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316
314. 자격시험 (5)
눈 깜짝할 사이에 어느 넓은 복도의 모습이 드러났다.
[ ……. ]카즈란의 안내를 따라서 보랏빛의 포탈을 넘었는데…….
제 1군주의 자리를 건 자격시험이 있을 곳이라기에는, 생각한 것과는 달리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마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본 성채들이랑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걸 카즈란도 알아챘는지 그는 바로 정중하게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걸음을 떼며 설명하듯이 말했다.
[ ……이곳은, 군주성입니다. ] [ 군주성? ] [ ……예. 제 1군주, 바알님이 기거하시는 곳이지요. 그리고 종종 군주 회의의 장소로도 쓰입니다. ] [ 그렇다면 자격시험은 바알과의 전투인가. ]그럼 어째서 제 1군주의 성채로 왔는지 이해할 수 있다.
사실상 자격시험이라는 것 자체가 바알과의 직접적인 전투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군주성으로 올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그러한 추측이 틀린 것일까?
그대로 조용히 복도를 걷던 카즈란이 잠깐 걸음을 멈추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카즈란이 기도문을 외듯이 숭배의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단지, 당신이 마계의 정점에 설 자격이 있는지, 그것을 확인할 뿐이지요……. ] [ ……. ] [ 이해하셨습니까. ] [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그다지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네. ]아니.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제 1군주의 자리를 걸고 자격시험을 진행하는 주제에, 그저 새로이 제 1군주가 될 자격이 있는지만을 판별한다니?
그리고 그걸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건 확실히 상식선 밖의 것이지 않은가.
‘마계에서 군주의 자리를 건다는 건, 목숨을 건다는 뜻이지 않았었나.’
심지어 마계의 성질을 생각하면 더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
제 1군주인 바알의 자리를 전투로 정하지 않는다는 것도 어이가 없지만…….
그것보다 더 어이가 없는 건, 눈앞에 있는 카즈란이 시종일관 바알에게 내비치는 태도였다.
사실상 카즈란은 반쯤은 바알을 숭배하고 있었다.
‘이질적이야.’
그리고 그에 나는 눈을 찌푸린 채 카즈란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카즈란은 내가 상위 신격의 끝자락에 가까운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을 터이다.
그런데 제 1군주인 바알과는 제대로 된 싸움조차도 할 수 없을 거라고 하다니?
솔직히 말해서 고대 신격의 사도인 그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뭔가가 이질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뭣보다 어째서 카즈란이 바알에게 저렇게 경외심을 가지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고대 신격을 섬기는 사도들은 대부분 주신 이외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는다.
신격에게 사도로서 총애받을 정도에 이르렀다면, 광신도로 불리어도 이상할 것 없을 정도니까.
하지만 카즈란은 고대 신격인 마신을 섬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알에게 경외의 감정을 비추었다.
‘뭔가가……, 놓치고 있는 기분인데.’
왜인지 모르게 뇌의 한구석이 간질거리는 감각이 일었다.
마치 정답을 가까이 두고 있는데 약간의 차이로 답을 도출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대체 뭘 놓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리 깊게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 도착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 ……이곳의 너머에 있는 건, 원탁의 회의장. ]어느새 카즈란이 장엄하다는 느낌이 드는 석문을 두고서 말을 걸어 온 탓이다.
[ 이제부터 이 너머에 있는 이들이 당신을 평가할 것입니다. ]순식간에 머릿속에 떠올랐던 부표와도 같은 생각들이 침체했다.
[ 원탁의 회의장은, 현재 마계에 있는 군주 중 최상위권의 실력자들로 구성되어 있지요. ] [ ……. ] [ 그들은 제 1군주이신 바알님에게 충성을 바치는 존재들이며, 새로이 나타난 군주를 평가하는 일도 맡고 있습니다. ] [ 이게 자격시험이라는 건가. ]그제야 나는 석문 너머에서 느껴지는 기운들을 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 이런 건 나도 그리 싫어하진 않아. ]그럴 만도 했다.
어차피 남에게 스스로의 힘을 증명하는 것 따위야 몇 번이고 거쳐 온 일이니까.
그다지 어려울 건 없었다.
심지어 이는 잘 생각해 보면 신성 , 그리고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지 않은가.
‘사실상 상위 신격에 도달한 적들을 상대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겠지.’
심지어 고대 신격의 경지를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니 더 그렇다.
비로소 이번에야말로 승천의 힘을 고대 신격의 경지까지 올릴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카즈란이 이쪽을 바라보며 천천히 석문을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 최저한의 예의를 갖추시는 걸 권하지요. ]쿠구구…….
[ 이곳에 있는 분은 그대 같은 신격조차도 경배해야 할 존재일 터이니. ]그리고.
[ 제 1군주, 바알님이 그대를 지켜볼 겁니다. ]이내 카즈란이 그렇게 말하며 석문을 완전히 열어젖힌 순간.
‘어?’
그대로 나는 눈을 부릅뜬 채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오! ]그도 그럴 것이…….
[ 드디어 왔는가! ]원탁의 회의장.
4명의 각기 다른 모습을 갖춘 군주들이 앉아 있는 곳.
그 너머에 있는 상석에 앉은 날카로운 눈매의 남성이 호쾌하게 웃는 게 눈에 들어왔으니까.
[ 오랜만이군……! ]다름이 아니라…….
「마신이 초월의 신을 바라보며 크게 반가움을 드러냅니다!」
[ 도전자 한성윤! ]마신(魔神).
고대 신격 중 하나이자 모든 악마의 정점에 선 존재가…….
어느새 호쾌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
순식간에 상황이 이해됐다.
[ ……. ]여태껏 머릿속의 한구석에 남아 있던 의문이 남김없이 풀렸다.
‘……최악이네.’
어째서 고대 신격의 사도인 카즈란이 바알에게 숭배의 감정을 비쳤는지, 그리고 제 1군주인 바알의 자리는 목숨을 건 전투로 정해지지 않는지.
이쯤 되면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생각을 이어 갈 틈은 주어지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원탁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자리에 앉은 마신이 털털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어온 것이다.
[ 탑에서 도전자가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즈음부터, 어느 정도 짐작하긴 했지만, 실제로 얼굴을 보니 감회가 새롭군! ] [ ……그렇습니까. ] [ 거목 미궁에서 봤을 때는 신성이 있긴 해도 그리 수준이 높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런데, 이제는 확실히 수준 높은 경지에 이르렀군. ] [ ……. ]순식간에 마신의 눈매가 좁혀지며 그의 어조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 심지어 그것도 마계의 군주들을 학살할 수준으로 말이야. ] [ 그건……. ] [ 그리고 뭣보다 재밌는 건 이제는 고대 신격의 경지마저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지. ] [ ……. ]마신은 한없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어조를 유지하며 씩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에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뭐 부정할 여지도 없겠네…….’
확신한 것이다.
[ 마신. ]바로…….
[ 당신이 바로 마계의 제 1군주인 바알이었습니까. ]눈앞에 있는 고대 신격이 바로 마계의 최고 군주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카즈란, 그리고 원탁에 둘러앉은 군주들이 눈을 빛냈다.
마치 제 1군주, 바알이 마신이라는 걸 바로 알아낼 줄은 몰랐다는 모습.
그런데 따지고 보면 대놓고 드러내져 있는 터라, 그렇게 알아내는 게 어렵지 않았다.
실제로 마신은 부정하지 않고 바로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하하하! 그래, 맞다! 바알. 그게 바로 나의 이름이지! 뭐, 대놓고 드러내고 있었으니, 모를 수도 없었겠지만 말이야! ]이제야 어째서 최고 군주의 자리가 생사결로 정해지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
최고의 군주로 자리를 잡은 게 고대 신격이라면 결투 같은 걸로 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굳이 따지자면 마신은 걸어 다니는 파괴의 화신과도 같으니까.
아마도 이 자리에 내가 몇 명이 더 있다고 해도 마신을 상대로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대 신격의 경지라는 건 그런 거다.
[ 고대 신격 같은 괴물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자격시험 같은 게 있었던 건가. ] [ 정답이군! 사실, 그냥 싸우는 것은 탑의 인과율 상으로도 허락되지 않고, 그다지 질 자신도 없어서 그리 달갑지 않거든! ] [ 하지만 신격 간의 전투는 인과율이 덜 적용될 텐데요. ] [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그것도 서로 간의 격차가 그리 크지 않을 때의 이야기. 나는……, 음, 정식 신격들은 건드리지 못한다. 그것들은 너무도 약하거든. ]마신은 툴툴거리듯이 말했다.
[ 귀찮게도. 애초에 인과율이라는 건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신격이 도를 넘어선 해악을 끼칠 수 없게끔 말이야. ] [ ……. ] [ 탑이란 것의 기원도 따지고 보면 그런 것이지. ……이제는 너도 궁금할 터이지. 탑의 본질적인 존재 이유,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이. ] [ ……그래서, 말씀하시고 싶은 게 뭡니까. ] [ 간단한 것이지! ]어느새 마신은 눈매를 웃는 것처럼 구부러뜨리며 말을 이었다.
[ 자격시험. ]마치 뭔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걸 드러내는 것 같은 모습.
[ 그것의 내용을, 이곳에 있는 모든 군주와의 혈전으로 정하지. ]그리고…….
[ 이곳에 있는 이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내게 오면 된다네. ]이내 그렇게 최고 군주의 자리를 건 자격시험에 관해서 말을 끝낸 순간.
[ 그리하여 내게 도착한다면 제 1군주의 자리를 넘겨주지. ]그대로 마신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원탁의 너머에 있는 검은 석문으로 들어섰다.
……그것도 아주 흥미로운 말을 흩뿌리며 말이다.
***
쿵.
[ ……. ]검은 석문이 닫히는 동시에 마신의 기척이 아예 사라진 순간.
“안타깝군.”
갑자기 원탁에 둘러앉은 군주 중 붉은 머리칼의 남성이 문득 말했다.
“설마 바알님에게 인정받을 정도의 괴물이, 한낱 탑에 종속된 도전자였을 줄이야.”
그리고 그에 또 다른 보랏빛 머리칼의 여성 군주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러게요. 상위 신격의 끝자락에 선 경지. 아마도 새로운 고대 신격이 될 수도 있겠죠.”
여태껏 조용히 그 대화를 들은 왜소한 체격의 남성 군주도 음울한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너는, 목숨이 아깝지도 않나……?”
같잖은 비하의 의도 따위는 없는, 진짜로 이해할 수 없다는 모양새.
“기껏해야 수백 년도 살지 않은 신격일 터이거늘. 너 같이 어린놈이 뭘 위하여 이곳에 있다는 건가. 목숨이 아까운 줄 알거라.”
[ ……. ]“어차피 필멸의 범주를 벗어난 시점에서, 시간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나. 어차피 너는 언젠가 고대 신격이 될 것이다. 그런 재목이고, 그런 실력이야.”
[ ……. ]“어쩌면 바알님과도 동수를 이룰 수 있겠지. 그런 재능을 가진 이를, 나는 죽이고 싶지 않다.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진짜로 아깝다는 듯이 왜소한 체격의 남성 군주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심지어 다른 두 군주마저도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읽을 수 있었다.
“바알님은, 우주의 시작이 있을 적부터 존재해 온 분이지. 그리고 우리는 그런 분을 섬기고 있는 것이고.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정녕 모르는 건가.”
다름이 아니라…….
“한낱 신격의 경지로는 우리들을 넘어설 수 없음을 알도록 해라.”
왜인지 몰라도 눈앞에 있는 군주들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심지어 연민에 찬 조언을 해 줄 정도로.
그리고 그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 하……. ]진짜 오랜만에 머릿속에 분노가 차오르는 감각.
[ 진짜 개소리 지껄이고들 있네. ]도전자인 게 안타깝다느니, 목숨이 아깝지 않냐느니, 죽이고 싶지 않다느니…….
마치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리 말하는 모습.
그것은 진짜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 그냥 닥치고 덤벼. ]그러니…….
[ 그래야 너희에게 알려 줄 수 있을 것 같거든. ]이제는 여태껏 얻어 온 힘을 참지 않고 쓸 차례이지 않은가.
그리고.
「신성 이 사용됩니다.」
「신성력을 소모하여 현실 세계에 말로 영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단, 세상의 이치를 간섭하는 언령에는 매우 많은 신성력이 소모됩니다.」
《 전부 죽어. 》
신성 의 빛이 원탁의 회의장을 물들이듯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