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76
청풍표국 최강식객 176화
176화. 한산사 별 밝은 밤에(3)
청풍표국이 전투에 휩싸여 있을 무렵, 소주 제일루의 최상층에는 한기가 몰아쳤다.
“언니…. 꼭 이럴 때 왔어야 했어?”
기영란이 언니, 기영선을 노려보며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원래라면 지금 팔선녀를 지원 보내어 청풍표국을 돕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
기영선의 등장으로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다.
“어머. 이걸 어쩌니. 나도 몰랐어. 와보니 그런 걸 어떡하겠니?”
기영선이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말했잖아. 이번 전투가 끝나고 이야기하자고.”
“미안하다, 동생아. 나도 바쁜 몸이라서. 그리고 어찌 보면 강남땅은 내 영역도 아니고, 혹시 모르잖니? 널 따르는 무리가 과잉 충성을 한답시고 날 공격할지도. 그러니 빨리 얘기 나누고 가려는 거란다.”
후릅.
천천히 차를 마시는 기영선의 모습이 얄미워 보였다.
자신이 준다는 차는 마다한 채 옆 무인이 가지고 있던 행랑에서 꺼낸 찻잔과 찻물, 그리고 찻잎.
철저히 다른 이를 신뢰하지 못하는 그녀였다.
하나뿐인 혈육임에도.
“후우. 그래. 그러니까 빨리 얘기 나누자고. 도대체 무슨 일이야? 어머니도 모자라 이제 나도 죽이려는 거야?”
기영선이 소매로 입을 가리며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호호호. 너도 그리 생각하고 있다니 유감이구나. 일전에 임 공자한테도 말했지만 난 전혀 그런 적이 없단다. 그건 그냥 일방적인 망상일 뿐이야.”
“거짓말! 제가 다 봤어요! 대공녀가 찻잔에 뭔가 타는걸!”
옆에 있던 일선녀가 분노를 토해내며 말하자, 기영선 옆에 서 있던 다섯 사내 중 한 명이 입가에 손을 갖다 댔다.
“쉿! 주군들이 얘기하는데 어딜 건방지게. 조용히 있게나.”
“이익!”
일선녀가 발끈하자 기영란이 손을 들어 제지시켰다.
“잠깐. 그게 무슨 말이야? 임 공자라니. 성아한테 무슨 짓이라도 한 건 아니겠지?”
“호호호. 아들처럼 여긴다더니 참으로 다정하게도 부르는구나. 하지만 동생아. 내 아무리 야망에 눈이 멀었다고 한들 눈앞의 상천십좌를 어찌해볼 생각은 하지 않는단다. 내가 미쳤니?”
살기를 띠던 눈을 누그러뜨린 기영란이 이마를 짚었다.
“그러니까 도대체 왜 왔냐고.”
다시 차를 홀짝거린 기영선이 그제야 얼굴을 굳혔다.
“동생아. 이 전쟁에서 손 떼라.”
“뭐…라고? 손을 떼라니?”
기영란이 눈을 치켜떴다.
“정파, 아니 백도 무림에 대한 지원을 끊으라고. 그냥 모른 척하란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언니 혈궁에 붙었어?”
“호호호호호. 얘가 말을 이상하게 하는구나. 우리가 언제 중원 애들 편이었다고 그러니? 우린 어디까지나 새외 흑도였어. 모르니?”
기영선의 조소를 기영란이 말없이 쳐다봤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과거 1, 2차 변황대전의 주역은 바로 천마, 혈마, 귀마였다.
그리고 그 귀마가 세운 것이 바로 환희궁.
환희궁의 뿌리는 새외 흑도, 아니 마교다.
아직도 수라궁, 혈궁, 환희궁 세 궁의 궁도 중 무인이 아닌 일반 궁도들은 자신들을 성화교도라고 하고 다닌다.
불을 숭배하는, 모든 악업을 불로써 정화한다는 종교.
중원인들이 자신들과 다른 종교를 싸잡아 마교라 칭했을 뿐 그들의 처음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힘과 피를 탐하는 무인들이 스며들면서 변질하였고, 수많은 피의 희생 속에서 탄생한 천마로 인해 일반 교도들까지 마교라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다.
그런 뿌리를 말하는 언니에게 할 말은 없었다.
단지,
“우린 이제 다른 길을 걸을 거야. 마교, 아니 종교란 딱지는 떼고, 하오문과 같은 정보 문파로 발돋움할 거고, 그 사이 중원의 밤거리를 장악할 거야. 정도 사도 아닌 정사지간의 정보문. 그게 내가 지향하는 바야.”
동생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기영선이 고개를 저었다.
“다시 한번 말할게. 손 떼. 굳이 혈궁을 지원하라고는 안 할게. 단지 네가 손을 떼고 가만히만 있으면 나중에 혈궁이 중원 무림을 정복했을 때 내가 잘 말해줄게. 그때가 되면 내가 강북을 다스리고, 너가 강남을 다스려. 그렇게 둘이서 각각 나눠서 네 말대로 중원의 밤거리를 먹자.”
“싫어.”
기영란의 단호한 대답에 기영선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제 중원의 백도에는 내가 아끼는 지인들이 있어. 차라리 혈궁과 같이 맞서 싸우겠어. 그게 내 대답이야.”
“하아…. 꼭 그래야겠니? 자매들 간에 꼭 피를 봐야겠어? 네가 이렇게 나오면 나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어.”
“꼭 그래야 한다면 나도 피하지는 않겠어.”
“으음….”
기영선이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주군. 처리할까요?”
옆에 서 있던 남자 호법이 담담하게 말했다.
“됐어. 국가들 사이에도 선전포고란 걸 한다지 않아? 우리도 갑자기 치고받고 할 수는 없지. 더더군다나 자매끼리. 오늘은 그냥 가자.”
기영선이 일어서며 동생을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봤다.
“동생아. 네가 선택한 거야. 나중에 후회하지 마.”
“내가 이 자리에 앉은 순간부터 아낙네 감성은 버렸거든. 걱정하지 마.”
“훗. 많이 컸구나. 남자한테 미쳐서 뛰쳐나갈 때랑은 많이 달라졌어.”
“어머니는 강하다고 하잖아? 아, 언니는 모르겠구나. 결혼을 안 해서.”
기영선의 얼굴이 굳었다.
“…가자.”
기영선이 찬바람을 쌩하니 휘날리며 밀실을 나서고 얼마 후.
“후우…. 갔어?”
“네. 기루를 빠져나간 것 같아요.”
“하아….”
그제야 어깨를 늘어뜨린 기영란이 손에 흥건한 땀을 닦아냈다.
“어땠어? 그 다섯 명의 호법들.”
“상당했어요. 저희 여덟 명이 다 붙어도 승리를 확신하지 못할 만큼.”
“원래 환희궁의 궁도들인가?”
“아마 대공녀가 비밀리에 키워온 무사들 같아요. 전 궁주님을 그렇게 해하지 않았다면 저들을 이용해 제대로 한판 붙었겠죠.”
“하아. 복잡하구나, 정말…. 역시 수장의 자리는 나에게 안 어울리는 것 같아.”
“약한 말씀 마세요. 충분히 잘하고 계시니까요.”
일선녀의 격려를 듣던 기영란이 고개를 퍼뜩 들었다.
“아, 청풍표국!”
그녀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
* * *
청풍표국의 수비대원들은 한껏 기세가 올랐다.
무적청풍, 최강표국을 연호하는 대원들의 외침에 다른 이들도 기세를 끌어올렸다.
청풍표국의 수비대원들은 황석환이 만든 호신갑의 효능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흥! 그러면 목을 베면 되지!”
구중천대의 조장 한 명이 조소를 날리며 표국 수비대원의 빈틈을 노려 목을 그었다.
그극!
“음?”
하지만 목이 날아가야 할 무사가 흐르는 피를 지혈하며 뒤로 물러섰다.
상처를 입긴 했지만 죽지는 않은 것이다.
바로 신의에 의해 만들어진 도검불침의 외공!
아직 그 정도 단계는 아니었지만, 전보다 훨씬 질기고 단단한 피부를 가지게 되었다.
황석환의 호신갑, 백운학의 외공 연성으로 그들은 이미 호신 기공을 한 겹 걸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마르지 않는 호신 기공을 말이다.
구중천대의 대주가 둘러보니 다른 대원들도 비슷한 일을 겪고 있었다.
“쳇!”
그가 혀를 차며 소리쳤다.
“검기를 쓸 수 있는 자들은 모두 검기를 쓰고, 일류 이상은 검에 기를 불어넣어라! 속전속결로 끝낸다.”
아무리 호신구를 차고 있어도, 피부가 지력도 검기를 쓰게 되면 막을 수 없다.
그의 빠른 대처에 살짝 조바심을 느끼던 창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니 부녀로 보이는 이들도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조장급 두 명과 붙었는데 제법 상대가 되고 있었다.
“하앗!”
두진호의 검기가 조장 한 명의 목을 가르고 들어갔다.
챙!
검을 튕긴 그가 두진호에게 쇄도했다.
퍽!
“음? 호신갑?”
검기를 튕겨내는 호신갑이라니!
두진호가 입고 있는 강호십대신병 현무신갑의 공능이었다.
급히 재차 검을 휘두르려 할 때였다.
피리링!
옆에서 두혜련이 날린 핏빛의 침 세례가 날아들었다.
“헉!”
그냥 부채를 휘저었을 뿐인데 날아든 응기 세례.
푸부부북!
응기로 된 침이 구중천 조장의 몸에 꽂혔고, 그 틈을 타 두진호의 검이 가슴을 갈랐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던 유천이 눈을 빛냈다.
“보통 물건이 아니군. 저건 아마도 혈뢰선일 것이다.”
검기나 도기, 또는 창기와 같은 기격(氣挌)은 응기(凝氣)의 영역이다.
기가 엉기기 시작하여 눈으로 현현되며, 기격상인(氣挌傷人), 즉 기로서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있는 경지.
보통, 기의 단계는 응기―위강―강기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절정의 고수들이나 쓸 수 있는 응기의 영역을 두혜련이 펼치고 있다.
사실 두혜련의 내공은 신의의 환단 덕택에 어느덧 반 갑자에 이르렀다.
내공으로는 충분히 절정을 바라볼 수 있었으나, 아직 깨달음이 부족해 일류에 머무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부족함을 혈뢰선이 메워 주고 있었다.
늘 전투에서 자신이 짐이 되는 걸 견딜 수 없던 두혜련은 혈뢰선을 얻은 이후 피눈물 나는 수련을 거쳤다.
그리고 환희궁의 비천귀령신공을 3성까지 익힐 수 있었다.
이젠 적절히 조절하면서 사용하면 꽤 오랫동안 혈침을 쏘아낼 수 있었다.
비천귀령신공의 대성인 36개의 비도는 다룰 수 없지만, 내공만 받쳐준다면 혈뢰선을 통해 능히 36개의 혈침을 쏘아 보낼 수 있다.
현무신갑을 입은 두진호와 혈뢰선을 휘두르는 두혜련의 합은 제법 괜찮았다.
하지만 구중천 무사들의 실력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촤악!
“크윽!”
어깨를 베고 지나가는 적의 칼날에 두진호가 신음을 흘렸다.
퍼버버벙!
“꺅!”
두진호를 구하려 달려드는 두혜련의 가슴을 두드리는 퇴격 연타!
두혜련이 그대로 날아가 정문 옆의 벽에 부딪혔다.
수많은 이들을 죽이며 올라온 그들의 독심과 살심을 감당하기엔 아직 두혜련의 독심은 여물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표국의 담장 위로 이제 솜털을 벗었음 직한 젊은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음? 저 애송이들은 또 뭐야?”
팔짱을 낀 채 수하들의 싸움을 보던 변천이 중얼거렸다.
그들은 청풍표국의 교룡대.
모두 손에 이상한 화살촉 같은 것들을 쥐고 있었다.
“척전?”
유천이 중얼거렸다.
척전(擲箭)은 일종의 손으로 던지는 화살이다.
화살촉을 길게 늘여 만든 것처럼 보이는 무기로, 강철로 만들거나 대나무나 나무로 된 몸체에 화살촉을 꽂아 던지기도 했다.
연습을 통해서 최대 50여 장까지도 투척할 수 있으니 어지간한 화살만큼 날아간다고 보면 된다.
무림에는 대규모 활의 사용이 금지되어 고안된 것인데, 그게 지금 나타난 것이다.
슈슈슈슛!
그들이 던진 척전이 구중천 무사들에게 날아갔다.
정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손으로 던지다 보니 빠른 투척이 가능했다.
다량의 척전이 빠르게 날아가자 척전에 하나둘 몸이 꿰이기 시작했다.
“큭!”
“이, 이게 뭐야!”
점점 구중천 무사들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맞고 난 빈틈을 수비대원들은 놓치지 않고 공격해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펑! 푸슈슈슛!
다시 교룡 대원들의 손에서 터진 송엽탄!
수십여 발의 강침이 발사되었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이들까지 속출했다.
이제 청풍표국도 임요성이 없이도 강하다는 걸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흥! 쓸모없는 것들! 다 물러서거라!”
창천이 노기를 띤 채 소리치자 구중천의 대원들이 뒤로 물러섰다.
그 잠깐 사이 죽은 이들이 벌써 이십여 명을 넘어갔다.
어디 한번 놀아보라는 심정으로 붙여본 수하들의 대결이었다.
괜히 여기서 전력을 깎아 먹을 필요는 없다.
“제법이구나! 지금까지 문파들과는 달리 이것저것 많이 준비했어. 하지만 거대한 힘 앞에서는 자잘한 노력은 무의미하다는 걸 보여주마!”
창천이 기를 응집하기 시작했고, 변천과 유천도 팔짱을 풀고 전투 준비를 시작했다.
긴장된 순간.
그때 청풍표국의 전각 위로 백운학과 위현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처음부터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신의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두진호가 부탁한 것이었다.
무사 대원들끼리 붙었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세 천주가 몸을 드러낸 이상 자신이라도 나서지 않으면 큰 피해를 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백운학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아무리 그라도 저기 있는 세 천주를 당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의 눈에 횃불을 든 한 떼의 인마가 보이기 시작했다.
“…시오!”
“음?”
뭔가 귓가를 거슬리는 소리에 창천이 귀를 쫑긋했다.
“멈추시오!”
이제야 제대로 울리는 외침.
“우리는 금의위 무사들이오! 당장 그대들의 행사를 멈추시오!”
금의위라는 말에 창천의 기세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게 무슨…?”
두두두두두두!
뒤를 돌아보니 격렬한 속도로 달려오는 이들이 보였다.
안력을 돋우어 살펴보니 과연 금의위 상징인 비어복을 입고 있는 무사를 필두로 그 뒤로 열 명 남짓한 무사들이 받치고 있었다.
“워! 워!”
푸히이잉!
말이 투레질하며 멈춰 섰다.
거센 숨소리를 내뿜는 말이 앞에 늘어섰고, 가장 앞에 있던 사내가 날 듯이 말에서 내렸다.
“나는 금의위 소기, 두원후라고 하오!”
푸른 옷감에 금실로 비어가 수놓아진 금의위 비어복을 입고 당당히 앞에 선 사내는 두원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