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9
청풍표국 최강식객 019화
19화. 이 또한 강호의 일 (4)
“공자. 저를 받아주십시오.”
“……!”
갑작스러운 상황에 임요성을 비롯한 청풍표국의 일행 모두가 놀랐다.
특히 그의 아들 유대창은 너무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
“놀라셨을 줄 압니다. 하지만 이제야 제가 모실 주군을 만난 것 같습니다. 이제 살수의 길을 접으려는 때, 공자를 만난 건 제 일생일대의 기회입니다. 저를 받아주신다면 개와 말의 수고라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유산홍은 아들과 강호행을 하면서 많은 걸 느꼈다.
자신의 그릇과 성향은 누군가를 이끌거나 남 앞에 나설 정도는 못 되었다.
그리고 아들을 보면서 이제 살수의 길보다는 좀 더 아들에게 떳떳한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우연히 찾은 소주에서 가장 강하다는 소주검문의 식객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이번 살행을 마지막으로 검문에 들어가 다른 일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임요성을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다.
이 사람이라면 나와 아들을 의탁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거참….”
하지만 임요성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가 지금 다른 곳의 식객으로 가려는 마당에 누구를 수하로 들인다는 게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이들은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오래 지켜보진 않았으나 임요성 정도의 인품과 무공이라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들은 앞으로 천하를 질타하는 고수, 천하인의 탄생을 처음부터 지켜보는 게 아닌가 하는 설렘마저 느낄 정도였다.
난처한 표정의 임요성을 대신해 두혜련이 나섰다.
“공자님. 무사님 무안하시겠어요.”
싱긋 웃는 두혜련의 말에 임요성이 아차 싶어 말에서 내렸다.
“일단 일어서시오. 아들이 보고 있는데 굳이 지금….”
“그렇기에 지금 말씀드리는 겁니다. 남자는 모실 주군이 나타나면 주저하지 말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서요.”
“참…. 일단 알겠으니 일어서시오. 나도 지금 여기 있는 청풍표국의 식객으로 갈 수도 있는 상황이라 섣불리 누군가를 받기는 힘드니.”
그의 말에 옆에 있던 두혜련이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투로 말했다.
“식객이라 해서 따로 수하를 못 거두라는 법은 없지요. 이렇게 좋은 분을 얻게 된 공자님께서 저희 표국의 식객이 되신다면 저흰 더 좋을 테니까요.”
임요성의 말에도 요지부동 움직일 줄 모르던 유산홍이 고개를 들었다.
“소저. 이번 일에는 다시 한번 사죄를 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께도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유산홍이 고개를 땅으로 찧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죽이려고 한 이다. 그것도 다른 이들까지 끌어들여서 말이다.
하지만 그의 진정 어린 사과와 고개를 숙인 채 벌벌 떨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 누구 하나 험한 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자신들은 좀 놀랐을 뿐 크게 다친 사람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일행들을 쓱 둘러본 두혜련이 밝게 웃었다.
“저희는 어차피 크게 다친 사람도 없으니 괜찮아요. 다들 그런 생각인 것 같구요. 그러니 임 공자님 생각만 남았네요.”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자 임요성이 난처한 듯 뒷목을 문질렀다.
자신도 딱히 누굴 이끌어본 적은 없다.
오직 황자의 수신호위로서 호위 임무에만 충실했을 뿐.
그런데 이렇게 자신을 받아달라는 사람이 나오자 어색했다.
하지만 절실한 유산홍의 얼굴과 그 옆에 선, 어린 게 무슨 죄가 있을까 싶은 유대창을 보며 살짝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대의 청을 받아들일 테니 일어서시오.”
“감사합니다!”
유산홍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뭐 하느냐! 주군께 인사를 드리지 않고!”
엎드린 자세로 아들을 질책하자 유대창이 쭈뼛쭈뼛 무릎을 꿇으려 했다.
“됐다.”
임요성이 유대창의 앞으로 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소년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주, 주군 그러시면…!”
“난 괜찮으니 개의치 마시오.”
그렇게 말한 임요성의 눈이 유대창을 향했다.
“아버지의 지금 행동은 모두 널 위한 거란다. 널 제대로 키우기 위해, 위험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과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이지. 그러니 괜히 의기소침하거나 기죽을 필요 없다. 아버지와 난… 그러니까….”
할 말을 찾던 임요성은 문득 팽원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무반! 그렇지. 같은 무의 길을 걷는 동료라고 해두자꾸나.”
팽원호가 너스레를 떨며 했던 무반(武伴)은 불가나 도가에서 말하는 법우나 도우 같은 비슷한 도의 길을 걷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였다.
팽원호는 거기서 따와 무반이라 둘러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임요성의 뇌리에 그 말이 떠올랐고, 쓸만하다는 생각에 써 본 것이다.
머리를 쓱쓱 문지르자 그제야 유대창의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표국의 일행들은 모두 푸근한 표정이 되었고, 두혜련도 가슴이 콩닥거렸다.
평온한 얼굴로 그렇게 잔인한 손속을 보여주던 임요성이 악인은 아니라는 생각에 왠지 마음이 놓인 것이다.
임요성이 일어서며 두혜련에게 고맙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사실 두혜련의 입장에선 큰 결심을 한 것이다. 자신들을 죽이러 온 살수를 아무리 임요성의 옆이라 해도 자신들의 지척에 두다니.
물론 그녀의 이런 결정에는 자신들 중에서 아무도 죽지 않았고, 미미한 경상을 입은 표사들만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임요성의 존재였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이미 그의 존재감은 크게 자리 잡았다. 표행단에도 자신의 마음속에도.
그리고 유산홍 역시 자신들을 죽이려 한 살수를 흔쾌히 허락하는 임요성과 두혜련을 번갈아 쳐다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다시 한번 주군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산홍은 임요성에게 죽음 같지 않은 죽음을 선물 받고 깨어난 이후,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아등바등 뭔가를 이루려고 하다가 벌써 두 번째 어이없는 실패를 맛보았다.
특히 이번에는 병신같이 아들을 놔두고 죽겠다는 생각까지 하다니.
잠시 고민하던 유산홍이 뭔가를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주군께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다른 이들한테 말하는 건 주군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마음의 변화를 겪은 그가 임요성에게 전음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전음을 통해 임요성에게 전한 내용은 실로 놀라운 것들이었다.
그러나 황궁의 비정한 정쟁을 겪은 임요성은 담담히 듣기만 할 뿐이었다.
강호 역시 황궁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유산홍으로선 큰 결심을 한 것이다. 살수가 의뢰인에 대해 입을 연다는 건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앞으로 살수계를 떠날 생각이었기에 가능한 행동이기도 했다.
말을 마친 유산홍이 미소를 지었다.
“주군. 잘 부탁드립니다.”
유산홍이 고개를 숙이자 옆에 있던 유대창이 다리에 매달리며 훌쩍이기 시작했다.
“아버지….”
“너에게 몹쓸 짓을 할 뻔했구나. 어린 네게 큰 짐을 지울뻔한 이 애비를 용서해다오.”
“아녜요, 아버지. 다 상관없어요. 제 곁에만 있어 주세요. 흑….”
부자간의 다정한 모습에 두혜련의 콧방울이 벌게졌고, 다른 이들도 코를 문지르는 이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렇게 표행단 일행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였다.
자신들을 죽이러 왔던 이들을 한 식구로 맞이하는 것, 그 또한 강호의 일이리라.
* * *
이후로 표행은 순조로웠고, 다음 도시가 나오려면 한참 남았기에 일행들은 노숙을 해야 했다.
쟁자수와 표사들이 부지런히 천막을 세우고, 불을 피울 땔감을 찾는 등 노숙 준비를 시작했다.
두혜련은 유대창을 데리고 가까운 개울가에 먼저 씻겠다며 달려갔고, 유산홍은 임요성의 분위기를 짐작하고는 표행원들의 노숙 준비를 옆에서 도왔다.
그리고 표행원들의 노숙 준비를 지휘하고 있던 홍국헌에게 임요성이 다가갔다.
“홍 표두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예, 임 공자님, 무슨 말씀입니까?”
두 번의 습격을 막아준 임요성에게 홍국헌은 아주 깍듯하게 대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공기가 바뀌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귀가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어? 이, 이게…?”
“놀라지 마십시오. 기막을 쳐서 소리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귀가 좀 먹먹해지긴 했지만, 오히려 더 또렷하게 임요성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홍국헌이 마른침을 삼켰다.
도대체 이 젊은 공자의 무위에 얼마나 더 놀라야 하는가!
말로만 듣던 기막이라니! 기의 운용 능력이 탁월한 초절정고수 이상은 되어야만 사용할 수 있다는!
하지만 임요성의 이어지는 말에 홍국헌은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표두께선 뭔가 느끼지 못하셨습니까?”
그의 말에 홍국헌 역시 슬쩍 열심히 노숙 준비 중인 이들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기막이 쳐져 있다고는 하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저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혈루쌍괴까지는 이상하지 않았는데….”
홍국헌의 말을 임요성이 받았다.
“그렇죠. 그사이 그들이 실패했다는 걸 알고 바로 유무사를 보냈다는 게 이상합니다.”
홍국헌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설마 우리 사이에 간자가 끼어 있는 걸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렇게 발 빠르게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임요성은 눈앞의 이 사람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며칠 지켜본 결과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고, 무엇보다 그의 성정이 뭔가를 꾸미는 것과는 맞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를 믿고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이 표행단원들에 대해서는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므로.
“혹시 공자께선 의심스러운 이가 있는지요?”
“글쎄요. 저보다는 표두께서 일행들에 대해 가장 잘 아실 것 아닙니까?”
“하아…. 그렇긴 한데… 저도 짐작 가는 이가 없는 건 아닌데, 그 녀석은 저와 오랫동안 함께한 놈이라, 사실 여부를 떠나 정말 그놈만은 아니면 좋겠습니다.”
“이제 조금만 가면 전서를 보낼 수 있을 만한 도시가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일단 그때를 노리는 것으로 하고, 당분간은 표두께서 다시 한번 단원들을 유심히 살펴주십시오.”
“예. 걱정 마십시오.”
홍국헌이 임요성을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도시가 나오기까지는 둘 다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연주(兗州)라는 제법 큰 도시를 지날 때였다.
지금까지 표행단 전체가 묵을 수 있는 큰 객잔이 없어 다들 좋은 음식과 잠자리가 간절하게 그리울 시점이었고, 하루 묵고 갈 곳을 정하자마자 다들 씻는다고 부산스러울 때였다.
“거참, 재미없는 사람들. 표행하는 재미를 이렇게 몰라서야. 시내 구경도 좀 하고, 맛난 것도 먹고 좀 해야지, 에잉.”
혀를 몇 번 찬 윤찬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홍국헌을 보며 말했다
“형님, 전 여기 구경이나 한 번 하고 오겠수다. 뭐 맛있는 거 있으면 먹고 올 테니 제 음식은 준비하지 않으셔도 되우.”
이렇게 큰 도시를 지날 때는 숙박할 곳을 지정한 다음엔 삼삼오오 모여서 근처를 구경하는 경우도 더러 있어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 너무 늦진 말거라.”
“예이, 예이.”
몇 번 허공으로 손을 휘젓고는 윤찬이 객잔을 빠져나갔다.
그리곤 침통한 표정으로 임요성과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