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649)
649화 나비효과 (4)
“네? 아하하하…….”
어물쩍 이렇게 웃어넘기고 있어도, 주성진은 칼날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설마…….’
자신 역시 도청 장치의 설치와 관련해서 들켰는지 고민이 되는 주성진.
사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주성진과 같은 인물을 자주 만난다.
자신이 단 한 번도 잘해 준 적이 없고, 못된 행동만 일삼았는데, 아쉬운 일이 생기면 부탁하러 오는 사람들 말이다.
그래놓고 거절당하면 화를 내는 부류.
주성진이 바로 이러했다.
하지만, 감히 윤기 앞에서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윤기가 마음만 먹는다면 신명그룹이 그야말로 박살 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번 일에 대해서 윤기가 직접적으로 손을 쓴 정황은 없었다.
따라서 윤기에게 부탁을 하러 온 것인데, 윤기의 반응이 이러니 괜히 제 발이 저리는 주성진.
하지만, 주성진의 추측처럼 윤기는 주성진이 도청 장치를 설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저, 지금 상황을 즐기기 위해 대놓고 언급하지 않을 뿐.
“요즘 신명그룹의 상황이 힘들다고 하던데, 그것 때문에 찾아오신 건가요?”
주성진의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윤기.
덕분에 주성진은 상대적으로 쉽게 윤기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할 수 있었다.
“그, 그렇습니다. 회장님, 정말 죄송스러운 말씀입니다만, 돈을 좀 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자는 톡톡히 쳐서 갚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어음만 막으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하는 주성진.
물론, 윤기는 당연히 거절했다.
에둘러서 말이다.
“갚으실 수 있나요?”
“네?”
“갚으실 수 있는지 궁금해서요. 이번에 불매운동이 꽤나 세게 잡혔던데, 줄어든 매출이 다시 회복될 것 같진 않아서요.”
“그, 그건…, 제, 제가 대국민 사과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결국, 주성진은 고개를 숙이기로 결정했다.
처음 회사에 문제가 없었을 때는 매우 당당했던 주성진.
하지만, 지금은 정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불을 끄지 않으면 몸 전체를 태울 상황.
따라서 주성진은 일단 자신이 사과하고, 아들 주영만을 교도소에 보내는 것으로 결정했다.
물론 주영만이 미친 듯이 반발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당장 그룹이 망할 판이었으니까.
‘어차피 난 아직 죽으려면 멀었어. 내가 죽을 때쯤 되면, 영만이 녀석이 전과 하나쯤 있다고 해도 그룹을 물려받는 데 별문제는 없겠지.’
그야말로 행복회로의 전형.
그래서 주성진이 지금 이렇게 윤기의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적에게도 얼마든지 머리를 숙일 수 있는 주성진.
윤기의 저택에 도청 장치를 설치할 정도로 공격적인 인물이었지만, 지금 이렇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참으로 표현하기 묘했다.
이것을 적에게도 고개를 숙일 수 있는 계략가로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모양새가 심히 빠지는 초라한 늙은이로 보아야 할까.
하지만, 주성진은 자신의 모습을 전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요?”
“네?”
뭔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윤기의 말에 바로 반문하는 주성진.
“대국민 사과를 해서 뭐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어깨를 으쓱이는 윤기.
실제로 지금 와서 대국민 사과를 한다 해도, 아들 주영만을 교도소에 보낸다고 해도, 불매운동이 사그라들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
당장 불매운동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 윤기였으니까 말이다.
물론, 주성진은 이를 꿈에도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다,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일단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운다면 어떻게든 해결될 겁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 애매한 말만 믿고 돈을 빌려줘야 한다는 얘기가 되겠군요?”
“네? 아니, 그게, 저…….”
사실, 빌려주려면 얼마든지 빌려줄 수 있다.
윤기한테는 넘치는 게 돈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윤기는 처음부터 빌려줄 생각 없이 주성진을 맞이했다.
‘그래도 자식을 교도소 보내기로 마음을 굳혔네?’
살짝 감탄하는 윤기.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브레이크를 밟아 줄 생각은 없었다.
지금 윤기가 계획하고 있는 것은 기업들의 연쇄 붕괴.
어차피 언젠가는 일어날 일.
지금 반드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왕 명분이 생긴 김에 국내 산업을 장악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신명그룹에 부도가 나게 된다면, 신명그룹과 자금이 엮여 있는 그룹들 역시 줄줄이 부도가 날 게 당연한 상황.
그러면, 와이케이 그룹은 부도난 그룹들의 직원들과 부동산, 특허 등을 고스란히 흡수하는 것이 이번 윤기의 계획이었다.
망한 회사를 사는 게 아니다.
오로지 인력과 특허, 그리고 부동산만 빨아먹는다.
따라서 지금 윤기에게 돈을 빌리러 온 주성진의 행동은 그야말로 부질없는 짓.
이를 모르는 주성진은 그야말로 필사적인 목소리로 윤기에게 애걸하고 있었다.
“회장님, 제가 다른 것은 몰라도 사업 감각은 뛰어난 놈입니다. 그러니 이번 한 번만 믿어 주십시오.”
“그러니까 그런 감각만으로는 믿을 수 없다니까요.”
그야말로 평행선을 달리는 윤기와 주성진의 말.
결국, 주성진은 윤기에게서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채, 터덜터덜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바닥에 넙죽 엎드려서 빌기까지 했던 주성진.
그럼에도 소득이 없었으니 얼마나 처참한 기분일까.
드디어 I.M.F가 오는 거냐?>
기업들의 연쇄 부도가 찾아오는지 묻는 최덕배의 말.
윤기는 소파에 앉은 상태로 왼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아닐 수도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윤기.
‘네, 플랜A대로라면 아마, I.M.F가 찾아오겠죠?’
플랜B는 뭔데?>
‘플랜A를 늦추는 발버둥이라고 할까요?’
실제로 상황은 플랜B로 흘러가고 있었다.
* * *
결국 신명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는 어음을 막지 못했다.
아예 1차 부도가 확정된 신명그룹의 계열사.
결국, 주성진은 다른 계열사의 돈을 빼내서 해당 계열사의 최종부도를 막았다.
2차 부도라는 건 사실 없다.
1차 부도가 나고, 24시간의 유예 기간 동안 어떻게든 해결하지 못할 경우 완전히 부도가 나는 것이 규칙.
그런데 다른 계열사에서 어떻게든 자금을 끌어왔으니, 1차 부도가 났던 계열사는 기적적으로 부도를 막았다.
하지만, 이것은 카드 돌려막기와 같았다.
무리하게 자금을 빼낸 결과, 다른 계열사 역시 1차 부도의 위험이 다가온 것이다.
더군다나 거국적인 불매운동이 진행 중인 신명그룹.
따라서 이렇게 돌려막기를 하다가 결국에는 망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였다.
양주병이 마구 바닥을 돌아다니고 있는 회장실의 모습.
양탄자에는 깨진 양주병이 흩뿌려져 있었고, 주영만이 흘린 피도 있었다.
부도라는 현실이 코앞에 다가오자, 4대 독자고 뭐고 주영만에게 손찌검을 한 주성진.
주영만 역시 갑자기 회사 명의로 타고 다니던 외제 차가 사라지고, 용돈으로 산 명품이 강제로 회수되고 하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자신은 천상의 존재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주영만.
그런데, 하루아침에 자신의 죗값을 치러야 하게 생겼다.
물론, 신명그룹이 기적적으로 회생한다고 해도 주영만은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만 한다.
신명그룹이 회생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에 주영만의 교도소가 거의 확정적인 분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건 중 하나일 뿐, 현재 신명그룹은 그룹 자체가 완전 붕괴될 위기.
그런데, 정말 의외의 곳에서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그것은 바로 다른 기업들의 자금 지원.
신명그룹이 부도날 경우 연쇄적으로 부도날 위기에 처한 그룹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신명그룹에 자금을 지원한 것이다.
물론, 그냥 지원이 아니었다.
사실상 주성진의 팔다리를 자르는 수준의 조건을 건 자금 지원.
하지만, 주성진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그룹이 부도날 판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상황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큰 차이는 없었다.
지금 당장 신명그룹이 망하고, 차근차근 다른 그룹이 연쇄적으로 망하는 것이 플랜A.
일단 신명그룹이 망하진 않지만, 몇 년 후에 한꺼번에 망하는 것이 플랜B.
지금 당장이야 카드 돌려막기 식으로 어떻게든 버틴다지만, 몇 년 후, 돌려막기가 안 된다면?
당연히 이번 일에 포함된 그룹이 한꺼번에 망하게 되겠지.
신명그룹이 이러한 확정된 역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번 일로 인해 박살 난 이미지를 복구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울까?
방향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역사는 플랜A가 아니라, 플랜B를 향해 수레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쩐지 좀 아쉬운데?>
“그래요?”
테라스에서 오렌지주스를 마시고 있는 윤기와 그 옆에서 입맛을 다시고 있는 최덕배.
I.M.F를 마음 편히 넘기는 대한민국을 보고 싶은 기분도 있었거든. 완전 사이다 아니냐?>
실제로 윤기의 역사에서는 I.M.F가 벌어진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I.M.F가 벌어지는 이유는 기업의 막대한 부채율.
아무 생각 없이 부채율 높은 상태로 방만 운영했다가 위기가 닥치니까 극복하지 못하고 연쇄적으로 기업들이 무너진 게 I.M.F다.
그런데, 만약 윤기의 역사에서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부도난다면?
“어차피 기업들의 부채율을 보면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에요. 맛있는 것을 마지막에 먹는다고 생각하면 어때요?”
뭐, 그렇긴 하지만 말이야.>
원래 역사에서 I.M.F 당시, 한국이 I.M.F한테서 받은 지원금은 550억 달러.
지금 윤기는 개인이 그 돈을 빌려주고도 남을 재산을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윤기는 I.M.F와 달리 한국에 비정규직을 요구하지도 않을 거고, 기타 서민 죽이려는 제도를 요구하지도 않을 거다.
더불어서 윤기는 망해가는 기업들을 살려 줄 생각도 없다.
기업은 망하게 놔두고, 망한 기업의 노동자, 그중에서도 일 제대로 하고 있던 사람들만 모아서 기름기 쫙 뺀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목표.
그러면, 지금까지 회삿돈으로 호의호식하던 재벌은 사라지고, 정말 일해서 돈 버는 사람들만 남게 된다.
이것이 윤기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I.M.F 해결법.
오히려, 윤기는 역사가 플랜B로 흘러가는 것이 반가웠다.
플랜A도 해결할 수 있지만, 사실 조금 이르다는 것이 윤기의 판단.
하지만 플랜B로 가게 될 경우, 와이케이의 인사부가 더 성장할 시간이 생기기에 플랜A에 비해서 안정적인 해결이 가능하겠지.
그래서 플랜B로 가게 되었다고 해서 조급해하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이기는 것은 본인이니까.
오히려 지금 윤기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른 쪽이었다.
그것은 바로 한재용의 새로운 고등법원 재판.
대법원에서는 당연히 2심 결과를 파기·환송했고, 결과적으로 한재용은 고등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판사에게 뇌물을 주지 못하게 된 신명그룹.
판사가 제정신이라면 당연히 이제 한재용에게 금고를 주지 않겠지.
아니, 무죄까지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윤기는 이 기회에 한 가지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어찌 보면 I.M.F보다 더 피날레가 될지도 모를 제도.
그것은 바로 ‘증거 배심원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