 정복하거나, 아니면 평화 협상을 해 전쟁을 끝내거나, 무엇이든 해야 하는데! 태평하게 노르웨이니 수에즈니!”
말을 하다 보니 속에 열불이 차올랐다.
‘베를린으로 전차를 끌고 와서 네놈들의 머리통을 다 날려버릴 텐데. 그날만 기다리고 계십쇼, 이 싹수 노란 인간아.’
그 새끼.
그 빌어먹을 노란 유대인!
바다 건너편에서 날마다 전쟁을 선동하는 유대 자본가들의 충직한 개새끼.
그놈은 온다. 아리아인의 승리를 유대인들이 잠자코 볼 리가 없으니 반드시 온다.
그의 뒷목이 뻐근해질 무렵, 외무 장관 리벤트로프가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총통 각하. 미국의 참전을 억제할 가장 손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뭔가?”
“일본제국과의 동맹입니다. 이번에야말로 저들을 동맹으로 끌어들이시는 게 어떻습니까?”
독일과 일본의 교섭은 그야말로 외줄타기와도 같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바가 명백했고, 서로 달달한 과실은 따먹고 싶었지만 해주고 싶지는 않은 속내가 너무 빤한 협상.
하지만 지금이라면 서로의 의향이 맞아떨어지지 않을까?
유럽을 장악한 독일과 아시아의 맹주인 일본이 힘을 합하면, 양면전선이 두려운 미국이 섣불리 전쟁에 참여할까?
“좋아. 진행해 보게.”
“알겠습니다!”
“총통 각하. 미국인들이 염려된다면 제게 한 가지 방책이 있습니다.”
조용히 힘러가 입을 열자, 히틀러의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뭔가?”
“미국인들이 우리 독일의 경제에 농간을 부리고 있다는… 일종의 심증을 잡고 있는 건이 하나 있습니다.”
총통의 연이은 재촉에, 힘러가 자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 * *
1938년 11월에 열린 미합중국 상하원 선거는, 민주당의 역대급 패배로 결론 났다.
그 패배가 겨우 하원 50여 석에 상원 7석이라는 게 좀 그렇지만. 아직도 민주당의 패권 시대는 계속될 전망이다.
새롭게 의회가 단장을 마치자, 다가오는 전운을 느낀 이들은 곧장 새로운 법률 통과에 박차를 가했고.
“군대에 가라고?”
“이러라고 너네 뽑은 줄 아냐!!”
“히틀러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그럼 군대 가야지!”
정치인들은 원래 선거 때까지만 허리를 굽힐 뿐이다.
선거 끝났으면 다시 허리 쫙 펴고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통수를 까는 게 아주 습관이 되신 분들이거든.
[새 징병법, 의회 통과!] [21세부터 36세까지의 모든 미국인 남성, 병적 등록 의무화!]그렇지만 지금 내겐 가장 필요한 법안이다.
12개월짜리지만 어쨌거나 병사는 병사다. 17만 명짜리 삼류 열강의 군대가 아니라, 천만 대군을 뽑아낼 천조국의 기상이 마침내 용틀임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유럽에서 대격변이 일어나자 그 여파는 곧장 아시아에도 닿았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한마디로 베트남과 라오스 일대에 일본군이 들어가 그대로 눌러앉은 것이다.
이렇게 장개석의 생명과도 같던 젖줄이 또 하나 잘려나갔고, 이제 정말 저 맹획의 땅 운남성에 뚫어놓은 버마 로드 정도가 유일한 탯줄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곧장 미국에도 피드백되었다.
“필리핀 턱 끝에 칼이 들어왔소!”
“우리 군은 필리핀을 지킬 생각이 있는 거요, 없는 거요?!”
중국 해안, 대만, 일본 위임통치령인 태평양의 여러 섬, 이제 거기에 베트남까지.
필리핀은 사실상 포위되었다.
이제 장님이 아니고서야 일본의 위협이 눈덩이처럼 커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고, 그제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렇게 압박을 받자 루즈벨트 행정부는 일본에 경고를 날리길 원했고, 그중에선 각종 물자 수출 금지라거나 중국인들을 돕기 위한 의용군 모집 등 다양한 옵션들이 있었다.
그중 저 ‘의용군’은 또 나랑 엮일 게 있다. 당장 우리 집안 돈으로 운영되던 학교 중에서는 비행학교도 있었으니.
파일럿 인력을 내놓으면 좋겠다는 뉘앙스의 이야기가 내게도 흘러들어오긴 했는데… 싫다. 는 나도 알지만, 귀중한 파일럿 맨파워를 중국에 꼴아박을 순 없다. 태평양 전쟁이면 몰라도.
이제 슬슬 벌여놓은 일들을 좀 정리해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나는 어김없이 총장실로 향했다.
“총장님. 하나만 여쭤보겠습니다.”
“뭔가?”
“까라면 까고, 가라치라면 가라칩니다. 어차피 계획이라는 게 실전 들어가면 죄다 망가지는 물건 아닙니까.”
“그래서?”
알면서 왜 자꾸 되물으십니까.
제대로 만들어야 하는 거랑, 대강 높으신 분들 구경할 가라 문건이랑 구분은 해야지.
필리핀, 알래스카, 태평양, 미 본토, 그리고 아마… 영국.
미 육군항공대를 어디에 얼마나 배치하느냐. 이것이야말로 전쟁 발발 후 첫 1개월의 향방을 결정 지을 최우선 사항이었다.
이미 나는 내 밑의 충직한 노예들을 극한까지 갈아 가면서 5가지 시나리오 중 단 하나에만 몰빵하고 있었다.
‘영국은 결코 항복하지 않으며, 독일 해군은 강대해지지 않고, 일본은 적극적으로 침략 의사를 드러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을 향해 미 육군이 침공해 들어간다’는 시나리오.
말해서 무엇 하나. 바로 원 역사 그대로다. 다른 시나리오? 영국이 독일에 항복한다거나, 일본이 참는다거나 하는 시나리오를 내가 왜 날밤 새워가면서 작성해야 하지?
그리고, 마셜 역시 내 의견에 동의해주었다.
“지금 하던 대로만 하면 되겠군.”
“알겠습니다.”
문제는 역시 그거지. 원 역사대로 … 북아프리카 공략전부터 전개해야 할지, 아니면 빠르게 프랑스로 가서 서부 전선을 열어젖히느냐.
이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FDR이 결정해야 할 문제다.
나와 마셜은 이제 잡담을 하려 해도 일 이야기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는데 어쩌겠는가. 모든 것이 다 일감인 것을.
마셜의 부관에게서 커피 한 잔을 뜯어내 홀짝이며 잠시 빈둥대고 있자니 노예주님의 눈이 샐쭉해졌다.
“자네, 가서 일 안 하나?”
“커피는 다 마시고 가야지요. 아깝잖습니까.”
“그러든가.”
정말 있든 없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대뜸 라디오를 켜는 총장님이셨다. 저 병풍 아니거든요!
[―독일 정부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샌―프랑코 중유럽 지사장 까를로 콘티 씨가 경제사범으로 긴급 수배되었다고 합니다.]“푸우우우웁!!”
“괜찮으십니까 준장님?”
“휴, 휴지, 휴지. 아니 수건 좀.”
나와 부관이 혼비백산하는 사이에도, 라디오는 기세 좋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까를로 콘티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트레이딩 카드 게임 업체인 샌―프랑코 출판사의 지사장이었습니다. 그는 현재 사기, 횡령을 위시한 8가지 법령 위반으로 독일 사법당국의 수배를 받고 있습니다.] [독일 측 공식 발표에 따르면, 현재 조사 중인 본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 아닌 샌―프랑코 전사 차원에서의 범죄로 추정된다고―]정신 차리자.
수배라고 하면 아직 잡힌 건 아니다. 그리고 잘 들어보면 도대체 뭘 했다는지, 왜 수배가 떨어진 건지에 대해선 말을 돌리고 있다.
[지금 독일 정부에서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반독일 주전론자인 유진 킴이 자신의 회사를 이용해 독일 경제에 사보타주를 가했다는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아직 정확한 전말을 공개한 것이 아니라 무어라 말씀드리긴 참으로 어렵습니다만, 장난감 만드는 회사가 무슨 수로 경제범죄를 일으킨다는 것인지―]그래. 바로 그거야. 잘하고 있어.
히틀러 이 새끼, 어지간히 쫄리나 보네. 샌―프랑코 그거 압류하라고 해라. 딱지가 그렇게 탐나면 그냥 가져가라고. 나중에 베를린 가서 돌려받으면 되니까.
그리고 얼마 후.
[충격적인 대사기극! 피라미드 컴퍼니의 실체!] [서민의 피와 땀, 사기꾼의 손으로!] [미국의 경제 공격? 전쟁의 서막인가?!]“킴 장군님, 이번 일에 대한 해명을 부탁드립니다!”
“샌―프랑코 지사장이 일으킨 사기극에 대해서 한 말씀을―”
“여러분. 다들 아시다시피 저는 회사와 일절 관련 없는 군인에 불과합니다. 회사의 의견이 궁금하시다면 제 동생에게 인터뷰를 신청하시지요.”
“장군님! 장군!!”
내 업무는 마비되었고, 나는 기자들을 피해 긴급히 휴가를 써야 했다.
당혹스럽긴 했지만, 유럽에서 폰지 그놈이 무슨 일을 하다 덜미가 잡혔는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어떻습니까, 국장님.”
“그 사기꾼 자식이… 월척을 건졌소.”
에드거 후버는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했지만, 오늘따라 손이 영 말을 안 듣는 모양이었다.
그는 결국 포기하고는 내게 사진 몇 장을 내밀었다.
“이런 걸 건졌으니 나치 새끼들이 지랄발광을 다 떨지.”
악마도 진저리를 칠 학살의 현장.
그토록 찾던 명분이 우리의 손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