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9
제 29화
11장. 육성 프로젝트! – 1화
나스 대륙력 1414년 3월 14일.
4주의 시간이 흘렀다.
수련법에 매진한 덕분에 꾸준히 하루에 마력이 6씩 올랐고, 마력 스탯은 894가 됐다.
‘이제는 종일 힐을 사용해도 거뜬하겠어. 자잘한 치유 마법의 사용에서는 확실히 걱정을 덜었네.’
수련의 성과를 보니 뿌듯했다.
마법사인 나로서는 실탄이나 다름없는 마력이 늘어난다는 것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마력은 다다익선이다.
클래스가 오르게 되면 마력 소모량이 계속 2배 단위로 상승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4클래스라서 넉넉해 보일지 몰라도, 또 마력 80이 필요한 5클래스 마법을 쓰게 되면 또 부족하게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나중에 특수 마법을 시전하려면, 기본 마력 1000을 소모하게 되는 일도 허다하다. 지금 많다고, 나중에도 많은 것이 아닌 셈이다.
한편 자정을 막 넘긴 시간에 지하실로 내려온 나는 이자벨과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마법 방어력 증진에 관련된 디버프 수련을 하기 위함이었다.
다만 평소와 달리 이자벨의 앞에는 사탕이 담긴 바구니가 놓여 있었는데, 내가 그녀에게 준 선물이었다.
물론 이자벨에게만 준 것은 아니고 헤이즈, 레나, 미아를 비롯한 영주 저택 안에 있는 ‘모든 여자’에게 선물했다.
“이게 뭐야? 갑자기 사탕은 왜? 이거 먹고 예전 유령 시절 때처럼 살이라도 찌라는 거야?”
선물을 받기도 전에 초를 치는 것을 보니, 확실히 그녀답다.
제법 달게 만든 사탕이었기 때문에 확실히 칼로리는 어마어마할 것이 틀림없었다.
이자벨은 과거의 자신이 무척이나 뚱뚱했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는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따졌다.
“기념일이라 준 거야.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을 선물하는 그런 기념일이라서.”
나는 전생에서의 화이트 데이를 떠올렸다.
돌이켜 생각하면 누구에게 사탕을 선물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선물하기 이전에 초콜릿을 선물 받은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뿐인 여동생인 유희도 내게 의리 선물이라며 초콜릿을 챙겨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그야말로 흔한 현실 남매였다.
‘녀석, 잘 지내고 있을까?’
전생을 떠올리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래도 내 앞으로 생명보험을 하나 들어 놓았던 것이 있으니, 그 돈으로 아버지와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기념일? 나도 나스 대륙에 유행하는 많은 기념일을 알고 있지만,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닌데?”
“동방 대륙은 오늘이 기념일이라고 해. 한 달 전의 2월 14일은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고, 오늘인 3월 14일은 반대로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을 선물하지.”
“오, 듣고 보니 제법 로맨틱한 걸?”
날카롭게 반짝이던 이자벨의 눈빛이 누그러졌다.
그러고는 사탕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은근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좋아진 거야?”
“아니, 그 선물은 저택의 모든 여자들에게 선물한 거야. 네게만 특별하게 준 것 아니니까, 혼자서 김칫국 마시지 마.”
“와……. 자기 수련한답시고 사람은 사람대로 부려먹고, 마음은 안 주고? 자레드, 네가 모르나 본데! 우린 심안으로 엮인 사이야! 키스로 영원한 계약이 맺어진 사이!”
“야, 그건 심안에 대한 너와 나의 계약이지, 결혼 계약이 아니잖아?”
“어쨌든! 넌 내 입술을 처음으로 가져간 사람이라고!”
“누군 아니야? 나도 마찬가지야. 시끄럽고, 수련이나 하자.”
“너 진짜 나빠!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건데? 내가 싫어?”
“싫지 않아.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냐. 그리고 모르는 게 아니라, 알아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진짜 칼이네. 냉혈한 같은 놈. 이럴 줄 알았으면 이 몸으로 부활하지 않는 거였는데……. 흑흑.”
이자벨이 툴툴거리더니 우는 시늉을 했다.
그녀가 말은 저렇게 하지만, 그래도 할 것은 빠짐없이 다한다.
부활의 과정에서 나와 맺어진 계약의 구속력 때문이겠지만, 어쨌든 이자벨은 매일 밤 내 수련을 군말 없이 도와주고 있었다.
귀찮을 만도 한데, 어떤 날에는 본인이 먼저 지하실로 와서 기다리고 있을 때도 있었다.
종종 헤이즈를 대신해서 지하실 청소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 둘이 앉아 있는 카펫도 그녀가 시내에서 직접 골라서 구해 온 물건이었다.
눈썰미가 꽤 좋아서, 카펫은 지하실의 어둑어둑한 분위기를 밝게 살리는 데 큰 몫을 했다.
“오늘부터는 저주술의 강도를 두 배로 올리자. 이제 그 정도는 충분히 견딜 수 있을 만큼 마법 저항력이 올라온 것 같아.”
“괜찮겠어?”
“응, 걱정 마. 아낌없이 내게 저주술을 퍼부어 줘.”
걱정스럽게 되묻는 이자벨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4주 동안, 마법 방어력은 14가 올랐다.
하루에 0.5씩 꾸준히 오른 셈. 현재 마법 방어력 스탯은 34다.
‘마법 방어력이 100을 넘으면, 1클래스의 마법에 대해서 75%의 대미지 감소를 유도할 수 있지.’
나는 일차 목표로 마법 방어력 스탯 100을 설정한 상태였다.
그쯤 되면, 1클래스 마법에 대해 사실상 면역 상태가 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마법 방어력 스탯이 갖는 대미지 감소 효과에 실드와 같은 가벼운 보호 마법을 곁들이면, 쉽게 1클래스 마법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어력 스탯은 올리기가 어려운 만큼, 일단 올리기만 하면 보상이 확실한 스탯이기도 했다.
앞으로 수많은 네임드, 특히 같은 마법사 네임드와 마주칠 일이 많다고 생각하는 내게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럼, 간다! 이번에는 환시(幻視)의 주술이야. 지하실에서 나 외에 다른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하면, 방어 체계가 무너지고 있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응, 알고 있어. 버티는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날 괴롭히는 것에 힘써 줘.”
분위기가 순식간에 진지해졌다.
나는 또렷하게 두 눈을 뜬 채로 이자벨을 응시하고 있었고, 그녀는 내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이자벨, 손 꼬물거리지 마! 거긴 느낌이 좀 그래!”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집중해!”
샤아아아.
주술이 시작되면, 특유의 검붉은 기운이 내 몸을 감싼다.
그다음에 순식간에 육체의 기운이 처지기 시작하고, 정신이 잠식되기 시작한다.
여기서 떨어지는 체력을 힐 마법으로 회복시키고, 잠식되는 정신을 순수한 정신력으로 버텨 내는 것이 수련의 과정이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몇 번은 버티고 버티다가 무너지는 바람에 지하실에서 몇 시간을 기절해 있었던 적도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니 정체불명 – 이라기보다 누가 남겼는지 뻔한 – 의 립스틱 자국이 남아 있었던 적도 있었고.
나는 수련에 앞서, 성인 그라시아의 반지를 뺐다.
이 녀석이 있으면 정신계 마법, 주술에 면역이 되는지라 수련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다.
“간다.”
쉬이이.
이자벨의 말과 함께 검붉은 기운이 전신을 휘감았다. 확실히 기분 나쁜 저주의 힘이 느껴진다.
순수한 느낌만 놓고 보면 흑마법보다 더 악독하게 느껴지는 극악의 기운이었다.
이자벨이 나와 함께 지내면서 전보다 많이 순화된 것은 맞지만, 특유의 악령(惡靈) 기질을 버리지는 못한 듯했다.
‘온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물컹거리는 붉은 형상들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환시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가짜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내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거미였다.
지금까지는 작은 벌레나 어린 귀신 같은 것이 보였었는데, 이번에는 스케일이 확 달라졌다.
수를 셀 수조차 없는 많은 눈이 나를 보며 깜박였고, 여덟 개의 다리 위로 쭈뼛 솟아 있는 수많은 솜털이 나를 소름 끼치게 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거미에 대한 무한한 공포심이 용솟음친다.
“크흠.”
나는 침음성을 터뜨리며, 환시에 맞섰다.
두려워할수록 정신은 빠르게 잠식되고, 점점 적응력이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이런 꼼수 수련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내 거미가 앞다리의 끝으로 내 얼굴을 쓱 훑었다. 확실히 끔찍한 경험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녀석이 환시임을 주지시키며, 꿋꿋이 맞섰다.
동시에 저주로 인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체력의 상태를 힐 마법을 이용해 제동을 걸었다.
한데 바로 그때.
쿠아아아앗!
거미가 귀가 터져 나갈 듯한 울음소리를 내며, 내 앞에서 발광하듯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정말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꾸준히 수련해 온 덕분인지, 충분히 버텨 낼 만했다.
‘괜찮아. 이 정도쯤은.’
나는 내면의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러자 발작하듯 움직이던 거미가 이내 잠잠해지기 시작하더니, 종국에 이르러서는 수많은 나비의 형상이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동시에 이자벨의 말이 들렸다.
“제법이네. 10분 동안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버텨 냈어.”
벌써 10분이 지났다고?
느낌으로는 10초도 안 된 것 같은데, 그만큼 수련의 상황에 몰입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떤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은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나려는 찰나, 시스템 메시지가 나를 반겼다.
[내면의 공포를 극복하며, 강하게 담금질 된 당신의 저항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축하합니다! 마법 방어력 25가 영구히 증가합니다!]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다음부터는 1일당 기존의 2배 수치인 마법 방어력 1이 상승합니다.]‘역시 한 달을 부지런히 이자벨과 고생한 것이 헛되지 않았어!’
한 번에 마법 방어력 25가 올랐음은 물론이고, 하루의 수련으로 얻을 수 있는 성취량도 2배로 늘어났다.
마법 방어력 25를 올리기 위해서는 125의 스탯을 투자해야 한다. 25레벨을 올리는 것만큼의 기회비용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게 레벨을 올리지 않고도 꿀빠는 방법!’
미소가 지어졌다.
내게는 의도적으로 레벨의 열세를 역이용할 수 있는 아티팩트인 델루크의 팔찌가 있다. 그렇기에 레벨보다는 스탯이 중요했다.
한데 레벨업을 하지 않고도 꾸준히 마력과 마법 방어력을 올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었다.
“자레드, 우리 한 번 더 할까? 할 수 있겠어?”
“바로 가자. 이제 충분히 버틸 수 있어 보여. 조금 더 강도를 늘려 줘. 이번 주술, 정말 좋았어.”
“환시의 주술보다 더 강력한 것은 색욕의 주술이야. 특히 남자라면 버티기 힘든 수많은 유혹이 나타나지. 그간 네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내 알몸을 색욕의 주술로 볼 수 있을지도?”
“설명은 고마운데, 어째 마지막 결론이 좀 이상하다? 난 그런 생각을 한 적 없는데?”
“환시가 2성급 주술이면, 색욕은 3성급 주술이야. 지금 내가 가장 최대치로 구현할 수 있는 주술이기도 해.”
“좋아. 그걸로 가자!”
“각오 단단히 해. 순간 네가 주술이라는 것조차 잊고, 본능에 충실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추악한 내면을 볼 수도 있다고.”
“강한 시련일수록 극복할 때의 쾌감도 있는 법이지! 시작하자!”
나는 바로 대현자 고르자스의 목걸이를 뺐다.
3번 옵션에 성욕 통제 옵션이 있어, 이것을 끼고는 정상적인 수련을 할 수 없다. 정신계 디버프에 면역이 되어 버리니까.
툭.
이렇게 현자의 상징 – 혹은 고자의 상징 – 을 털어 내고, 나는 의욕적으로 수련에 달려들었다.
그 이후.
3시간이 흘렀다.
한차례도 쉬지 않고 논스톱으로 달려온 시간이었다.
과연 이자벨의 말대로 색욕의 주술은 쉽게 극복하기 힘든 온갖 욕망의 보고이자, 시련의 연속이었다.
내가 평소에 속으로 얼마나 음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주술로 보는 환각은 이자벨의 정신을 통해서 보인다고 한다.
심지어 공개해 보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안에서 온갖 환상과 마주쳤으니…….
차라리 잘됐지 싶었다.
나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 그것대로 좋다. 귀찮게 할 일도 없겠지.
“…….”
무섭게 이자벨은 말을 아꼈다.
그저 묵묵히 날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닌 듯하고, 헤이즈를 두고 애먼 상상을 한 것을 들켜서 그런 것 같다.
바로 그때.
새로운 정보의 등장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5클래스 진입을 위한 깨달음, 시련의 최소 조건을 갖추는 데 성공했습니다!] [특수 퀘스트 ‘도약을 위한 가르침’이 활성화됩니다. 해당 퀘스트를 모두 완료해야 5클래스의 마법사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드디어 올 것이 왔다.