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Haired U.S. Army Marshal RAW novel - Chapter (469)
470_펜타곤의 현자 (5)
대한민국, 신의주.
유엔 평화유지군 사령부.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없다고! 빌어먹을 빨갱이 새끼들! 그 러시아 놈들이 뒤통수를 칠 줄도 몰랐다고?! 장난하나!”.
압록강 너머로 평화유지군을 완전히 내몰고자 했던 중공군은 패튼에게 처절한 피해를 입고 쫓겨나 북으로 물러났지만, 내가 자리를 비운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고 외치는 듯 더욱 병력수가 늘어난 몽골 의용군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전세는 다시 백중세가 되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소련이 연해주 방면에서부터 후방을 타격할지도 모른다는 언질을 듣기까지 했으니 천하의 패튼이라 한들 신나게 날뛸 수만은 없었다.
두만강과 연변 일대에 유사시 소련군의 기습에 대비한 수십만 병력이 묶여버린 채 몽골 의용군의 탈을 쓴 소련군과 접전을 벌이길 몇 차례.
야생의 짐승과도 같은 직감의 소유자에겐 이 전쟁의 양상이 슬슬 그려지고 있었다.
“졌군.”
“예?”
“이 전쟁은 졌다고.”
전투에서 이기면 무엇하나.
지난 전쟁에서 중국에 상륙했을 적.
중국인들은 그때도 무능하고 제대로 된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최소한 전사로서의 패기가 있었고 침략자를 몰아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하지만 지금 저 흐리멍텅한 동태 눈깔만 데굴데굴 굴리는 버러지들은 뭔가?
늘 하던 대로 “이 병신같은 놈들! 네놈들이 그러고도 불알 두 짝 달린 사내새끼들이냐?! 계집애들도 너희보단 낫겠다! 썩 바지 벗고 치마나 입어, 이 수치스러운 놈들아!” 하며 윽박도 질러보고 애국심에도 호소해봤지만, 천하의 패튼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음에도 중국인들의 투쟁 의지에 다시 불을 지피지는 못했다.
무수한 전장을 돌아다니고 온갖 나라의 인간군상들과 부대껴 왔다.
하지만 자신들의 나라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이리 너저분한 회전초처럼 굴러다니는 이자들을 정녕 전사라 불러야 한단 말인가? 온 나라에 이런 놈들만 가득한 꼬락서니를 보니 장개석이 오래 연명할 거란 기대가 싹 사라졌다.
패튼이 기대를 접고 하나라도 더 많은 빨갱이를 히틀러 곁에 보내주기로 결심한 것과 비슷한 시간.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없다고! 빌어먹을 빨갱이 새끼들! 그 러시아 놈들이 뒤통수를 칠 줄도 몰랐다고?! 장난하나!”
마치 텔레파시라도 주고받았는지, 남경 장개석의 입에서도 똑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천하의 패튼조차 질리게 해버린 국부군의 실상을, 장개석은 훨씬 더 명확하고 분명하게 깨달았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드럼은 이미 얼굴에 탈수기라도 돌렸는지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지만, 적어도 뇌까지 탈수되진 않았기에 해야 할 일은 하고 있었다.
“중공군이 빠른 속도로 남하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제 그 잘난 평화유지군이 개입할 수 있겠구려! 남경만큼은 지켜야 하지 않겠소? 당장 전투를 준비합시다. 남경이 떨어지면 모든 게 끝나니.”
“…….”
이미 몇 차례에 걸쳐서, 중화민국 정부와 유엔 평화유지군은 중국 공산당을 향해 ‘장강 도하만큼은 멈출 것’을 천명했지만 그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장강 이북의 국부군은 말 그대로 총체적 붕괴.
무수한 군벌들은 자신의 터전을 잃고 몸뚱이 하나만 든 채 도망치거나, 혹은 아예 공산당의 편을 들어 자신의 권세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모택동은 승부수를 던졌다.
만주 일대의 병력을 증강하긴커녕, 오히려 만주에서 정예 병력을 차출해 남진에 더욱 힘을 실은 것이다.
만주에서 중공군을 붙들기 위해 패튼까지 동원했지만, 끝없는 탄압과 초공 작전에서도 살아남아 공산당의 세를 유지하고 더욱 키운 모택동은 본질적으로 게릴라 ― 지는 싸움에 판돈을 붓는 유형은 절대 아니었다.
“소련이 추가적인 개입을 선언한 이상 만주에서 작전을 펼친다 하더라도 중공군을 붙드는 건 사실상 어려워졌습니다.”
“그대들이 호언장담했던 것과는 전혀 반대로 일이 풀리고 있구려?”
“…그래서, 신속히 수송 수단을 마련해 만주 일대의 유엔 평화유지군을 이곳 중국 본토로 수송할 계획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내달려 북경을 불태울 수 있는데도 병력을 줄여?
드럼은 처음에 자신이 뭔가 잘못 파악했나 생각했지만, 이내 깨달았다.
어차피 소련에 애걸하는 처지가 되어버렸으니, 아예 형님 빽에 몸을 맡기고 배를 째버린 것이다.
미친 것 같지만, 더없이 효율적이다.
뻔히 지옥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만주로 기어들어 간 장개석과 비교하자면 군사적 재능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 아닌가.
중공군의 칼끝은 두 갈래.
하나는 당연히 남경, 그리고 그 너머에 있을 항주와 상해를 목표로 한 공세.
그리고 다른 하나는 무한(武漢, 우한)을 지나 남창(南昌, 난창)을 향해 진격하려는 공세.
둘 중 하나라도 지면 장강 방어선이 무너지고 장개석 정권의 몰락은 확정.
드럼은 다가오는 불행을 피하려는 듯 한없이 느릿느릿하게 현재의 전황을 풀어서 설명하려 했으나.
“요점만 말해주시겠소? 시간 낭비가 심하군.”
“지킬 수 있는 곳은 남경과 무한 중 하나뿐입니다.”
무한이 함락되면 중화민국은 반으로 갈라지고, 사천 일대를 지킬 수 있다는 보장이 사라진다.
남경이 함락되면 중화민국의 패배가 그 누구에게나 뚜렷하게 각인된다.
이미 들어서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드럼의 입으로 확인사살까지 당한 장개석은 입술을 연신 잘근잘근 씹어댔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듯하오.”
“저희는 동맹으로서 중화민국 정부의 그 어떠한 결단이라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원자폭탄을 쓰겠소.”
드디어.
드디어.
원폭을 ‘대여’받은 그 날부터 당장이라도 북경에 이 폭탄을 투하해 모택동과 그 일당을 모조리 숯불구이로 만들겠다고 싱글벙글하던 장개석은 사라졌다.
안 된다, 안 된다, 절대 안 된다만 끝없이 들어 ‘그럼 도대체 되는 게 뭐냐’고 반문하던 장개석이었지만, 이제는 저 미국인들의 흉계를 이해했다.
저들은 바로 지금 이 대답을 기다려왔던 것이다.
장개석이 모든 짐과 책임을 짊어진 채, 장강 이남 자신의 영역에 스스로 폭탄을 투하할 순간만을.
“무한은 유엔에서도 선언한 경계선인 장강 이남이니 그대들이 꺼릴 것도 없을 것이오. 내 말 틀렸소?”
“아닙니다. 말씀에 틀린 바가 없습니다.”
“무한의 민간인들을 모조리 소개(疏開)하고 빨갱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엄중히 경고하겠소. 만약 그 반역도들이 기어이 무한에 발을 디딘다면… 벌을 내려야지.”
그의 눈이 살기와 독기로 범벅이 되어 번들거렸다.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결정했소. 그러니 남경만큼은 사수해 주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평화유지군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남경을 지키겠습니다.”
“원활한 지휘를 위해 정부는 광주(廣州, 광저우)로 옮기리다. 그리고 남경 수비에 필요한 모든 전권을 부여하겠소.”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기면 모택동 탓으로 돌릴 수 있고, 지면 어차피 천하를 잃는데 그깟 폭탄 하나의 업보가 추가될 따름.
손해 볼 건 그 어디에도 없었다.
* * *
1946년 2월.
인민해방군으로 그 정식 명칭을 바꾼 중공군이 마침내 장강 도하 작전에 돌입했다.
“중국 공산당은 지금 즉시 장강 이남으로 진출하려는 모든 군사 작전을 중단하고 국제연합의 중재에 응하시오!”
“미친놈들.”
제국주의자들의 위선과 기만은 참으로 끝이 없다.
국제연합? 자기들 멋대로 만든 무의미한 기관의 이름으로 중국 인민들의 숙원을 저지하려 들다니.
어떻게든 장개석 정권의 숨통만큼은 붙여 두려는 그 심사가 참으로 역겹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그 거적때기 같은 정권이 붕괴하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차라리 황하를 거꾸로 흐르게 만드는 게 더 쉽겠다.
하지만 그들의 위선과 기만과는 별개로, 그토록 무수한 악업을 쌓아 오면서도 여태껏 응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 이유는 당연히 그들의 무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장강 하류로 진입이 가능한 범주 내에서 온갖 군함들이 몰려와 맹렬한 함포 사격을 벌이며 도하 작전을 저지했고, 제대로 된 해군력과 공군력이 없는 중공군은 시체의 산을 쌓으면서도 아득바득 남경 공략에 박차를 가했다.
반면, 무한 방면으로 진출하려는 중공군은 잡졸 덩어리에 불과한 국부군의 미약한 노력을 모조리 때려잡으며 거침없이 남진을 감행했다.
“놈들이 무한을 텅 비웠습니다.”
“동지들의 보고에 따르면 무한 일대에 청야 전술을 벌이고 무자비하게 민간인들을 핍박해 산지사방으로 내몰았다고 합니다.”
“웃기는 짓거리군. 국민당 놈들은 지금이 혹시 20세기가 아니라 2세기라고 착각하고 있나?”
중국 인민들은 군대의 폭력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둔감해져 있었다.
청 말기에서부터 군벌의 난립, 중일전쟁, 내전에 이르기까지.
무기 든 놈들은 항상 민중을 휘둘렀고, 민중들은 얻어맞은 뒤 툭툭 털고 다시 생업으로 복귀하는 게 습관처럼 굳어졌다.
제아무리 중화민국 정부가 소개령을 내리고 강제 추방을 단행한다 한들, 그 명령을 이행할 국부군은 무능하거나 의욕이 없거나 부패했거나 ― 아니면 전부 다였다.
그리고 삶의 터전을 포기하고 꺼지라는 명령에 네 알겠습니다, 하고 짐을 꾸릴 중국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중공군의 손에 떨어지면 처지가 비참해질 이들을 뺀다면 말이다.
“와아아아아!!”
“인민해방군 만세!”
“중국 공산당 만세!!”
“인민의 해방자를 환영합니다!”
무수한 환영 인파들의 환호성 속에서, 이들 인민해방군은 위풍당당한 정복자의 자세를 취한 채 무한 시가지에 입성했다.
“무한을 무혈 점령했으니 우선 숨을 골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병사들을 며칠간 푹 쉬게 하고, 주민들의 협조를 받아 부족한 물자를 보충한다. 우리도 이제 슬슬―”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드디어 지긋지긋한 야전 생활에서 벗어나 지붕 아래에서 쉴 수 있다는 생각을 품을 무렵.
소련에서 은밀히 나온 관전무관단이 그들을 만류했다.
“틀림없이 지휘에 일절 간섭하지 않기로 했잖소?”
“그렇습니다. 어디까지나 조언을 드리고자 할 뿐입니다. 당에서 경고하기를 제국주의자들이 우월한 공군력을 활용해 대대적인 폭격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그깟 폭격은 여기까지 오는 와중에도 심심하면 당했던 일이오.”
“…그렇습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이 시내의 치안을 확보할 때까지, 저희들은 교외에서 지내겠습니다. 괜찮으시겠지요?”
촉이 좋지가 않다.
저놈들이 갑자기 왜 저런단 말인가.
“흠. 그렇다면 병사들의 피로가 풀리는 대로 공습에 대비하라는 명을 내리리다. 사령부 또한 무한 내의 반동분자들을 모두 처리할 때까지 교외에서 대기하도록 하겠소.”
“저희의 조언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며칠.
무한 시내가 피와 죽음으로 가득 차올랐다.
“이 반동분자를 인민의 이름으로 사형에 처한다!”
“매점매석을 일삼으며 굶주리는 동포들의 고혈을 짜먹은 악덕 상인을 사형에 처한다!”
“일제에 부역한 한간을 사형에 처한다!”
중공군 병사들은 눈치만 보며 삼삼오오 약탈을 자행했고, 윗대가리들은 윗대가리대로 무한의 통치권을 확고히 굳히기 위해 끝없는 인민재판을 벌였다.
이 또한 늘 있는 일이었다.
이 땅의 소시민들은 윗사람이 바뀔 때마다 벌어지는 일에도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다.
그렇지만.
구름을 뚫고 천천히 날아오는 거대한 폭격기들의 모습은 이들 무한 시민에게도 무척 낯선 모습이었다.
“저게 뭐지?”
“미군인가 봐. 비행기야.”
“정찰 나온 건가? 폭격은 아니겠지?”
“폭격을 하러 왔으면 저렇게 한 줌만 오는 게 아니라 떼지어서 날아왔겠지.”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잠시 저 하늘 꼭대기에서 무한을 내려다보던 폭격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고, 시민들 또한 생업을 위해 하늘 구경을 멈추고 저마다 뿔뿔이 흩어졌다.
1시간 뒤.
세 대의 폭격기가 다시 나타났다.
― 현지에 구름 없음. 날씨 매우 맑음. 약간의 바람 관측됨.
― 올 클리어.
― 더그아웃 준비 완료. 이상 무.
― 투하한다. 반복한다. 폭탄을 투하한다.
폭탄창이 덜컹 소리와 함께 열리고.
끔찍하리만치 무거운 신형 폭탄이 마침내 구멍을 통해 빠져나와 9천 미터의 거리를 약 44초간 활공했다.
“전원 선글라스 착용! 전속력으로 이탈한다!!”
“착용!!”
44시간 같은 44초가 흐른 뒤.
천지가 다시 창조되는 듯한 빛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