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648)
648화 나비효과 (3)
그야말로 침묵에 잠긴 법정.
하지만, 재판장은 선고가 끝나기 무섭게 뭐가 그리 급한지 바로 법정을 나섰다.
반면, 그야말로 얼어붙어 버린 한재용.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한재용의 표정에는 ‘왜…?’라는 말이 그야말로 가득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침묵에 잠긴 것은 방청객들 역시 마찬가지.
분명, 재판 과정에서 블랙박스는 방청객들에게도 공개되었었다.
그때 방청객들이 지금 모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예 TV에도 공개된 당시 상황을 보여 준 블랙박스.
따라서 방청객들은 그 누구도 한재용이 다시 금고형에 처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벌금 정도, 심하면 집행유예 정도나 받을까?
법관들이 자신들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한다면 집행유예, 1심에서의 판결을 사과한다면 벌금, 정말 운이 좋다면 무죄.
이렇게 생각한 것이 방청객들.
심지어 한재용의 변호사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이게 말이 돼?’라는 말을 가득 담은 표정.
실제로 변호사는 한재용에게 아무리 운이 나빠도 집행유예로 끝날 거라고 격려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금고라니.
그것도 2년이라니.
한재용은 뒤로 고꾸라졌다.
* * *
“와, 이걸 금고를 주네요?”
윤기는 헛웃음을 지으며 측근들을 바라보았다.
마찬가지로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측근들.
서재의 프로젝터에는 이번 사건의 블랙박스 영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윤기는 이번 사건에 왜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처음 개입했을 때는 블랙박스에 혹시 시스템 오류가 생기지는 않았나 싶어서 개입했다.
결과적으로 블랙박스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확인.
그리고 지금 윤기가 개입하는 것은 바로 판사의 농단 때문이었다.
윤기가 왜 계속 사법 시스템을 보완하려고 하겠는가.
다 판사들이 개짓거리 못하게 하려고 하는 거다.
하지만 지금, 정면으로 윤기에게 도전한 판사가 생긴 상황.
따라서 윤기 입장에서는 개입해야 될 이유가 생긴 것이다.
“판사가 미친 거 같은데…?”
최철규 역시 어이가 없는지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미친 거 맞아요.”
“응?”
윤기는 리모컨의 버튼을 눌러, 프로젝터에 새로운 사진 하나를 띄웠다.
화면에 나온 것은 이번 사건의 담당 판사.
담당 판사가 캐주얼한 의상의 어떤 남자를 만나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건 담당 판사가 누군가랑 만나고 있는 사진이에요.”
고개를 끄덕이는 비서들.
“경찰한테 뇌물을 쓴 녀석들인데, 당연히 판사나 검사한테도 뇌물을 쓸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판사랑 검사 주변에 인원을 배치했었어요.”
2심 판결 자체에 손을 쓰진 않았지만, 판결에 위화감이 생길 경우, 그 원인을 파악할 준비는 미리 해 놓았던 윤기.
“저 캐주얼 입은 사람, 신명그룹의 비서실에서 일하는 사람이더라구요.”
“와…, 일부러 캐주얼 입고 만나는 거 봐. 진짜 각 잡았었구나.”
최철규의 말대로다.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를 낀다?
이것은 누가 봐도 ‘나 수상함’이라고 광고하는 꼴.
반면, 캐주얼을 입은 30대 중반의 사내는 지나가다가 한두 마디 나눠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인상이었다.
“저 사람이 담당 판사의 집에 들어가는 사진까지 확보했죠. 물론, 뇌물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까지는 확인할 수 없어요. 하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받은 게 확실하겠죠?”
다음으로 뜬 사진은 야채 가게 사장이 입을 법한 복장을 입은 사내가 사과를 무려 열 박스나 가지고 담당 판사의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
얼핏 보면 사과를 배달하는 모습이었지만, 판결을 토대로 보면 누가 봐도 뇌물을 받은 게 맞았다.
단지, 그 증거를 잡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말이다.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액수로 판사를 매수한 거 아니겠어요?”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이유가 어쨌든 판사가 판결 내리면 대한민국은 그걸로 끝이니까요.”
만약 1심 판사가 판결을 더럽게 했다면, 2심이 남았기 때문에 이 방법은 쓰기가 조금 애매하다.
하지만, 2심 판사가 판결을 더럽게 내린다면?
꽤나 안정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한재용 씨가 100퍼센트 상고를 할 텐데?”
“상고심에서 파기 환송이 되고, 다시 고등법원에서 재판하는 동안, 신명그룹의 주영만에 대한 재판이 끝나겠죠. 그럼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주영만이 크게 처벌받는 일은 없을 거예요. 신명그룹의 목표는 한재용 씨가 큰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영만이 적은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일 테니까요.”
“아…, 그렇겠네. 내가 잠시 핀트를 잘못 잡았었네.”
여기까지 말하던 최철규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여기서 이걸 우리 모두에게 보여 주는 이유가 뭐야? 서재에서 볼 만한 내용은 아니지 않아?”
“어디까지나 추측이긴 하지만…….”
윤기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아마 이번 일이 끝나면, 다들 한동안 바빠질 거예요.”
윤기가 직접 바빠질 것이라고 공표하는 모습.
측근들은 모두 등줄기에 땀을 한 줄기 또르륵 흘렸다.
* * *
빠르게 진행되려고 하는 주영만에 대한 재판.
역주행에 대해서 벌금형 정도를 받고 끝난다면, 신명그룹은 이번 일에 대해서 빠르게 발을 뺄 수 있다.
하지만, 윤기가 더 빨랐다.
[역주행 차량의 주인, 신명그룹 회장의 아들로 밝혀져] [신명그룹 비서실 직원, 2심 담당 판사와 만나] [2심 담당 판사 집에 들어간 10개의 사과 박스, 그 안에 든 것은?]MEV 계열 신문에서 일제히 보도하기 시작한 사실.
그렇지 않아도 2심 판결에 대해 의아한 기분을 느끼고 있던 국민들인데, 그 이유를 알게 되자 모두가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서 윤기가 한가지 추가로 개입한 것.
그것은 바로 불매운동에 대한 은근한 바람이었다.
신문 기사부터 시작해서 뉴스, 거기에 술집에 투입된 임시찬 일행들까지.
이들은 국민들에게 신명그룹에 대한 불매운동을 자극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서서히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윤기가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바로 여학생의 사망.
한 달을 넘게 중환자실에서 고독한 싸움을 벌이던 여학생을 결국 죽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억울한 피해자인 여학생의 죽음까지.
국민들은 그야말로 폭발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했던 신명그룹의 회장 주성진.
자신의 머리가 뛰어나다고 믿고 일이 적당히 처리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주영만.
하지만, 상황은 그들이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회장님, 이번 달 매출이 급감했습니다. 이대로 갔다가는 추후 돌아오는 어음을 막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음을 막지 못하면 부도.
그렇지 않아도 부채율 500퍼센트를 넘어 700퍼센트를 달리고 있는 신명그룹이 어음을 막지 못한다?
비록 계열사 하나의 어음을 막지 못하는 것이지만, 이는 줄줄이, 도미노처럼 신명그룹 전체가 무너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보도되는 기사들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있는 주성진.
문제는 주성진 입장에서 아들인 주영만을 버릴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4대 독자인 아들 주영만.
만약 아들을 버린다면 신명그룹은 주성진의 대에서 끝난다는 얘기가 된다.
아니, 신명그룹은 끝나지 않겠지.
주성진이 아닌, 다른 방계가 물려받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주성진은 절대 그런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신명그룹이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핏줄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결연한 각오.
따라서 주성진의 선택지에는 주영만을 버린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남들 눈에는 망나니로 보이지만, 주성진 입장에서는 그저 당당한 아들일 뿐인 주영만.
따라서 주성진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아들 주영만을 감방으로 보내는 선택지가 아니라, 어떻게든 발버둥 치는 선택지를 골랐다.
“은행에 추가적인 대출을 받으면 되지 않나?”
“그게…, 이미 알아봤습니다만, 더 이상의 대출은 어렵다고 답변이 왔습니다.”
“뭐? 도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선한은행 쪽에 연락해서 약속을 잡아. 내가 직접 보자고 한다고.”
“아, 알겠습니다.”
주성진의 명령에 따라 선한은행 쪽에 연락을 넣은 비서.
다음 날, 주성진은 선한은행의 본점 대출 담당자와 만날 수 있었다.
“아이고, 박 부장님, 어서 오십시오!”
국내 10위 안에 들어가는 재벌그룹 회장이 본점이라고는 하지만, 은행 부장급에게 허리를 숙인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가능했다.
지금 심상치 않게 줄어들고 있는 신명그룹의 매출.
여학생이 사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뒷수습이라도 가능했겠지.
하지만, 여학생이 죽어 버렸다.
워낙 상태가 위중해서 다른 병원으로의 이송조차 불가능했던 상태의 여학생.
주영만이 사고 이후 단 한 번도 피해자를 찾지 않았고, 오히려 뇌물을 써서 자신만 빠져나가려고 했다는 것이 밝혀진 지금, 국민들의 분노는 엄청났다.
상황이 이런데 매출이 떨어지지 않으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겠지.
“아,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공손한 자세로 허리를 숙이는 박 부장.
의외로 박 부장은 주성진을 향해 불경한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혹시 이 위기를 벗어날지도 모르는 거니까 말이야.’
사회생활은 근본적으로 그 누구도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 원칙.
만약 상대에게 불만을 사게 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절대 명분을 주어서는 안 된다.
하물며 은행 본점 간부인 박 부장이 이것을 모를까.
따라서 박 부장의 표정과 태도, 그 어디에도 흠잡을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아쉬운 소리를 주성진이 먼저 해야 한다는 뜻.
“박 부장님, 요즘 생활은 어떠십니까?”
혹시 부족한 것이 있으면 자신이 채워 주겠다는 뜻.
하지만, 박 부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꽤나 만족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이번 연봉 협상에서 연봉이 꽤 올랐거든요.”
“아, 그, 그렇습니까? 축하드립니다.”
상대가 아쉬운 것을 말해야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될 텐데, 여지를 주지 않는 박 부장.
이후로도 주성진은 어물쩍 대화를 이끌어나가려고 했지만, 닳고 닳은 박 부장에 그에 걸릴 리가 없었다.
당연히, 시간이 지나도 진척되지 않는 대화.
결국, 주성진은 원하는 바를 대놓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실은 대출이 좀 필요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어…, 그것 관련해서는 이미 아랫분을 통해 답변을 드리지 않았던가요…?”
조심스럽게 대답하는 박 부장.
사실 박 부장도, 주성진도 지금 대화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명분과 주도권.
따라서 가면을 쓴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어라, 그렇습니까? 저는 그저 이번에 대출을 받는 김에 박 부장님과 자리를 만들었죠. 이거, 보고를 늦게 한 녀석들을 혼쭐을 내줘야겠습니다.”
너털웃음까지 터뜨리는 주성진.
반면, 박 부장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애쓴다’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혹시 추가 대출이 가능하겠습니까?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해 드리겠습니다.”
“어휴, 사례라뇨. 은행이 돈 빌려주는데 무슨 사례가 필요합니까. 하지만…, 역시 대출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현재 신명그룹의 부채율로 봤을 때……”
주성진은 일부러 박 부장의 말을 잘랐다.
“그러니까, 그걸 박 부장님께서 좀 도와주시면 좋겠다는 의미죠. 사례는 정말 섭섭지 않게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실, 대출 거부는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온 거라서…….”
아예 윗선까지 끌어들이는 박 부장.
무려 몇 시간이나 박 부장을 설득한 주성진이었지만, 결국 대출을 받아내지는 못했다.
이후로 다른 은행의 문도 열심히 두드려 본 주성진.
하지만, 모든 은행에서 추가적인 대출에 난색을 표했다.
다른 기업들 역시 빌려줄 여력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
따라서 주성진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선택지는 두 개였다.
하나는 국가에의 구제 요청, 다른 하나는 국내 최고의 재벌 와이케이에의 부탁.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의미가 없는 방법이었다.
일단 전자는 사실상 씨알이 먹힐 것 같지 않은 선택지.
기업 전부가 갑자기 죽어 버리는 상황이 오면 모를까, 이렇게 하나의 기업만 망하는데 국가가 구제해 준다?
아무래도 어려운 선택지였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당연히 후자.
가능성이 정말 낮았지만, 주성진은 윤기의 대저택 문을 두드렸다.
다행히도 허가된 출입.
거실 손님용 소파에 앉아 있는 주성진을 향해 윤기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야, 어떻게 여기 올 생각을 다 하셨어요? 회장님이?”
그렇다.
주성진은 윤기의 집에 도청 장치를 설치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