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mains of the Poison King RAW novel - chapter 119
“허허허! 겁이 없구나.”
“당신도 독제실의 독을 맛보며 십사 년간 살아 보면 알 거야.
겁이란 편한 사람들이나 갖는 사치스러운 감상이란 걸.”
“허허허! 당신이라…참 오랜만에 듣는 말이구먼. 반말도 오랜
만이고.”
은색 가면인은 단비하의 당돌한 말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상한 것은 삼절 진인 등의 태도였다. 그들은 마치 은색 복면
인의 수하라도 되는 양 입조차 벙긋거리지 않았다. 그것은 말
을 조심하라고 누누이 당부했던 무명인도 마찬기지였다.
“네가 당철휘를 죽였다고?”
“그게 인간이 할 짓인가? 죽이고 싶으면 깨끗이 죽이는 게 인
간의 도리야. 혈뇌옥, 독제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후손이
존장을 살해하고. 이런 망할 세상을 만든 사람들이나 당할 처
벌이지.”
“허허허! 네 아비는 누가 죽였다고 생각하느냐? 그리고 아비를
죽인 사람을 어떻게 할 작정이냐? 그들을 용서할수있나?”
순간 단비하는 차디찬 한광을 발산시켰다.
“그전에…당신이 은점인가?”
“그래, 내가 은점이야.”
“가면을 벗는 게 어때? 하늘을 우러러 얼굴을 들지 못할 일이
라도 저질렀나?”
순간 여태까지 너털웃음을 터뜨리던 은색 가면인의 안색이 싸
늘하게 굳어졌다.
“노옴…! 귀엽다고 봐 주었더니…”
“후후후! 당신이 귀엽게 봐주지 않아도…커억!”
단비하는 복부를 인두로 지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런 아
픔은 처음이었다. 정확히 건리혈(建理穴)을 맞았다. 건리혈에
그만한 통증이 일어날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놀란점은 은색 가면인의 놀라운 무공, 다가오
는 것도, 어떤 수법인지도 파악하지 못할 만큼 빠른 공격이었
다.
“도저히 구제 못 할 놈이군.”
“크윽! 그런 말은…남들도 했어.”
“제안을 하겠다. 독을 완성시켜 주면 목숨을 살려 주겠다.”
“푸후후후! 그독으로 또 누구를 죽이려고…”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독을 완성하겠나? 아니면 죽겠나?”
“후우! 되게 아프군. 내 말했잖아. 죽음이라든가 겁이라든
가…그런 것은 두렵지 않다고.”
은색 가면인은 잠시 분노의 화염을 발산했다.
“무슨 독인지 물어 보지 않나? 너도 독을 아니까 흥미있을텐
데?”
“내가 흥미를 느낀 독은 세상에서 하나도 없어.”
“허허허! 말을 함부로 하는군.”
그때였다. 하늘에서 꾸르륵, 하는 소리가 들리며 전서구가 날
아왔다. 털이 백설같이 하얀 전서구였다.
은색 가면인은 잠시 전서를 들여다 보고는 깊은 생각에 잠겨
들었다.
꾸르륵! 꾸르륵…!
전서구가 발하는 울음 소리만이 조용한 전각의 침묵을 깼다.
“이점, 혈반사접을 언제쯤이면 완성할 수 있겠느냐?”
대답을 한 사람은 당문주 당기룡이었다. 그가 바로 이점이었
다.
“마지막 변태를 중지시키지 않는다면…”
“않는다면?”
“자신 없습니다.”
“허허허…!”
은색 가면인은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당문주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단비하에게 돌렸다.
“살아있는 생물의 진화를 본 적이 있느냐?”
단비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제 이들이 원하는 것을 알았
다. 혈반사접이었다. 혈반사접의 독기를 실용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혈반사접 자체를 원했다.
오오! 하늘이 전율할 일이었다.
살아 있는 독나방들이 중원 전토를 누빈다면…인간의 종말이
었다. 하늘에서 눈송이처럼, 여름에 쏟아지는 폭우처럼 내리는
독가루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하로 숨어 들어도 죽는 것은 마찬가지다.
혈반사접의 독은 영구독이었다.
독에 중독된 대지는 적어도 오십 년이 지나야 원 상태로 회복
될 것이다. 자연은 자정능력(自淨能力)이 있어 그나마 오십 년
이었다.
“혀, 혈반사접!”
“허허허!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구나.”
“다, 딩신들은 미쳤어.”
“이놈! 말조심해라! 혈반사접을 만들어 유포시킨다면 그것은
누구도 말릴 수 없다. 그야말로 미친놈들이나 하는 짓이지. 그
러나 혈반사접을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면? 허허허! 그보
다 강한 문파가 지상에 존재할 것 같으냐?”
“미쳤어. 정말 미쳤어.”
단비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일,
그렇다고 치자. 독나방을 조정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러나 살아
있는 생물은 자연적으로 진화를 거듭한다, 혈반사접 역시 인위
적으로 조절하지 않아도 스스로 진화할때가 올 것이다. 그때는
아무도 감당하지 못한다. 생물은 속박을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것도 모른단 말인가.
“삼점, 단비하에게 혈반사접을 구경시켜 줘라. 그리고 빨리 돌
아와라. 네 어미가…오고 있구나.”
무명인의 어깨가 바르르 떨렸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추스르고
단비하의 어깨를 쳤다. 따라오라는 표시.
단비하의 발걸음은 휘청거렸다.
( 二 )
지옥에 사는 악귀의 몸부림을 본 적이 있는가?
살인마의 광기에 찬 눈동자를 보면서 태연할수 있겠는가?
남악 형산에 출몰했던 혈반사접이 아니었다.
몸집이 그때보다 다섯 배는 커졌고 귀기 어린 시뻘건 눈은 잠
자리처럼 튀어나왔다. 다리에 난 강모는 쇠처럼 강인했고 아름
답던 날개에는 붉은 진액이 흘러 보기에도 끔찍했다.
생김만으로는 단순하게 호기심을 자극할 뿐인 괴물. 하지만 그
들이 벌이는 악투(惡鬪)는 무엇으로 설명한단 말인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고 있었다.
날개가 찢겨 나가고 몸통이 떨어져 나갔다.
마지막 한 마리가 남을 때까지 처절한 싸움은 지속되었다.
최후의 승자는 죽은 나방들의 찢겨진 동체를 먹었다. 목불인견
(目不忍見), 이런 괴물들을 왜 만들었단 말인가.
천지봉에서 독을 연구하면서 진화를 생각해 본적이 있었다.
독사우공도 같은 부류였고 사두열목도 마찬가지였다.
몸집이 크고 독이 강한 놈들끼리 교접을 붙이면 그 다음은 더
욱 튼튼한 놈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시원찮은 놈들은 도태시키
면 된다. 그러나 그것과 이것은 달랐다.
독사우공이나 사두열목은 자연적인 진화를 선택했다. 자연이
만들어 낸 비홍사 중 가장 좋은 놈을 무기로 삼은 것이다.
이것은…혈반사접은 인위적으로 성장을 촉진시켰다.
적어도 남악에서 만났던 독접들보다 몇십 배는 강한 놈들.
이런 놈들은 자연의 부산물이 아니었다. 인간이 만들어 낸 저
주였다.
“이번이 마지막 진화였어. 모든 게 순조로웠어. 그래서 대붕전
시의 계를 실행에 옮긴 건데…”
“…!”
“만약 이놈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당문은 멸문이야.”
“후후후! 잘됐군.”
“…!”
“당신은 누구요?”
“당문의 육실장.”
“역시 육실장이었군. 당신이 당철휘를 잡아갔다던데 그를 그렇
게 만든 게 당신이오?”
“맞아.”
“이유를 물어 봐도 되겠소?”
죽은 나방의 동체를 다 먹어 치운 혈반사접은 날개를 푸덕여
단비하쪽으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들 사이를 가로막은 투명
한 옥벽(玉壁)때문에 더 이상 날아오지 못하고 날개만 퍼덕거
렸다. 세상에서 가장 흉폭하고 공격적인 놈이었다.
“그놈은 내 딸을 겁간하고 죽이려 했어.”
“그랬군.”
당철휘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그에게 원한을 가진 귀신들때문
에 아마 지옥에서도 편하지 못하리라.
“덕분에 내 딸은 아이를 못 낳는 여자가 되었지. 누군지 아나?
갈홍아…자네를 사랑하는 갈홍아가 내 딸이야.”
단비하는 무명인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그녀의 부모는 죽었다고 했지 않은가?
“은점이 바로 내 부친이야. 부친은 야망이 컸지. 당문의 문주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어. 그래서 찾아간 곳이 무산파…휴우!
당시만 해도 순수한 목적이었어. 천하를 떠돌며 중원에 산재한
모든 독을 견식해 보겠다는 단순한 생각.”
무명인, 갈홍아의 부친은 혈반사접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머니, 무산신녀를 만나면서 사랑에 빠졌지. 하지만 야망이
있었기에 당문 사람인 것을 숨겼어. 그렇게 해서 나를 낳고…
나는 흥아를 낳고…그 동안 부친이 한 일은 나머지 사대 독문
에서 독을 빼온 거야. 만우당 당주 남궁전을 죽이고 풍멸환을
빼앗았지, 그것은 혈반사접의 성품을 강화시키는 데 사용되었
어. 대붕파의 장문에게서는 충생비록을 빼앗았어. 사실 부친은
충생비록을 보고 나방을 연구하기 시작했지.”
“으음…!”
가능성있는 말이었다. 미완성이었지만 만우당의 풍멸환, 대붕
파의 도충에게 해를 입은적이 있지 않은가.
“일독문주의 부인을 유혹해서 부육수와 화골수를 빼앗았어. 물
론 그녀는 죽었지. 그런데 하필이면 그녀를 죽일 때 어머니에
게 들킨 거야. 어머니를 사랑하던 부친은 일장을 얻어맞고 죽
은 체했지. 사충전은 홧김에 무너뜨렸어. 휴우! 부친이 그때
사충전의 비급만 제대로 챙겼어도 벌써 혈반사접이 완성되었을
텐데.”
“아직도 미련이 남습니까?”
단비하는 존댓말을 사용했다. 갈홍아의 부친인 것을 알면서 하
대를 할수는 없었다.
“꼭 이루고 말 거야. 평생에 걸친 작업…꼭 완성해야 돼.”
“가족까지 버리고 말이죠.”
“사내에게는 야망이 있는 거야. 홍아의 어미만 죽지 않았어
도…”
“나를 그동안 살려 준 이유는 뭘니까?”
“홍아가 사랑하는 놈이니까.”
“그것뿐입니까?”
“그것뿐이네. 그리고 자네는 경계할 만한 대상도 아니었어.”
진정 경계할 만한 대상은 아니었다. 그런 점은 지금도 마찬가
지일게다. 이들이 살려 주는 이유는 바로 자신이 지니고 있는
의술 때문…하지만 혈반사접을 완성하는 일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당기룡은 당철휘에게 자포독을 주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나중에 한연지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려 했다더군.”
“삼절 진인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똑같데.”
“그는 청성파의 장문인데?”
“휴우! 부친은 무산파에 오기 전에 같이 살던 여인이 있었네.
그녀는 제갈세가의 여식이었지. 부친이 무산신녀와 혼인한 사
실을 알고는 자결하고 말았다네. 삼절 역시 당씨 성을 써야 하
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들지 않았어.”
“무산파의 제갈문은?”
“나에게는 형님이 되는 셈이지.”
“무서운 일이군요. 한 사람은 당문에서, 한 사람은 청성에서,
또 한사람은 무산파에서.”
“제갈문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있네. 제갈부 형님의 당부였
지. 동생은 어머니의 원한을 잊지 않을 거라고 또한 부친이 제
갈부를 찾아올 때 형님은 이미 도문에 입문해 있었네. 청성파
를 건드릴 이유가 어디 있는가? 혈반사접만 완성하면 천하무적
인데, 하지만 이왕 도문에 입문한것 청성의 무공을 배우는 것
도 괜찮다 싶었지.”
“당문 십절은 왜 죽였습니까?”
“당문 십절이 있는 한 당문은 협의 체제를 벗어날 수 없네. 천
하를 지배하려면 문주의 권력을 강화시켜야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체제는 장애만 될 뿐이야.”
“당치대는 왜 죽이지 않았습니까?”
“휴우! 부친은 여자 관계가 복잡했지. 당기룡과 당치대는 할아
버님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혼인한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이라네.”
단비하는 말없이 허공을 응시했다.
한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빚어 낸 결과치고는 아픔을 겪는 사
람들이 너무 많았다. 죽은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이고, 산 사람
들 또한 여생이 편안할 것 같지 않았다.
“궁금한게 있나?”
“육실은 뭐 하는 곳입니까?”
“부친은 어머니와 결별한 후 무산파의 인재들을 빼돌렸네. 그
들이 자네가 만났던 복면인들이야. 흑몽이라 부르지. 육실은
그들을 관장해 왔다네.”
“무산에서 그들에게 기습을 당한적이 있습니다.”
“자네가 해독하지 않았다면 당문이 나섰을 걸세. 어머니에게
무산파의 세력을 키우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였지.”
“혈반사접이 있는데 굳이 대붕전시의 계를 펼칠 필요가 어디
있었습니까?”
“혈반사접이 쉽게 완성되지 않자 부친은 조급해 하셨네. 그래
서 혈반사접의 독을 실용화시켜 시험해 보기로 했지. 다행히
형님이 청성파에 있어, 그 힘을 이용하면 당문의 위상을 높이
면서 안전한 실험을 할수 있었네. 현재 벌어진 대로…그런데
삼절 형님은 끝내 독한 사람은 되지 못했어. 사제와 장문은 죽
였지만 제자들은 회유하려 들었지. 그게 실패였어.”
“아미파의 기습에 실패했군요.”
“형님의 예측은 양패동사였지. 하지만 마지막에 토비들이 나서
는 바람에 실패로 끝나고 말았네. 하지만 아미파는 간신히 명
맥만 유지할 정도로 타격을 받았지. 또 궁금한 게 있나?”
“후후후! 자업자득이군요. 토비들은 갈홍아가 끌어 들였으니
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