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Haired U.S. Army Marshal RAW novel - Chapter (242)
242_여우사냥 (3)
“영국 제8군이 엘 아게일라에서 수비대와 교전 중입니다.”
나는 최대한 덤덤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수비대는 롬멜이 두고 간 88mm 대전차포 위주로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였으며, 전차 또한 제법 많은 수를 보유하고 있다 합니다.”
“튀니지까지 끌고 가기엔 상태가 안 좋은 차량은 아마 다 두고 갔겠지요.”
“그런 듯합니다.”
엘 아게일라 쪽 전술지도의 한쪽은 빗금으로 채색되어 있다. 기동력이 딸리는 쪽이 기동력 앞서는 쪽을 막을 방법이라곤 저것뿐이긴 하지.
“적은 이렇게 대규모 지뢰지대를 만들어 아군의 기동을 차단하였고, 몽고메리 장군은 현재 보유한 야포를 총동원해 해당 지뢰지대를 청소 중입니다. 조만간 진격이 재개될 것으로―”
“흐으음.”
나는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지도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 2분 정도 그렇게 팔짱을 끼고 지도만 보고 있자, 영국인들도 똥줄이 타는 듯했다.
“사령관님.”
“예.”
“제8군은 금방 진격할 수 있을 겁니다.”
“지뢰지대 개척이 끝나면 또 약간의 부대를 남겨놓고 퇴각하고, 또 저지당하면 또 멈춰 서고. 그럴 것 같은데.”
때로는 침묵이 대답이 될 수도 있는 법.
내가 고개를 슬쩍 돌려 그들을 빤히 보자, 영국인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제8군에 다시 한번 분명히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불필요한 인명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꼼꼼하게 공격하겠다면서요? 여기서 제 명의로 공세를 독촉하면 내가 개새끼 되는 거 아닌가, 지금?”
“해롤드 알렉산더 장군이 대영제국 왕립 육군의 명예를 걸겠다고 하셨습니다. 트리폴리 상륙 계획을 중단해주시고 저희 영국군을 한번 믿어주시지요.”
나는 패튼을 투입할지 말지 잠시 고민했다. 어지간하면 쓰고 싶진 않단 말야, 나도.
“엘 아게일라 말고, 트리폴리의 방어 병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예.”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합중국은 유럽 직공을 원했지만, 대승적인 전략을 위해 아프리카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와 수에즈가 함락당하면 좆되는 건 영국이지, 사실 우리가 아니잖아?
그런데 어쨌거나 우린 이 사막에서 모래를 퍼먹고 있다. 연합군의 빠른 승리를 위해.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미 영국 제8군은 제대로 된 싸움도 하지 않고 롬멜의 퇴각을 방조했습니다.”
“방조라고 하기에는―”
“자꾸 말꼬리 그렇게 물고 늘어지실 겁니까?”
내가 일갈하자 저들도 입을 닥쳤다. 솔직히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 동맹 앞에서 자국군의 개짓거리 실드 치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엘 아게일라, 그리고 트리폴리 공세조차 늦어진다면… 저는 본국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타국군의 인사 문제는 민감한 건이니 제가 차마 말씀드리기 무엇하군요. 하지만 이번만입니다. 다음은 없습니다.”
그땐 민감한 몬티의 몸뚱이를 과녁판 삼아 내 상아 그립 권총이 불을 뿜을 거다. 더 이상 내 부하들이 개죽음당하는 꼬라지는 못 참아 넘긴다.
저 해적 놈들에게 나의 인내심과 자제력을 한가득 발휘해 좋게좋게 말로 한 후, 나는 또…….
“이 나쁜 자식!”
갑자기 다가온 누군가에게 멱살을 잡혔다. 히틀러가 결국 암살자를?
하지만 상대는 콧수염 숭배자가 아니었다.
“앗, 사령관 대리님 아니십니까!”
“이러려고 데려왔냐! 이러려고 데려왔어?”
“응. 당연하, 켁! 켁켁!!”
제임스는 내 멱살을 붙든 채 짤랑짤랑 흔들었다. 흔들어도 동전 안 떨어진다 이 자식아. 팔 힘은 또 왜 이렇게 좋은지 한 번 흔들 때마다 월미도 디스코팡팡처럼 온몸이 요동친다. 요즘 내 멱살이 떠오르는 SNS 맛집이라도 되는 건가? 왜들 이렇게 내 멱살을 못 잡아서 안달이야.
“자자, 진정하고―”
“내가 팔자에도 없이 참모장 하면서 무슨 고생을 했는데! 다짜고짜 사령관 대행 역을 맡기면 참 일이 잘도 돌아가겠다, 그지?! 응?”
이제 슬슬 날 놔주면 좋겠지만, 이미 밴플리트는 사람이 아니라 서리바람 설인이 되길 택한 모양이었다.
남들은 이런 엄청난 기회를 받으면 얼른 납죽 엎드려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를 연창하며 내게 충성 맹세라도 했으련만, 내 친구라는 놈들은 어째 하나같이 은혜를 입어도 원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네. 그 자리에 드럼이 있었어 봐. 지금쯤 어디 알제에서 근사한 돔 페리뇽이라도 하나 챙겨서 갖다 바쳤지.
밴플리트는 내 예상대로 사령관 대리직을 맡자마자 곧장 훨훨 날아다녔고, 내가 처음 기대했던 대로 대화력전을 위시해 가장 필요했던 일들을 딱딱 처리해줬다.
“어쨌거나 잘했으면 됐지 뭐.”
“뚫린 게 입이라고…….”
“그래서, 이제 지휘관 해야지?”
이 녀석도 전방 내보내서 좀 굴려야겠다.
그 말을 듣자마자 얼른 멱살을 놔주는 제임스였다. 이 속물 같은 놈이 진짜.
* * *
에르빈 롬멜의 상징과도 같은 차량, ‘매머드’는 비제르테를 향해 북상하고 있었다.
“제군들, 이제 결전의 시간이 오고 있다.”
총통 각하께서는 아틀라스산맥에서 적군을 격파한 후 계속 북진하여 미 육군 제2군단의 후미를 잡고 대포위전을 벌인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하지만 바로 그 아틀라스산맥에 직접 날아가 지형과 전황을 두 눈으로 확인한 롬멜이 보았을 때, 총통의 전략은 현지 사정과 영 맞지 않았다.
아틀라스산맥은 대규모 기갑부대 기동에 전혀 알맞지 않다.
아무리 독일의 전차군단이 아르덴 고원을 돌파해 전설적인 프랑스 침공을 성공시켰다지만, 아르덴 숲의 듬성듬성한 나무들을 지나다니며 달리는 것과 돌과 바위로 이루어진 그 험준한 산맥을 돌파하는 건 전혀 다른 난이도의 문제였다.
그리고 만에 하나 천우신조로 적을 밀어내고 산맥을 내려간다 쳐도, 보급은 어찌할 텐가?
튀니스에서 보급 물자를 실은 트럭이 남서쪽으로 달려 산맥을 건너 롬멜의 부대에 식량과 탄약을 전달한다? 이미 보급 문제로 몇 번이고 치를 떨었던 롬멜이 보았을 때 이는 도저히 가능할 법해 보이지가 않았다.
또 하나 더.
직선거리로 1,400킬로미터.
도로상으로는 약 1,800킬로미터.
눈물을 머금고 토브룩에서부터 그 기나긴 거리를 육로로 퇴각하며, 바퀴 달린 물건에 태우지 못한 병력은 전부 중도에 낙오해야만 했다.
트럭 한 대가 연기를 내뿜으며 사막에 멈춰 설 때마다 병력이 야금야금 줄어든다.
전차 한 대가 기능 고장을 일으킬 때마다 전차병들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며 제 전차를 고철로 만들고 떠나야만 했다.
트리폴리가 가진 전략적 중요성과 외교적인 사정 때문에, 트리폴리를 수비할 병력 또한 어쩔 수 없이 할애해야만 했다.
그 결과, 튀니지에 당도한 병력은 사실상 기갑병력이 거의 전부였다.
귀중한 포병 전력을 대부분 상실한 만큼, 그 어떤 곳보다 포병의 위력이 절실한 산맥에서의 싸움은 재미를 보기 어렵다는 것이 롬멜의 판단이었다.
“적 또한 틀림없이 우리를 포위하길 원하고 있을 터. 겨울이 오기 전에 튀니지에서 전투를 끝내고 싶을 게 분명하다.”
“그렇습니다.”
“우기가 오면 수비가 더욱 수월해지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보급이 지속되리란 가정하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아군 유보트가 아크 로열을, 이탈리아 잠수함이 이글을 각각 격침시키면서 희미하나마 기회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이야말로 일시적으로 보급이 가능하며, 공중 우위를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
“루프트바페가 조만간 증파된다. 그동안 하늘은 일방적으로 적들의 것이었지만, 당분간은 우리도 눈먼 폭탄에 맞을 일이 줄어든다.”
토텐코프의 처참한 패배 소식은 그 또한 들었다.
하지만 롬멜은 전투 보고를 확인한 후 확신할 수 있었다.
해볼 만하다!
“보급에 고통받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다. 알제에서 800킬로미터, 그 기나긴 거리를 한 가닥 단선도로에 의지해야 하는 저들도 한계에 봉착해 있다.”
그 엄청난 포격.
숨도 못 쉬고 얻어터진 토텐코프 입장에선 그야말로 날벼락이겠지만, 미군이 없는 도로를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 능력이 없는 이상 그 어마어마한 탄약 소모는 고스란히 보급 압박으로 이어진다.
특히 산맥으로 오고 있는 미군 한 갈래와 비제르테로 오고 있는 미군이 같은 도로를 써야 한다는 것 또한 독일군에겐 크나큰 호재.
“우리는 이대로 비제르테 수비대와 합류한다.”
머릿수 하나는 많은 이탈리아군을 보병대로 쓰고, 아프리카에서 전설을 써내린 이 기갑부대가 창끝이 된다.
단 한 번, 정면에서 격돌해 적의 예봉을 꺾으면 된다.
토텐코프는 실패했지만, 적도 두 번째 공세까진 준비하지 못했을 터.
“독일의 아들들이여! 누가 최고의 기갑부대인지 결판을 낼 때가 왔다! 저 인간백정 같은 친위대가 독일을 대표할 수 있겠나?”
“아닙니다!!”
“우리는 무수한 영국군을 격파하고 영광을 손에 쥐었다! 이제 미군을 격파하고 우리의 이름을 역사에 영원토록 남길 시간이 왔다!”
수백 수천 대의 엔진이 내뿜는 굉음에 롬멜의 목소리는 파묻힐 만도 하련만, 병사들의 귀엔 그 어떤 나팔소리보다도 뚜렷하게 그의 말이 들리고 있었다.
항상 승리만을 가져다준 장군.
적어도 그를 따라가는 이상, 그 끝에 영광이 있으리란 사실을 의심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토브룩?
영국인들은 결과적으로 항상 패배에 패배만을 거듭했다.
무능한 이탈리아인들이 후방 관리 하나 제대로 못 해 그들이 돌아왔을 뿐, 미군을 두들겨 패준 뒤 돌아가면 이번에야말로 토브룩에 하켄크로이츠를 휘날릴 수 있으리라.
“폭풍우가 불어도,
모래바람이 휘날려도,
태양이 우릴 향해 웃어도,
불타듯 뜨거운 대낮에도,
서릿발 내리는 시린 밤에도,
먼지투성이 얼굴을 하고도! 우리는! 행복하다! 우리의 전차는 폭풍 속에서 돌진한다!!”
롬멜과 병사들의 확신에 한 손 거들기라도 하듯, 하늘에서도 요란한 엔진 소리가 들리더니 루프트바페의 전투기 편대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얼마 만에 받는 아군의 공중 지원이란 말인가?
“우리의 목표는 미 육군 제2군단! 전군, 전진!”
이제 승리를 위한 기나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왔다.
* * *
급한 일을 처리한 후 비행기를 타고 내가 날아간 곳은 하지가 있는 동부 태스크 포스 사령부였다.
원래 작계대로라면 진작 카세린 계곡 돌파를 시도했겠지만, 예상 밖으로 토텐코프가 빨리 뛰쳐나오고 놈들을 격파하면서 하지가 굳이 무리해서 산맥을 넘을 필요성도 꽤 많이 줄어들었거든.
하지만.
“아군 정찰기의 보고로는 롬멜의 주력부대가 비제르테로 향하고 있다 합니다.”
“해당 부대에 롬멜의 매머드가 앞장서고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롬멜은 여기 있다고 하지 않았나?”
“기만전술입니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은폐하고 있는 듯합니다.”
“자자, 조용.”
롬멜의 이름값이란 정말 짜증 나는구만.
나는 하지의 똘마니들에게 다시 한번 정중하게 내 의사를 표현했다.
“롬멜이 있든 말든, 그런 거에 하나하나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 결국 양쪽 모두 격파하면 될 일이니까.”
아틀라스산맥의 지형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기갑부대를 비제르테로 보낸다는 판단은 납득할 만하다. 하지만 그래도 전차는 전차인데, 소수 정도는 보낼 법도 한데.
비제르테에서 다시 한번 정면충돌한다? 모든 걸 걸고?
“하지.”
“예, 사령관님.”
“동부 태스크 포스가 전력을 다해 산맥을 돌파하고, 튀니지 일대의 대포위망을 구성할 수 있겠나?”
하지의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롬멜의 뒷덜미를 저희가 잡으란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가능하겠나?”
여우 가죽 벗기겠다고 큰소리쳤던 하지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목소릴 높였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놈의 뒤통수에 짱돌을 찍겠습니다. 걱정 마시지요.”
“좋아. 내일 0400부로 카세린을 치자고.”
롬멜과의 마지막 싸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