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Haired U.S. Army Marshal RAW novel - Chapter (42)
42_캉브레 (3)
“오늘 하루만 여기서 숙영하고, 날이 밝는 대로 출발합시다.”
“야음을 틈타 빠져나가는 게 더 낫지 않나?”
“어차피 전차와 동행하면 다 들립니다. 차라리 시야가 트여 있는 주간이 낫지요.”
“그도 그렇군.”
11공병연대는 애초에 전투부대가 아니다.
안 그래도 돈 없는 거지새끼 부대인 미군이다. 비전투병에게 개인화기를 쥐여줄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지는 않다.
이들의 무장이라고는 곡괭이와 망치가 전부였다. 판타지 이세계의 드워프 부대도 이것보단 더 든든하게 무장했겠다. 돌아버리겠네.
“다른 건 더 없습니까?”
“그대들이 왔으니, 우선 오늘 밤을 버틸 정도로는 마을을 요새화할까 하네. 자네 의견은 어떤가?”
“여유가 되신다면 당연히 하는 게 좋겠죠. 무리하지만 마십쇼.”
“흠··· 전차 몇 대를 빌릴 수 있겠나? 역시 우리끼리만 움직이긴 부담이 된단 말이지. 병사들의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서는 전차가 곁에 있어야 할 듯하네.”
“그러시지요.”
약간이라도 기능 이상이 있는 전차, 많이 얻어맞아 장갑에 문제가 있는 전차는 모조리 폐기. 배때기를 갈라 멀쩡한 부품을 수습하고 다른 전차들에 박아 넣었다.
구난전차는 거추장스러운 크레인을 떼어버리고 내친김에 상체 장갑도 뜯어내 부상자 후송용으로 쓰기로 했다. 물론 전혀 쾌적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들것에 실어서 탈출할 순 없잖은가.
1,400명의 민간인을 데리고 적에게 포위된 전장을 탈출해 후방으로 튀어야 하는 판국이니, 한 명이라도 더 태워서 가야 한다.
이렇게 추려낸 전투용 전차는 총 13대.
사실상 이제 전차대대라고 부를 수도 없다. 전차중대지 이건.
힘차게 펄럭이는 성조기에 이끌린 듯, 저 멀리서부터 영국군 보병대가 터덜터덜 걸어왔다.
때로는 중대 단위로, 어떨 때는 소대 단위로, 심지어 하나나 둘이서 엉망이 된 모습으로 마을에 들어오는 모습은 하나의 비극이었다.
“대체 저 앞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겐가?”
“끝장입니다!”
한 영국군 병사가 피를 토하듯 외쳤다.
“독일군이, 독일군이 끝도 없이 짓쳐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점령한 곳은 개활지라 적을 저지할 그 어떠한 수단도 없는데, 우리의 머리 위로는 쉴 새 없이 포격이 떨어졌습니다. 상부와의 연락은 닿지도 않고- 그, 그 포격! 그 가스! 히, 히이익!!”
“알겠네. 얼른 쉬게. 오늘 밤만 여기서 머무르고 곧장 철수할 거야.”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숨! 숨을 쉬면 안 돼! 숨 참아야 해! 엄마! 엄마!! 아아악!!”
“이 친구! 이 친구 좀 붙들어 봐!”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컸던 걸까.
의무병에게 붙들려 끌려가는 그를 바라보면서도, 입 안의 씁쓸함이 가시질 않았다.
“예상보다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듯한데.”
“그렇다고 야간에 움직일 순 없습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수습한 것 같은 리슬 소장이 다가오길래, 나는 경례를 하며 대답했다.
“현재 전황은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린 어떠한 연락도 받을 수 없고, 사령부 역시 우리의 위치를 파악 못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겠지··· 빌어먹을.”
얼마 전까진 종종 보이던 영국군 항공기의 모습도 사라진 지 오래다. 하늘은 이제 독일의 것이다.
이미 독일군은 전쟁기계로 완벽하게 각성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무수한 시체 위에서 전훈을 완성하는 단계라면, 삼면전선의 틈바구니에서 러시아 제국과 이탈리아라는 두 열강을 뭉개버린 독일제국은 대체 얼마나 많은 교훈을 얻었을까?
단순히 독가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영국군이 그냥 독가스를 쏘는 것에 그친다면, 독일제 화학전은 두 배로 악랄했다.
이제 독일놈들은 첫 가스 공격엔 독가스 대신 구토유발제를 쐈다. 가스에 대비해 서둘러 방독면을 쓴 영국군은 방독면을 뚫고 들어오는 구토유발제를 이기지 못하고 구역질을 하며 방독면을 벗었다. 그러고 있노라면 두 번째로 살인가스가 그들을 감싸 안으며 죽음으로 인도했다.
돌격대도 매한가지.
지금 전장 곳곳을 쏘다니는 스톰트루퍼 부대는 37mm 대전차포를 끌고 다니고, 수류탄을 한 뭉치 묶어 놓은 세트메뉴 집속수류탄을 집어 던지며, 일부 전차병들은 ‘놈들의 총탄이 장갑을 관통합니다!’라는 비명 섞인 보고를 올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길 수 있을까?
아니, 이길 수는 없지만 지지도 않겠다.
돌격대가 흩어져 있다는 말은, 그들 역시 상부와 연락할 수 없다는 이야기.
물론 이곳은 독일놈들이 몇 년간 점거했던 땅이고, 이 땅의 지리엔 당연히 놈들이 더 숙달되어 있을 터다.
하지만 보병과 기갑의 사이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고, 막아야 하는 적과 뚫어야 하는 우리의 처지 역시 큰 차이가 있다.
최대한 많이 살려서 내보낸다.
적의 격멸은 불가능하겠지만, 이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뚫어져라 작전도를 응시했다.
가장 유력한 퇴로를 찾아서.
미래 지식을 가진 김유진이 아닌,
병사들을 살려낼 유진 킴 소령이 되기 위해.
***
“수류탄!! 전방에 집속수류탄!”
“아아아악!!”
“9시 방향! 대전차포!”
“먼저 쏴! 제일 오른쪽의 3대! 좌측으로 기동하면서 대전차포 먼저 제압한다! 나머지는 거리 두면서 포격!”
다음 날 새벽.
우리는 부리나케 전차에 시동을 걸고 움직였다.
영국군 패잔병들까지 악착같이 수습해 약 2천.
기세 좋게 힌덴부르크 선의 첫 참호를 넘을 때와 비교하자면 처참한 몰골이 따로 없었다.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전차를 끌어모아 전방을 먼저 개척했다.
출신을 가리지 않고 가장 상태가 멀쩡하고, 전투 의지로 불타는 친구들을 끌어모아 전차 위에 태웠다. 속도가 더 느려졌지만 상관없다. 이렇게라도 해야 허무하게 마지막 전차가 끔살나는 일은 피할 수 있지.
몇 차례의 소규모 교전.
중간중간 매복해 발을 붙드는 스톰트루퍼들.
이 필사의 퇴각 끝에 우리를 기다리는 건, 처음 넘었던 바로 그 참호선이었고.
“씨발.”
그 참호 안엔 독일놈들이 도로 들어가있었다. 옘병할.
“저기 좆같은 제리들 보이나?”
“예!!”
“저 새끼들만 넘으면 집이다. 우린 산다.”
사실 뻥이다.
아마 저기를 넘어서도 독일군이 득실득실할 거다.
하지만 일단 희망이라도 팔아야 전투 의욕이 샘솟지 않겠나.
“단숨에 돌파한다. 가자!”
“KILL!!!”
그 패튼스러운 구호는 좀 빼주면 좋겠는데!
어차피 기름도 다 되어 간다. 저 참호선을 뚫으면 모든 전차를 버리고 도보로 튀어야 한다.
그러니 사정 봐줄 필요 없이, 이대로 돌격하면 된다!
“공겨어억!!”
콰앙!
“전방에 대전차포! 대전차포!!!”
“누구든 알아서 때려잡아! 일일이 내가 그것도 말해줘야 하나!”
“패튼 대위의 전차가 향하고 있습니다!”
“그럼 냅둬! 알아서 할 거야!”
다시 한번 참호에 진입.
들어갈 때와는 반대 방향이었기 때문에 참호의 방어력은 훨씬 약했다. 이까짓 거-
펑!!!
“뭐, 뭐야?!”
“수류탄입니다! 엔진 정지! 엔진이!”
“씨발, 뭐 해! 교육할 때 잤어?! 당장 쳐내려 씨발것들아!”
전차장의 대가리를 걷어찬 후 곧바로 해치에서 뛰쳐나갔다.
힘들다.
그동안 메고 다니기만 했던 그리스건의 감촉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엔진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더니 마침내 거센 불길을 내뿜었다.
“공격해! 씨발! 밀어붙여!”
깃발.
아직 내 손에 깃발은 남아 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거세게 깃발을 휘두른 후, 크게 심호흡하고 참호로 뛰쳐 들어갔다.
“Feind!! Feind eingehend!!”
“총알이나 먹어라 이 개새끼들아!”
이제 장교고 나발이고 없다. 참호 안에서는 계급빨 따위 없고 그 대신 총알 더 많은 새끼가 왕이다.
그리고 이제 유진 킴이 명하노니, 그리스건을 쥔 놈이 로마 황제다.
타타타타타!!
소총 한 발을 갓 발사하려 할 때, 그보다 먼저 그리스건이 놈들의 대가리에 뜨거운 주유를 마쳐줬다.
참호 곳곳에 전차가 냅다 대가리를 들이박고, 포성과 기관총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예상대로 놈들은 대전차전 준비를 제법 충실히 한 모양이지만, 무력화된 전차 곳곳에서 튀어나와 총알을 신속 배달해주는 전차병들까진 전혀 예상 못 한 모양이었다.
압도적 화력 우위.
내가 아득바득 기관단총을 개발하려고 용을 썼던 그 세월이 바로 지금 보답받고 있었다.
우리 장병들의 피 대신, 독일놈들의 시체가 쌓이는 것으로.
“다 쓸어! 탄 아끼고!”
다시 총격.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다.
“으아아아아!”
“죽엇! 씨발! 죽으라고!”
달려드는 제리 놈에게 다시 총알 드르륵. 넘어져서 울부짖는 독일 놈에겐 딱 한 발.
총알이 많지 않다. 점사 기능이 없으니 불편해 죽겠다. 아직 썰어야 할 독일 놈들이 저리 많은데.
텅 빈 탄창을 대강 갖다 버리고 새 탄창을 꽂으려니, 또 어디선가 총검이 날아왔다.
“이, 이런-”
개머리판에 한 대 맞으니 머리가 깨질 것만 같다. 이빨 날아갔나? 아니다. 멀쩡하다.
하지만 날아오는 군홧발은 피할 수 없었다.
퍼억!
시발. 이렇게 죽는 건가.
그 개고생의 결과가 이 참호에서 뒈지는 거라고?
그럴 리가-
타아앙!
“그러게 내 뭐라고 말했나. 권총 몇 자루 더 사놓으라고 했을 텐데?”
온몸이 피와 흙으로 흥건한 패튼이 끝내주는 상아색 권총을 쥔 채 다가왔다.
시발, 역시 패튼 선배가 최고야.
“한 자루 빌려주지. 이 좆같은 새끼들부터 다 죽이고 생각하자고.”
“아이고, 삭신이 쑤시네. 우리 대위님 덕택에 살았어!”
“여기만 살아 나가면 나도 소령이야. 소령 진이라고 불러! 하하!!”
“그럼 전 중령 진으로 불러주시죠.”
“그래! 맘껏 불러줄 테니 살아만 있으라고!!”
우리가 그렇게 태평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제2파가 참호에 도달했다.
“전부 쓸어내라!! 미합중국의 명예를 지켜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무시무시한 기세의 공병 아저씨들.
손에 든 곡괭이와 망치가 그 어느 때보다 살벌해 보인다.
그래. 저 아저씨들 그러고 보니 철도 노동자들이었지. 어지간한 경찰들 정도는 대가리 깨버리던 파업의 스페셜리스트들이다.
마침내 졸렬한 총질 대신 상남자의 육박전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깔리자, 참아왔던 근육질 노동자의 분노가 독일놈들의 대가리를 강타했다.
“이 좆만한 새끼들이 어디서 딱콩질이야!”
“아, 아으아아-”
“야, 니 무기 멋지다! 내놔 이 새꺄!”
적과 교전했는데 무장한 아군의 숫자가 늘어나는 기적.
고작 대대 단위에 불과했던 적들은 순식간에 물량 앞에서 물에 탄 각설탕처럼 녹아 없어졌다.
“더 걸을 수 있겠나?”
“시발, 허벅지에 한 발 맞은 것 같은데-”
“어이! 우리 귀하신 중령 진 나리 부축 좀 해줘봐!”
“후우. 아닙니다. 아직 걸을 순 있어요. 그보다, 우리 진군로는 어떻습니까? 더 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니.”
패튼이 목소리를 좍 깔고 대답했다.
“그게 무슨··· 설마 적이 오고 있습니까?”
“그것도 아냐.”
“그럼 무슨-”
“아군이다.”
“예?”
나는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참호 밖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내 눈앞에 보이는 건, 전혀 예상도 못 한 장면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수백, 수천의 군인들.
영국군이 아니다.
독일군도 아니다.
누가 봐도, 합중국의 도우보이(doughboy)들이 확실했다.
그런 내 눈에, 저 멀리서부터 빠르게 달려오는 차량 한 대가 보였다.
신나게 덜컹거리면서도 용케 뒤집히지 않고 달리던 차는, 다 으스러진 철조망 지대를 놀라운 스턴트로 통과해 내 바로 앞에 멈춰 섰다.
“많이 늦었나, 소령?”
“아니,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급하게 나온다고 1개 연대만 진출시켰네. 당장 여기서 빠져나가지. 독일놈들에게 덜미를 잡히면 우리까지 끝장이야.”
맥아더 대령은 턱끝으로 옆좌석을 가리켰다.
“뭐 하나? 얼른 안 타고.”
“아, 알겠습니다.”
내가 어안이 벙벙한 사이, 나를 태운 차는 순식간에 회두해 다시 맹렬히 후방으로 달려나갔다.
“하마터면 망할 뻔했군. 캉브레의 영웅이 불귀의 객이 될 뻔하다니.”
“대체, 여기에 42사단이 왜···?”
“내가 떼를 좀 썼지.”
아니, ‘떼’라는 한 마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아 이건. 애초에 42사단은 캉브레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던 부대도 아닐 텐데?
“사소한 야전 훈련이란 걸세. 전장의 공기를 맡아봤으니 저 친구들에게도 큰 경험치가 될 것 아닌가?”
이··· 또라이 새끼···.
대체 사령부에서 무슨 지랄을 했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내가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문 사이, 그는 언제 챙겨놨는지 붕대 한 뭉치를 꺼내 들었다.
“허벅지 이리 대게.”
“예?”
“총상이잖나. 탄이 박힌 것 같진 않아. 보자··· 스쳤군. 빨리 소독부터 안 하면 외다리가 될 텐데?”
존나 황송하네, 이거.
그 귀하디 귀한 맥아더 나리께서 몸소 군복을 찢고, 소독과 붕대질을 마치자마자 차가 멈춰 섰다.
“숨 크게 들이쉬고. 웃을 준비하게.”
“웃을 준비요?”
“당연하지. 이제부터 두 번째 전장일세.”
그가 먼저 문을 열고 나가더니, 내 방향의 문을 몸소 열어주었다.
“나오시게, 캉브레의 영웅!”
내가 얼떨떨하게 내리는 순간.
펑! 퍼버벙! 펑!!
포격보다 더 밝은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졌다.
“킴 소령님!”
“킴 대대장님! 캉브레의 영웅! 한마디 해주십시오!”
“처음으로 힌덴부르크 선을 돌파한 소감이 어떻습니까?!”
이··· 이 시발새끼.
고오맙다 정말.
어느새 맥아더가 내 곁에 오더니 나와 어깨동무를 했다. 누가 봐도 매력적인 스마일을 한가득 머금은 채.
“활짝 웃게. 치이즈.”
맥아더··· 당신은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